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楚漢誌) (109)
동자(童子) 구숙의 지혜
팽월이 대량성을 평정한 뒤, 외황성에 진을 치고 있노라니까,
첩자가 달려와서 놀라운 사실을 알린다.
"항우가 대군을 몰고 팽성을 떠나 지금 이곳으로 쳐들어 오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그 세력이 놀라울 정도로 막강하옵니다."
팽월은 첩자의 보고를 받고 크게 불안하여 즉시 막료 회의를 열었다.
"항우가 막강한 군사력으로 우리를 치려고 달려오고 있다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
그러자 모사 연포(戀布)가 말한다.
"항우가 직접 군사를 몰고 온다면, 싸워 보았자 우리에게 불리할 것은 명백합니다.
저에게는 세 가지의 대책이 있사온데
첫 째는,
항우와 정면으로 싸우려고 하기 보다는 우리가 북방에 있는 곡성(穀城) 땅의 창읍(昌邑)으로 피신하여
항우가 저절로 돌아가 주기를 바라는 것인데 이것이 최상책(最上策)입니다.
두 번째는,
한왕에게 급히 지원병을 요청하여 정면으로 싸우는 일 인데, 그것은 중책(中策)입니다.
셋째는,
우리들 자신의 힘으로 항우와 자웅을 결해 보다가, 최악의 경우에는 전원 옥쇄(全員玉碎)하는 것인데,
그것은 최하책(最下策)이 될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이 세 가지 대책중에 어느 것을 택하실지 결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팽월은 오랫동안 심사 묵고하다가 입을 열어 말한다.
"불리한 전쟁을 강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
최상책을 택하여 일시나마 창읍으로 옮겨 가기로 합시다."
대책이 정해지자,
외항성은 구명(仇明)과 주동(周同), 두 장수에게 지키게 하고,
주력부대는 모두가 창읍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떠나려고 하니, 대장 구명이 팽월에게 말한다.
"주력 부대가 모두 떠나가고 저희들만 성을 지키다가 항우에게 성을 내주게 되는 날이면
성안의 백성들이 모두 항우의 손에 몰살을 당하게 될 것 같은데, 그 일은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 ?"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동자(童子)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구명에게 말한다.
"그런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시옵소서.
만약 항우가 외항성을 점령한 후에, 성안의 백성들을 죽이려고 한다면 제가 그렇게 못 하도록 말리겠습니다."
팽월은 그 동자의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러자 구명 장군이 동자의 손을 끌어당기며 대답한다.
"이 아이는 소장의 맏아들인 구숙(仇叔)입니다.
이 아이는 올해 열세 살로서 제 에미가 용꿈을 꾸고 잉태했사온데,
다섯 살에 이미 시서(詩書)에 능통하였으므로 주변 사람들이
이 아이를 <기동(奇童)>이라는 예명으로 불러 오고 있사옵니다."
"기동이라 .... ?
그것 참 ! 장군은 정말로 훌륭한 아들을 두셨소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동자 구숙을 향하여,
"네가 만약 항우를 설득하게 되면 어떤 말로 설득하려 하느냐 ?"하고 물어 보았다.
팽월의 질문에 동자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는다.
팽월은 다시 한 번 물었다.
"너 같은 어린 아이가 항우를 어떤 말로 설득하려는지,
내가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게 아니냐 ?"
그러자 동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천기(天機)가 누설되면 안 되오니, 장군님께만 말씀드리겠습니다."하면서
팽월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한동안 무엇인가를 소곤거렸다.
팽월은 소년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크게 감탄하며 말했다.
"네가 어린 나이에 그렇게도 뛰어난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구나.
그만하면 너는 성안에 남아 있는 백성들을 능히 구해 낼 수 있겠다.
계획대로 네가 성안의 백성들을 무사히 구해낸다면, 너는 장차 하늘로부터 홍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너를 믿고 곡성으로 떠나기로 하겠다."
팽월은 그 길로 외항성을 떠나 곡성으로 향하였다.
