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조열전

한고조 열전 (漢高祖 列傳) 《누명을 쓴 팽월 》

오토산 2020. 6. 30. 12:19



한고조 열전 (漢高祖 列傳) (135)

누명을 쓴 팽월

진희와 한신의 모반 기도 사건을 수습하고 난 유방은,
(천하의 명장이었던 한신 조차도 내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였으니,

이제는 어느 누구도 감히 모반을 생각치 못하리라.)하고

마음을 완전히 놓았다.

그리하여 어느 날은 문무 백관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연회를 벌이고 있었는데,

시종이 달려오더니,
"폐하 !

양(梁)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찾아와, 폐하께 급히 아뢸 기밀(機密)이 있다고 하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

"양나라에서 나를 만나러 사람이 왔다고 ?

양나라라면 팽월 장군이 있는 곳이 아니냐 ?"

 

"예 그러하옵니다."

 

"그 사람이 무슨 일로 나를 만나러 왔다고 하더냐 ? "

 

"자세히는 모르겠사오나,

양나라에서 모반 사건이 일어났는가 보옵니다."

 

"뭣이 ? 양나라에서 모반사건이...? 그

렇다면 그 사람을 빨리 불러들여라 ! "

 

양나라에서 왔다는 사람을 외딴 방으로 불러들이니,

그는 큰절을 올리며 아뢴다.

 

"저는 양나라에 사는 태복(太僕)이라는 벼슬아치로서, 양왕 팽월과는 동문 수학(同門修學)한 친구이옵니다.

팽월이 황제 폐하께 모반을 기도하고 있기에, 급히 아뢰고자 왔사옵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로 놀라면서 크게 분노하며 반문했다.

 

"팽월이 모반을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는 어떻게 알았는가 ?"
태복이 대답한다.

"팽월은 폐하께서 진희를 토벌하시면서 지원군을 보내 달라고 명령하셨지만,

한신 장군의 밀서를 받고난 뒤, 병 중이라는 핑계로 군사를 보내지 않은데다가 ,

최근에 이르러서는  한신 장군이 주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부터 울분과 비통을 금치 못하더니,

요즘에 이르러서는 군사를 급작스럽게 강화하고  군비를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팽월은 모반을 기도하고 있음이 분명하옵니다."

실상인즉 태복의 말은 모두가 무고에 지나지 않았다.

천하의 불한당인 태복은 팽월과 죽마 고우(竹馬故友)인 것을 기화로 갖은 행패를 부리고 돌아다니므로,

한번은 팽월이 그를 불러다가 단단히 혼을 내 주었더니,

태복은 그 일에 앙심을 품고 일부러 유방을 찾아와 악날한 무고를 고해 바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막을 알 턱이 없는 유방은 크게 걱정스러웠다.

태복이란 자의 말을 들어 보면 팽월의 모반 기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유방은 진평을 불러 태복이 찾아 온 경위를 모두 말하여 주고 묻는다.

 

"전후의 상황으로 마루어 보건데, 팽월이 모반을 기도하는 것이 확실하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진평은 유방의 질문을 받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어 말한다.

 

"한신이 주살된 이후로, 신은 팽월의 향배(向背)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사옵니다.

그 두 사람은 특별히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까,

폐하께서는 팽월을 장안으로 직접 소환해 보시면 어떠하겠습니까.

팽월이 순순히 달려오면 이심(異心)이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반역을 계획하고 있음이 분명하니까,

그때에는 무력으로 단죄(斷罪하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유방이 진평의 말을 옳게 여겨 육가를 보내 팽월을 불러오도록 명했다.
육가가 찾아가니 팽월이 묻는다.

 

"대부는 무슨 용무로 오셨소이까 ?"
육가가 대답한다.

 

"며칠 전에 태복이란 자가 폐하를 찾아와

<양왕(梁王: 팽월)이 지금 모반을 기도하고 있는 중>이라고 밀고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폐하께서는 그자의 말이 허무 맹랑(虛無孟浪)한 중상 모략으로 알고 계시기는 하오나, 일단 그런 말을 들은 이상,

폐하께서는 오해를 깨끗이 풀기 위해서라도 대왕을 한번 만나 보고 싶어하시옵니다.

그러니  대왕께서 폐하를 한번 찾아 뵙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
팽월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며 대답한다.

 

"태복이라는 자는 워낙 천하의 불량배 입니다.

그자는 나와 죽마 고우인 것을 이용해 갖은 행패를 부리며 돌아다니기에,

얼마 전에 그자를 붙들어다가 단단히 혼을 내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자가 앙심을 품고 폐하께 가당치않은 무고를 품고한 모양이구려.

그렇다면 나는 대부와 함께 상경하여 불미스러운 누명을 깨끗이 풀어 버리도록 하겠소이다."

그날 밤 팽월은 육가를 융숭하게 대접하고 다음날 아침에 길을 떠나려고 하였다.
그러자 대부 호철(扈徹)이 육가가 듣는 앞에서 팽월에게 이렇게 간하는 것이었다.

