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초한지(楚漢誌)《하내성(河內城) 점령.》

오토산 2020. 5. 22. 09:19

초한지(楚漢誌)93
하내성(河內城) 점령.

항우의 손에 볼모로 잡혀 있던 부모님을 무사히 구출해 온 한왕 유방은,

이제는 초나라 항우를 마음놓고 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문무 백관들을 모아 놓고 앞으로의 계획을 엄숙히 선포하였다.

"우리가 함양에 입성하여 민심을 잘 수습한 덕분에, 이제는 인근 제후들 조차 우리에게 충성을 다짐해 오고 있는데,

이것은 실로 여러 문무 백관들의 공로임은 말할 것도 없소.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대군을 일으켜 초나라를 정벌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누구든지 거기에 대한 좋은 계략이 있거든 서슴치 말고 의견을 내 놓기 바라오."
대원수 한신이 제일 먼저 입을 열어 말한다.

"지금 대왕 전하의 위세가 천하에 떨치고 있음은 사실이옵니다.

그러나 동쪽에는 은국(殷國)의 사마공이 버티고 있사온데, 그는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적이 아니옵니다.

게다가 신이 천문(天文)을 보옵건데, 지금은 초나라를 정벌할 시기가 아닌 것 같사옵니다.

하니, 우리는 당분간 은인자중(隱忍自重) 하면서 각처에서 영웅 호걸들을 규합하고

한편으로는 양병(養兵)을 철저히 해 두었다가 명년쯤 군사를 일으켰으면 어떨까 싶사옵니다."
그러나 한왕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한다.

 

"대원수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하겠소.

그러나 <쇠뿔도 단숨에 빼라>는 속담도 있지 아니하오.

지금은 우리 군사들의 사기가 어느 때보다 왕성하오.

게다가 우리는 군량과 무기도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풍부하게 가지고 있소.

그러므로 이런 절호의 기회를 그냥 보내 버리고 싶지 않구려."
그러자 한신이 다시 대답한다.

"대왕께서 기어이 군사를 일으키시려거든 우선 은왕(殷王) 사마공을 쳐부수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사마공은 항우의 휘하로써 우리가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치게 되면 우리의 배후를 위태롭게 할 수 있으니

그를 토벌하여 하내(河內)를 수중에 넣게 되면, 장차 초나라를 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매우 흡족하게 답한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오.

그러면 금년에는 하내만 평정토록 하고, 초나라는 명년에 정벌하기로 합시다."

 

그리하여 한신은 3만 군사를 거느리고 다시 정도(征途)에 올랐다.
사마공은 본시 항우의 그늘에서 자란 장수로서,

그가 통치하고 있는 은국(殷國)은  항우로 부터 제수 받은 조그만 소국(小國) 이었다.

한신이 대군을 이끌고 은나라 50리까지 접근하여 진을 치니, 사마공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사마공은 총동원령을 내려 국경의 경비를 견고히 하는 동시에 모든 대장들과 함께 긴급 회의를 열었다.

"지금 한나라 대원수 한신이 3만 대군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쳐들어 오려고 하고 있소.

한신은 병법에 도통한 명장이라고 들었는데, 저들에게 대처할 무슨 묘책은 없겠소 ?"
사마공이 매우 걱정스러운 말로 긴급 대책을 논의하자,

모사(謨士) 도만달이 대답한다.

"한신은 이만저만한 맹장이 아니므로 싸워서 이기려고 하다가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러하니 우리는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면서,

팽성으로 사람을 급파하여 항왕에게 구원병을 요청하는 것이 상책일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자 대장 손인(孫寅)이 즉석에서 도달만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섰다.

"소장은 그와 같은 소극적인 대책에는 찬성할 수가 없사옵니다.

한신의 군사가 비록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지난 여러번의 전투로 심신이 허약해진 데다가 먼 길을 달려왔기 때문에 모두들 지쳐있을 것이니

우리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쳐부술 수가 있사옵니다.

그런데 싸워 보지도 아니하고 소극적인 수비 일변도로 나간다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사옵니까 ?"
사마공은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손인 장군의 의견은 대단히 고무적인 말씀이오.

