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조 열전 (漢高祖 列傳) (136)
영웅 호걸 영포의 절명
대한(大漢) 11년 10월 어느 날.
회남왕(淮南王) 영포(英布)는 문무 제신(文武諸臣)들과 함께 망강루(望江樓)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술이 취할 무렵에 양나라에서 <난포>라는 초로(初老)가 찾아와,
"대왕마마 !
양왕 팽월 장군께서 수 일 전에 역적으로 몰려 한제의 손에 무참하게 주살되셨사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영포는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요 ?
팽월 장군이 역적으로 몰려 주살을 당했다고 ?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
난포는 팽월이 죽게 된 연유를 자세히 말해 주고 나서,
"대왕은 한신 장군이나 팽월 장군과 함께 한제가 천하를 통일할 때의 삼대 공신(功臣)이옵니다.
그런데 한신 장군과 팽월 장군 모두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이미 주살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는 대왕이 화를 입으실 차례이오니, 각별히 경계를 하셔야 하옵니다."하며
경고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영포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한제가 공신들을 주살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한신과 팽월 장군이 무슨 역모를 했다고 무자비하게 죽여 버린단 말인가 ?
유방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는 죽은 친구들의 원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라도 결코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 "
영포는 크게 노하며 20만 예하 군사에게 긴급 출동령을 내렸다.
그러자 대부 비혁(費赫)이 나서며 아뢴다.
"대왕마마 !
군사를 출병함에는 천시(天時)와 지리(地利)의 묘를 얻어야 하옵니다.
기어코 군사를 발동 하시려면,
조(趙)나라와 연(燕)나라에도 격문을 보내시어 산동(山東)을 근거로 하여 협동 작전을 펴도록 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고 단독으로 출병하게 되면 반드시 패하게 되시옵니다."
"아무리 그렇기로 한신과 팽월을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면,
유방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
비혁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대왕마마 !
유방은 백만 대군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장량과 진평 같은 모사도 있고, 번쾌와 관영 같은 용장들도 수두룩하옵니다.
우리가 단독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들지 아니하오니,
조,연과 연합하여 싸워야만 할 것이옵니다."
영포는 비혁의 말이 비위에 거슬렸던지 벼락 같은 호통을 내지른다.
"이 비겁한 놈아 !
너는 무슨 잔소리가 그렇게나 많으냐. 유방은 이미 늙어서 맥을 못쓰는 인간이다.
한신과 팽월이 없어진 이 판국에 감히 나를 당해 낼 자가 누가 있다고 그런 못난 소리를 하고 있느냐 !
나 혼자서도 능히 유방 따위는 때려눕힐 자신이 있으니 두고 보아라 ! "
영포는 비혁을 가차없이 매도하고 나서, 20만 군사를 거느리고 기어코 출동하고야 말았다.
영포는 장안에 접근하기 용이한 지역부터 정복할 생각에서,
우선 이웃해 있는 초(楚)나라부터 쳐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대장 유가(劉賈)를 죽이고 초왕 유교(劉交)를 사로잡아 버렸다.
그 다음에는 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오(吳)나라를 점령해 버리고 다시 채(蔡)나라로 진격하니,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소란해지기 이를 데 없었다.
유방은 그러한 소식을 듣자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회남왕 영포가 반란을 일으켜 초와 오를 점령하고, 시시각각 장안을 향하여 공격해 오고 있으니,
이를 어찌했으면 좋겠소 ?"
중신들이 입을 모아 대답한다.
"영포가 제아무리 반란을 일으켰기로,
폐하께서 직접 정벌에 나가시면 별로 문제가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유방은 상대가 영포인지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러자 여음후 등공(汝陰侯 騰公)이 나서며 말한다.
"지금 신의 집에는 설공(薛公)이라는 손님이 한 분 와 있사온데,
그는 일찍이 항왕시절에 영윤(令尹)이라는 벼슬까지 지낸 사람으로, 지혜도 많고 지략도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가 영포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자,
혼잣말로 < 흥 ! 풀벌레 같은 친구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 >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했사옵니다.
