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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경대학에서 온계종택(삼백당)을 다녀와서
노송정종택에서 온계종택으로 가는 길에는 작약밭이 있었고
비닐밑에서 작약싹이 비닐을 뚫지 못하고 불룩하게 밀고 있어서 일행들이
비닐을 뚫어 작약에게도 정성을 베풀고 농민에게도 일손을 도와주었는데
이런 것들이 베품의 정신이고 나눔의 실천이 아닌가 싶었다.
온계종택입구에도 주차장이 일부 확보되어 다행스러웠다.
온계종택은 온계선생의 종택으로 의병전쟁당시 온계종손의 동생 이인화
(1859~1929)가 예안의병장으로 활약한데 앙심을 품은 일본군의 방화로
소실되고 종가는 계속되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청송, 예천, 문경등을 전전하다
해방후돌아와 종택별당이었던 취미헌(翠微軒)을 종택으로 사용하며 지내다가
국가보훈처의 지원과 후손들의 정성이 모아져 2011년 5월 온계선생이
노송정종택에서 분가해서 살던 노송정종택 옆에 복원을 하였다.
온계의 손자 이유도의 당호에 따라 삼백당종택이라고도 한다
溫溪 李瀣(온계 이해 1496~1550)은 조선중기 문인으로 진사 이식의
넷째 아들이며 퇴계의 중형으로 30세에 진사, 33세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 도승지를 거쳐 대사간, 대사헌을 지냈으며 이기의 중용을 반대하고
탄핵하다 이기의 원한을 사게 되었고 외직을 청하여 강원,황해,충청관찰사를
지냈으나 이기의 끈질긴 마수에 걸려 탄핵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갑산으로
귀양길에 '대동강 물은 언ㅡ때나 마르려나 이별의 눈물로 해가 갈수록 푸른
파도만 더해가네(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라는 이별시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종택에 도착하니 종부는 따뜻한 차를 한잔씩 주었고 이목 종손은 집안내력을
설명하고 집앞의 500년된 밤나무를 소개하면서 전국에서 두번째(평창다음)로
오래된 밤나무로 신혼부부들이 밤나무의 기를 받아 아들을 낳기도 한다고
자랑을 하였고 우리가 떠날때는 마을입구까지 배웅을 하여 주었다.
종택에서 이동수 전임강사는 이목 종손이 종택복원에 많은 노력을 하였고
지역의 발전을 위하여 5개면 통합으로 기숙형 웅부중학교도 유치하였으며
면사무소와 협력하여 중점거접소재지 사업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개를 끝으로 오늘의 답사를 마쳤다.
친절히 안내해준 이목 종손과 거경대학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리고
오늘 함께 하여주신 모든분들이 건강하시게 다음달에 만날수 있기를~~
세상사 한마디
가정을 살리는 네가지 생명의 씨로는
가족간 에티켓을 지키며 자기분수에 맞게 살려는 단정한 모습의 맵씨
자기개성을 살리며 식구들이 원하는것을 충족시키는 지혜로운 솜씨
가족의 氣를 살리며 식구끼리 용기있는 말로 격려를 하여주는 말씨
서로에 대한 고마운 감정을 잃지 않으며 정을 나누어 주는 마음씨
작약에겐 활기을~~농민에겐 일손을~~
기운을 나눠주는 5백년 묶은 밤나무~~
주차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제 조그만 주차장이라도~~~
기숙형 웅부중학교~~
입구에는 꽃잔디가 반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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