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초한지(楚漢誌)《진평의 귀순과 유방의 만용》

오토산 2020. 5. 22. 09:20

초한지(楚漢誌)94
진평의 귀순과 유방의 만용(蠻勇)

하내에서 회군한 항장과 계포가 항왕에게 회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사실대로 보고하자,

항왕은 크게 노하면서 무섭게 꾸짖었다.

"하내성이 함락이 되었으면 잃어버린 성을 되찾을 생각은 안하고, 그냥 돌아온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 ?

결국은 너희들 때문에 하내성을 적에게 고스란히 내어 준 셈이니, 그 죄는 결코 용서할 수 없도다."

 

항왕이 두 장수를 참살할 듯이 무섭게 나오므로,

이를 지켜보던 진평(陳平)이 만류하는 어조로 항왕에게 조용히 아뢴다.

"두 장군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하내성은 이미  함락되어 있었다 하므로,

두 장군에게 하내성 함락의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아뢰옵니다."
그러자 항우는 더욱 화를 냈다.

"진평 대부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소 ?

하내성이 함락된 것을 보고도 그냥 돌아왔는데, 어째서 책임이 없다는 말이오 !"
진평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적장 한신은 지모가 탁월한 명장이어서 항장과 계포로서는 당해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옵니다.

신이 범증 군사와 상의하여 하내성을 탈환할 계획을 세울 것이오니,

주공께서는 제나라와 양나라를 속히 평정하시고 하내성으로 급히 출정하도록 하시옵소서.

만약 주공께서 직접 나서지 않으시면 하내성 뿐만 아니라

관중 전역(關中全域)을 유방에게 빼앗기게 될지도 모르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주먹으로 용상을 치며 화를 낸다.
"대부는 이 판국에 무슨 그런 요망한 소리를 하는가 !"

그러면서도 화가 풀리지 않아,
"여봐라 !

저자의 관직(官職)을 박탈하고, 내일부터는 저자를 조정에 얼씬도 못하게 하라 !"하고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는 가혹한 명령을 내렸다.
별안간 관직을 박탈 당한 진평은 마음이 울적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렇게도 가혹한 형벌을 내린단 말인가 ?

항장과 계포를 두둔한 것도 당신을 위해서였고,

금후의 대비책을 진언한 것도 당신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

상대가 유방이었다면 이런 나의 충성을 항왕처럼 몰라보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
진평은 또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항왕은 강포(强暴)하기만 할 뿐, 신의와 정리(情理)를 모르는 인간이다.

그런 사람을 오래 섬겨 보았자 결국은 애매한 누명을 뒤집어 쓰고 처형을 당할 일만 남을 뿐, 그

에게서 어떤 희망이 있을 것인가 ?)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진평은 불현듯 항우의 곁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할 것인가 ... ? )

여러 날을 고민에 싸여 지내던 진평은 마침내  한왕에게 귀순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리하여 어느날  장사꾼으로 변장을 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함양을 향하여 망명의 길에 올랐다.
진평은 여러 날 동안 끼니를 굶어 가며 무양(武陽)을 지나 황하(黃河)까지 무사히 도착하였다. 

이제는 강을 건너가야 할 판인데,

다행히 저 멀리서 나룻배가 강을 건너려 하고 있으므로,

진평은 그리로 달려가며 뱃사공에게 소리를 질렀다.

"여보시오, 뱃사공 !

급한 볼 일이 있어 함양으로 가는 길이니, 나도 강을 같이 건너가게 해주시오."

나룻배에는 손님은 한 명도 없었고, 첫눈에 보아도 인상이 몹시 험상궂은 뱃사공 두 사람만이 타고 있었다.

진평은 막상 배를 같이 타자고 불러놓은 터라, 이제와서 그들의 인상을 보고, 함께 타지 못하겠노라 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진평은 ,
"뱃 삯은 후하게 드릴 테니, 나를 강 건너로 데려다 주시오." 하고

배에 올라탔다.

뱃사공들은 배를 저어 가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진평을 위아래로 훝어보더니,
"함양에는 무엇 하러 가시오 ?"하고

수작을 걸어 오는 것이 아닌가.
진평은 만약을 대비하여 노자(路資)를 넉넉히 가지고 떠났었다.

 

게다가 신분을 감추는라고 장사꾼으로 변장을 하고 있던 터라 부득이,
"함양으로 장사차 가는 길이오."하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뱃사공들은 그 말을 듣자 저희들끼리 눈짓을 해가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배가 강 한복판에 도달했을 때 한 놈이 별안간 품 속에서 시퍼런 단도(短刀)를 꺼내더니 진평의 목에다 들이대고,

"죽지않으려면 가진 재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내놓아라 ! "하고 위협하는 것이 아닌가 ?
일순, 진평은 가슴이 서늘해 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리하여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재물은 하나도 하나도 남지지 않고 당신들에게 내 주겠소.

