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초한지(楚漢誌)《 주가와 종공의 순절(殉節)》

오토산 2020. 6. 4. 10:04



초한지(楚漢誌) (107)

주가와 종공의 순절(殉節)


항우는 기신을 화형(火刑)에 처하고 나서 계포와 용저를 불러 명했다.
"그대들은 정병 만 명을 거느리고, 유방의 뒤를 추격하여 그를 이틀 안에 사로잡아 오라.

그자는 지금 영포, 팽월 등과 함께 팽성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계포와 용저는 즉시 군사를 몰고 떠났다.
그러나  밤낮 이틀간이나 추격을 해 보았으나 유방은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정촌(精村)이라는 곳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척후병이 급히 달려와 말하는데,
"한왕은 지금 성고성(成皐城)에 입성하여, 지원부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하는 것이었다.
 
계포는 그 말을 듣고 용저에게 말했다.
"유방이 이미 성고성에 입성하였다면 우리가 추격을 해도 소용없는 일이 아니겠소 ?

그러니 우리는 차라리 본진으로 돌아가 팽성을 지키는 것이 현명할 것 같소이다."
 
그러자 어느새 뒤따라 온 항우가 그 말을 듣고 새로운 군령을 내린다.
"성고성을 함락시키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영양성은 유방이 버려두고 떠났으니 공격을 하면 어렵지 않게 함락 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항우와 계포, 용저는 영양성으로 돌아와 그날부터 유방의 본거지였던 영양성을 공략하기 시작하였다.
무서운 공격이었다.

남문 쪽으로는 계포가 공략하고, 서문 쪽에서는 용저가 쳐들어가고, 북문 쪽은 종이매가 공격을 하고,

동문 쪽에서는 항우 자신이 철포를 연방 쏘아가며 무섭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성을 지키고 있는 주가(周苛)와 종공은

성위에서 돌과 화살을 성밖으로 굴리고 쏘아대며 맹렬하게 저항하였다.

이렇게 양군의 치열한 공방전이 닷새 동안이나 계속되었지만

항우는 암만해도 영양성을 손쉽게 점령할 수가 없었다.
 
마침 그때 성안에는 위표가 머물러 있었다.
항우의 공격이 조금도 식지 않고 끈질기게 맹렬한 것을 보고, 위표가 주가와 종공에게 말한다.

 

"한왕은 이미 성을 버리고 떠나 갔는데, 두 장군은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우시오 ?

그러다가 항왕이 성을 점령하는 날이면 두 장군은 꼼짝없이 죽게 될 것이니,

차라리 지금 항복을 하여 목숨을 보존하는 것이 어떠하겠소 ?"
 주가와 종공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며 소리친다.

 

"네 놈은 언제나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니,

세상에 개 만도 못한 놈이로구나 !

너 같은 놈을 살려 두었다가는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르니,

우선 네 놈부터 죽여 버려야 하겠다 ! "하며 위표의 목을 한칼에 베어,

 

항우가 공략하고 있는  동문 위에 높이 매달아 놓고,
"누구든지 적과 내통하는 자는 이 꼴이 될 것이니, 모든 군사는 목숨을 걸고 성을 지켜라."하는

방문을 높이 내붙였다.
 
위표를 내통죄(內通罪)로 처단해 버리고 나니,

성을 지키던 한나라 군사들의 사기는 새삼스럽게 왕성해지는 것이었다.
항우는 그 사실을 보고 크게 분노하였다.
그리하여 총력을 기울여 공격을 퍼부었지만, 영양성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에 항우는 생각을 달리하여 항백, 종이매 등과 함께 새로운 공격 방안을 논의하였다.
 
"우리가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적은 끄떡도 하지 않으니,

무슨 새로운 방법이 없겠는가 ?"
항백이 대답한다.

 

"성을 함락시키는 데에 공격 이외에 무슨 방법이 또 있으오리까 ?

결사적으로 공격하면 제아무리 금성 철벽인들 어찌 함락되지 않으오리까.

이제부터는 방화 특공대를 조직해 가지고, 그들로 하여금 성벽을 기어올라가

성안 여기저기에 불을 지르게 하면 적들은 반드시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회에 많은 군사들이 일시에  성안으로 넘어 들어가게 하십시다.

이렇게 하면 영양성은 반드시 함락시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시간을 지체하여 한신의 지원군이라도  달려 오게 되면,

그때는 영양성을 영원히 함락시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항우는 그 말을 옳게 여겨 방화 특공대를 새로 조직하여,

제각각 기름방망이를 들고 성벽을 기어올라가 불덩이를 성안으로 던지게 하였다.
아니나다를까, 방화 특공대가 죽음을 무릅쓰고 성벽을 기어올라가 , 곳곳에 불덩이를 던져버리니,

성안의 군사들은 일대 혼란을 일으켰다.

