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초한지(楚漢誌) 《욕심이 부른 여이기 자신의 죽음( 烹殺)》

오토산 2020. 6. 7. 09:49



초한지(楚漢誌) (110)

욕심이 부른 여이기 자신의 죽음( 烹殺)

한신은 한왕이 성고성과 영양성을 공략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떠난후,

제나라로 쳐들어갈 준비를 착착 진행중에 있었는데,

때마침 항우가 성고성과 영양성을 공략하기 위해 대군을 몰고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하여 한신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한왕을 구원하러 가기 위해,

성고성과 영양성의 전투 상항을 수집하면서 제나라 정벌을 차일 피일 지연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제왕 전광(齊王 田廣)은

한신이 불원간에쳐들어오리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전전 긍긍하며 불안에 싸여 있었다.

한편, 영양성에서 한왕을 모시고 있던 모사 여이기는 제왕이 공포에 떨고 있다는 정보를 접하자,

제왕을 설득시켜 자진 귀순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제나라의 70여 성을 싸우지 않고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공로가 없겠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여이기 노인은 어느 날 한왕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연(燕) 나라와 조나라는 한신 장군이 이미 평정을 했사오나,

제나라는 워낙 힘이 강하고 땅이 넓어서 쉽게 굴복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게다가 항우가 지원병을 보내어 도와주기라도 한다면,

우리가 수십만 대군을 몰고가도 점령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옵니다."

한왕이 반문한다.
"그러면 대부께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시오 ?"

 

"대왕께서 제왕을 설득하는 조서(詔書)를 써 주시면,

신이 제나라로 가서 제왕을 이해로써 설득해 보면 어떨까 생각되옵니다.

만약  설득이 주효하여, 제왕 스스로가 자진하여 우리에게 항복해 온다면

그보다 좋을 일이 어디있겠나이까 ?"
한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대부께서 제왕을 자진해 항복하게 해 주신다면 그 공로는 천추에 길이 남을 것이오.

한신 장군이 아직 발군(發軍)을 아니 하고 있는 모양이니,

그러면 대부께서 나의 조서를가지고 제나라로 빨리 떠나도록 하시오."
여이기 노인은 한왕의 조서를 가슴에 품고 곧 제나라를 향하여 떠났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여이기는 제나라에 도착하여 제왕에게 면담을 요청하였다.

그렇게 제나라 대궐로 들어간 여이기는 제왕을 만나서도 별다른 인사를 하지않고 ,

허리를 곧게 편채 만났다.

 

그러자 제왕은 여이기의 오만 불손한 태도에 크게 분노하여,
"그대는 내가 자진 항복하도록 설득하러 온 모양인데, 그대의 태도가 왜 이다지도 불손한가 ?

그대가이처럼 불손한 까닭은 우리가 그대들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 할 것이라는 자만심 때문인가 ?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군사력으로 그대들의 생각이 매우 잘못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리라."하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나 여이기는 조금도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아니하고,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왜 대왕을 찾아 왔는지, 나의 말을 들어 보시면 충분히 이해하실 것입니다."

 

제왕은 끝까지 노하는 것은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되어,

얼굴 빛을 누그러뜨리면서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서 말해 보오."

그러자 여이기는 당당하게 말한다.
"한왕은 지금 100만 대군을 거느리고 그 위세를 만천하에 떨치고 있소.

게다가 지금 조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한신 장군까지 합세하여 쳐들어오면,

제나라는 그날로 풍비 박산이 되고야 말 것이오.

그렇게 되면 대왕은 왕위를 보존하기가 어렵겠기에, 나는 제나라의 백성들도 구하고,

대왕도 구해드리고 싶어 이렇게 대왕을 찾아 왔으니 내가 무엇때문에 대왕에게 허리를 굽신거려야 한다는 말이오 ?

그러니 대왕 자신이 왕위를 보존하고 싶지 않거든, 당장 이 자리에서 나를 죽여 버리시오."
제왕은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대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그만 지껄이고 내 말을 들어 보시오.

