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의학(醫學)의 최고봉, 『동의보감(東醫寶鑑)』
조선시대의 ‘명의(名醫)’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누구일까?
아마도 100명 중 99명은 허준(許浚)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수많은 역사소설과 사극의 주인공이 되었을 만큼 허준은
일반 대중들에게도 친근한 인물이다.
역사소설이나 사극에서 그려지는 허준의 모습에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내용들이
상당히 많지만, 허준이 조선 최고의 명의 중 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허준을 조선 최고의 명의로 우리에게 각인시켜준
책이 바로 그의 필생의 저작인 『동의보감』이다.
전통 향약(鄕藥)과 첨단 의학을 망라한 조선
의학의 결정판
허준(1539~1615)의 본관은 양천이고 호는 구암이다.
1569년(선조 2)에 유희춘(柳希春)의 추천으로
내의원(內醫院, 조선시대 왕의 약을 조제하던 관서) 의원이 되었으며,
이후 어의(御醫, 궁궐 안에서 임금이나 그 일족의 병을 치료하던 의원)
양예수(楊禮壽)로부터 의학 수업을 받으면서 내의원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590년(선조23)에는 왕자(후의 광해군)의 천연두를 치료한 공을 인정받아
당상관(堂上官, 정사를 볼 때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정3품 이상의 관리)
벼슬을 받았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선조를 호위하였다.
1600년 양예수가 사망하면서 명실상부한 내의원의 수의(首醫)가 된 허준은
이때부터 각종 의학 서적의 편찬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여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 등을 편찬·간행하였다.
그리고 72세 때인 1610년(광해군 2) 허준은 자신의 의학 이론과 지식을 총집대성한
종합 의학서 『동의보감』을 완성하였다.
이후에도 허준은 1613~1614년에 전국적으로 전염병이 창궐하자
이를 치료하기 위해 『벽역신방』『신찬벽온방』등의 새로운 의서를 편찬하였다.
『동의보감』은 허준이 일생동안 연구한 의학 이론과
실제 진료를 통해 효과를 확인한 의학의 치료법을 종합 정리한 의서로서,
‘허준 의학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의보감』의 내용은『내경편(內景篇)』『외형편(外形篇)』
『잡병편(雜病篇)『탕액편(湯液篇)』『침구편(鍼灸篇)』 등
모두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의보감』의 첫 부분은 인체의 내부 장기 및
각각의 특징을 그림으로 표현한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로 시작된다.
이 그림은 사람의 몸을 이해하는 허준의 철학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경편』은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허준의 의학 이론을 정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과 질환에 해당하는 병증들의 내용을 수록한 부분이다. 『
내경편』에는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찬할 때
적용한 기본 원칙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이전의 의학서들과는 다른 『동의보감』만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외형편』은 사람의 몸 밖에서 생기는 질병들,
즉 이비인후과·안과·피부과 등에 해당하는 질환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잡병편』은 각종 질병의 원인과 진찰하는 방법, 그리고
『내경편』과 『외경편』에서 다루지 않았던
각종 질병들에 관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잡병편』에는 지금의 구급 의학이나 부인과·소아과 등에서
다루는 질병들이 별도로 정리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탕액편』은 당시 조선에서 많이 사용하던 약재 1,000여 종의 효능,
그 약재를 사용해야 하는 질병의 종류, 약재의 채취 및
가공 방법, 생산지 등을 정리한 것이다.
약재의 이름을 기록할 때는 한자 이름 아래에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을 한글로 같이 표기해서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침구편』은 이름 그대로 침과 뜸에 관한 내용이다.
침과 뜸을 놓는 방법, 사람의 몸에서 침이나 뜸을 놓아야 할 혈의 위치,
침·뜸을 사용해야 하는 질병의 증상 등에 대해 설명하였다.
중국·일본에서도 인정한 동아시아 정상의 의서
조선의 의학은 15세기 초부터 독자적인 향약론(鄕藥論),
즉 조선에서 생산된 약재를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론을 발전시켜 왔다.
세종 대에 편찬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은 당시의 향약 이론과
치료법을 집대성한 대표적인 향약 의학서이다.
허준의 스승 양예수는 『의림촬요(醫林撮要)』라는 의학서를 지어
조선 독자의 향약론을 정리했으며,
허준 역시 양예수를 통해 향약론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뿐만 아니라 허준은 명을 통해 전해진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의학 이론을 받아들였다.
조선의 향약론은 중국 송대(宋代) 의학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반면, 중국에서는 송나라 이후
금(金)나라와 원(元)나라 시기에 의학이 크게 발달하였다.
그리고 금·원의 의학을 충실히 정리한 명(明)나라의 의학
지식들이 16세기에 조선으로 유입됐는데,
허준이 바로 이것을 자신의 의학에 흡수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허준의 의학은 조선 전통의 향약론을
기반으로 하면서 명나라를 통해 수입된 금·원대의 의학을 흡수하여 종합한 것이며,
『동의보감』은 그와 같은 허준 의학의 정수가 담겨 있는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의보감』은 25권이나 되는 거질임에도 불구하고
17~18세기에 전국적으로 보급되었고
18세기 후반에는 지식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필수 서적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또, 조선 후기에는 『동의보감』의 내용 중 치료에 자주 사용되는
처방들을 선별하여 축약한 의서나 부인과·소아과 등
특정 분야만 따로 정리한 전문 의서들이 많이 발간됐다.
이는 조선후기 의학에 『동의보감』이 끼친 영향이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동의보감』은 중국·일본 등으로 수출되어 현지에서도 간행되었다.
중국에서는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동의보감』이
서점에서 판매될 정도로 많이 보급됐으며,
중국에 파견된 조선 사신들은 『동의보감』을
중국에서 귀한 의서로 인정받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일본에서 『동의보감』은 일본 의학의 표준이 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일본 사신들은 조선에 올 때마다 『동의보감』을 구입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이런 점에서 『동의보감』은 조선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의학의 정상에 위치했던 의서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동의보감』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동의보감』이 전통시대 동아시아 의학계에서 차지했던
위상과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결과이다.
<출처: KDI 경제정보센터 /강문식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
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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