 

"대왕께서는 장안에 가셔서는 아니 되시옵니다.

만약 이번에 길을 떠니시면, 대왕께서는 한신 장군과 똑같은 신세가 되시옵니다."
팽월은 뜻밖의 충고에 깜작 놀랐다.

 

"한신 장군과 똑같은 신세가 되다뇨 ?

그게 무슨 소리요 ?"
대부 호철이 대답한다.

 

"한제라는 분은, 환난(患難)은 같이할 수 있어도 부귀만은 같이 누릴 수 없는 인품(人品)을 가진 분이기 때문입니다 .

한신 장군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옵소서.

한신 장군은 한제를 위하여 수많은 전공을 세웠건만 결국은 한제의 손에 주살되지 않았습니까 ?"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오. 한신은 죄가 분명했기 때문에 처벌은 받았을 뿐이오.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처벌을 받는단 말이오 ?

만약 내가 가지 않아 보시오.

그때야 말로 태복의 무고대로 나는 응당 처벌을 받게 될 것이오."

팽월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호철은 고개를 좌우로 저어 보이며 팽월에게 다시 아뢴다.

 

"태복이란 자의 무고가 두려워서 이런 간언을 올리는 것이 아니옵니다.

자고로 <공이 많은 사람은 시기(猜忌)를 받기 마련이고

지위가 높은 사람은 윗사람으로부터 의심을 받기 마련이다>라는 말이 있사옵니다.

대왕께서는 공로도 많으시거니와 지위도 높으시옵니다.

항차 황제에게 의심을 사고 있는 이 마당에 황제를 뵈러 가면,

비록 아무런 죄가 없다 하기로 어찌 무사하기를 바랄 수 있으오리까 ?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만은 상경하지 마셔야 하옵니다."

팽월은 그 말을 듣고 출발을 무척 주저하였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육가가 호철을 꾸짖듯 나무란다.

 

"호대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구려. 양왕이 만약 황명을 무시하고 상경을 아니 해 보시오.

그러면 폐하께서 50만 대군을 친히 몰고 원정을 오시게 될 터인데, 그래도 좋다는 말씀이오 ?

그렇게 되면 양왕은 완전히 파멸하게 될 판인데 그 점은 왜 생각지 못하시오 ?"

팽월은 육가의 말을 듣고 크게 당황해 하며,
"호 대부가 아무리 만류해도 나는 상경할 결심이니, 어서 떠납시다."
하고 출발을 서둘렀다.
그러자 호철이 울면서 팽월에게 간한다.

 

"주공께서 오늘 길을 떠나시면,

한신 장군이 괴철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가 후회한 것과 똑같은 후회를 하시게 될 것이옵니다."
팽월은 눈물을 삼키며 말한다.

 

"대부의 충고가 고맙기는 하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아니 떠날 수도 없는 형편이니,

무사히 돌아오기만 빌어 주시오."

이윽고 팽월이 육가와 함께 장안에 도착하여 유방을 뵙자,

유방은 크게 화를 내며 팽월에게 소리를 지른다.

 

"내가 진희를 토벌 할 때에,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도와주러 오지 않았느냐 ?"
팽월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그 당시 신은 신병으로 부득이 출병하지 못했던 것이옵니다."

 

"그런 변명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대의 휘하로 있던 태복이라는 자가 이미 그대의 모반 사실을 세밀하게 밀고해 왔노라.

그대는 주살을 면키 어려우리라."
팽월은 크게 당황해 하며 다시 아뢴다.

 

"태복이란 자는 천하의 불한당이옵니다.

그자는 제게 대한 사원(私怨)을 풀기 위해 폐하께 무고를 올린 것이오니,

총명하신 폐하께서는 소인배의 중상 모략에 속지 마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러나 분노에 넘친 유방은 팽월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여봐라 !

저자가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으니, 당장 끌어내어 고문(拷問)을 하라 ! "
유방이 명령을 내리는 순간 근시가 급히 달려와 아뢴다.

 

"폐하 !

양나라에서 왔다는 어떤 사람이 폐하를 급히 뵙겠다고 찾아왔사옵니다."

"양나라에서... ?

그러면 그 자를 이 자리로 불러들여라 ! "

 

잠시후에 들어 온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호철이었다.
그는 유방에게 큰절을 올리며 아뢴다.

 

"폐하 !

신은 양나라의 대부 호철이라 하옵니다."

호철은 팽월의 상경을 만류하다 못해,

마침내 주인의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유방을 직접 찾아왔던 것이다.
유방은 호철을 괴이쩍게 바라보며 반문한다.

 

"양나라 대부가 무슨 일로 나를 만나러 왔는가 ?"
호철은 당당한 어조로 항의하듯 말한다.

 

"팽월 장군으로 말씀드리면,

폐하께서 영양성에 포위 되어 계실 때에 적의 양도(糧度)를 끊어 항우를 패망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불한당의 참소를 들으시고 어찌 이런 공신을 죽이려고 하시옵니까 ?