그대신 나를 죽이지 말고 강만 건너가게 해주시오."
그러자 도둑이 호통을 친다.

"너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렸으니,

잔말 말고 옷이나 벗어라 ! "

진평은 꼼작없이 등에진 봇짐과 옷까지 모두 벗어 주는 수밖에 없었다.
도둑들은 봇짐을 열어, 그 속에 있는 돈과 금은 보화를 모두 챙기고 나더니 크게 기뻐하면서,

그중에 한 놈이 말한다.

"허어...

오늘은 재수가 제법 좋은 날인걸 !

이제 돈 되는 것을 모두 빼앗았으니, 저자를 어떡하지 ?"
그러자 다른 하나가 대답한다.

"어쩌기 뭘 어째 !

가진 것을 모두 뺏었으니 이제는 죽여 버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
진평은 그 말을 듣고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다 내놓았으니 제발 죽이지는 말고,

강만 무사히 건네 주시오."

"되지도 않는 소리 그만 지껄여라 !

네 놈이 뭔데 강을 건네 달라는 말이냐 ?

돈만 뺏고 사람을 살려 두면 항상 동티가 나는 법이다."

"우리 손으로 직접 죽일 것까지 없으니,

저 자를 알몸뚱이로 물 속에 처넣어 버리세,

죽고 사는 것은 저 놈에 운에 맡기고."

"참,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네."
두 도둑은 합의를 보자 커다란 널판지 하나를 물위에 던져 주면서 외친다.

"칠성판(七星板) 한 개를 특별히 베풀어 줄 테니,

저 칠성판을 타고 염라국(閻羅國)으로 가든가, 극락 세계로 가든가 맘대로 하거라 ! "하면서

진평을 알몸뚱이인 채로  도도히 흘러가는 황하강 복판에 처넣어 버리는 것이었다.

천만 다행하게도 진평은 수영에 익숙한 편이었다.

그러기에 물 속에 던져지기가 무섭게 널판지로 쉽게 기어오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넓디 넓은 황하의 한복판에서 널판지 하나로 어떻게 강을 건널 수가 있을 것인가 ?

 

다행이 여름철이어서 얼어 죽을 염려는 없었지만,

이제는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파도와 함께 낙옆처럼  떠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밤이 오고, 길고 괴로운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날 아침 햇살이 퍼질 무렵,

천만 다행으로 상선(商船) 한척이 멀리 지나가고 있었다.

이때다 싶어 진평은 목이 터져라 하고,
"사람 살리시오 !

사람 살리시오 ! "하고 고함을 질렀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살아날 사람은 살아난다고 했던가 ?

천둥 벌거숭이로 널판지 한장에 의존하여  황하강 한 복판에 버려졌던 진평은

다행히도 이튿날 아침에 지나가는 상선에 구조되었다.

이렇게 구사 일생하게 된 진평은 황하를 무사히 건너자,

함양에 있는 옛 친구인 위무지를 찾아갔다.

 

위무지는 매우 반가워하며 묻는다.
"초나라에서 항왕을 섬기던 귀공이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오셨소 ?"

 진평은 함양으로 오게 된 이유를 상세하게 말해 주고 나서,
"나는 이제부터 항왕을 버리고 한왕을 섬길 생각이오.

그러니 한왕을 만나 뵐 수있는 길을 좀 열어 주시오."하고 부탁하였다.

위무지가 말한다.
"덕이 높으신 한왕은 지금, 현인을 널리 구하고 계시는 중이오.

더구나 한왕께서는 귀공의 뛰어난 재주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귀공이 오셨다면 크게 반가워하실 것이오.

내가 내일 대왕을 직접 찾아 뵙고 귀공의 말씀을 전해드리리다."

다음날 위무지가 한왕에게 진평의 이야기를 품고하니,

한왕은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진평 대부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옛날 홍문연 연회 때에 나를 곤경에서 구해 주신 생명의 은인이오. 그런분이 나를 찾아 오셨다니,

이런 반가운 일이 어디있겠소. 그러잖아도 무척 만나고 싶었던 분이니 빨리 모시고 오시오."

위무지가 진평을 데리고 다시 입궐하니,

한왕은 단하(壇下)로 달려 내려와 반갑게 맞이한다.

"그 옛날 홍문연 연회 때에 선생이 나를 구해 주지 않으셨던들 오늘의 내가 어찌 있을 수 있겠소이까.