우리나라는 국토가 동서 사방으로 수천여리, 게다가 서쪽에는 위,조 나라가 있고,

동쪽에는 바다와 맞닿아 있으며, 남쪽에는 초나라와 연나라가 있지 아니한가 ?

그나 그뿐만인가 ?

우리는 그동안 부국 강병(富國强兵)을 기치로 살아 온 관계로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는 형편인데,

우리가 어찌 유방을 두려워할 것인가 ?"
그러자 여이기가 탄식하며 말한다.

 

"대왕은 어찌 허장 성세(虛張聲勢)가 그렇게도 심하오.

제나라가 아무리 강해도 항우는 당해 내지 못할 것이오.

그런 항우조차도 한왕에게 관중 땅을 모두 빼앗겨 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제나라가 한왕에게 항거하려는 것은

<사마귀가 팔을 벌려 수레 바퀴를 막아내려는 것(당랑거철)>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란 것을 왜 모르시오."

 

" ...... "

제왕은 그 말에 찔리는 바가 있는지, 입을 다물고 대답을 못 한다.
여이기가 이번에는 제왕을 달래듯이 말한다.

 

"그러나 대왕은 너무 심려치 마소서.

이제부터라도 천하의 추세를 잘 살펴서 흥망의 태도를 명백하게 결정하면 되실 것이오."

 

제왕은 골머리가 아픈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세상이 어떻게나 변화 무쌍한지, 나는 천하 대세의 추세를 가늠하기가 어렵구려 !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여이기는 이때다 싶어 다시 말을 한다.
"대왕이 천하의 추세를 잘 모르시겠다면 내가 설명을 해 드리지요.

지금 초패왕은 강한듯 하면서도 약하기 짝이 없고, 한왕은 약한듯 하면서도 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왕은 이미 천하의 3분의 2를 점령하고 있는데, 항우는 영토의 3분의 1도 채 못 되게 가지고 있으니,

그것만 보아도 천하의 대세가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오 ?"

제왕 전광은 여이기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이기가 계속하여 말한다.

 

"초패왕 항우가 의제를 시해하고 제위를 찬탈한 것은 분명한 역적지거(逆賊之擧)였소.

그러나 한왕은 의제의 유해를 국장으로 정중히 모심으로써, 천하의 민심을 한몸에 모으게 되었지요.

한왕이 제후들로부터 열광적인 존경을 받게 된 원인이 바로 그 점에 있는 것입니다.

천하의 민심이 그러할진데,

대왕도 천하의 추세에 따라서 제나라를 온전하게 보존해 나가야 할 것이 아니겠소이까.

나는 오로지 대왕을 위하여 이런 충고를 드리는 것입니다."

제왕은 그제서야 납득이 가는지,

여이기의 손을  덥석 붙잡으며 간청하듯 말한다.

 

"나는 천하의 추세의 가늠을 못하다가 오늘 대인의 말씀을 듣고서야 크게 깨달았소이다.

그러면 앞으로 한왕과 친하게 지냐야 좋겠는데,

어떤 방법이 좋을지 대인께서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소."
여이기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뻤다.

 

"참으로 올바른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대왕은 한왕께 사신을 보내어 정중한 항표(降表)를 보내도록 하소서.

나는 한왕께서 오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지요."

 

이리하여 여이기 입만 가지고

제나라의 70여 성을 고스란히 한왕에게 귀속시키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호사 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두 사람이 일단 합의를 하고 나자,

그 자리에 있던 제나라 대장 전횡(田橫)이 제왕에게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닌가 ?

 

"대왕 전하 !

우리가 여 대인과 합의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조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한신 장군이 대군을 휘몰아쳐 온다면

우리는 무슨 힘으로 그들을 막아낼 수 있겠사옵니까.

대왕께서는 그 점을 각별히 고려하셔야 하옵니다."
제왕은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얼굴빛이 변했다.

 

"과연 듣고 보니 그 점이 걱정이구려....

