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월랑은 효가를 데리고 소옥 대안과 함께 피난길을

오토산 2021. 1. 27. 16:00

금옥몽(속 금병매) <31>
전란으로 월랑은 효가를 데리고 소옥 대안과 함께 피난길을 떠난다.


"금곡원(金谷园)에 피어나는 봄꽃들...

그 옛날 연못 옆 정자에는 감도는 정적뿐,
흘러간 영화(荣华)를 그리워하는듯, 주연(酒宴)은 끝났건만,
교교한 달빛 아래 노래소리 어디서 들리는가?

군마와 병기들이 부딧치고 지나간 들판,
뒹구는 기왓장엔 먼지만 쌓이는데...
진시황의 아방궁도 한줌의 재가되니,
흐르는 강물만이 하염없이 흐느끼네.

부용(芙蓉)꽃 달덩이 같던 절세 가인(佳人)도,
흐느끼는 빗물되어 가는 봄을 아파하다.
인적끊인 고대광실 누각...
피눈물이 가득하다.

천 년 이별의 한(恨)은 풍악마져 괴로워 하니,
가슴에 쌓인 한을 누구에게 토해내리.
아! 흘러간 옛날을 돌아보니, 회한의 일장춘몽 이더라.
새파란 파도에 낙조(落照)만 밀려오네.

금병매의 마지막 장면은 어찌되었던가?
색마 서문경이 죽고나자 가세가 기울기 시작 하자,

집안의 나이든 식솔들도 입에 풀질 걱정하며 오월랑(吴月娘)몰래 하나 둘 사라지고,

색골 요부 금련(金莲)과 춘매(春来)는 이놈 저놈 끌어안고

그 짖만 하며 딩굴다가 제 명도 못 채우고 죽었다.
겨우 일년도 가지않아 땡전 한푼 들어오는것 없고 재물은 보는 놈이 임자이다 보니,

집안의 노복들도 주인 몰래 한 밑천 챙겨 도망가고 남은 노복이라야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오월랑은 늦둥이로 얻은 효가(孝哥)하고 하루하루 무료하게 지내는데,

위세 당당하던 서문 대관 집은 아낙들의 입방아의 이야기꺼리가되고,

시정 잡배들의 막걸리 한잔의 안주꺼리로 전략 되고말았다.

한편 거슬러 올라가,

송나라 휘종(徽宗)시절 오랑캐의 칩입으로 골치 아프다며

아들 흠종(조환)에게 황제 자리를 양도 하고 피신을 가버리자,

흠종은 국정 경험도 없고 나약하여 대신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금(金)나라 오랑캐가 개봉(开卦) 변경(卞京)까지 들이 닥치자

송나라 곳곳에서 노략질 당한 금은재화가 얼마나 많았는지,

수많은 아낙들이 겁탈을 당했으며 셀수도 없는 장정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모른다.

산동(山东) 하북(河北) 지방에도 오랑캐가 휩쓸고 지나가며

성도(省都)인 제남(济南)마져 오랑케의 손에 떨어지자,

목숨을 부지하고자 백성들으 피난길에 오르고 천지는 오랑캐와 도적의 세상으로 변해 버렸다.
부자 많기로 소문난 청하현(清河县)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하현 서문경의 집에서도 오랑캐가 쳐 들어 오고 있다는 소식에

그나마 몇 안남은 하인들 마져도 제 살길을 찾아 뿔뿌리 줄행랑을 쳐버렸다.
그러나 충직한 대안(玳安)은 차마 그럴 수 없어 오월랑에게 급보를 알렸다.

세상물정모르고 있던 월랑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는 " 피난을 가야 하나?
그럼 여기 이 집하고 가재도구들은 누가 관리 하지, 그냥 남아 있을까?

 

아니, 그건 안 돼!
나야 잘못되도 그뿐이지만,

행여 우리 효가 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서문 집안 대가 끊어질 터이니 절대로 그럴 순 없어!
돈이고 집이고 간에 우선 우리 모자의 목숨만은 지켜야 후일을 기약할 수 밖에..."

우여곡절 끝에 마음을 굳힌 월랑은 대안이를 불러 피난 보따리를 싸게 지시하고,

소옥(小玉)과 함께 나중을 위하여 수많은 금은 보화와 귀중품을 집안 깊숙한곳에 꼭꼭 숨겼다.
사태는 간박한데 재물에 미련이 있어 숨기느라 또 하루가 지체되었다.

이제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음을 깨달은 월랑은 소옥에게 효가를 업게하고

피난 보따리는 대안에게 맡긴 후에 정처없고 기약없이 피난 길에 올랐다.
거리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피난 가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꿈에도 격어보지 못한 월랑은

타고 가는 가마도 없이 하인들과 함께 끼어 걷자니 창피하고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피난 길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무척 더디었다.
그때였다. 앞서가는 피난꾼들이 갑자기 뒤로 돌아 이리저리 뿔뿔이 흩어져 사방으로 도망쳤다.

