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월랑의 꿈에 서방과 병아 금련 춘매가 귀신으로

오토산 2021. 1. 27. 16:02

금옥몽(속 금병매) <32>
월랑의 꿈에 서방과 병아 금련 춘매가 귀신으로 나타나서는...

밤이 되면 떠도는 푸르른 도께비 불
머리없는 귀신은 잃어버린 해골 찾아 헤매는데,
잡초 우거진 마을마다 굶주린 들개 시체를 파 먹는다.
계견지성(鸡犬之声) 마저 사라진 텅빈 성(城),연기마저 보이지 않는다.

그때부터 월랑은 낮이 되면 피난 온 아녀자들과 불상(佛像)뒤 마루바닥 밑에 숨어 지내고,

밤이 되면 주방에 숨겨 놓았던 쌀 한 바가지를 퍼내어서 희어멀건 죽 한솥을 끓여 함께 먹고

동이 트면 깜깜하고 음침한 마루바닥 밑으로 들어가 숨어 하루 하루 목숨을 연명하며 지내게 되었다.

그래도 고마운건 가는 세월이라 송나라 흠종과 금나라가 협상이 잘 진행되었는지

금나라 군사들이 송나라에서 철수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깥으로 나 다니는 사람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함께 숨어 있던 피난민들도 각각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뿔뿔이 떠났건만 세상물정 걱정없이 생활해온
오월랑은 난생 처음 당한 난리 봉변에 혼이 빠져 집에 돌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 산속이라 어둠도 더 칠흙같이 까맣고 덩그러이 높고 넓은 천정에 텅빈 절간은

아녀자 둘과 애기만 남아 있으니 외롭고 쓸쓸하기 보다 으스스 한 것이 무서움에 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일년에 한번씩 견우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 애한의 눈물을 흘린다는 칠월칠석이 되었다.
칠석에는 당명왕(唐明王)이 양귀비의 죽은 혼을 장생전(长生殿)에 불러내어

현종과의 이별의 한을 풀어주는 그런 날 이기도 하니 월랑의 마음은 더 울적하였다.

월랑은 심란한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려 자리에 누웠으나

잠은 오지않고 문틈으로 내려보이던 교교한 달빛 마져 숨어버린 삼경(三更)이 되어서야 깜박 잠이 들었는데,

문득 저 멀리에 흐릿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 거려 무서움에 머릿발이 쭈삣해져

소옥이를 막 흔들어 깨었으나 꿈적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어디서 날아 왔는지 모르겠지만 부엉이가 후드득하고

불전 처마밑에 올라 앉아 부엉 부엉 하고 울어되니 음산한 한기가 달빛마져 지워 버렸다.
그런데 저멀리 흐릿하던 그림자가 홀연히 모습을 나타 내는데 모두 귀신의
모습으로 네명이었다.
대경 실색한 오월랑은 숨도 제대로 못쉬고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뚜렷이 보인 귀신은 목에는 큰 칼을 차고 머리는 봉두 난발인체

허리와 손은 쇠사슬로 칭칭 묶인 남자 귀신인데 자세히 보니 서문경이었다.
월랑은 무서움보다 반가움에 서방님 이게 무슨일이요 하면서,

옆에 귀신을 슬쩍 보니 깡마르고 병약한 모습의 여자 귀신은 몸은 밧줄로 꽁꽁 묶여 있고

산발을 하였으나 틀림없는 이병아(李瓶兒)였다.

 

그뒤에 나타난 귀신은 풀어 헤친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고 있으나

드러난 젖가슴에 낭자한 피범벅이 칼에 찔려 죽을때의 모습 그대로의 형상인 요부 반금련이 틀림 없었다.
맨 뒤의 귀신도 여자 인데 실오라기 한점 없는 몸뚜뚱아리에 사타구니만

조그만 천으로 가리었는데 검은 속살이 다 비치는 것이 참으로 가관인데,

방사중 온갖 교성을 질러대며 요분질을 하다가 황홀경에 빠져,

찾아온 저승사자에게 말 한마디 못해보고 목조여 죽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의 춘매였다.

오월랑은 너무나 끔찍하고 놀라움에

"아~아 악!" 하는 외마디 비명을 내 지르자 귀신들은 서러운 호곡소리와 함께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비명 소리에 놀란 소옥이 월랑을 흔들어 깨우고는

"마님 무슨 일인데 그렇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 셨어요" 하고

물었다.

월랑은 일어나 보니 온 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꿈이라 여기기엔 너무나 생생하고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삼라만상은 여전히 잠들어 있고 둥근 달만 중천에 걸린 것이 사경 정도 된것 같았다.
겁에 질린 월랑은 잠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세웠다.