여 대인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 주시렵니까 ?"
여이기가 즉각 대답한다.

 

"그 문제는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저는 한왕의 명령을 받들고 찾아 왔으니, 한신 장군인들 어찌 마음대로 쳐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

 

"그러나 우리로서는 마음이 놓이지 않으니,

만일을 위해서 대인께서 한신 장군에게 그런 일이 없도록 편지를 한 통 써 보내주시면 고맙겠소이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곧 한신 장군에게 편지를 써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여이기는 한신에게 곧 편지를 보냈다.

바로 그 무렵, 한신은 그러한 사정을 모르고 제나라를 공략하려고 출동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는데,

돌연 제나라에 머물고 있는 여이기 대부로부터 편지가 왔다는 것이었다.
한신이 여이기의 편지를 받아 보니, 편지의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한나라 대부 여이기는, 삼가 한신 대원수께 글월을 보내옵니다.
본인은 대왕의 전지를 받들고 제나라에 와서 제왕을 간곡히 설득한 결과,

싸우지 않고 제나라 70여 성을 고스란히 귀순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로써 많은 생령(生靈)들을 구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로써도 전쟁의 노고를 면하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한대왕의 성덕(聖德)과 한원수의 위무(威武)의 덕택인 줄로 압니다.

 

이런 까닭에 원수께서는 한나라를 공략하실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군사를 거느리고 영양성과 성고성으로 가셔서 푹  쉬셨다가,

마지막 남은 초나라를 공략하심이 좋을 줄로 알리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각고의 노력으로 이미 다섯 나라를 모두 평정하였으므로,

이제는 마지막 남은 초나라를 공략하여 통일 성업을 성취하면

원수의 공적은 청사에 영원히 길이 빛나게 될 것 입니다.

그러니 원수께서는 더욱 자중 자애 하시기 바라옵니다.

한신은 여이기의 편지를 읽어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회신을 여이기에게 써 보냈다.

여 대부께서 능수 능란하신 변론으로 싸우지도 아니하고 제나라의 70여 성을 입수하시는 데 성공하셨다니,

그보다 더 큰 공로가 어디 있으오리까.

삼가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나는 이제부터 영양성으로 달려가 대왕을 받들고 초나라를 공략할 계획을 진행할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그때에 이르러 제나라도 우리와 합동 작전으로 초나라를 공략할 수 있도록 

여 대부께서는 계속하여 많은 애를 써 주시기 바라옵니다.

여이기가 한신의 편지를 제왕에게 내 보이니, 제왕은 그제서야 안심하고 여이기를 더욱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이렇게 여이기 노인이 순전히 입만 가지고 제나라의 70여 성을 얻는 공로를 세웠으므로,

그때부터는 기쁨에 도취하여 날마다 술만 마시며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한신은 장이와 함께 군사를 거두어 가지고 영양성으로 막 떠나려고 하는데,

불현듯  연나라의 모사였던 괴철이 한신에게 말한다.

 

"한 원수께 아뢰옵니다.

만약 원수께서 여이기 노인의 말을 그대로 믿으시고 철군하시면,

그것은 한 원수로서는 일생 일대의 과오를 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실 것이옵니다."

한신은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하였다.
"일생 일대의 과오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

 

괴철이 말한다.
"생각해 보시옵소서.

한 원수께서 오늘날까지 여러 나라로 동분 서주 하시면서 점령하신 성(城)은 50여 성밖에 안 되는데,

여이기 노인은 순전히 입만 가지고 70여 성을 대번에 얻어 놓았다고 하니,

원수께서는 무슨 면목으로 영양성으로 돌아가 한왕을 뵈올 수 있을 것이옵니까 ?"

한신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하다가,

괴철의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음 .....

그래서 이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인가 ?"
괴철이 다시 말한다.

 

"만일 지금 형편대로 나간다면, 후일에 한왕께서 천하 통일의 성업을 완수하셨을 때,

일등 공신은 한 원수가 아니고, 여이기 대부라는 결과가 될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원수께서는 대군을 철수하시기 전에 그 점을 생각하셔야 하옵니다."