그러잖아도 무척 만나 뵙고 싶었는데, 이처럼 일부러 찾아와 주셔서 고맙고, 반갑기 한량없소이다.

이제부터는 나의 곁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계시면서 생사 고락을 함께 하십시다."

한왕은 진평을 즉석에서 왕을 경호하는 친위 대장인, 

참승전호장(參乘典護長)이란 벼슬까지 내렸다.
진평이 참승전호장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장 주발이 깜짝 놀라며 한왕에게 간한다.

"진평을 참승전호장에 임명하시는 것은 절대 불가한 일이옵니다.

참승전호장이란 대왕 전하를 주야로 경호하는 최고 책임자이온데,

방금 적국인 초나라에서 귀순해 온 사람에게 어쩌시자고 그런 요직을 맡기시옵니까 . 재고하셔야하옵니다."
옆에 있던 번쾌도 머리를 흔들며 덩달아 간한다.

"주발 장군의 말씀은 지당한 말씀인 줄로 아뢰옵니다.

홍문연 잔치때 대왕께서 진평의 도움을 받으신  것은 사실이오나, 그것은 이번 임명과는 문제가 다르옵니다.

진평은 일찍이 위왕(魏王)을 섬겨오다가 그를 배반한 일이 있으며,

초나라에 와서는 항왕을 섬기더니, 이번에는 항왕을 배반하고 우리에게 귀순해 왔사옵니다.

되돌아 보건대, 이처럼 변절 무쌍(變節無雙)한 사람에게 어찌 참승전호장의 요직을 맡기시겠사옵니까.

대왕께서는 진평에게 내린 관직을 속히 거주어 주시옵소서."

한왕은 번쾌의 간언을 듣고 적이 놀랐다

. 진평이 그처럼 절개가 없는 사람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는 홍문연 연회 때의 은혜를 고맙게 여겨 진평을 등용하였는데, 그의 과거가 그처럼 무절조했던가요 ?

그렇다면 참승전호장의 임명을 취소할 뿐만 아니라, 본인을 직접 불러다가 단단히 따져 봐야 하겠소."
한왕은 즉석에서 진평을 불러 따지듯 물었다.

"귀공은 일찍이 위왕을 섬긴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오 ?"

"예,

사실이옵니다."

"위왕을 섬기다가

그를 배반하고 초나라의 항왕을 섬겨 온 것도 사실이오 ?"

"예,

그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옵니다."

진평의 대답이 너무도 예사로워서 한왕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렇다면 이번에는 항왕을 배반하고 나에게 왔으니,

그대는 충절심(忠節心)이 한푼어치도 없는 사람이 아니오 ?"
그러자 진평은 개탄하듯이 말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일을 가지고 충절심을 거론하시옵니까.

옛 글에 <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살고, 현명한 신하는 임금을 가려 섬긴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위나라를 떠난 것은 위왕이 워낙 암둔(暗鈍)하여 저의 지모를 몰라 주었기 때문이었고,

다시 초나라를 떠난 것은 항우가 자신의 만용만 믿고 저를 모욕하기가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했으니 제가 위나라와 초나라를 떠난 것은, 당시에 저를 품은 주공들의 자질의 문제일 뿐,

저의 충절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 이옵니다."
한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나 역시 현명한 군주가 못 되니까,

나에게서도 머지 않아 떠나시게 될 게 아니오 ?"
진평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아뢰옵기 항공하오나, 소생은 일찍부터 대왕의 성덕을 사모해 왔사옵니다.

홍문연 연회 때에 죽음을 각오하고 대왕을 도와 드린 것도 그 때문이었고,

이번에 천리 길을 멀다 않고 대왕을 찾아 온 것도 오로지 대왕을 사모했기 때문이옵니다.

대왕께서 저를 인정하시고 거두어 주시면, 저는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할 것이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저를 거두어 주지 않으신다면,

저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겠습니다."

진평의 결심은 자못 비장해 보였다.
한왕은 진평의 비장한 결심에 크게 감동되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너무 염려 마시오.

하마터면 내가 현사 한 사람을 잃어버릴 뻔 했구려. 지난날의 공의 은공은 내 어찌 잊으리오.

그러나 <참승전호장>의 벼슬만은 주위에서 반대가 많으니 우선 <호군중위(護軍中尉))>로 있어 주기를 바라오."

이리하여 진평의 문제는 일단락 되었는데,

때마침 한신으로부터 <하내성을 완전히 평정했다>는 승전보가 날아와 한왕은 거듭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대장 하후영이 일선에서 달려와 생각조차 못했던 기쁜 소식을 전한다. 