하오니 설공이라는 인물은 영포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음이 분명하오니,
폐하께서 그 사람을 한번 만나 보심이 어떠하시겠습니까 ?"
"그렇다면 설공이라는 사람을 곧 이리로 모셔오도록 하오."
설공은 어전으로 불려 나오자 유방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영포가 만약 상계(上計)를 쓴다면 산동 지방은 영포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그가 중계(中計)를 쓴다면 승부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오나 그가 만약 하계(下計)를 쓴다면 조금도 염려할 바가 없사오니,
그때에는 폐하는 마음놓고 낮잠이나 주무시도록 하시옵소서."
유방으로서는 설공의 말이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귀공의 말씀은 나로서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구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시오."
그러자 설공이 다시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상계라 함은, 영포가 오,초,제,노나라 등을 점령하고 난 뒤,
연,조나라등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면,
산동 지방은 영포의 손아귀에 예속될 것이옵니다.
영포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상계라고 하겠습니다."
"음 ..... 그
러면 중계라 함은 .... ?"
유방의 질문에 설공이 다시 대답한다.
"만약 영포가 오,초,한,위 등을 점령하고 성고성과의 통로를 튼튼하게 막아 버리면,
그후의 승부는 어떻게 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온데, 이것이 바로 중계(中計)이옵니다."
유방은 자신도 모르게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하계(下計)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
설공이 다시 대답한다.
"영포가 만약 오나라와 채나라만을 점령하고 월(越)나라를 소중하게 여겨 군사를 장사(長沙)로 돌려 버린다면,
그때에는 폐하께서는 아무 걱정을 아니 하셔도 되옵니다.
그것이 바로 하계(下計)이옵니다."
"그렇다면 귀공이 생각하시기에,
영포가 어떤 계략을 택하리라고 보십니까 ?"
설공은 한동안 생각해 보다가 대답한다.
"제가 예상하기에는,
영포는 모르면 모르되 반드시 하계(下計)를 쓸 것으로 보여지옵니다."
"하계를 ?
그렇다면 그 이유는 ....? "
"영포는 본시 여산의 산적(山賊)출신으로서, 심모 원계(沈謨遠計)라는 것을 모르는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힘만 세고 무용(武勇)이 출중한 덕택에 어쩌다 장군이 되었고,
폐하를 만나는 행운으로 왕위에 올랐으니,
이제는 만용(蠻勇)에 치우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이 날뛰는 것이옵니다.
그러니 그런 자가 어찌 그 복잡한 <상계나 중계>를 쓸 수 있으오리까 ?"
유방은 설공의 말에 일편 감탄하고 놀라면서,
즉석에서 설공에게 천호장(千戶長: 面長)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그리고 몸소 삼군을 거느리고 영포 토벌에 나섰다.
그리하여 <근서>라는 곳에 진을 치고 적정을 알아 보니,
영포는 오나라와 채나라를 점령하고, 지금은 50리쯤 떨어진 옹산(壅山)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아닌가 ?
설공이 예측한 대로 영포는 <하계>를 쓰고 있음이 분명해지자, 유방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왕릉을 선봉장으로 삼고, 관영과 주발을 뒤에 따르게 하여 영포군 앞으로 진격 하였다.
영포가 그 사실을 알고 마주 달려 나온다.
왕릉은 영포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영포는 듣거라 !
그대는 본시 여산의 산적이 아니었더냐 ?
그런 그대를 한제께서는 왕위을 제수하시어 부귀와 영화를 마음껏 누리도록 하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배반하고 이렇듯 반란을 일으켜 나의 칼을 더럽히려고 하느냐 ! "
그러자 영포가 크게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붓는다.
"이놈아 !
너야 말로, 본시 패현에서 술이나 퍼먹고 싸움이나 일삼던 불한당 놈이 아니었더냐 !
나는 내 힘으로 오늘날 지위를 쌓아올린 대왕이로다.
유방은 간악하기 짝이 없어 한신과 팽월 같은 공신을 억울한 누명을 씌워 모조리 잡아 죽였으니,
이번에는 내 차례가 아니겠느냐.
