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33>
월랑은 피난처를 찾았으나 승냥이 굴을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꼴이 되고...
소옥이 무심코 열려있는 창으로
조금전 내안 부부가 뛰쳐 나왔던 헛간이 눈에 들어왔다.
흐릿한 불빛으로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쌓아놓은 장작 뒤 편으로
상당히 많은 보따리들이 어지러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워낙 피곤한 소옥은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모두들 지치고 허기져 방안에 쓰러져 있는데 대안이가 쌀 반됫박을 구해와서 죽을 쑤어 먹고는
월랑 모자는 안방에, 소옥과 풍씨 할멈은 온돌 아궁이 앞에, 대안과 내안이는
헛간에 잠자리를 마련 잠을 청했다.
고아로 자란 내안이는 어릴때부터 서문경 집에서 하인 노릇을 하며 살았으나
괴팍한 성격에 말썽도 많이 피웠으며 손버릇도 나빴다.
서문경이 죽고 내보(来保)란 하인이 재물을 훔쳐 달아나자,
내안이란 놈도 전당포의 물건을 훔치다 발각되어
오월랑이 그래도 불쌍히 여겨 이곳으로 쫒겨나 소작을 하고 있었다.
서문경이 살아 있었다면 요절이 났을 터이지만
여인네가 큰 가택을 관리 하기에 정이 가미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안이는 월랑에게 쫒겨났으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월랑 일행이 가지고 다니는 은전이나 몸에 지닌 귀금속을 슬쩍 할 생각이었으나,
처음 올때 보니 빈손에 보따리도 값나가는 것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지 않아
우선 옆에서 지켜보며 대처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소옥이 보았던 헛간에 있는 보따리들은 월랑이 집 골방 깊숙한 곳에 숨겨 놓았던
값비싼 옷가지들과 장식품등을 옮겨 온 것이었다.
금나라 오랑캐가 철수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들쥐, 장삼, 풀이무기, 유사, 쇠손톱,양칠" 이라 불리는 건달 들을 데리고
맨 먼져 서문경의 집으로 달려가 집을 뒤졌으나 옷가지 장식품등만 찾았다.
값나가는 보물이나 금부치, 은전등을 찾지 못하자 홧김에
여기저기 불을 질러 폐허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월랑을 찾아 주리를 틀어서라도 금은 보화를 숨겨 놓은 곳을 알아 내려던 참인데,
그런데 월랑이란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 왔으니 내안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것이다.
월랑으로 보자면 승냥이 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셈이다.
" 여보게,
대안이 자네 자는가?"
내안이 등돌리고 누워 자고 있던 대안에게 은근슬쩍 말을 걸어 본다.
"이제는 여기 청하현 땅에서는다시 옛 영화를 회복 하기는 어렵네!
언제 또 오랑캐들이 몰려 울지도 모르는 세상이여
옛 상전 이라고 땡전 한푼 없는 저 아녀자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도망 다니며 생활 하려면
고생문이 훤하네 자네의 신세가 참 딱하게 되었구만, 쯧쯧!..
그런데 알수 없는 일은,
그 옛날 서문 나으리가 벌어 놓은 그 많은 은자는 어디로 갔을까?
보물이나 금 은부치는 다 어디에 감추어 놓고 거렁뱅이 같이 다니니
그 많은 재산이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져 버렸나?
숨겨놓고 쓰지 않는다면 저 여편네가 죽고 나면 세상에 파묻히고 말거야,
그렇다고 금가 아이가 눈이 먼데다가 머리도 팔푼이인것 같고 참 딱하게 되었어.
"자네도 이제는 정신차리게!
아무리 마님이라두 여자가 세상 물정을 뭘 알겠어,
돈도 필요할때 써야지 오랑캐 판치는 세상에 어디 숨겨놓고
돈 한푼 없이 도망다니다 굶어 죽는다면 그아니 억울 한가?
그때는 돈이 뭔 필요여,
차리리 그 재물을 가지고 오랑캐가 없는 남쪽으로 피난가
새로운 장사를 벌여 청하현의 영광을 다시 일으켜 보는게 현명한 처사지."
순둥이 대안이가 그이야기를 듣고 보니 맞는것 같아
다음 날 아침에 소옥에게 그말을 마님에게 전하게 했다.
월랑도 그 말을 듣고 보니 이제는 먼 친척도 하나 없으니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피난 생할을 어차피 함께 해야 하는데
숨겨논 은자라도 갖고 오지 않는다면 굶어 죽을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망설임 끝에 월랑은 풍씨 할멈에게 금가를 맡기고는 대안이 에게 곡괭이와 삽을 준비하고
물건을 담을 튼튼한 보자기를 준비하여 오라고 하였다.