"음 ... ! "

 

한신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했다.

따지고 보면 여이기는 일개의 세객(說客)에 불과한 유생(儒生)이 아니던가,

그가 아무리 변설로써 제나라 70여 성을 귀순시켜 놓았다 하더라도,

생사(生死)를 걸고 천군 만마(千軍萬馬)로서  온갖 전쟁터를 누비고 다닌

자신의 공로에는 미치지 못할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순전히 평정시킨 성 수(城數)만 가지고 따진다면,

여이기가 앞서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
생각이 이에 이르자, 한신은 괴철에게 다시 물었다.

 

"그대의 생각으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인가 ?"
괴철이 다시 말한다.

 

"이대로 철수하셔서는 아니되옵니다.

제나라는 지금 전쟁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을 것이므로,

원수께서는 대군을 몰고 들어가 제나라를 형식적으로나마 무력으로 점령해 버리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공로가 원수 앞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옵니다.
그러자 한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것은 안 될 말이다.

여이기 대부가 왕지(王旨)를 받들고 이미 항표를 받아 놓은 제나라를

내가 무력으로 쳐들어간다는 것은 대왕에 대한 거역이나 다름없지 않겠는가 ?"
그러자 괴철이 다시 말한다.

 

"그것은 생각하기에 달린 일이옵니다.

대왕께서는 한 원수께 제나라를 공략하라는 왕지를 이미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이기 대부가 제나라로 달려간 것은,

자신의 공로를 세우기 위한 사사로운 행동이었다고도 볼 수 있는 일이옵니다.

그러므로 원수께서 여이기 대부의 말만 믿고 경솔하게 철수하셨다가는

후일에 만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기 쉽사옵니다.

원수께서는 그 점을 십분 고려하셔야 하옵니다."

괴철이 거기까지 말하자,

장이가  거들고 나선다.

 

"제가 들어 보아도 괴철의 말이 지극히 가당합니다.

원수께서는 이미 왕명에 의하여 제나라를 평정할 권리를 완전히 장악하고 계시온데,

또 다른 왕명이 어찌 있을 수 있으오리까 ?

그러하니 우리가 영양성으로 가기에 앞서,

먼저 제나라를 무력으로 점령해 놓고 봐야 합니다."

한신은 그러잖아도 여이기에게 공로를 빼앗길까 봐 불안하던 참이었는데,

괴철과 장이가 무력 점령을극력 주장하고 나오니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아닌게아니라 한신이 여러 해 동안 애써 꾸미고 만든 전략이 막판에

여이기의 제나라 귀순 성공으로 큰 공이 여이기에게 넘어가 버리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것이 아니던가 ?

그러기에 한신은,
"두 분의 말씀은 과연 옳은 말씀이오.

나는 대왕으로부터 <제나라를 평정하라>는 대명을 직접 받았기 때문에,

여이기 대부가 설혹 제나라를 귀순시켜 놓았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형식적이나마 제나라를 일단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이 옳을 것 같구려.

그럼 먼제 제나라를 거쳐서 영양성으로 가기로 합시다."하고

대군을 제나라로 몰아쳐 나갔다.

 

조나라에서 제나라로 가려면 북방으로 황하(黃河)를 건너 머나먼 대로를 우회하여야 한다.
한신이 대군을 이끌고 진군하자 제나라 백성들은 모두 공포에 떨며 피난을 가기에 바빴다.

한편, 제왕 전광은 전쟁이 없으리라 안심하고 날마다 여이기 대부와 어울려 술만 마시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시종이 달려와 급히 아뢴다.

 

"대왕마마 ! 큰일 났사옵니다.

한신이 30만 대군을 몰고 이미 국경을 넘어 쳐들어오고 있사옵니다."하고

아뢰는 것이 아닌가 ?

 

제왕은 대경 실색하며 중신 회의를 급히 열었다.
회의 석상에서 대장 전횡(田橫)이 말한다.