너도 유방의 손에 죽고 싶지 않거든 나와 힘을 합해 유방을 때려 부수자.
그 길만이 너도 살고 나도 살아날 길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 "
왕릉은 영포를 설득하기는 애초에 글러먹었음을 알아채고, 마침내 장검을 휘두르며 영포를 향하였다.
그러자 영포도 철퇴(鐵槌)를 바람개비처럼 휘두르며 달려나와, 두 사람간에는 불꽃 튀는 싸움이 전개되었다.
두 장수의 싸움은 그야말로 용호 상박(龍虎相搏)이었다.
장검과 철퇴가 불꽃을 튀기며 일진 일퇴 하기를 무려 30여 합.
마침내 왕릉이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이자,
이번에는 주발과 관영이 달려 나와 좌우에서 협공으로 가세하였다.
그러자 영포의 진영에서도 난포가 많은 군사들을 몰고 나와 영포를 돕는 것이었다.
양군간에 일대 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는 동안에 중군으로 달려온 유방이, 영포의 기운이 점차 쇠진해 오는 것을 보자,
많은 군사를 몸소 몰고 나와 파상 공격을 퍼부어대었다.
영포는 그제서야 불리한 것을 깨닫고, 난포와 함께 말머리를 돌려 쫒기기 시작하였다.
"저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몰살시켜라 ! "
유방은 벼락 같은 소리를 지르며 영포와 난포의 뒤를 맹렬히 추격하였다.
난포는 쫒겨 달아나면서도 팽월이 유방의 손에 죽은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팽월 장군이 누명을 쓰고 유방의 손에 억울하게 돌아가셨으니,
나는 이 기회에 유방에게 주인의 원수를 갚아 드려야 할게 아닌가 ?"
이렇게 생각한 난포는 쫒기다 말고 커다란 나무 그늘에 숨어서,
활시위를 멕여 들고 유방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황금 전포를 입은 유방이 눈앞에 나타나자,
난포는 유방을 향해 사정없이 화살을 쏘아 갈겼다.
그 순간 유방은 오른편 어깨에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대장들이 추격을 멈추고 부리나케 달려와 유방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부랴부랴 진중으로 모시고 돌아와 전의(戰醫)에게 진찰을 받아 보니,
불행중 다행으로 중상은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유방은 이를 갈며 대장들에게 말한다.
"영포란 놈은 내가 중상을 입은 줄 알고 안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은 이 기회에 영포를 철저하게 때려부수도록 하라."
그러나 진평이 만류하며 말한다.
"지금 당장 공격을 퍼부어서는 안 되옵니다.
우리가 며칠 동안 잠자코 있으면 영포는 폐하께서 중태에 빠지신 줄로 알고
자기 편에서 먼저 공격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기회를 이용해 그들을 철저하게 때려부숴야 합니다."
유방은 진평의 계교에 감탄해 마지 않으며 새로운 명령을 내린다.
"그러면 영포가 공격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조참은 3만 군사를 거느리고 장사(長沙)로 가서 적의 양도(糧道)를 차단해 버려라.
그리고 관영은 2만 군사를 거느리고 육안(陸安)으로 가서 영포의 가족들을 납치해 오고,
기통과 주발은 3만 군사를 거느리고 회강(淮江)으로 가서 적의 도강(渡江)에 대비하고 있으라 ! "
한편, 영포는 유방이 필연코 보복전(報復戰)을 전개해 오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수비 태세를 물샐틈 없이 갖춰 놓고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유방은 며칠이 지나도 싸움을 걸어 오지 않으므로, 영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적들이 보복전을 걸어 오지 않는 것을 보니
, 유방이 어쩌면 이번 전상(戰傷)으로 중태에 빠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제에 우리가 선제 공격을 통하여 저들을 철저하게 때려부숴야 할 게 아닌가 ?)
영포는 그런 생각이 들자 삼군에 부랴부랴 동원령을 내렸다.
그러자 난포가 아뢴다.
"유방에게 활을 쏜 사람은 저 자신이온데, 유방은 결코 중상을 입은 것이 아니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저들은 필시 우리를 속이는 계략을 쓰고 있는 듯싶사옵니다.