대안이가 준비가 다되었다고 보고하자 함께 성안 서문부(西门府)로 갔다.
집에 도착한 월랑이 먼저 안방 침대 뒤 계단 밑에 감추어 놓은 의복과 장신구를 찾아 보았더니,
이미 어떤 불한당들이 알고 훔쳐 갔는지 아무것도 없었다.
내안이 놈은 옆에서 뒤돌아서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자 히죽 거렸다.
월랑은 넋을 잃고 멍하니 하늘만 처다보고 털썩 주저 앉았다.
소옥과 대안이가 겨우 진정시키고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월랑은 다시 다른곳으로 가 보자며 앞서서 걸어 가더니
비취헌 동쪽 동산에 있는 태호(太湖)에서 옮겨 와서
갔다 놓은 정원석을 가르키며 돌 밑을 파라고 시켰다.
정원석을 옆으로 밀치고 흙을 조금 퍼 내자 쇠뚜껑이 보였다.
쇳뚜껑을 들어내자 천으로 감싸 놓은 커다란 항아리가 나왔다.
"괘심한 년!
저 불여우가 여기에 숨긴것을 모르고 그 고생을 하다니?
어디 두고 보자."
속으로 중얼거리는 내안의 눈 앞에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는 각종 보석들이 항아리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햇볕을 받자, 오색영롱하게 반짝이는 것이다.
월랑이야 늘 보던 보석들이지만 은전 한잎도 만져 보기 힘든 하인들에게는
숨이 막힐 정도로 잎이 떡 벌어졌다.
생전 처음보는 이름도 모르는 보화들은 가치를 모를 정도고
쏟아져 나온 은자도 어림잡아 천냥도 넘어 보였다.
대안이와 내안이가 가지고 온 보자기에 담고서도
다 담지 못해 윗 적삼을 벗어서 겨우 다 담을 수 있었다.
" 다 담았으면 자네들은 성밖에 나가서 기다리게
내 서방님 영전에 향이라도 올리고 곧바로 따라 가겠네."
대안과 내안이 가고 나자,
월랑은 소옥을 되리고 간 곳은 엉뚱하게도 사당이 아닌 불당 쪽이였다.
월랑이 세번째 놓인 동으로 만든 불상을 들어내고 방석을 벗겨내자,
어두컴컴한 불당안이 맑고 파란색의 휘황찬란한 빛이로 가득찼다.
이병아가 서문경에 맏겼던 보물 상자에 있던 진주 구슬로 만든 백팔알의 염주였다.
월랑은 옷을 벗더니 가장 속에 입은 속곳을 벗어서 가운데를 타내어
조심스럽게 진주 염주를 담고는 다시 뀌어메어 입는데
들어난 하이얀 우유빛 젖무덤은 아직도 탱탱한 것이 여느 처녀 못지 않았다.
금은 보화를 어깨에 메고 성문을 나선 내안은
옆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대안에게 다시금 은근슬쩍 수작을 걸어본다.
"씨부럴,
금은 보화에 이름이 쓰였는가 눈이 달렸더냐,
주인이 따로 있게, 대안이 우리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 과부한테는 적당히 먹고 살 만큼 째끔을 돌려주고,
나머지는 우리 둘이 똑같이 나누어 어디 먼곳으로 도망가서
우리도 떵떵거리며 살아 보세 자네 생각을 한번 들어 보세, 응?"
아닌게 아니라,
이 어지러운 세상에 강도나 재물을 노리는 건달들이 좀 많아 야지!
그런 놈들이 마님이 많은 금은 보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 버리면
지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보석 때문에 잘못하면 목숨까지 부지하기 어려울 거야,
그러면 우리들은 어쩌란 말인가 닭 쫏던 개 지붕 처다 보는 격이지,
그렇게 남 좋은 일 시켜줄 필요가 있는가?
그러니 자네 마님은 자식 새끼와 먹고 살 만큼 나누어 주고,
우린 우리데로 실속을 차리면 누이좋고 매부 좋은것 아닌가!
그렇게 하지 어때?
나지막하게 말하며 유혹을 해 봤지만 순박하기만한 대안이는
내안이를 보고 피식하고 웃기만 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채 묵묵히 걷고만 있었다.
