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02-(134)
*홍성 땅을 떠나며.
김삿갓은 외가댁에는 찾아가지도 않고, 날마다 객줏집에서 술만 마시고 있었다.
외가에 가지도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홍성 땅을 떠나는 편이 좋으련만,
무엇인가 마음을 끌어 당기는 것이 있어 ,
홍성 땅을 쉽게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4,5일을 보낸 뒤, 김삿갓은 취중에 문득,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홍성을 떠나기 전에
어머니 무덤이라도 한번 찾아보고 떠나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술을 한 병 들고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 나섰다.
고암리의 공동묘지를 찾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묘지기에게 물어 보니,
"이길원 노인의 누님 무덤은 바로 이 무덤이라오."하고 말하며 ,
산기슭에 있는 조그만 무덤을 가르켜 주었다.
아직 흙도 마르지 않은 초라한 무덤이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그 무덤 속에 어머니가 들어 있다고 생각되자,
설움이 복받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무덤 앞에 꿇어앉아 술을 한 잔 부어 놓고,
"어머니 !
불효막심한 병연이가 찾아왔사옵니다."하고 목을 놓아 통곡을 하였다.
울어도 울어도 설움은 가시지를 않았다.
그러나 땅을 치고 무덤을 두드리며 울어 본들 대답이 있을 턱이 없는 어머니였다.
김삿갓은 한없이 울다가 지쳐서 눈물을 거두며, 무덤을 향해 넋두리를 하였다.
"어머니 !
불초자 병연도 언젠가는 황천으로 어머니를 꼭 찾아 갈 것이옵니다."
실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넋두리였다.
이때 쯤 문득 깨닫고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 산속에는 노을이 짙어오고 있었다.
산속은 어찌나 적막한지,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오직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뿐이었다.
김삿갓은 소나무 사이로 지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의 무덤을 그윽히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자기도 모르게 즉흥시 한 수를 읊었다.
북망산하 신분영(北邙山下 新墳塋) 북망산 기슭에 새로운 무덤 하나
천호만환 무반향(千呼萬喚 無反響) 천만번 불러도 대답 없구나
서산낙일 심적막(西山落日 心寂寞) 해는 저물어 마음조차 적막한데
산상유문 송백성(山上唯聞 松柏聲)들려 오는 소리라고는 솔바람 소리 밖에 없구나.
옛날 부터 한번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다고 했다.
<사자불가부생 (死者不可不生)>
김삿갓이 왔다고 ,이미 세상을 떠나 무덤 속에 묻혀버린
어머니가 다시 살아 돌아올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무덤 앞에서 곡을하고 몸부림을 쳐도,
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알량하나마 성묘를 마친 김삿갓은 , 이제는 산을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홍성 땅을 떠날 생각이었다.
지난 보름여를 오로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천릿길을 달려왔다가,
어머니를 뵙지 못하고 또다시 방랑길에 오르자니 ,
이번에 밀려드는 고독감은 이전의 것과 크게 달랐다.
노을에 짙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동행하며,
(결국 죽는 날까지 나의 유일한 친구는 오직 나의 그림자가 있을 뿐인가 보구나 !)
하고 생각하며 산골길을 쓸쓸히 걸어가며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 보았다.
김삿갓은 금강 곰나루를 건너, 밤이 깊어서야 부여에 당도하였다.
부여는 그 옛날 백제의 도읍지였던지라,
이곳을 처음으로 찾아 온 김삿갓은 감개가 무량하였다.
객줏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다음날 아침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백제가 멸망할 때에 삼천궁녀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뛰어들었다는 낙화암(落花岩)을 빨리 구경하고 싶어,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무릅쓰고 부소산(扶蘇山)에 올라가 보았다.
부소산 정상에는 백제의 세력이 왕성할 때,
임금이 아침마다 올라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며
나라의 태평을 빌었다는 영일루(迎日樓)가 있었고 ,
달이 뜰 때면 임금이 눈아래 백마강을 굽어보며
나라의 태평을 빌었다는 송월루(送月樓)가 있었다.
영일루에서 북쪽으로 잠시 걸어 내려오면,
백마강의 푸른 물줄기가 굽어보이는 절벽이 있는데,
절벽 끝에 커다란 바위들이 한데 뭉쳐 있는 곳에 백제가 망할 때에
삼천궁녀들이 강으로 뛰어들었다는 낙화암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김삿갓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어떤 시인이 시를 읊조리고 있었는데,
그가 노랫곡조를 얹어 읊조리는 시는 다음과 같았다.
<백마강>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에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아 달빛 어린 낙화암에 그늘 속에서
불러 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철갑 옷에 맺은 이별 목메어 울면
계백장군 삼척검은 님 사랑도 끊었구나
아아 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불러 보자 삼천궁녀를.
...계속 135회로 ~~~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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