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돌팔이의원의 이야기를 들은 김삿갓

오토산 2020. 1. 15. 08:27

●방랑시인 김삿갓 02-(59)

*돌팔이 의원의 위기 극복기.

 

김삿갓은 필봉 선생의 명의 주장을 듣고 궁금한 점이 있어, 물어 보았다.

"병을 그런 식으로 치료해 주다가 사람을 잡기 쉬울 터인데,

그런 일은 없으셨던가요 ?"

 

"선생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오.

의원치고 애매한 환자를 죽여 보지 않은 의원이 어디 있겠소.

자고로 명의라는 말은 <환자를 많이 죽여 본 의원>이라는 말인 줄 모르시오 ?"

 

김삿갓은 기가 막혔다.

"그렇다면 선생도 약을 잘못 써서 환자를 죽여 본 일이 있단 말입니까 ?"

 

"따지고 보면 사람이란 언젠가는 어차피 죽게 되는 것이 이치일진데,

예전에 실수로 어린 아기를 죽였을 때만은 거북한 생각이 노상 없지는 않지요...."

 

"옛 ? 어린 아기를 죽여 본 경험도 있으시다고요 ? "

아무리 돌팔이 의원이기로 어린 아기를 죽여 본 일이 있노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데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른들의 경우는 오만 가지 병이 많아서 약을 잘못 쓰면 죽을 수도 있겠지만,

어린 아기들의 병이란 감기나 급체 정도인데,

어쩌다가 어린 애기까지 죽여 본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

김삿갓이 정면으로 나무라 주자,돌팔이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 같으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오.

그때만 하더라도 약국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일인지라,

경험이 너무도 부족해 그랬던 것이지요."

 

"생떼 같은 애기를 죽였다면 애기의 부모의 행패가 대단했을 터인데,

그런 것을 어떻게 넘기셨소."

 

"그것도 역시 배짱으로 무사히 넘겨 버렸지요.

그때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시려오 ? "

그리고 돌팔이 의원은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김정은이 백중국이라는 약국 간판을 내건 지 열흘쯤 지난 어느날의 일이었다.

산골 사람 하나가 불덩이같이 열이 높은 어린아기를 업고와서,

 "선생님 ! 이애가 무슨 병인지 몸이 불덩어리같이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선생님 열을 좀 내리게 해주십시오." 하고 애원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필봉은 패독산 한 첩을 지어 주었는데,

그것 가지고는 미흡할 것 같아서 부자(附子)를 몇 톨 곁들여 넣어 주었다.

부자가 극약(劇藥)인줄 모르고, 다만 열제(熱劑)인 줄 만 알았기 때문에,

 자기 딴에는 이열 치열 (以熱治熱)하는 화제(和劑)를 지어 준답시고

약방문에도 없는 부자를 첨가해 주었던 것이었다.

 

어린 애기는 집에 돌아가 그 약을 달여 먹고 그 자리에서 즉사 하였다.

그러려니 애기의 애비 되는 사람이 백중국으로 달려와 애기를 살려 내라고

 야단 법석을 떨었다.

 

돌팔이 의원은 속으로는 어안이벙벙하였다.

그러나 머리를 수그려 사과를 했다가는 뒷 수습이 어려울 것 같아서,

 "그게 무슨 소린가. 그 약을 제대로 먹였다면,

열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네.

자네 말을 믿을 수가 없으니, 나와 함께 직접 집에 가보세."

필봉 선생은 환자의 집으로 달려가 애기의 시체를 만져 보다가,

태연히 다음과 같이 호통을 질렀다는 것이다.

 

"이 사람아 ! 자네는 멀쩡한 거짓말을 했네그려.

애기는 몸이 싸늘할 정도로 열이 깨끗하게 내렸는데,

뭐가 불만스러워 야단이란 말인가."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포복 절도를 하였다.

"하하하, 선생 배짱은 알아줘야 하겠습니다.

그래, 호통을 질러서 문제는 잘 해결되었습니까."

 

"애기는 이미 죽어 버렸는데, 해결이 안 되면 어쩔 것이오.

복잡 다단한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배짱이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오."

 

마침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오라버니 ! 언니랑 아이들이랑 모두들 어디 갔어요 ?"

하고 묻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필봉은 젊은 여인을 보자 크게 반색을 한다.

"아니 네가 어떻게 내려왔느냐 ? "

 

"집에만 앉아 있기가 갑갑하여 언니한테 놀러 왔어요.

그런데 언니랑 아이들이랑 어디를 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네요."

분홍 저고리에 남치마를 입은 20세 쯤 되어 보이는 색시는 그렇게 말하며,

눈으로는 김삿갓을 바라보고 있었다.

 

훈장더러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그 색시는 홍 부자의 소실인 필봉 선생의 누이동생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여염집 여자들은 외방 남자의 얼굴을 함부로 바라보는 법이 아니건만,

그 색시는 면구스러울 정도로 김삿갓의 얼굴을 흘낏흘낏 훔쳐보고 있었다.

 

김삿갓이 색시를 보았더니, 첫 눈에 보아도 매우 왈패스러워 보였는데,

용모만은 제법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계속 60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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