그러자, 내안이는 엉뚱하게도 속에도 없는 말을하며 오히려 대안이를 안심시키듯이
역시 자네는 충직한 하인이지 주인에 대한 그런 생각을 한다면 배은 망덕한 일이며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지 안그런가?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걷기만 한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말썽없이
요놈의 재물을 독 찾이 할까 하고, 이궁리 저궁리를 하고 있었다.
나무그늘 아래 잠간 쉬고 있는데,
오른 손에는 길다란 목봉을 들고 왼손엔 큰 개 한마리를 끌고서 뒤따라 오는 건장한 한 남성이 보였다.
"어이 형씨들!
뭘 그렇게도 빨리 가시나,
같이 가세나, 그려." 하며 다가오는데,
가까이 온 그를 보자 지난날부터 서로 알고지내던 형방(刑房) 옥리(狱吏)인 장소교(张小桥) 였다.
이 난리통에 용케도 살아 있었네 이런 곳에서 아는 이를 만나다니
부처님의 은덕일세하며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나자.
장소교가 어께에 멘 보따리를 흴끗 보면서 ,
"허허허 그래도 이 오랑캐 놈들이 다가져 간 천지에서
용캐도 한껀 건진 모양이지 한다."
그러자 대안이는 약간 당항하며 어물쩍 돌려 되었다.
서문 대관이 살던 집도 다털리고 쑥대 밭이 되었는데,
마님께서 입을 만한 옷가지라도 있으면 찾아 오라해
옷가지좀 찾아 가져 가는 길이예요 하며 넘어간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걷다보니 두갈래 갈림길에서 장소교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 대안이는 앞장서서 바삐 갈 길을 걸었다.
그사이 내안이는 잠시 뒤쳐진 틈을 타 장소교를 쫓아가 귓속말로 무언가를 이야기 하자,
장소교의 입에 빙그레 미소가 퍼지며 입이 헤벌려 졌다.
내안이는 대안이에게 짐이 너무 무거워 쉬어 가자며 자주 주저앉아 쉬는 바람에
대안이도 혼자 갈 수도 없어 그와 보조를 마추어 걷다 보니
집에 도착 했을때는 땅거미가 지고 어둑어둑한 때였다.
월랑은 집에 도착하여 보니 보물을 지고 미리 떠난 젊은 하인들이 오지 않았으니
이만 저만 걱정이 안되었으나, 다행히 둘이가 보물을 가지고 돌아오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안이는 보물을 벽장 속에 숨겨야 안전하다고 하자,
대안이는 침상밑에 숨겨놓고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하여
내안이도 계속 우길 입장이 못되어 그대로 따랐다.
헌 옷과 깨어진 그릇등으로 위장을 하여 놓고 나자.
월랑은 수고하였다며 윗저고리에 담아 온 것은 둘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라고 하였다.
"앞으론 죽으나 사나 내가 자네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옛날 서문대인 나리가 베푸셨던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그저 우리 모자 편안 하게 무사히 지낼 수 있도록 잘들 좀 봐 주게,
세상이 안정되어도 내가 장사를 벌려 돈을 벌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니,
자네들이 가져온 보물은 처분해서 우리 함께 먹고 살아야 하는
양식이나 다름이 없어, 둘이 상이 해서 잘 보관 관리해 주시게."
하고는 눈물을 글썽이자 모두 숙연해 졌다.
그래도 세상 경험이 풍부한 풍씨 할멈이 월랑을 좋은 말로 위로해 주었다.
그날 밤은 기름을 구해와 등잔불을 밝히고 내안이 마누라는
씨암닭 한마리를 잡아서 하얀 이밥에 모처럼 배를 호강 시키는 포식을 하였다.
내안은 마을에 내려가 소주를 반말이나 받아와서 대안이와 함께 인사 불썽이 되게 술을 퍼 마셨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푸근한 분위기의 밤 분위기에 월랑은 효가를 꼭 껴안고 깊은 단잠에 빠져 들었다.
난리통에 피난 다니며 온갖 고생을 다해가며 목숨 부지에 정신없이 살아온 오월랑은
첨으로 오랜만에 배불리 먹고 보물까지 무사히 옮겨 놓고 보니 근심 걱정이 다 사라져
깊은 단꿈에 빠져 버리며 꿈속에 빠졌다.
"하늘를 나는 참매를 피해 까시덤불 속으로 쳐박힌
현란한 색갈의 장끼 한마리가 겨우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딋쪽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잡초더미 속에 몸을 납짝 엎드린 승냥이 한 마리가
입 맛을 쩝쩝하고 다시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과연 이것은 흉몽인지! 길몽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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