"한신이 지금 30만 대군으로 휘몰아쳐 오고 있으므로

우리가 정면으로 항전하다가는 전몰(全歿)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황하의 물을 끌어다가 개울을 깊게 파고 흙벽을 높게 쌓아 저들의 행군을 저지시키는 동시에

초나라에 긴급 특사를 보내어  초패왕의 구원을 요청하도록 하시옵소서.
초패왕이 구원병을 거느리고 오거든 그때에는 우리도 달려나가 양면으로 협공을 퍼부으면

한신을 능히 대파할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제왕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참으로 좋은 생각이오.

그러면 그 문제는 전횡 장군의 말대로 하기로 합시다.

우리가 지금까지 여이기의 말만 믿고 있다가 이 꼴이 되었으니,

여이기는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소 ?"
그러자 전횡이 다시 대답한다.

"여이기가 우리를 속인 셈이니 당장 죽여야 마땅한 일이오나,

당분간은 죽이는 것을 보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그 이유는 ?"

 

"한신이 대군을 몰고 성하(城下)까지 육박해 왔을 때,

여이기로 하여금 한신에게 다시 한 번 서한을 보내게 해보아서,

한신이 그대로 철수해 버리면 우리는 예정대로 한나라에 귀순하기로 하되,

만약 한신이 군사를 계속 전진시키면 그때에는 여이기를 죽여 버리고 초패왕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실상인즉, 한신이 지금 대군을 몰아 오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생각으로 여이기와의 약속과 다른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확실한 진상은 아직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침 그때, 한나라 군사가 이미 성밖 30리 앞까지 쳐들어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제왕은 크게 당황하여 여이기를 불러내어 따지듯 묻는다.

 

"일전에 한신이 대부에게 보내 온 회신에 의하면, 한신은 영양성으로 가겠다고 분명히 밝혔었소.

그런데 한신은 지금 대군을 이끌고 우리한테 오고 있으니, 이 어찌 된 일이오 ?

생각컨데 대부가 나를 속여 전쟁 준비를 못 하게 해 놓고,

우리 나라를 기습 공격하여  일거에 점령하려는 사술(詐術)을 쓰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

여이기가 분노의 빛을 보이며 대답한다.
"한대왕의 명령을 받고 온 나더러 속임수를 썻다니,

그게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이오 ?"

 

"나는 대부의 권고에 따라 한왕에게 귀순하기로 이미 결정한 사람이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신이 대군을 몰고 오다니, 나는 대부를 의심할 수밖에 없소.

지금이라도 한신에게 서한을 보내어 대군을 즉시 철수하도록 해 주시오.

그렇게만 되면 대부의 말씀이 거짓이 아님을 믿을 것이로되,

만약 그렇지 않으면 대부를 사기꾼으로 대할 수밖에 없겠소."
여이기는 오랫동안 심사 묵고하다가 입을 열어 말한다.

 

"이런 일이란 편지로서 양해시키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내가 한신 장군을 직접 만나 보고 오기로 할 테니, 대왕은 사신 한 사람을 딸려 주소서.

그러면 사신과 함께 내가 한신 장군을 직접 만나 보고 오겠습니다."
그러자 제왕은 여이기의 손목을 꽉 움켜 잡는다.

 

"그것은 안 될 말씀이오.

대부가 한신을 설득시켜 대군을 철수시키는 데 성공하면 돌아오게 되겠지만,

만약 그러지 못했을 경우에는 대부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 아니오 ?

그렇게 되면 그것은 호랑이를 산으로 놓아 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

그러니 대부는 이곳에 볼모로 머물러 있고, 나의 사신이 대부의 편지만 가지고 가게 해야 하겠소."

제왕으로서는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자 여이기는 장탄식을 하며 말했다.

 

"아아, 이제 나의 생사 존망(生死存亡)의 위기가 눈앞에 닥쳐왔구나....