그러면 손인 장군을 총대장에 임명할 테니,

손 장군은 위형 장군과 함께 군사를 몰고 나가 한나라 군사들을 모조리 격파하시오.

그리고 왕유 장군을 팽성으로 보내 속히 구원병을 파견하도록 요청하겠소."

이리하여 한나라 군사와 사마공의 군사 사이에 정면으로 싸움이 붙게 되었다.
손인이 군사를 몰고 나오자, 한신은 선두로 말을 달려나오며 손인에게 꾸짖듯이 말했다.

"한나라 군사는 정의(正義)의 기치(旗幟)를 높이 들고 싸움에 나서는 까닭에, 가는 곳마다 제후들이 귀순해 오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역적의 무리를 돕기 위해 천병(天兵)에게 항거하느냐,

지금이라도 항복을 하면 목숨을 살려주겠거니와,

이를 어기고 끝까지 덤벼 온다면 목숨을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손인이 크게 노하며 장검을 빼어들고 덤비며 갖인 욕설을 퍼부었다.

"한왕이라는 자는 함양을 점령했으면 그로써 만족할 일이지,

욕심이 얼마나 많기에 네 놈 같은 고부를 여기까지 보내 쳐들어 온다는 말이냐.

나는 너 같은 못난 놈은 결코 살려 보내지 아니할 것이로다."

 

그러자 번쾌가 눈알을 부라리며 나는 듯이 달려 나가 싸움을 가로맡았다.
두 장수가 단병 접전으로 싸우기를 무려 50여 합, 그래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손인 측에서는 위형이 가세 해오고,

번쾌 측에서는 설구와 진패가 가세 해와서 싸움은 언제 결말이 날지 모를 지경이되었다.

그러나 실상인즉, 번쾌의 실력으로는 손인의 목을 간단히 쳐버릴 수가 있었지만,

한신의 계략에 따라 번쾌는 사마공을 유인해 내기 위해 일부러 싸움을 길게 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략을 알 턱 없는 사마공은 아군 대장들이 격전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직접 군사를 이끌고 일선으로 급히 달려나왔다.

사마공은 손인과 위형을 도우려고 일선으로 달려나오기는 했으나,

적의 세력이 너무도 강하여 간단히 승리할 가망이 없어 보였다.

더구나 번쾌를 비롯하여 주발, 진무, 노관 같은 적장들은

사마공을 보기가 무섭게 일제히 집중 공격을 퍼부어 오는 것이 아닌가.

사마공은 전세가 불리한 것을 깨닫고 손인, 위형등과 함께

급히 퇴각하여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팽성에 또다시 구원병을 요청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은왕(殷王) 사마공은 항왕 폐하께 글월을 올리옵니다.
한왕 유방이 삼진을 평정하고 함양을 점령한 뒤에 서위왕과 하남왕까지 자기 편으로 귀순시킨 뒤,
이번에는 신의 영토인 하내(河內)에 까지 손을 뻗어 왔사옵니다.

 

폐하께서도 알고 계시다시피,

하내로 말하면 서초(西楚)로 들어가는 관문이나 다름이 없는 요새이옵니다.

만약 저희 나라를 유방에게 빼앗기는 날이면 폐하의 강토(疆土)의 태반이 유방에게 빼앗겨 버리는 셈입니다.

폐하께서는 지금 제(齊)나라와 양(梁)나라를 공략중이라고 하오나,

하내의 문제는 그보다도 더욱 중요하오니 구원병을 황급히 보내 주시옵소서.

만약 그렇지 않으면 저희들은 망국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오니,

폐하께서는 거듭 통촉하시기를 바라옵니다."

 그 무렵 팽성을 떠나 제나라와 양나라를 공략중에 있던 항우는

진중에서 사마공의 서한을 받아 보고 크게 걱정하였다.

한왕 유방이 설마 초나라의 관문인 하내까지 손을 뻗어 올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항우는 범증에게 사마공의 서한을 내보이며 물었다.

