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63>
한세충과 양홍옥은 팔천의 병력으로,
십만의 오랑캐 올술과 맞서 역사에 기리 남을 황천탕 전투에서 승리한다.
양홍옥의 말을 들은 한세충은 너무나 기뻤다.
그 자리에서 당장 군령장(军令状)을 주고 임무를 부여했다.
그 때부터 모든 송나라 군사들은 양홍옥이 일러준 깃발과 북의 내용을 숙지하고
깃발 신호를 주목하였다.
이경이 되자 양홍옥은 사다리를 타고 날렵하게 올라가서는
날씬한 허리를 살짝 튕기면서 사뿐하게 까마득하게 높은 돗대의 망루위에 올라섰다.
착 달라붙은 갑옷에 잘룩한 소매,
그리고 가죽장화를 차려신은 모습이 과연 날렵한 여장부 다웠다.
양홍옥이 이십장 높이의 망루에 서서 오랑캐의 진영을 내려다 보니,
개미때같이 몰려오는 적의 함선이 마치 발아래 굽어보듯 한눈에 들어왔다.
십여리 내외로 펼쳐진 전황이 그녀의 손바닥에 놓인 한 폭의 지리도(地理图)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제는 평강(平康)의 기생.
오늘은 대장군의 아내! 보름달 처럼 환한 얼굴,
아찔한 망루에 높이 올라 , 갑옷입고 긴칼을 옆에 차다.
짓 밟힌 조국, 한맺힌 두 눈가가 매섭고,
유린된 강산, 피맺힌 가슴으로 어지럽다.
양자강 금산하에서 적을 맞아 무찌르니,
그 이름 찬란히 청사에 천만년 빛나네.
한편 구멍뚤린 그물에서 용하게 빠져나온 미꾸라지 새끼모양,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올술은 진영에 돌아와서도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었다.
"에잇, 교할한 한세충이 놈,
감히 나한테 도전을 해 괘씸한 놈 같으니라고.
그래 어디 두고 보자, 좋다.
전 장병들은 들으라!
적들은 팔천여 명 밖에 안되는 패잔병들이다.
오늘 밤으로 당장 도하(渡河)작전을 전개할 터이니 그리 알고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
과연 올술은 양홍옥의 추측대로 사지(死地)에서 구사일생으로 생환한 치욕을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그날 밤으로 도강하려는 작전을 세웠다.
대소군선(大小军船) 천여척이 일제히 분주하게 군사들을 실어나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랑캐들은 수전을 해 본 적이 없고, 배를 건조해 본적이 없는지라
양자강에서 상인들이 물자를 운반하거나 소금을 실어 나르던 배를 징발한 것이라
전투용 병선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술은 물에 익숙한 남방 토착민들을 시켜 배를 몰고 노를 젓게끔 하였지만
그들 역시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어부들에 불과했다.
올술은 병사들의 숫적 우세만 믿고 밀어 부쳤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함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병사들에게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적의 숫자는
겨우 팔천 명에 불과하고 모두 패잔병을 모아 놓은 오합지졸이란 것을 강조하였다.
올술은 병사들을 둘로 나누어 먼저 점한 장군이 오만 병력을 이끌고 한세충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사이에, 자신은 오만 병력을 그 후반으로 비스듬히 가로질러
도강 후방에서 공격 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이윽고 야심한 삼경이 되었다.
올술은 군사들에게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여 사기를 높인뒤,
진군을 알리는 나팔소리 대신 조용한 호각소리를 군호(军号)로 삼아 도하 작전을 개시했다.
천여척의 군선이 때마침 불어온 순풍을 타고 쏜살같이 강건너 어둠 속으로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송나라 군사들은 단잠에 빠져있는 듯 칠흑같은 어둠속에 파묻혀 있었다.
점한의 오백여척은 적진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돌진해 들어갈 때였다.
갑자기 어둡고 고요하기만 하던 하늘에 화광이 충천해지며,
하늘을 찌를 것 같은 함성 소리와 함께 포탄과 화살이 비오듯이 쏟아져 내렸다.
제일 먼저 동요를 일으킨 것은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뱃사공 들이었다.
그들은 야밤에 병력만 북쪽 해안까지 싫어다 주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포탄과 화살이 쏟아지자 대경실색하여 앞으로 전진하라는 오랑캐 장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잔뜩 겁을 먹은 그들은 하나씩 둘씩 배를 버리고 강으로 뛰어들어 북안(北岸)을 향해 해엄쳐
필사적으로 도망쳐버렸다.
사공을 잃은 배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면서 삽시간에 극도의 혼란속에 빠져 들어갔다.
움직이지 못하는 배라 포탄과 불화살이 배에 정확하게 명중되자 오랑캐들이 타고 있던 배는
거의 대부분 이 불바다로 변해버렸다.
뒤따라 오던 올술의 주력함대는 엄호를 받으며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빠져나가 강안에 상륙을 시도했다.