날이 밝자마자 한시 바삐 뜨고 싶은 마음에 소옥과 행장을 꾸리며 집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헤어진 후로 소식 조차 없던 대안이가 죽지않고 영복사로 찾아온 것이다.
그는 같은 방향으러 피난 갔던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영복사에서

애기와 두 아낙을 보았다는 사람의 말을 듣고 찾아온 것이 이번에는 헛탕이 아니었다.
월랑은 대안이를 보자 마님과 하인이라는 신분도 잊은채 부처님을 본듯이 기뻐하며

와락 껴 안고는 서방 품에 안겨 넋두리 하듯 왜 이제야 왔는냐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대안이가 오자 용기가 마음이 놓인 월랑은 성내 집으로 간다.
성내로 들어서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처참하기 말 할 수 없었다.

"불에 그을린 성문 옆에는,
백골 드러난 시체로 메워진 하수구...
한 줌의 재로 변한 화려했던 고대광실.
골목 골목 헤매어도 자취감춘 인적인데,
생이별한 우리 처자 어드메서 찾을 소냐.

방방마다 걸린 족자 누더기로 변했는데,
드리눕던 침상마저 숯이 되어 버렸구나.
뒤뜰엔 잡초 사이 뒹그는 해골,
부엌 앞에 가득 쌓인 마분(马粪)의 늪...

월랑은 무너진 성곽과 깨어진 기왓장 파편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

옛길을 더듬으며 간신히 자기 집을 찾았다.
집에 도착한 그녀는 폐허로 변한 집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다.
인접한 사자가(狮子街)에 있던 약방과 가게는 흔적도 없이 불타 사라지고 없었다.
서문 관인의 대 저택도 참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월랑은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대안이를 데리고 불타버린 대문을 지나

저택안을 한바퀴 돌아 보는데 윤기가 짜르르 흐려며 반짝반짝 빛나던 각종 가구들이

엉망 진창이 된채 여기 저기 딩굴고 일부는 불 쏘시개로 사용했는지 빠개저서 불탄 자욱이 선명하다.
기녀들의 눈웃음이 선명하던 창문들은 깨어지고 뜯어지고 어디 성한 곳이라곤 하나도 없다.
수많은 식솔들의 먹거리을 위해 요리와 산해 진미의 달콤한 음식 향내로 드덥혔던 주방은

군사들이 마굿간으로 사용 했는지 말똥이 가득히 쌓여 있고 쉬파리들의 노리터가 되어있어,

월랑은 다리에 힘이 빠지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는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러자 울음소리에 놀라 깬듯 소옥이 품에서 잠이 들었던 효가도 함께 울어 된다.
소옥은 그저 눈시울 만 붉힐 뿐 가만히 보고만 있다.
울고 있을때 였다, 반금련이 거처하던 쪽에서 사람 그림자가 어른 거렸다.
월낭은 가슴이 섬뜩해지며 대안이에게 저쪽 다섯째 거처에 누가 있는것 같은데

알아 보라 하면서도 주의를 준다,

난리통에 빈 저택을 뒤지는 도적들이 날뛰고 있다고 하니,

대안이는 뭉둥이를 손에 들고 그쪽으로 다가 가서는 거기

" 누구요" 하고는 소리치자 그도 놀랐는지 한동안 아무 대답도 없더니 뿌시럭 거리며 나왔다.

봉두난발한 할멈이었다.
그녀를 데리고 월랑에게 오자,

그녀는 손을 덥썩잡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니 땟국물로 얼룩진 얼굴이 더 흉측하게 보인다.

"아이쿠, 마님!
어디로 피난 가셨던 거유? 얼마나 찾았는지 모른다우, 살아계셨으니 다행 이구려하며 더 슬프게 울었다.
그제서야 월랑도 안심이 되는듯 자세히 보니 여섯째 이병아의 하녀 였던 풍씨(馮氏) 할멈이었다.
둘이는 반가움에 다시 한번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이게 다 저세상에서 주인 어른이 보살펴 주시는게 틀림 없수.
다른 집 식구들은 전부 죽거나 생이별 한 이들이 많은데,

마나님과 효가 소옥이 대안이 까지 다 살아서 마님을 뫼시고 있으니 천만 다행이 아니고 무었이겠어요."