그러하니 저들의 계략을 모르고 함부로 덤비는 것은 크게 경계하여야 할 일이옵니다."
영포는 난포의 충고를 옳게 여겨, 적의 반응을 알아보려고 군사들을 보내 일부러 집적대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집적거려도 한군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기만 할 뿐 대항하려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영포가 며칠을 두고 같은 전략을 펼쳐 보았으나 한군의 아무런 반응이 없자, 영포는 마침내 자신이 생겼다.
"이렇듯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유방이 병석에 누워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오늘 밤을 기해 총공격을 퍼부어 적을 일거에 괴멸시켜 버리기로 하자."
그러나 난포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다시 간한다.
"유방의 모사인 진평은 귀신 같은 사람입니다.
그들이 무슨 꿍꿍이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으니,
시간을 두고 좀더 정확한 실태를 알아내야 합니다."
난포의 입에서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비마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오더니,
"대왕마마 !
큰일났사옵니다 ! "하고 아뢰는 것이 아닌가 ?
영포는 눈을 크게 뜨며 말한다.
"이놈아 !
뭐가 어째서 큰일이 났다고 하느냐.
허둥거리지만 말고 분명하게 말해라."
비마는 몸을 벌벌 떨며 아뢴다.
"대왕마마 !
적장 기통이 후방으로 우회하여 우리의 본진(本陳)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영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급하게 묻는다.
"뭐야 ?
적이 우리 본진을 점령했다구 ?
그게 사실이냐 ?"
"그뿐이 아니옵니다.
적장 주발은 회강(淮江)을 점령하였고, 적장 관영은 육안(陸安)으로 달려가,
대왕의 가족들을 송두리째 납치해 갔사옵니다."
가족들이 납치되었다는 소리에 영포는 전신을 와들와들 떨었다.
"뭐야 ?
놈들이 나의 가족들을 송두리째 납치해 갔다구 ?"
"그뿐만이 아니옵니다.
또 있사옵니다."
"이놈아 !
뭐가 또 있다는 말이냐. 지체 말고 어서 말해라 ! "
영포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비마가 몸을 떨며 다시 이뢴다.
"적장 조참이 장사(長沙)에 진출하여 우리의 양도(糧道)를 차단해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싸우고 싶어도 군량(軍糧)이 없어 싸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영포는 너무도 놀라운 소식에 눈앞이 캄캄해 왔다.
가족들은 납치를 당하고, 본진은 빼앗겨 버리고,
게다가 군량미를 운반하던 수송로까지 차단되어 버렸다면 무슨 힘으로 싸울 수가 있을 것인가 ?
적은 그와 같이 엄청난 작전을 비밀리에 수행하느라고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건만,
영포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유방이 중태에 빠졌다>고 여기고 있었으니,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러나저러나 사태가 이 꼴이 되었으니,
이제는 군사들을 전면적으로 철수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영포가 눈물을 머금고 철수를 시작하는데,
별안간 저 멀리 숲속에서 번쾌가 군사들을 질풍같이 몰아쳐 나오면서,
"영포는 듣거라.
너는 지금이라도 깨끗이 항복하여, 주상에게 용서를 빌도록 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네 목숨이 남아 나지 못할 것이다 ! "하고
벼락 같은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닌가 ?
영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어차피 이판사판. 가족까지 모두 납치된 이 판국에 항복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번쾌에게 덤벼들었다.
두 장수가 불을 뿜는 혈전을 거듭하기를 50여 합. 싸움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데,
그러는 동안에 한나라 군사들이 사방에서 자꾸만 모여들고 있었다.
영포는 마침내 1백여 기의 부하들만 거느리고 강을 건너 오(吳)나라로 쫒기기 시작하였다.
오나라 성주(城主) 오예(吳芮)와는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예는 사냥을 나가고 집에 없었다.
오예의 조카 오성(吳成)이 영포를 사랑방으로 맞아들여 묻는다.
"대왕께서는 아무 예고도 없이 별안간 무슨일로 내림하셨습니까 ?"