항우가 외항성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수일이 지난 후의 일이다.
항우가 성을 5리 앞둔 곳에 진을 치고 적정(敵情)을 살펴보니,
와황성에서는 한나라의 붉은 깃발만 펄럭일 뿐 군사들의 모습은 일체 보이지를 않았다.
척후병을 보내어 염탐을 해 보았지만 인적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항백이 항우에게 아뢴다.
"팽월이 우리를 당해 낼 자신이 없으니까, 깃발만 내걸고 도망을 가 버린 것이 확실합니다.
이런 기회에 폐하께서 진두 지휘로 성안으로 시원한 공격을 한번 퍼부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
"그거 참 좋은 생각이오.
성안에 사람이 있고 없는 것을 알아보려면 공격을 퍼부어 보는 것이 상책일 것이오."
항우는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성안으로 화살을 빗발치듯 쏘아 보냈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성안에 백성들은 전전 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총책임자인 구명 장군에게 달려와 이렇게 호소하였다.
"항우는 한번 화가나게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잔인하게 죽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강력하게 저항을 하다가, 성이 함락되는 날이면 성안에 백성들을 아무 죄도 없이 몰살시키려 할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주력 부대가 모두 철수해 버린 지금의 병력으로 항우와 대결하기 보다는 싸움을 피해,
속히 항복을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야만 저희들이 죽음을 면할 수가 있겠사옵니다."
구명이 아들과 상의하여 대답한다.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백기(白旗)를 높이 올려 달고 사대문을 활짝 열어 줄 테니,
백성들은 모두 문 밖으로 달려나가 항우를 쌍수로 맞아 들이면서,
<우리들은 모두가 본시부터 초나라 백성들인데, 그동안 마지못해 한나라의 지배들 받아 왔노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제아무리 무지막지한 항우라도 백성들을 죽이려 하겠습니까 ? "
곧이어, 구명은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성루에 백기를 높이 올려 달고 사대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그러자 백성들은 구름떼처럼 성밖으로 달려 나가며, 저마다 입을 모아 이렇게 외쳤다.
"저희들은 본시 초나라 백성들이온데, 팽월이 성을 점령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부역(附逆)을 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이런 백성들의 고충을 감안하시와, 저희들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옵소서."
항우는 대군을 이끌고 보무도 당당하게 입성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노여움이 가시지 않아, 항백을 불러 명한다.
"팽월이 진작에 도망을 가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성안에 남아 있던 무리들이 끝까지 항거를 하다가
이제야 항복했으니, 나는 저놈들의 항복을 진심이라고 믿을수가 없소이다.
그러니 성안에 있던 젊은 놈들은 모두가 팽월과 한 패로 볼 수밖에 없소.
지금부터 십오 세 이상의 젊은 사내놈들을 모조리 붙잡아다가 토굴을 파고 생매장을 시켜 버리시오.
그래야만 나의 분이 조금이라도 풀리겠소."
백성들은 그 소식을 듣고 서로 부등켜안으며 대성 통곡을 하였다.
그러자 구숙 동자가 어른들을 달래며 말한다.
"여러분 ! 조금도 걱정을 마세요.
제가 항왕을 직접 만나 뵙고, 성안에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지 않도록 진언을 올려 보겠습니다."
그리고 중군으로 달려가 항우에게 면담을 요청하였다.
항우는 동자를 만나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너 같은 조무라기가 어찌 두려움을 모르고 감히 나를 찾아왔느냐 ?"
그러자 구숙 소년은 당당한 기세로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
"신은 폐하의 적자(赤子)이옵니다.
폐하는 신의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어른이십니다.
자식이 부모님을 찾아뵈러 오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
항우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하기는 네 말을 들어 보니 그렇기도 하구나.
자식이 부모님을 만나러 오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을 것이냐 .... ?
그건 그렇고, 도데체 너는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나를 찾아 왔느냐 ?"
구숙 소년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말한다.