"유방이 하내를 침범해 온 모양인데,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
범증이 대답한다.

"이 문제는 폐하께서 친히 정벌하시기 전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입니다.

그러니 제나라와 양나라를 신속히 평정하신 뒤에 하내로 떠나가도록 하시옵소서."

"사마공의 서한에 의하면,

하내는 당장 위급한 모양이니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

"그렇게 생각되시면 먼저 항장과 계포 두 장수를 보내

하내성을 지키게만 하였다가 얼마 후에 폐하께서 직접 대군을 거느리고 가셔서

적을 섬멸시키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사옵니다."

항우는 범증의 말을 옳게 여겨 항장과 계포에게 군사 3만을 주면서,
"그대들은 하내로 급히 달려가 사마공과 함께 하내성을 굳게 지키고 있어라.

머지않아 내가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 한나라 군사들을 모조리 섬멸시켜 버릴 테니,

그때까지는 싸우지 말고 성을 지키기만 하고 있으라."하고 명했다.

조그만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데도 항왕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萬機親覽: 만기친람)

초나라의 근본적인 문제였으나, 왕은 그 점을 알지 못하였다.
한편, 한신은 하내성을 포위하고 10여 일 동안이나 공격을 퍼부어댔다.

그러나 사마공은 죽은 듯이 성안에 은거(隱居)한 채 일체의 반격을 하지 않았다.

항장과 계포가 3만 군사를 거느리고 곧 온다는 기별이 있었으므로,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는 수비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신은 생각다 못해 대장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성과 없는 공격을 퍼부으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다가,

정작 항우가 대군을 몰고 오는 날이면 커다란 봉변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도 작전 계획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겠다.

모든 군사는 이 시간부터 공격을 일체 중지하고, 지금 있는 위치에서 각각 10리씩 후퇴하여

, 모두들 깊은 숲속에 죽은 듯이 잠복해 경계를 하면서 , 다음 전투를 위한 휴식을 취하고 있으라.

그 후에 행동에 대해서는 별도로 지시하겠다."

부하군사들은 대원수 한신의 명에 따라 공격을 멈추고 각각 10리씩 후퇴하여 깊은 숲속에 죽은 듯이 숨어 있었다.
그러자 사마공은 적의 공격이 갑자기 중지된 것을 수상하게 여겨 성루에 올라가서 적정을 살펴보니,

과연 적의 군사들은 한 명도 없는 것이 아닌가 ?

사마공은 그 광경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대장들에게 말한다.
"적들은 항왕께서 대군을 몰고 오는 줄로 알고 겁에 질려 깨끗이 도망을 가 버린 것이 분명하오.

우리는 이 기회에 적을 맹렬히 추격하여 섬멸시켜 버렸으면 싶은데, 여러 대장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
그러자 모사 도만달이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한신은 위계가 누구보다도 능한 장수입니다.

그는 후퇴하는 척 하면서 군사들을 잠복시켜 놓고 있는지 모르니,

우선 첩자들을 보내서 후퇴 여부를 확인한 이후에 추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사마공은 도만달의 말을 옳게 여겨 10여 명의 첩자를 차출하여 적정을 상세하게 살펴보게 하였다.
10여 명의 첩자들은 장사꾼과 농군 차림으로 가장을 하고 일선으로 달려 나왔다.

그리하여 얼마를 가다 보니, 행길가에 주막에서 10여 명의 한나라 군사들이 술을 마시며

다음과 같은 소리를 지껄여대고 있었다.

"한신 장군은 항우가 대군을 이끌고 온다는 소문을 듣고 겁에 질려 줄행랑을 치고 있으니,

이럴 바에는 애시당초 무엇 때문에 우리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더란 말인가."

"누가 아니래. 도망을 가도 우리들과 함께 도망가는게 아니라,

자기는 7,80리나 먼저 도망을 가면서 우리에게는 뒤늦게야 후퇴 명령을 내리니,

그런 겁쟁이가 어디 있느냐 말일세."

