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훈장자리를 부탁받은 김삿갓

오토산 2020. 1. 14. 09:49

●방랑시인 김삿갓 02-(58)

*천하의 명의가 되는 법.

 

 

김삿갓은 삼충 선생이라고 불리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훈장의 손을 떨쳐 버렸다.

"에이, 여보시오.

내가 왜 삼충 선생이란 말이오."

 

 그러자 훈장은 소리를 크게 내어 웃으며 말한다.

"이러나저러나 내가 선생한테 꼭 부탁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소이다."

 

 "무슨 부탁을 하시려는지 어서 말씀을 해보시죠."

 

 "선생은 학문이 놀랄 만큼 박식한 분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공맹재의 훈장 자리를 선생이 맡아 주시오.

나로서는 간곡한 부탁이에요."

 

 "선생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오 ?

선생과 나는 금시 초면인 사이인데, 나를 어떻게 믿고,

서당의 훈장 자리를 맡기시겠다는 말이오 ?"

 

 물론 김삿갓은 애시 당초 훈장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김삿갓의 손을 다시 움켜잡으며 간곡하게 말한다.

 

 "나는 물론 선생의 과거를 전혀 몰라요.

그러나 사람에게는 직감이라는 것이 있지 않소이까.

선생이 예사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관서 지방을 주유천하로 다니시는 것을 몇 해 동안만 연기하시고,

나 대신 이 마을의 서당을 좀 맡아 주세요.

간곡히 부탁 합니다."

 

 김삿갓으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부탁이었다.

 김정은과 같은 협잡군의 입에서 설마 그와 같은 양심적인 부탁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김삿갓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에게 훈장 자리를 넘겨 주시겠다는 말씀은 고맙지만,

 나는 훈장 노릇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으려니와,

아이들을 가르칠 만한 실력도 없는 사람입니다."

 

김삿갓이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리자,

김정은 훈장은 펄쩍 뛰며 손을 내젓는다.

 

 "선생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오.

이왕에 말이 나왔으니 모든 것을 솔직이 말씀드리지요.

내가 오늘날까지 어거지로 훈장 노릇을 해오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훈장으로 있어 가지고서는 앞길이 창창한 이 마을 아이들의 장래를

송두리째 망쳐 버리게 되는 것이에요.

 

내가 지금은 사리 사욕을 위해 훈장 자리를 타고 앉아 있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망쳐 놓을 수 없어요.

내가 아무리 거지 발싸개 같은 협잡군이기로,

아직은 양심의 그루터기만은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훈장 자리는 선생이 꼭 맡아 주세요."

 

 말인즉 옳은 말이었다.

김정은이 훈장으로 있으면 아이들의 장래를 망치게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김삿갓 자신이 선뜻 나서, 훈장 자리를 맡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선생은 지금까지 훈장 자리를 잘 지켜 오시다가 별안간 왜 그런 말씀을 하시오.

내가 나타나지 않은 줄 아시고, 그자리를 지금처럼 그냥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김정은 훈장은 도리질을 크게 하면서 말한다.

 

"선생을 만났기 때문에 별안간 그런 생각이 난 것은 아니예요.

나는 오래 전부터 마음속으로 적임자를 찾고 있던 중이었는데,

 하늘이 나를 살려 주시느라고 , 선생같이 훌륭한 분이 나타나게 된거에요.

이것은 하느님의 지시가 분명한 것이오니,

 아무소리 마시고 훈장 자리를 꼭 맡아 주세요.

그래야만 나도 살고 아이들도 살게 되는 거예요."

 

 훈장의 말을 듣는 동안,

김삿갓은 불현듯 돈 한푼 없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해 보았다.

 

멀지 않아 추위가 닥쳐 올 판인데, 훈장 자리를 타고 앉아 있으면

겨울을 편히 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러나 훈장 노릇을 하려고 집을 나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김삿갓은 고민 끝에 김정은 훈장에게 말했다.

 

 "선생이 훈장 자리를 내놓으면 생계(生計)가 곤란하실 게 아닙니까 ?"

 

 "그점은 조금도 걱정 마시오.

나는 백중국이라는 약국 간판만 있으면 먹고 살아가는데는 아무 걱정이 없어요.

만약 선생이 훈장 자리를 맡아 주시면,

나는 선생에게 <동의보감>을 배워 가지고 나 자신도 훌륭한 명의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피차간에 얼마나 좋은 일이 되겠소."

 

 김정은은 워낙 머리가 비상한 위인인지라,

 자기가 살아갈 방도는 용의 주도하게 꾸며 놓고 있었다.

 

 김삿갓이 대답을 주저하고 있는데,

마침 젊은 환자 하나가 찾아왔다.

환자는 이십이 못 되 보이는 새서방이었다.

 

환자가 방안에 들어와 큰절을 올리자,

필봉은 절을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매우 거친 어조로,

 

 "자네는 무슨 일로 왔는가 ? "하고 묻는데,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그 어조에는 이상하게도 권위가 풍겨 나왔다.

 

 환자는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 말

 "저는 별다른 병은 없사옵니다.

다만 이상하게도 입에서 몹쓸 냄새가 풍겨 나오기 때문에 선생님을 찾아 왔사옵니다."

 

 필봉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입에서 냄새가 좀 풍겨 나기로 어떤가.

잠자리에서 색시하고 입을 맞추기가 거북해서 그러는가 ?"

 

 그러자 환자는 얼굴을 붉히며,

"선생님두 참 ! "

 

 "입에서 냄새가 많이 나거든 마늘을 많이 먹게.

마늘은 정력제로 좋은 것이야.

그런 일을 가지고 무엇 때문에 약국을 찾아오는가."

 

 김삿갓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웃음을 씹어 삼켰다

. 마늘은 강장식품이지 정력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환자는 고개를 갸웃 하며 반문한다.

 

 "선생님 !

 마늘을 먹으면 입에서 마늘 냄새가 지독하게 날 것 아닙니까 ? "

그러자 필봉 선생은 천연스럽게 대답한다.

 

 "그야 물론이지.

 마늘 냄새가 지독한 것은 뻔한 일 아닌가 ?

그러나 마늘 냄새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냄새가 아닌가 .

그러니 마늘을 많이 먹고, 하룻밤에 한 번 해줄 것을 두 번 세 번 해준다면,

 새댁은 냄새가 좀 나더라도 그 편을 훨신 좋아할 것이 아니겠나.

그러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 마늘이나 많이 먹게 !"

 

 환자가 백배 사례하고 돌아가자,

김삿갓은 배를 움켜잡고 웃엇다.

 

"선생은 과연 천하의 명의십니다."

돌팔이 의원은 껄껄껄 웃으며 태연 자약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명의라는 것이 따로 있는 줄 아시오 ?

 자고로 명의란 약을 잘 써서 되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임기웅변으로 말을 잘 둘러대야 명의가 되는 것이라오."

 

 ...계속 59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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