영포는 유방과 싸우다가 쫒겨 오게 된 사유를 솔직하게 말해 주고 난 뒤,
"나는 당분간 이곳에 피신해 있다가,
자네 아저씨와 힘을 합하여 유방을 쳐부수기로 할 테니, 자네는 그리 알고 있게."하고 말했다.
오성은 그 말을 듣고 내심 크게 놀랐다.
(역적을 집에 숨겨 두었다가 유방에게 발각되는 날이면
우리 일가족도 역적으로 몰려 죽게 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차라리 영포를 죽여 그의 수급을 유방에게 갖다 바치면
우리 가문에는 커다란 영광이 돌아오게 될 것이 아닌가...?)
오성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아저씨가 돌아오기 전에 영포를 죽여 버릴 결심을 굳혔다.
그리하여 영포에게 술을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는 내일이나 돌아오시게 될 테니,
오늘 밤은 술을 드시고 피곤한 몸을 편히 쉬도록 하십시오."
영포는 워낙 두주 불사(斗酒不辭)의 주호(酒豪)인데 다가, 한군과의 패전으로 마음이 몹시 울적하던 판인지라,
오성이 권하는 대로 술을 사양하지 않고 마셨다.
영포는 술이 몹시 취해 오자,
납치되어 간 가족들 생각이 새삼스러워서 울분을 토하며 술주정을 하였다.
"유방이란 놈, 어디 두고 보자,
네놈이 내 가족을 납치해 갔으니, 나도 언젠가는 네놈의 가족을 납치해다가 모조리 죽여 버리리라."
오성은 그럴수록 위로의 말을 들려주며 자꾸만 술을 권했다.
이윽고 삼경이 되자,
영포는 곤죽이 되어 옆으로 고꾸라지더니 정신없이 코를 골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
오성은 이때다 싶어, 40여 명의 역사(力士)들을 동원하여 영포의 경호원들부터 모조리 죽이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자기는 방으로 뛰어 들어가 영포의 목을 한칼에 베어 버렸다.
일세를 풍미한던 효장 영표였다.
일찍이 산적으로 시작하여 초나라 대장군을 거쳐 회남왕까지 올랐던 그 였다.
싸움을 하면 반드시 이겼고, 용맹은 항우와 견줄 수 있는 맹장(猛將)이었다.
그가 한번 호령하면 천군 만마가 두려움에 떨던 영웅 호걸 영포 장군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영웅 호걸이었던 영포가 섣불리 반란을 일으켰다가
무명 지사인 오성의 손에 어이없게 죽게 될 줄이야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
오성은 영포의 수급을 손에 넣자,
곧 한군 본진으로 달려가 유방에게 면회를 요청하였다.
"본인이 역적 영포의 수급을 가지고 왔으니,
황제께 직접 헌상하게 해 주소서."
유방은 그 소식을 듣고 오성을 곧 만나려 하였다.
그러자 진평이 간한다.
"영포의 수급은 신이 검증할 것이오니,
폐하께서는 영포의 수급을 직접 보지는 마시옵소서."
유방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며 말한다.
"왜 영포의 수급을 못 보게 하는 것이오 ?"
"영포는 워낙 당대의 효장으로서,
깊은 원한을 품고 죽었기 때문에 그의 수급에는 반드시 독기(毒氣)가 서려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폐하께서 직접 보시면 신기(神氣)를 상하시기 쉬우시옵니다."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은 매우 고맙소이다.
그러나 역적의 수급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으니 내 눈으로 영포를 확인하고 싶소이다."
유방은 끝끝내 고집을 부리며 영포의 수급을 직접 보고야 말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입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영포의 수급은 얼마나 험상궂었던지,
유방은 그로부터 사흘 동안은 아무 음식도 먹지 못했다.
아무려나 유방은 오성의 공로를 크게 찬양하여,
즉석에서 <건충후(建忠侯)>라는 파격적인 관작을 내려 주었다.
그리고 오성의 숙부인 오예를 강하수(江夏守)로 영전시키고,
자신의 일가인 유비(劉鼻)를 오왕(吳王)에 봉하여 강동 일대를 견고하게 수비하도록 하였다.
...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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