"그나저나 우리도 술은 이제 그만 마시고 ,후퇴하는 병력의 뒤나 열심히 따라가세."하면서

부지런히 일어나서 빠른 걸음으로 저쪽으로 갈길을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한신이 병사들을 시켜 계획적으로 꾸며 놓은 연극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한신의 술책임을 알 턱 없는 초나라 첩자들은

한나라 병사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부리나케 본영으로 돌아왔다.

 

첩자들이 본영에 돌아와 사마공에게 급히 아뢴다.
"한신은 항왕이 대군을 몰고 온다는 소문을 듣고 도망친 것이 분명하옵니다."

"너는 어디에다 근거를 두고 그런 보고를 하느냐."
첩자들은 주막에서 들은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사마공은,
"하하하, 한신이라는 자는 듣던 바와 같이 천하의 겁쟁이가 분명하구나 !

그런 못난 자라면 당장 추격을 해야겠다 ! "하고 즉시 다음과 같은 추격령을 내렸다.

"손인 장군과 위형 장군은 군사 1만 명씩을 거느리고 한신을 당장 추격하라.

나는 군사 2만 5천을 거느리고 뒤에 따라 갈 것이다."

그리고 도만달은 5천의 군사로써 성을 지키고 있으라."

손인과 위형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한신을 맹렬하게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30여 리를 쫒아가도 적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적의 복병이 있을지 모르니

, 오늘 밤은 여기서 야영을 하기로 합시다."

 

손인과 위형은 진을 새로 치고 야영을 서둘렀다.
바로 그날 밤, 군사들이 첫 잠이 막 들었을 때 돌연 숲속에서 일발의 포소리가 나더니,

난데없이 한나라 군사들이 야영지를 급습해 오는 것이었다.

 

손인이 황급히 창을 들고 나오니,

적장 주발과 시무가 좌충 우돌로 칼을 휘두르며 손인과 위형에게 덤벼오고 있었다.

위형과 손인은 변변히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주발과 시무의 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한편, 후속 부대로 따라오고 있던 사마공은 선발 부대가 전멸한 줄도 모르고 10여 명의 호위병들과 함께 선

봉 부대로 순시를 나오고 있었는데, 돌연 숲속에서 호랑이 같은 장수 하나가 번개처럼 튀어나와

밧줄로 올가미를 걸어 사마공을 대번에 말에서 떨어뜨린 후, 순식간에  결박을 지어 버리는 것이었다.

"꼼짝마라 !

나는 무양후(舞陽侯) 번쾌 장군이다."

 

이렇게 순식간에 세 장수를 모두 생포하자,

한신은 번쾌와 함께 하내성으로 달려가 성을 수비하고 있던 도달만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파초 대원수 한신 장군이다.

사마공을 비롯하여 손인과 위형은 이미 나의 손에 생포되었다.

승부는 이미 가려졌으니, 도만달 장군은 공연히 싸움을 하려 말고, 순순히 성문을 열고 항복하라."

 도만달은 한신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신이 제마무리 재주가 비상하기로, 단 하룻밤 사이에 사마공과 손인,위형과 같은

세 명의 맹장을 어떻게 사로잡을 수가 있단 말인가 ?
그러기에 도만달은 성루에 올라서서 한신을 아니꼽게 바라보며 호통을 내지른다.

"천하의 거짓말쟁이 한신은 듣거라.

그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내가 아니다.

주공께서 지금 그대를 잡으러 나가셨으니, 그대는 사로잡히고 싶지 않거든 당장 도망부터 치거라."
한신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대의 성주를 생포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이냐 ?

그렇다면 실물을 직접 보여 주면 될 게 아니냐 ?"
그리고 옆에 있는 번쾌를 돌아다 보며 말했다.

"세 명의 포로를 모두 이 자리에 데려다가 도만달에게 직접 보여 주도록 하오."
잠시 후, 번쾌가 세 명의 포로를 생선 두릅 엮듯 하나의 오랏줄에 묶인 채로 끌고 오는데,

횃불에 비춰 보인 그들은 사마공과 손인, 위형이 틀림 없었다.

도만달은 한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즉시 성문 밖으로 달려 나와,

한신 앞에  엎드리며 애원하듯 말한다.