 

초군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동서 남북 사방에서 성벽을 타고 넘어 성안으로 쏱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마치 수 많은 개미떼가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한군 대장 주가와 종공은 끝까지 항전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수적으로 밀리는 바람에 마침내는 종공은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어 버렸고,

주가는 서문으로 빠져나와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초군 대장 용저가 그 광경을 보고 주가의 뒤를 맹렬히 쫒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항우는 방금 생포한 종공을 땅바닥에 꿇어앉혀 놓고 꾸짖어 말했다.

 

"일개 장수에 불과한 네가 무슨 용기로 감히 나를 막아 내려고 했느냐.

그러나 그동안 네가 보여 준 가상한 용기는 크게 칭찬 받을만 하니,

네가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먹고 나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하면

나는 너를 살려주고 영양성 태수(太首)로 임명해 줄 테니 순순히 항복을 하거라."
 그러자 종공은 항우를 증오의 눈으로 노려보며 오연히 말한다.

 

"나는 성을 빼앗기고 포로가 되었으니, 이제 남은 일은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

여러소리 말고 나를 빨리 죽여라 ! "
항우는 종공의 충절에 내심 크게 탄복하였다.

 

(아아, 유방의 신하들은 열에 하나같이 이렇듯 충성스러운데,

나의 휘하에는 어째서 저런 충신이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
 항우는 종공의 태도에 내심 감탄해 마지않으며, 계포를 은밀히 불러 특별지시를 내린다.

 

"종공은 충성심이 매우 강한 사람 같으니,

장군이 종공을 설득하여 순순히 항복하게 해보시오."
계포가 특별 지시를 받고 종공을 만나 설득하기 시작한다.

 

"장군이 전공을 세워 그 이름을 후세에 남기는 것은 대장부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일 것이오.

그러나 성을 빼앗기고 헛되이 죽어 가면  그대의 이름을 누가 알아 주겠소 ?

그러니 지금이라도 항왕께 항복하여,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어떠하겠소 ?"
 그러나 종공은 도리질을 하며 조용히 대답한다.

 

"바른 길을 가다가 죽으면 마음이 기쁜 법이오.

나는 힘이 부족하여 성을 빼앗기고 말았지만, 충성만은 다하여 싸웠소.

그러니 여러 말 말고 나를 빨리 죽여 주시오.

내가 설혹 지금 항우에게 항복을 한다 하더라도,

내일이면 항우를 배반하고 한왕을 다시 찾아가게 될 것이오."
 계포는 그 말을 듣고 나자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그리하여 항우에게 사실대로 고하니,
"그자가 끝까지 항복을 거부한다면 그냥 살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니,

당장 목을 베어버리시오."하고 명한다.

 

종공은 마침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이 잘려 나갔지만 ,

마지막 순간에도 그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케 하였다.
 
한편,용저는 주가를 맹렬히 추격하였다.

주가는 얼마간 쫒기다가 문득 커다란 나무를 등지고 말을 멈추며 반격 태세를 갖추었다.
용저는 무작정 덤벼들기가 두려워 잠시 머뭇거리며 큰소리로 타이르듯 외치며 서서히 다가갔다.

 

"그대는 내 말을 들어 보라.

한왕은 이미 우리와 대적하다가 도망을 쳐버렸다.

게다가 그대는 성을 빼앗기는 바람에 그대의 가족들은 모두 우리 손에 포로가 되어 버렸다.

이제 그대는 무엇을 바라고 우리에게 끝까지 저항하는가 ?"
 주가가 위연히 대답한다.

 

"신하가 임금을 위해 죽는 것을 충절(忠節)이라고 이른다.

내가 성을 빼앗긴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인데, 내 어찌 역적의 무리에게 항복까지 할 수 있을 것이냐 ?

이제 나의 마지막 힘을 쏟아 부끄럽지 않은 충심(忠心)을 보여 주리라 ! "
그리고 번개같이 몸을 날려 용저에게 덤벼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두 장수는 정면으로 싸우기 시작하였다.
맹렬하게 싸우기를 20여 합,

용저의 부하들이 그 광경을 보고 사방에서 벌떼처럼 모여드는 바람에 주가는

마침내 사로잡혀 항우 앞에 끌려 나가는 처지가 되었다.
 항우는 주가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그대와 함께 영양성을 지키던 종공은 순순히 항복하여

나는 그의 뜻을 매우 가상히 여겨, 그를 <만호후(萬戶侯)>에 봉해 주었다.