"폐하의 성덕(聖德)은 탕무(湯武)와도 같으시고 요순(堯舜)과도 같으셔서
만백성에게 자비를 골고루 베풀어 주실 줄로 믿사옵니다.
그런데 저 같이 어린 것이 감히 무슨 말씀을 올릴 수가 있겠습니까 ?"
항우는 <성덕이 탕무와도 같고 요순과도 같다>는 말을 듣고 내심 매우 기뻤다.
그러면서도 의아심이 없지 않아,
"내가 팽월에게 부역한 젊은 것들을 모조리 잡아 들이기 때문에
나를 찾아 온 것이 아니냐 ?"하고 꼬집어 물어 보았다.
그러자 구숙 소년이 다시 대답한다.
"그런 문제로 폐하를 찾아 온 것은 사실이옵니다."
"그 문제라면 네가 무슨 소리를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소용이 있고 없는 것을 떠나서,
어린 제 말씀을 한번 들어 보기만이라도 해 주시옵소서."
항우는 하도 기가막혀 코웃음을 치면서,
"그것 참 !
맹랑하기 짝없는 놈이로구나.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서 말해 보거라."
그러자 구숙 소년은 옷깃을 바로잡고 말한다.
"제가 배우기를,
<천하를 사랑하는 사람은 백성들을 사랑하고, 천하를 미워하는 사람은 백성들을 미워한다>고 배웠습니다.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과 한도끝도 없이 미워하는 이해(利害)관계는 백성들 보다는
폐하같은 대왕께서 베풀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팽월이 성을 점령하였을 때,
그 사람이 너무도 포악하여 성안의 백성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부역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폐하께서 하루속히 우리들을 구출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입성하시어 팽월에게 부역한 죄를 물어 저희들을 죽이려 하신다면,
팽월의 학정(虐政)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만약 다른 고을의 백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폐하를 사모하는 백성들은 하나도 없게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그 점을 각별히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항우는 그제서야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구숙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과연, 듣고 보니 네 말이 옳은 말이로다.
그러면 네 말 대로 아무도 해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거라."
그러면서 항우는 즉석에서 성안 백성들에게 특별 사면령을 내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외항성을 지키다가 스스로 항복해 온 ,
구명과 주동도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다.
이렇게 외황성을 점령한 항우는 이튼날, 팽월을 추격해 가려고 하자,
계포와 종이매가 간한다.
"팽월 따위는 크게 염려 할 존재가 아니옵니다.
그보다도 유방이 지금 성고성을 취하고 난뒤, 영양성까지 넘보려고 하고 있으니,
폐하께서는 그 쪽으로 진군하심이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성고성은 지금 조구(曺咎)가 지키고 있지 않은가 ?"
"조 장군이 지키고는 있으나,
한신이 대군을 몰고 오면 그를 당해 낼 수가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하니 폐하께옵서 직접 가셔야만 한신을 섬멸시킬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면 나는 성고성을 먼저 취하고 영양성으로 갈 테니,
종이매 장군은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영양성으로 먼저 가도록 하오.
이번 기회에 유방의 무리를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하겠소."
항우는 외항성 승리에 도취하여 적을 두려워할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대군을 거느리고 성고성으로 향했는데, 때마침 그 무렵에 한왕 자신도 성고성을 공략중이었다.
한왕은 성고성을 함락시키려고 여러 차례 공격을 퍼부어 보았다.
그러나 적장 조구는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일체 응전해 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올 때까지 적이 아무리 공격해 와도 싸우지 말고 지키기만 하고 있으라>는
항우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편이 응전해 오지 않으니 한왕은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항우가 오기 전에 성을 함락시켜야 할 것인데,
조구가 싸움에 응해 오지 않으니 이를 어쩌면 좋겠소 ?"
그러자 대장 주발(周勃)이 대답한다.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사옵니다."ㆍ
"어떤 방법인지 어서 말해 보오."