"사태가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소장은 순순히 항복하옵니다.

한신 장군께서는 하내성을 즉시 접수하시옵소서.

그러나 바라옵건대, 세 분 어른들의 목숨만은 제발 살려 주시옵소서."
한신이 대답한다.

"나는 천의(天意)를 배반한 무리를 평정하러 왔을 뿐이지,

사람을 죽이러 온 것이 아니니, 안심하오."

한신은 막료들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와 간단한 입성식(入城式)을 거행하고,

세 명의 포로들과 도달만을 모두 그 자리에 데려오게 하였다.

세명의 포로와 도달만이 함께 단하(壇下)에 꿇어 엎드리자 한신은 번쾌를 돌아다 보며 명한다.

"저들의 결박을 모두 끌러 주고,

사마공 장군은 단상으로 정중하게 모셔 올리도록 하오."

막료들이 단하로 내려가 네 사람의 결박을 모두 풀어 주고 사마공을 단상으로 정중하게 모셔 올리니,

사마공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신에게 큰절을 올리며 말한다.

 "저희들은 모두가 망국지장(亡國之將)이어서 마땅히 죽음을 당해야 할 일이온데,

장군께서는 어인 일로 저희들에게 이처럼 관대하게 예우 해 주시옵니까.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영문을 모를 일이옵니다."

그러자 단하에 있던 손인,위형, 도달만도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무엇 때문에 저희들도 이처럼 관대하게 대해 주시는지 영문을 모르기는 소장들도 주공과 다름이 없사옵니다."

 사마공과 손인 등은 한신에게 생포되자 필연코 죽임을 당하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신은 자기들을 죽이기는 커녕, 깍듯이 전관 예우(前官禮遇)를 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사마공 등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하였다.
한신은 네 사람의 그러한 심리를 재빠르게 알아채고 웃으면서 말한다.

"여러분들은 한왕 전하의 고매하신 정치 이념을 잘 모르시는 모양이니, 내가 거기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소이다.

한왕 전하는 본디 인의(仁義)의 정이 깊은 어른이신 까닭에 인의의 군사로서 불의를 징벌하실 뿐이지,

사람을 함부로 죽이라고 하시는 어른은 아니시오. 

일찍이 서위와 위표와 하남왕 신양을 생포하셨을 때에도 그들을 결코 죽이지 않으셨소.

아니, 그들을 죽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진심으로 항복해 오자,

오히려 과거보다도 더욱 높은 자리에 올려 주셨소.

 

그러므로 여러분도 마음을 돌려 한나라에 충성을 다하신다면,

여러분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분의 후손들도 자손 만대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누릴 것이오.

항우는 자신의 이익만 알고 부하를 사랑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지만,

한왕께서는 부하들을 위해 당신의 희생조차 기쁘게 여기시는 분이오.

그 점이 바로 한왕께서 항우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라는 것을 아셔야 하오."

사마공은 그 말을 듣고 한없이 기뻐하며,
"저희들은 한왕께서 그정도까지  자애로운 어른인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들도 오늘부터 한왕 전하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인근 제후들도 우리가 설득하여 모두 한나라에 귀순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렇게 사마공을 완전히 설득시키고 나자,

한신은 한왕의 이름으로 하내성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후하게 베풀어 주었다.
그리하여 하내성 백성들은 입을 모아 한왕의 성덕을 칭송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신은 하내성의 민심을 완전히 수숩해 놓고,

그제서야 하내성을 점령한 사실을 한왕에게 소상하게 보고하였다.

한편, 초군 대장 항장과 계포는 항왕의 명령에 따라 3만 군사를 이끌고 하내성을 향하여 떠났다.
그러나 이들이 하내성으로 오는 도중에 성주 사마공이 이미 한신에게 사로잡힌 뒤

귀순하였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하내성이 이미, 한신에 손에 함락되고 사마공이 한나라에 귀순하였다면

우리가 하내성으로 간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
항장과 계포는 그렇게 생각하고 도중에 아예 회군(回軍)을 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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