그대도 항복만 하면 이 자리에서 만호후에 봉해 줄 것이니

순순히 항복하도록 하라."
주가가 대답한다.

 

"종공과 기신은 나와 함께 모두 한왕의 충신들이다.

그러한 종공이 어찌 부귀와 영화에 현혹되어 만고의 역적인 너에게 항복을 했을 것이냐.

네 놈이 아무리 거짓말을 씨부려대기로 내가 속을 것 같더냐 ?"
그러자 항우는 크게 화를 내며, 주가를 즉석에서 기름가마에 넣어 삶아 죽여 버렸다.
 
* 글 중간에 붙여.
기무사령관 재직시에 세월호 유족을 사찰했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2월 7일 지인의 사무실이 있는 한 빌딩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유서에서

< 지금까지 살아오며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며

<내가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것으로 하고 모두에게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는 청원을 남겼다.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시각은 크게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유,무죄를 떠나 한평생 군인의 길을

  명예로 알고 살아온 그의 투신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울러 자신의 죽음으로 군과 자신(군인)의 명예를 지키려고

했던 숭고한 뜻이  뜻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충성 ! >
대한 군인(大韓軍人)의 연혁(沿革)으로 치면 소주병 보다 아래지만,
대한국군과 군인의 명예를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 지키려 애쓴

그의 넋에 삼가 경의를 표한다.
부디, 모략 (謨略)과 중상(中傷)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영면에 드시길 바란다.
                        ...
 
 
그리고 난 뒤,

영양성안으로 들어가 한왕을 추종하던 성안의 백성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려고 하니,

항백이 크게 놀라며 항우에게 간한다.

 

"지금 우리의 적은 유방일 뿐이지 백성들은 아니옵니다.

백성들이야 성주(城主)의 입장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지, 결코 그들의 뜻대로 살아 온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그들을 죽여 없애게 되면 천하의 인심도 잃게 되는 것이오니

그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정책을 펴는 것이 보다 긴요한 일이 옵니다.

폐하께서는 여기서 잠시 쉬셨다가 유방이 도망간 성고성(成睾城)을 공략하도록 하시옵소서.

한나라의 지원군이 몰려 올 길을 차단해 놓고 성고성을 공략하게 되면

유방을 사로 잡기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옳게 여겨 전열(戰列)을 가다듬으며 성고성을 공략할 준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이때 한왕은 성고성에서 장량, 진평 등과 함께 다음 단계의 대책을 숙의중에 있었다.

 

"한신과 장이는 아직 조나라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영포와 팽월에게는 사람을 보냈지만 아직 아무 소식이 없으니, 이를 어찌 했으면 좋겠소.

영양성을 지키던 주가와 종공은 성이 함락되며 순절(殉節)했다고 하니,

항우는 반드시 여세를 몰아 이곳으로 쳐올 것인데,

거기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우면 좋겠는지 장량 선생께서 좋은 지혜를 가르쳐 주소서."
 장량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영포와 팽월에게 사람을 보낸지 열흘이 넘었으므로 그들은 머지않아 오게 될 것이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으니,

대장 한 사람을 시켜 항우의 본거지인 팽성을 치게 하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면 항우는 우리에게로 오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자신의 도읍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부랴부랴 팽성으로 방향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곧 왕릉을 불러 명한다.

 

"장군에게 정병 5천을 줄 테니, 즉시 팽성으로 달려가 공격을 하도록 하라.

그러면 항우가 우리로 오려다가 황급히 팽성으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항우와 싸우지 말고 군사를 거두어 서둘러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라."

 

한왕은 왕릉을 팽성으로 보내 놓고 나서도 항우가 언제 공격해 올지 몰라,

전에 한신이 만들어 놓은 전차(戰車)들을 사방에 배치해 놓았다.

 

 한편, 항우는 대장 오주(吳舟)에게 영양성을 지키게 하고

자기 자신은 대군을 이끌고 성고성 공략의 길에 나섰다.
항우는 성고성 20리 밖에 진을 치고 적정을 탐색해 보니,

적이 성고성 주변의 개활지(開闊地)에 전차를 어마어마하게 배치해 놓았다는 것이 아닌가 ?

 

이전에 한신과의 접전에서 전차의 위력에 속수 무책이었던 기억이 떠오른 항우는

조심스럽게 일대 공세(一大攻勢)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바로 그때, 비마가 달려와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적장 왕릉이 어느틈에 나타나 팽성을 맹렬히 공격하는 중입니다."
팽성은 항우의 본거지인 만큼 항우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대책을 못 세우고 난감해 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비마가 달려오더니,
"적장 팽월이 외황(外黃)을 비롯하여 우리의 영토 17개 고을을 장악하고 나서,

우리의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습니다."하고 알리는가 하면

 

또 하나의 비마가 달려와,
"적장 영포가 한왕을 돕기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지금 남계(南溪)를 건너고 있는 중입니다."하고

알리는 것이었다.
 