"큰일 났소, 큰일!

오랑캐 군사들이 코 앞에 오고 있어요 빨리 숨으세요" 하며

한 피난꾼이 소리 질렀다.

 

월랑은 혼비백산 하여 효가를 업은 소옥을 앞세우고

성문을 나와서 달리다 대안을 찾으니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성문을 들어 갈 수도 없었다.
그들은 다른 피난 행열의 틈에 섞여 정처없이 터벅 터벅 걷고 있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멀지 않은 곳에 영복사(永福寺)란 현판이 붙은 커다란 절이 나타 났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피난민들로 가득차 있었다.
천왕문을 들어서자 두눈을 부릅뜬 사천왕 앞에 주저 앉아 있는 사람,

절간의 숨을 곳을 찾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사람.
지친 다리를 풀고 앉아 있는 참담한 모습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상상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월랑도 효가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절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던 승려들이,

월랑을 보고는 갑자기 반색을 하며 정중하게 안으로 모시는 것이었다.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것 같았다.
생전에 서방님이 후하게 보시한 덕택이라 생각되자

다시 서문대관인이 생각나 눈물이 글썽 글썽 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월랑은,

땡중들의 속마음을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정갈하고 조용한 한쪽 절방 한칸을

이 어려운데다 자진 해서 주었다는 것은 몰래 꿍꿍이 속이 있을 것이다.

"아미타불!

부자가 망해도 삼년은 간다는 말이 있는데,

개봉의 최대 부자이고 천하의 난봉꾼 서문경은 죽었으나,

아직도 금은 보화가 많이 남아 있을터 모든것이 대자 대비한 부처님의 은덕의 조화로다.
나무관세음 보살!"

피난온지 삼일째 되는 날이었다.
야심한 삼경에 오랑케 병사들이 영복사쪽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급보를 접한 땡중들은

보시고 뭐고 생각 할 겨룰도 없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산속 폐사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그래서 서문가의 많은 보시를 기대하며 흐믓해 하던 땡중들은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이 되고말았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절간 마당엔 간밤에 새로온 피난민들이 웅성거리며 여기저기 모여 있을 뿐,

월랑에게 정중하던 화상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사정인지 알 수 없는 그녀가 어리둥절해 있는데

따가닥 따가닥 하는 말 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이로 천지를 진동할 듯이 다가왔다.
아마 수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오랑케 군사들이 몰려 오고 있는것이 틀림 없었다.

절간 안은 갑자기 아수라 장이 되어 겁에 질려 우는 아이,

숨을곳을 찾아 분주하게 오가는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일으켰다.
혼비백산이 된 월랑은 경향 중에도

먼저 효가와 같이 있는 소옥을 찾아 불상뒤 마루 밑으로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말 발굽 소리와 군사들의 함성 소리가 뒤엉켜 가까워 지자

절간은 무덤속 같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칠흑같은 어둠이 무서웠던지 자꾸만 울음을 터트리는 효가의

입을 월랑은 손으로틀어 막아 버렸다.
공포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는데,

점점 크게 들리던 군사들의 이동 소리와 함성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윽고 완전히 들리지 않았다.

경성(京城) 점령이 목표였던 오랑캐가 절을 비껴서 촌각의 시간도 급했던 모양이었다.
월랑 일행은 숨어있던 피난민들이 밖으로 나와서 웅성되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밖으로 나왔다.
십여일이 흘러갔다.

 

오랑캐의 군대는 경성에 전력을 집중하여 감에 따라

경성 인근의 송나라 사람들은 옷갖 수모와 치욕을 당하였겠지만

영복사에 피난온 사람들은 잠간의 한숨을 돌릴수 있었다.
그렇다고 전쟁이 끊난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일이 었다.

그러나 오랑캐가 휩쓸고 간 땅덩어리에 남은 것이라곤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와 피범벅이 되어 흐르는강물 뿐이었다.

그리고 시가지 골목마다 딩굴고 있는 시체에서는

코를 찌르는 시체 썩는 냄새로 참아 눈뜨고 볼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아무리 전쟁을 승리하고자 백성들의 간담이 서늘해지게해

전의를 상실 시키기 위한 전술의 하나로 사용한다 하지만,

전쟁통에 오랑캐가 죽인 군사들은 수만명의 시체가 산같이 쌓였고

양민들의 피해도 수만이 된다 하니 전쟁은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쟁의 단초는 무능한 군주와 어리섞은 백성들의 동조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예나 지금이나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