"조구는 성미가 항우 만큼이나 괴팍스러워서, 남에게 모욕당하는 꼴을 못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병들을 시켜서 조구에게 욕설을 퍼부으면
조구는 부하가 치밀어서 반드시 싸우려 나올 것이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사병들을 시켜 조구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게 하였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온갖 욕설을 퍼부었지만 조구는 일체의 반응이 없었다.
사병들을 욕을 퍼붓다 못해, 나중에는 성을 향해,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두들겨 보이며,
"조구 개 쌍놈아 !
내가 똥을 싸 갈겼으니, 용기가 있거든 빨리 튀어 나와 내 똥이나 처먹어라 ! "하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었다.
이같은 욕을 얻어 듣기를 무려 5,6일. 마침내
조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성문을 활짝 열어제치며 1만 군사를 일시에 휘몰아쳐 나왔다.
울화가 하도 치밀어, 마침내는 <항우의 엄명>을 무시하고 물밀듯이 성밖으로 몰려 나왔던 것이었다.
조구의 기세는 맹렬하였다.
한왕은 진작부터 작전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던지라,
조구의 군사들이 몰아쳐 나오자 짐짓 쫒기기 시작하였다.
"저 놈들을 한 놈도 살려 두지 말고 모조리 몰살시켜 버려라 ! "
조구는 분노가 열화같이 치밀어 올라 맹렬히 추격해 오면서 외친다.
한왕과 그의 군사들은 쫒기고 쫒겨서 마침내 범수강(汎水江)을 건너가 버렸다.
그러자 분이 덜 풀린 조구는 자기 자신이 먼저 강을 건너며 명령한다.
"모두들 강을 건너 추격하라 ! "
그리하여 군사들도 모두 강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조구의 군사들이 강을 절반쯤 건너 왔을 때의 일이었다.
진작부터 강 양쪽에 잠복해 있던 한나라 군사들이 일시에 함성을 울리며 들고일어나,
강을 건너던 조구의 병사들 앞뒤에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한군의 공격은 무섭게 이어졌다.
소나기처럼 화살을 퍼붓는 바람에, 강을 건너던 초군 병사들은 이리 쓰러져 죽고 저리 쓰러져 죽었다.
"아뿔싸 큰일 났구나 ! "
조구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제야 깨닫고 보니, 강 건너편에서는 관영과 여마통이 진두 지휘하여 공격해 오고 있었고,
강 이쪽에서는 주발과 주창이 진두 지휘하여 공격을 해오는 것이었다.
조구는 진퇴 양난에 처하여 결사적으로 강을 되건너 오려고 하였다.
그러나 주발이 번개같이 달려와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조구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어서,
"아아, 내가 군령을 어기고 싸우러 나왔다가 결국에는 이 꼴이 되었구나 ! "하고 탄식하며
강의 한복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조구가 죽고 나자, 한왕은 승전고를 울리며 성고성에 입성하니,
성안의 백성들은 모두가 환호성을 울리며 한왕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왕은 창고에 가득한 곡식을 풀어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고,
장수들에게도 개선연(凱旋宴)을 성대하게 베풀어 주고 있는데,
문득 비마가 달려와 말하기를,
"구강왕(九江王) 영포 장군과 진류 태수 진동(陳同) 장군이
각각 군사 3만 씩을 거느리고 대왕 전하를 도우러 오셨사옵니다."하고 알리는 것이었다.
한왕은 그들을 반갑게 맞아들여 술을 친히 내려 주며,
"두 분께서는 마침 잘 와 주셨소이다.
나는 이제부터 영양성을 공략하러 떠나겠으니, 두 분은 여기 머물러 계시면서 성을 굳게 지켜 주시오."
영포와 진동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저희들 두 사람은 목숨을 걸고 이 성을 지킬 것이오니 대왕께서는 안심하시고 영양성으로 출정 하시옵소서.
대왕 전하에게는 언제나 신의 가호가 계실 것이옵니다."
다음날, 한왕은 주발,주창,관영,여마통 등등 ...
기라성 같은 맹장들을 거느리고 영양성을 향하여 다시 정도에 올랐다.