정말로 반가웠던 듯,

풍씨가 소옥의 품에 안겨있는 효가를 보듬어 주자 겁에 질려 눈만 멀뚱거리던 효가도

그제서야 배고픈것을 느꼈는지 밥달라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페허가된 이런 곳에 어디 먹을 것이 남아 있을까!
월랑이 난감해 하고 있을때 풍씨가 누더기 윗 저고리를 뒤적 거리더니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먹다 남은 듯한 마른빵 한조각을 내놓았다.

"아이구 어쩌누!
먹을 거라곤 지금 이것 밖에 없는데" 하며

아이에게 내 밀자 걸신들린 듯 효가 녀석이 울음을 뚝 그치고 허겁지겁 먹었다.
월랑은 조금 꺼림찍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피곤이 몰려 오는지 월랑은 반듯한 돌에 걸터 앉으며,

대안이에게는 쉴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 보라고 하고, 풍씨에게 아는 이들의 소식을 물었다.
거의 생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 참, 오씨(吳氏)내 큰 서방님 말이우,

그 양반이 양제원(养济院)에서 오랑캐 놈들 칼에 맞아 돌아 가셔다우,

쉰네가 거기 있다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우, 에구 끔찍해.
그 댁 식구들은 모두 그놈들 한테 끌려 갔는데 무슨 봉변을 당하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지네."

오씨네 큰 서방이란, 월랑의 큰 오빠 오대구(吳大舅)를 말하는데

뜻하지 않은 비보에 오월랑은 목을 놓아 구슬피 울었다.

"그래도 오랑캐 놈들은 재물과 값나가는 물건외에는 손을 안데었는데,

사나흘 주둔하였다가 그들이 돌아 가고나자 여기 불한당 놈들이 노략질 하고

재물을 내놓으라 협박하다 성이 안차면 닥치는 데로 때려 부시고 불질러 버리고,

심지어는 겁탈에 죽이기 까지 하였으니 오랑캐 놈들 보다 더 악질적인 놈들이라고..."

자기 집을 약탈하고 불지른 것도 오랑캐 병사들이 아니라

동네 사람 누군가가 저질렀다는 말을 듣고는 월랑의 가슴은 너무나 쓰려왔다.
풍씨 할멈은 금나라 오랑캐가 벌써 경성(京城)을 점령하고

일부 부대가 청하현으로 오고 있다며 또 어떤 난리가 일어날찌 하며 걱정을 한다.
월랑은 어떤 놈의 소행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앞날이 태산 이었다.
그래서 대안이를 불러서 대책을 상이한다.

"글쎄요...,

소인이 아까 집안 구서구석을 다 둘러 보았는데 그럭저럭 눈붙이고 잘 만한 데가 아무곳도 없었구만요,

오랑캐 놈들이 또 몰려 온다면 어차피 여기서 숨어 지낼 수야 없으니

차라리 다른 은신처를 찾아 보는게 낫지 않을까 싶네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안이는 월랑에게 말한다,

주인님이 생전에 성 밖에 사놓은 땅이 있는데,

비록 낡은 초가집 한채가 황량한 곳에 덩그러니 있지만 여기보다는 그곳이 더 안전 할것 같아요,

더군다나 그곳에는 한때나마 하인으로 부리던 내안(来安)이란 녀석이 소작인으로 있으니 한결 편하지 않을까요?
일단은 오늘 저녁은 그곳에 가서 피곤한 몸을 눞히고 내일 다시 대안을 생각 하시지요 하고 말한다.
월랑도 다른 뽀족한 수가 없어서 대안이에게 그렇게 하자고 하면서, 풍씨 할멈에게,

"할멈도 여기 있어 봤자 아는사람도 없고 별수 없을테니 원한다면 우리랑 함께 갑시다." 라고

돌아 보며 말하자,
풍씨가 펄쩍뛰며 말한다.

"아이구, 마님,

그게 무슨 섭섭하신 말씀이 세요!
아무리 난리통이라지만 이제 까지 입은 은혜가 얼마인데

나 편하라고 도망을 가요 그러면 어디 사람이요 짐승이지,

행여 그런 말씀 마십쇼.
이늙은 할미의 목숨이야 붙어 있을 때까지

아무데서라두 마님 모시고 살아 갈수 있다면 영광이지요.
보따리라도 이고 가게 나눠 주세요."

늦은 가을이라, 성문을 나서자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 앉아 서늘한 한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스산한 바람에 발길을 재촉하는 일행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산한 바람은 무정한 낙엽만 우수수 하고 떨어뜨렸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칠흑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내안 부부가 황급히 나와 월랑 일행을 맞으며 안방으로 안내 하였다.
누추한 초가집이었지만 방바닥도 제법 따뜻하였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