선조를 찾아서

거경대학에서 노송정종택을 찾아서

오토산 2018. 4. 23. 16:28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294

 

 

 

거경대학에서 노송정종택을 찾아서

 

 

 

월란정사를 구경하고 나서 온혜리에 있는 노송정종택을 찾았더니 종택앞에 

주차장이 확보되어 있었고 도로에서 종택까지 들어오는 도로는 확장중이었다.

 

온혜(溫惠)마을은 동쪽에 청계(淸溪)가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용계(龍溪)가

용수사쪽에서 남으로 흘러 영지산에서 흘러온 온계(溫溪)와 합수하여 동남쪽

도계(兜溪)로 흘러 퇴계로 흘러가 상계와 하계로 흘러 낙동강에 이른다.

 

세종때 영변판관으로  부사를 도와 약산성을 넓히고 영변에 큰진을 설치하고

최윤덕을 따라 모린위를 징벌하는데 공훈이 있어 원종공신의 작훈을 받고

 한산과 선산수령이 되어 치적을 남기신  정(禎)의 막내로 태어난

이계양(1424~1488)이 부라촌(현 부포리)에서 봉화훈도가 되어 부임하러 가는날

신라재에서 잠시 쉬다 우연히 스님을 만나 '여기에 집을 짓고 살면 마땅히

귀한 아들을 얻게 될것이라'말을 듣고 이 곳으로 옮겨 살았고 

 

계유정란이후 봉화훈도에서 물러나 뜰아래 노송나무 한 그루를  심고

단종이 승하하던날(10월24일) 해마다 국망봉에 올라 하늘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영월을 향하여 절을 하였다고 한다.

 

노송정종택(老松亭宗宅)은 단종 을해년(1455)에 이계양이 처음짓고 살아오다가

 수차례 증.개축을 하여 오면서 독실한 지행(志行)과 학문에 전념한 진사 李埴과

호조참판 관찰사를 지내며 청렴하기로 이름높았던 松齋 李堣 형제와 

관찰사를 지낸 溫溪 李瀣와 동방유학의 거성(巨星) 退溪등 여러형제가

여기서 태어나 '퇴계태실'이 있고 퇴계어머니 춘천박씨가 퇴계를 가졌을때

공자가 문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고 하여 성임문(聖臨門)이라는 솟을대문과

 'ㅁ'자형 종택과 노송정 정자와 사당이 있다.

 

해동추로(海東鄒魯) 동방에서 공맹(孔孟)이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현판과

영남에서 낙양(洛陽)의 程子와 민중(閩中)의 주자와 같은 대현이란 뜻의 山南洛閩,

사람이 보이지 않는 구석진곳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조심해서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라는 옥루무괴(屋漏無愧)와 여러 현판들을 돌아보며

이동수 강사의 설명을 들었다.

 

노송정에서 설명을 듣고 종택을 돌아보고 선산부사가 영변에서 가져온 뚝향나무도

보았고  종택앞 주택의 뒷편에 걸린 씨레기를 보며 농촌의 진풍경을 느끼며

 녹전에서 이건한 퇴계의 큰집 조카 企菴 李完의 정자인 요산정(樂山亭) 거쳐서

인근에 있는 온계종택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節序駸歲暮天(절서침침세모전)          계절은 빨라 어느덧 한 해는 저무는데 

雪山深擁寺門前(설산심옹사문전)         깊은산 절문앞에는 백설이 쌓였으리라

念渠苦業寒囱下(염거고업한창하) 차가운절간 창가서 공부하는 너희들 생각하니

淸夢時時到榻邊(청몽시시도탑변)           보고싶은마음 맑은꿈이되어 침상가에

오락가락 하는구나   <奇子堣讀龍壽寺 기자식우용수사>

용수사에서 독서하는 아들 식(埴)과 우(堣)에게 보내다

 

 

 

 

 

 

 

 

 

 

 

 

 

 

 

 

 

 

 

 

 

 

 

 

 

 

 

 


 

 

 

 

 

건물뒷편에 걸린 시레기를 보면서 놀촌의 진풍경을 느껴~~~

 

 

 

 

 

 

 

온계종택 가는길에 있는 요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