그리하여 영양성 30리 밖에 진을 치고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왕릉 장군에게 적의 정세를 물어 본다.
"지금 적의 준비 상태가 어떠하오 ?"
왕릉이 대답한다.
"지금 영양성을 지키고 있는 적장은 오주(吳舟)라고 합니다.
오주는 적장이지만 매우 영리한 사람입니다.
그는 성안에 있는 고로(古老)들을 모아 놓고 대왕 전하에 대한 민심의 향방을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
성안의 노인들을 모아 놓고 내게 대한 여론을 조사해 보았다고... ?
그거 참 흥미로운 일이구려. 그래, 내게 대한 고로들의 여론은 어떻게 나왔다고 하던가 ?"
"고로들은 열에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한왕은 희대(稀代)의 장자(長者)이시니, 싸울 생각 말고 영양성을 곱게 내드렸으면 좋겠다>고 대답하더랍니다.
오주는 그 여론에 크게 감동했다고 하니까,
잘하면 싸움을 하지 않고도 성을 무난히 접수할 수도 있을 것 같사옵니다."
싸움을 아니 하고도 영양성을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한왕은 크게 기뻐하며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써서 오주를 설득하는 것이 좋겠나 ?"
"대왕께서 오주에게 자진 항복을 하도록 친서(親書)를 보내신다면
만사는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옳게 여겨,
곧 오주에게 친서를 보내었다.
친애하는 오주 장군 ! 나는 진작부터 장군의 영명을 사모해 오고 있었소.
장군과 같이 영명한 무장과 싸운다는 것은 나로서도 슬프기 그지없는 일이오.
우리가 싸움을 하게 되면 무고한 백성들이 많이 희생될 것이니, 그 또한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성안의 백성을 궁휼히 여기는 장군과 나의,
서로 같은 마음을 감안하시어 스스로 영양성을 나에게 넘겨 주신다면
나는 장군의 은공을 평생 잊지 아니할 것이오.
장군의 영명하신 판단이 있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이오.
한왕 유방.
오주는 한왕의 친서를 받아 보고 한왕의 인자함에 탄복하여,
그날로 영양성을 넘겨 주었다.
한왕이 영양성에 두 번째 입성하여 민심을 수습하던 차에,
종이매가 1만 군사를 거느리고 30리 밖에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왕은 왕릉,주발, 조참, 관영 등 네 사람의 장수로 하여금 종이매를 즉시 쳐부수라 명했다.
종이매는 먼 길을 오느라고 몹시 피로해진 군사들이 있는데다가,
한왕이 영양성을 무혈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자, 형편없이 사기가 저하되어었다.
게다가 호랑이 같은 장수 네 사람이 일시에 총공격을 퍼부어 오니,
초군의 대응은 처음부터 탄탄하지 못했다.
그러려니 싸움은 싱겁게 초군의 지리 멸렬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종이매는 간신히 목숨만 살려 줄행랑을 놓았다.
한편 항우는 대군을 몰아쳐 성고성으로 와보니,
수장(守將) 조구는 싸우다 전사를 해 버리고,
지금 성고성은 그 이름도 쟁쟁한 영포가 진동과 함께 지키고 있다는 소식이 아닌가 ?
항우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해 마지 않는다.
"아아,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성을 지키기만 하고 싸우지 말라고 그토록 말했건만,
조구는 어찌하여 군령을 어기고 싸우다가 성을 빼앗기고 자진했단 말인가 ?"
항우는 울화통이 터져 신음소리를 지르다가,
이번에는 군사들의 방향을 돌려 영양성으로 향했다.
그러자 곧 비마가 달려와 말하기를,
"종이매 장군이 영양성을 공략하다가 크게 패하여 행방 불명이 되었고,
영양성 수장 오주는 자진 항복하여 영양성은 이미 유방의 손에 들어 갔다고 하옵니다."하고 알렸다.
항우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당장은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고로, 일단 광무(廣武) 땅에 진을 치고 다음 작전에 골몰하였다.
...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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