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02-(133)
*萬事皆有定 浮生空自忙
김삿갓은 독로강을 건너자, 홍성으로 홍성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만나 뵙고 용서를 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꿈을 꾸기 전까지는 어머니를 완전히 잊고 있었던 김삿갓이었다.
영월에서 어머니께 작별을 고하고 다시 방랑의 길을 오른지가 어언,
20 년이 다되었다.
그런 어머니가 꿈속에 소복차림을 나타나
<내가 죽기 전에 너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였으니
제아무리 몰인정한 김삿갓도 이번만은 어머니를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전에는 꿈에 나타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던 어머니가,
이번에는 하필, 소복을 입고 나를 만나자고 하셨을까 ? )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꿈이었다.
소복을 입었던 것으로 보아 어쩌면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 버리시고,
혼령이 꿈에 찾아오셨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불쌍하기 짝이 없는 어머니였다.
시집온 지 10년도 채 되기 전에 시아버님이 역적 홍경래에게 항복을 하는 바람에,
철없는 자식들을 등에 업고 황해도 곡산, 경기도 양주, 광주, 그리고 강원도 영월에
이르기 까지, 줄곧 숨어 다니며 무진 고생을 겪어 온 어머니였다.
가문의 운명이 급전직하로 몰락한데다가 남편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버리는 바람에,
여자 혼자의 몸으로 어린 자식을 키우며 몰락한 가문을 일으켜 보려고
애써 왔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를 돌보지 않고 무작정 방랑의 길에 올랐던 김삿갓으로서는
꿈속에 나타난 어머니를 뵌 순간, 자식된 마직막 도리로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을 뿌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김삿갓은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라도 풀어 드리고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홍성으로의 길을 재촉하였다.
김삿갓은 발이 부르트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군을 계속하여,
강계를 떠난 지 보름만에 드디어 홍성 읍내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외가에는 어렸을 때에 한 번 가보았을 뿐이어서,
외가가 있는 <고암리>는 읍내에서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다.
"여기서 고암리라는 마을은 얼마나 됩니까 ?"
주막에 들려 막걸리로 요기를 하면서, 옆에 있는 노인에게 물어 보았다.
"여기서 고암리는 줄잡아 30리가 되지요. 나는 마침 고암리에 사는 늙은이오.
그런데 고암리에는 누구를 찾아가는 길이오 ? "
"고암리에 <이길원>이라는 분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노인장께서는 혹시 이길원이라는 분을 아시는지요 ?"
김삿갓은 외삼촌의 이름을 알려 주며 물어 보았다.
"이길원이라면 알다뿐이겠소, 나는 그 와는 절친한 장기 친구라오 ...
그런데 이길원하고는 어떤사이이시오 ? "
"네, 먼 친척입니다."
김삿갓은 숙질간이라고 말하기가 면구스러워 적당히 얼버무려 버렸다.
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면 그 댁에 문상을 가는 모양이구려. 그런데 문상치고는 좀 늦으셨소이다."
김삿갓은 <문상>이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가 생각나 눈앞이 아찔해왔다.
"네 ? 문상이라뇨 ?
그 댁에서 누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말씀입니까 ? "
노인은 그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노형은 그 댁에 상사(喪事)가 있었던 것을 모르고 오시는 길인가요 ? "
"저는 아무것도 모르옵니다.
그 댁에서 누가 돌아가셨습니까 ?"
김삿갓의 음성은 자신도 모르게 떨려 나왔다.
노인은 몹시 민망한 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실상인즉, 그 댁에는 오래 전부터 강원도 영월에서 누님 한 분이 와 계셨는데,
얼마 전에 그분이 세상을 떠나셨다오.
장사를 치른지가 10여 일밖에 안 됬지요." 하고 알려 주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김삿갓은 눈앞이 캄캄해 왔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음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삿갓은 눈물을 씹어 삼키며 다시 이렇게 물어 보았다.
"그 분이 어느 날 세상을 떠나셨는지 아시옵니까 ?"
"가만있자 .....
그 분이 세상을 떠나신 것은...
4월 초이튼날 새벽이었을 것이오."
김삿갓은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4월 초이튿날 새벽이라면, 자기가 어머니 꿈을 꾼, 그 날 ,그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시면서,
혼령이 되어 아들을 찾아 오셨던 것이 분명하였다.
김삿갓은 절망과 좌절감에 휩싸여 술만 연성 퍼마셨다.
어머니를 만나 뵙고 용서를 구하려고 지난 보름간 부리나케 달려온 노력이
순식간에 수포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이승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숙명이란 말인가 ? )
너무도 야속한 운명이 원망스럽기만 하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니, 이제는 외갓집을 찾아갈 경황이 없었다.
"고암리에 가려거든 나하고 함께 가십시다. 나도 이제 출발하려하오."
옆에 있는 노인은 남의 속도 모르고 동행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김삿갓은 고개를 흔들었다.
"노인장께서는 먼저 출발 하십시오.
그 댁에 상사가 있었다니까, 저는 제수(祭需)를 좀 장만해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노인을 따돌리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어머니도 안 계신 외가에 무슨 낮으로 찾아가랴 싶었던 것이다.
노인이 나가 버리자, 김삿갓은 미친 사람처럼 혼자서 술을 퍼마시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술을 마셔가며 혼자 생각해 보았다.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불지)
나무는 조용하고 싶어도 바람이 멎지 않고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불대)
자식은 봉양을 하고 싶어도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더니,
오늘 날 어머니 마지막 소원을 풀어드리고자 하였으나,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나 버리셨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싶었던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운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만사개유정 부생공자망(萬事皆有定 浮生空自忙)
세상만사는 정해져 있는데 ,부질없는 인생은 바쁘기만 하구나.
...계속 134회로 ~~~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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