"항왕의 휘하에 있던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가 진여(陳餘)의 세력에 밀려

오갈 데가 없게 되었기에 소장이 데리고 왔사오니 대왕께서는 너그럽게 받아 주소서."
한왕은 크게 기뻐하며 장이를 만났다.

"나는 진작부터 장이 장군의 용명(勇名)을 듣고,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소.

진여와는 어떤 사이였기에, 그에게 성을 빼앗기고 여기까지 쫒겨 오게 되었소 ?"
장이가 눈물을 흘리며 대답한다.

"진여와 저는 어려서부터 막역한 친구였사옵는데,

진여가 어쩌다가 저에게 원한을 품고 저의 가족을 모조리 잡아 죽이는 바람에

우리 두 사람은 원수 지간(怨讐之間)이 되어 버렸습니다.

진여는 항왕의 세력을 믿고 이런 악독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대왕께서 만약 저를 거두어 주신다면,저는 맹세코 진여를 토벌하여 가족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제가 거느리고 있는 군사도 3만 가까이 있사옵니다."

이렇게 장이의 군사까지 받아들이고 보니, 한나라의 병력은 무려 40만이 넘게 되었다.
한왕이 파촉을 나올 때에 한나라 군사는 겨우 10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장량과 한신의 도움으로 삼진왕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적성(敵城)들을 평정시키는 동안에

한왕의 병력은 눈사람처럼 자꾸만 불어나, 이제는 43만이라는 방대한 병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었다.

(병력이 이처럼 막강해졌으니,

이제는 항우를 정벌하는 데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 아닌가 ?)

사람은 누구나 세력이 강해지면 남을 얕잡아 보게 되는 법이다.
한왕 유방은 무척 겸손한 사람이건만, 200명이 넘는 맹장들과 40여만의 방대한 군사들을 거느리게 되자,

이제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평소에는 무척 두려워하던 초패왕 항우조차도 이제는 우습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왕은 장량을 불러 상의한다.

"우리의 군사가 40만이 넘었소이다.

이제는 항우를 정벌하기도 충분하다고 생각되어 군사를 일으켜 볼까 싶은데,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
장량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대왕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 군사가 막강해진 것은 사실이옵니다.

그러나 전쟁에는 천시(天時)가 매우 중요한 역활을 하는 법이옵니다.

신이 천문(天文)을 보옵건데, 지금 우리가 군사를 일으키는데는 매우 불리합니다.

따라서 당분간은 군사들을 훈련과 적절한 휴식을 주면서 실력과 체력을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리신후,

동정(東征)에 오르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예전에 장량의 말이라면 무조건 승복하던 한왕이었다.

그러나 세력이 강해지고 보니, 이제는 장량의 말을 덮어놓고 쫒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선생의 말씀대로 <천시>가 필요하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40만의 군사로써 파죽지세로 밀고 나가면 천시가 다소 불리하기로 무엇이 두렵겠소이까.

나는 이미 결심한 바 있으니,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밀고 나가기로 합시다."

 한왕의 확고한 결심을 듣고 장량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한왕의 마음이 무척 교만해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피치 못할 그의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싶어서,

장량은 머리를 수그리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왕께서 그렇게 결심하셨다면,

신은 오직 복종이 있을 뿐이옵니다.

이에 한왕은 더욱 자신이 생겨 전군에게,
"이제부터 초나라를 정벌하는 대장정(大長征)의 길에 오를 테니,

40만 전군은 열흘 안으로 출동 준비를 갖추라 ! "하는

어마어마한 군령을 내렸다.

 초나라로 쳐들어간다는 군령이 내려지자,

한왕과 처음부터 함께한 군사들은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다는 생각에서 뛸 듯이 기뻐하였다.

한왕은 군사들의 사기가 충천한 데 용기가 솟았다.

그리하여 이번만은 틀림없이 승리한다는 자신감에 노부모와 아들은 물론이고,

여왕후(呂王后)까지 대동하고 동정의 길에 올랐다.

 

한왕은 우선 ,낙양으로 가서 한신과 합류하여 초나라를 일거에 분쇄해 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왕을 따라 나서는 장량의 심경은 매우 착잡하였다.

<때>가 무르익지 않았는데 가족까지 모두 거느리고,

전쟁을 서둘러 일으키는 것은 결코 이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한왕이 기어코 고집을 부리는 데야 어찌하랴.
장량은 한왕을 따라나서며 속으로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큰일을 성취하려면 일시적인 우여 곡절은 반드시 따르기 마련이 아니던가 ?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나는 어떠한 경우라도 나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계속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