그러면 한신 장군에게 보내는 서한을 써 줄 테니,

사신에게 곧 보내도록 하시오."

 

여이기는 즉석에서 한신에게 보내는 서한을 썻는데,

한신이 받아 본 여이기의 편지 내용은 이랬다.

장군께서 영양성으로 대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서한을 받아 보고,

본인은 한왕 전에 이미  전말의 보고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장군은 대군을 몰고 제나라로 오셨으니,

본인은 제왕을 속인 결과가 되어 나의 목숨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내 목숨은 조금도 아까울 것은 없으나,

왕명을 받든 내가 죽음으로써 대왕의 신의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니,

장군께서는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시어 대군을 곧 철수시켜 주소서. 엎드려 바라옵니다.

한신은 여이기의 편지를 받아 보고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자 괴철이 묻는다.

 

"장군께서는 무엇을 주저하고 계시옵니까 ?"
한신이 대답한다.

"여이기 대부가 왕명을 받고 제나라를 이미 귀순시켜 놓았는데,

내가 군사를 몰고 가  제나라를 치면, 제왕은 여이기 대부를 죽여버릴 것이 아니오 ? 

그렇게 되면  나는 왕명을 거역하는 셈이 되니, 그것도 함께 걱정이 되는구려."
그러자 괴철이 다시 말한다.

"한왕은 제나라를 평정시키라는 왕명을 두 사람에게 내린 셈이니,

잘못이 있다면 한왕에게 있지 장군에게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

그런데 무엇을 주저하시옵니까 ?"

 

"아무리 그렇기로 여이기 대부를 제왕의 손에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그러자 괴철이 손을 내저으며 다시 말한다.

"노인 목숨 하나쯤 무엇이 대단하다고 그러십니까 ?

나라 하나를 평정하는 공로를 세우기는 좀처럼 있기 어려운 일이옵니다.

이렇게 경중(輕重)과 대소(大小)의 사리가 명백하온데,

장군께서는 아녀자들 처럼  왜 쓸데없는 일로 결정을 미루십니까 ?"

 

괴철의 설득에 한신의 마음이 크게 동요되었다.
그리하여 제나라에서 보내 온 사신에게 답장을 써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돌아가거든 여이기 대부에게 나의 말을 이렇게 전하라.
여 대부가 왕명을 받들고 제나라로 가서 설득을 하려면,

우선 제나라를 공략할 준비를 마친 나에게 먼저 찾아 와서 그 사실을  알려 줬어야 옳을 일인데,

그런 사실을 나에게 알려 주지도 아니하고,

비밀리에 제나라를 마음대로 귀순시켜 놓았다고 하니, 그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또 그런 방식으로 귀순을 시켰다고는 하지만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는가 ?

따라서 제나라를 지금 평정시켜 놓지 않으면 후일에 커다란 화근이 될 것이므로,

설사 여 대부가 희생이 된다 하더라도 나는 애초의 계획대로 반드시 제나라를 평정시켜 놓고야 말 것이다.

만약 여 대부의 공로가 후일에 명백하게 밝혀지면 ,
비록 대부는 오늘  희생되더라도 그의 후손들만은 반드시 열후(列侯)에 봉해질 것이니,

여 대부는 오늘의 나의 처사를 너무 야속하게 생각지 마시도록 여쭈어라."

제왕의 사신이 즉시 돌아와 제왕과 여이기 앞에서 한신의 말을 사실대로 전하니,
여이기는 땅을 치며 한탄한다.

 

"아아,

내가 한신에게 당하고야 말았구나 ! "

그러나 제왕은 그와 반대로 크게 노하며,
"나는 이 늙은이에게 단단히 속았다.

이 늙은이를 그냥 죽일 수 없으니, 당장 끓는 기름 가마에 처넣어 삶아 죽이도록 하여라 ! " 하고 명했다.

그후,  한신은 여이기 대부가 팽살(烹殺: 삶아 죽임))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즉시  대군을 발동하여 제나라를 무자비하게 쳐부수기 시작했다.
     ..........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