만약 이런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폐하의 권위는 여지없이 실추되실 것이옵니다.

폐하가 팽월 장군을 기어코 죽이려고 하신다면,

신은 죽음을 각오하고 이 자리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겠습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호철의 충성심에 크게 감동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팽월을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대의 충성심에 감동되어 죽이지 않기로 하겠다.

그러나 왕의 직위만은 박탈하여, 서천(西天)으로 정배를 보내기로 하리라.

그리고 그대에게는 대부의 벼슬을 새로 주고 싶으니, 그대는 나의 곁에서 나를 끝까지 도와주기 바란다."
그러나 호철은 즉각 머리를 가로 저으며 대답한다.

 

"주인이 왕위를 박탈당하는 이 지경에,

신이 새로운 벼슬자리를 받으면 개 돼지만도 못한 인간이 되어 버릴 것이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벼슬만은 사양하겠습니다.

바라옵건데 소생에게 옛 주인을 모시고 함께 정배의 길을 떠나게 해 주시옵소서."

 

유방은 호철의 충성심을 가상히 여겨 즉석에서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팽월과 호철은 그날로 서천으로 정배의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도중에 공교롭게도 여 황후의 행차를 만나게 되었다.
여 황후는 시녀들을 거느리고 가까운 시냇가로 봄놀이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팽월은 자신의 몰락이 너무도 억울하여, 여 황후를 보자 이렇게 호소하였다.

 

"아무 죄도 없는 저를 왕위에서 무자비하게 쫒아내시니, 세상에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사옵니까.

황후 마마께서는 신을 불쌍하게 여기시어, 다시 복직할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를 베풀어 주소서."

 

"음 .... "
여 황후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내가 폐하께 말씀드려 특사를 내리도록 할 테니,

나를 따라 오시오."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팽월은 이제서야 구출되는가 싶어서, 기쁜 마음으로 여 황후의 뒤를 따라갔다.
팽월은 여 황후가 자기를 사면 받을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정치에 대한 야망이 남달리 강렬하였던 여 황후는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고 팽월을 데리고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여 황후는 대궐로 돌아오자 유방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폐하 ! 팽월은 언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르는 위험한 인물이옵니다.

그런 인물을 지금 제거해 버리지 않고 그냥 살려 두시면 언제 무슨 환란을 당하게 될지 모르옵니다.

그러기에 서천으로 정배를 가던 팽월을 신첩이 다시 꾀어가지고 돌아왔사오니,

팽월을 지금 당장 죽여 버리도록 하시옵소서."
유방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정배를 보내 버리면 그만이지,

죽일 것 까지는 없지 않소 ?"

 

"아니옵니다.

그자를 그냥 살려 두었다가는 큰일나시옵니다.

나라가 무사하려면 그자를 당장 죽여 버리셔야 하옵니다."

여 황후가 워낙 강경하게 나오므로, 유방은 어쩔 수가 없이 마누라의 소원대로

<팽월과 호철을 모두 죽여 버려라>는 명령을 내리고야 말았다.
팽월은 호철과 함께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을 알고 발을 구르며 탄식하였다.

 

"아아, 한신 장군이 괴철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참살을 당한 것처럼,

나는 호철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오늘날 이 꼴이 되는구나 ...! "

팽월이 주살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60대 초로(初老)가 통곡을 하며 형장(刑場)으로 달려왔다.
형리들이 노인을 붙잡아다가 유방에게 바치니, 유방이 크게 노하며 물었다.

 

"그대는 어쩐 자이기에 난동을 치느냐 ?"
노인이 대답한다.

 

"신은 일찍이 양나라에서 대부 벼슬을 지냈던 <난포>라는 초로이옵니다.

팽월 장군이 억울하게 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신도 따라 죽으려고 달려온 길이옵니다."

 

"팽월이 역적 모의를 하다가 죽었는데,

그를 따라 죽겠다는 것은 무슨 소리냐 ?"
그러자 난포 노인은 정면으로 항의하며 말한다.

 

"팽월 장군이 무슨 역적 모의를 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

팽월 장군이야 말로 폐하를 위하여 둘도 없는 충신이었습니다.

그런 충신을 소인배의 참소를 들으시고 함부로 죽이셨으니,

이제 백성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할 것 이옵니까 ! "

난포 노인이 그렇게 말을 하면서 대성 통곡을 하는 바람에 갑자기 주변이 숙연해졌다.
그러면서 현장에 있던 중신들이 옷소매로 눈물을 훔쳐 대니,

그제서야 유방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난포 노인을 회유하며 벼슬을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난포 노인은 벼슬을 굳게 사양하며 말한다.

 

"벼슬은 싫사오니,

팽월 장군을 고향에서 장사지낼 수 있도록  유해나 거두어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옵소서."
유방은 팽월의 유해를 난포 노인에게 내주며 고향에서 장사지내 주기를 허락하였다.
                             .....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