항우는 연달아 답지하는 이런 소식을 듣자,

크게 당황하며 항백과 종이매에게 물었다.
"적이 삼면으로부터 공세를 펴오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
항백이 대답한다.

 

"팽성은 성벽이 두텁고 높은 데 다가 많은 수비 병력이 있으므로

왕릉이 제아무리 공격을 하더라도 함락될 염려는 없사옵니다.

그러니 당장 우리가 팽성으로 달려가기 보다는 비밀리에 이곳을 철수하여,

일군은 외황으로 달려가 팽월을 때려부수고, 일군은 남계로 달려가 영포를 쳐부수기로 하십시다.

그 방법만이 지금의 위기를 수습하는 길이옵니다."
 항우는 항백의 제안을 옳게 여겨 즉석에서 대장 조구(曺咎)를 불러 명령하였다.

 

"그대에게 군사 1만을 줄 테니, 성고성 서쪽에 은밀히 숨어 있으라.

내가 이곳에 없는 것을 알면 유방은 내가 다시 올 것이 두려워 반드시 도망을 갈 것이니,

유방이 성을 비우거든 그대는 성으로 진입하여 점령하고 내가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라.

내가 다시 올때 까지는 유방과 싸워서는 안 된다."
항우는 명령을 내리고 난 뒤, 다음 작전을 위해 일단 그곳을 떠났다.
 
한편, 한왕은 항우가 한번도 공격을 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너무도 의아스러워 장량과 진평을 불러 물었다.

 

"항우가 싸워 보지도 아니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갔다니 어찌 된 일이오 ?"
장량이 대답한다.

 

"항우는 남계에서 영포를 공략하고, 외황에서는 팽월을 공략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이곳을 떠난 데 불과할 것입니다."
 한왕은 장량의 말을 얼른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항우가 일시적으로 이곳을 떠났을 뿐이라니,

그러면 항우가 우리 성고성을 치기 위해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말씀이오 ?"
장량이 다시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대왕이 계셔서는 천하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항우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다시 돌아 올 것이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매우 불안하였다.

 

"그렇다면 그가 다시 돌아 왔을 때 우리는 그를 당해 내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
장량이 다시 대답한다.

 

"매우 송구스러운 말씀이오나,

대왕께서는 오늘 밤 비밀리에 이곳을 떠나 한신 장군이 점령하고 있는 조나라로 가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리하여 한신 장군의 도움을 받아 영양성과 성고성을 다시 탈환하는 재기(再起)를

꾀하시는 것이 상책일 것 같사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옳게 여겨 즉시 성고성을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그러자 장량이 다시 말한다.

 

"적이 성밖에 잠복해 있을지도  모르오니, 함부로 떠나셨다가는 큰일나시옵니다.

떠나시기 전에 경비 태세를 견고하게 확인한 연후에 떠나셔야 하옵니다."
듣고 보니 과연 옳은 말이었다.
 
"유비 무환(有備無患)이라고 하더니, 선생이 일깨워 주시지 않았다면 내가 큰일을 만날 수도 있었겠소이다."
한왕은 장량의 치밀한 계획에 고마워하며, 주발과 시무 두 대장을 불러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오늘 밤을 기해 한신 장군이 있는 조나라로 이동해 갈 것이니,

두 장군은 이제부터 각기 군사 5천 씩을 거느리고 성밖으로 나가,

적군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삼엄하게 하시오.

우리는 두 장군을 믿고 전군이 이동할 것이오."
 
주발과 시무는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성밖으로 나와 경계를 삼엄하게 하였다.
항우의 명령을 받고 잠복해 있던 초장 조구는 멀리서

한나라 군사들이 대대적으로 이동해 가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병력으로는 기습 공격을 하기에는 부족하기도 하려니와

항우로부터 <싸우지 말라>는 명령도 있었기에,

보고도 못 본 척 숲속에 깊숙이 숨어 있기만 하였다.
 
한군의 마지막 행렬이 성을 나와 그 끝이 보이지 않게 되자,

조구는 군사들을 몰고,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아니하고  성고성을 손쉽게 점령하였다.
이렇게 한왕을 비롯한 한나라 군사들은 한 명의 인명의 손실도 없이

성고성에서 무사히 철수하게 된 데는 장량의 탁월한 작전 계획 덕분이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