그때였다.
어둠속에서 하얀 깃발이 오른쪽을 향해 펄럭이자 동시에 천둥같은 북소리와 깽가리 소리가
'둥! 둥! 깨갱! 깨갱!' 하고 어둠을 깨고 울려퍼졌다.
올술이 깜짝 놀라 전방을 자세히 살펴보니,
함성을 울리며 멀리 맞은편의 송나라 함선들이 올술 함대 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방향을 바꾸어라!
적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후미(后尾)에 있는 군선부터 왼쪽으로 선회하도록 하라!"
올술의 명을 받은 군선들은 황급히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적진에서 들려오던 북소리가 뚝 그치더니 조금지나자
깃발이 왼쪽을 가르키며 다시 북소리가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송나라 군선들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앞길을 가로막고는 전속력으로 돌격해 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올술이 다급하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후퇴하라!
후퇴하라!
적이 우리의 동정을 모두 꿰뚫고 있다.
어서 후퇴하라!"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둥둥둥! 북소리가 빨라짐과 동시에 거대한 송나라 군선들이 빠른 속도로 밀고들어왔다.
오랑캐의 군선이라야 장사치들 한테서 징벌한 것이라 조그만 상선이 대부분이 었다.
오랑캐 군선들은 순시간에 대오가 흐트러지며 뿔뿔이 흩어져 남쪽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
"아이쿠!
배가 뒤집힌다.
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네, 어떡해!
갑자기 도망치던 오랑캐의 작은 배들이 수없이 뒤집히며 배끼리 부딧치며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었다.
거기다가 큰 배조차 앞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올술이 금산 쪽으로 다가 오리라 미리 예측했던 한세충이 적의 퇴로에 쇠줄을 쳐 놓았던 것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송나라의 대형 함선들이 다가와 오랑캐의 작은 배들을 쏜살같이 받아버리며
불화살을 쏘아대니, 오랑캐들은 불에 타서 죽는 놈, 물에 빠져 죽는 놈,
불화살에 맞아 죽는 놈 들로 십만 병력중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출로를 찾지못해 갈팡질팡하던 올술은 천신만고 끝에
근처의 조그만 포구(浦口)인 황천탕(黄天荡)으로 쫓겨 들어가고 말았다.
송나라 군사는 금나라 오랑캐와 전쟁을 벌인 이후 최대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가 역사에 길이 남은 '황천탕 대첩(大捷)' 이었다.
지금도 <송사(宋史>에는
'한세충 장군이 금나라 올술을 강 위에서 격파하고,
그의 처 양홍옥은 직접 북을 치고 깃발을 흔들어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 는 기록이 남아있다.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걸 양홍옥의 쾌거는 두고두고 존경과 탄복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 구사일생으로 황천탕으로 쫓겨 들어온 올술은 난처하기 짝이없었다.
조그마한 어항(漁港)인 이 곳은 오랜기간에 걸쳐 모래가 퇴적되어 수심이 얕았던지라
그들이 들어왔던 호로병의 목처럼 생긴 출구를 제외하고는 다른 방향으로는
도저히 배를 몰고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올술이 황천탕에 묶여 독안에 든 쥐모양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한장군은 크게 기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렇게도 갖 뿔난 망아지 모양 날뛰더니 이제 죽을 날만 남았구나!
다들 수고많이 했느니라!
생쥐도 궁지에 몰리면 발악을 하는 법이니 경계를 늦추지 말고 감시만 하고 있도록 하거라.
급히 공격할 필요없이 저들이 지칠 때까지 우리 병사들은 푹 쉬도록 하여라."
모든 병사들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을 올리며 승리를 자축했다.
모두들 양혹옥이 위험하기 그지없는 망루에 올라 사력을 다해 북을 울리고 깃발로 적의 움직임을 알려주며
군사들을 하나되게 지휘해 준 것에 감사해하며 배마다 대낮같이 등불을 밝혀놓고 축하의 잔을 높이 들었다.
양홍옥도 여인의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한세충과 함께 승리를 기뻐하며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녀의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부인,
어찌된 일이오?
오늘같이 기쁜 날 무슨 고민이 있어 얼굴이 어둡구려?"
"나으리,
공연한 말씀을 드려 나으리의 기뻐하시는 심기를 어지럽힐 듯 하여
차마 말을 꺼내기가 어렵습니다."
"괜찮아요.
부인이 이번 전투를 승리하게한 제일 큰 공로자인대 무슨 말씀이요?"
"과찮의 말씀이십니다.
나으리, 하오나 한때의 작은 승리에 도취되어 큰일을 그르칠까 걱정이 되옵니다.
소첩의 작은 소견으로는 올술은 지모가 뛰어난 자라,
지금 궁지에 몰렸을때 더욱 옥죄어 사로잡지 않으면 혹시 후환이 생길까 염려되옵니다."
"하하,
부인의 말씀의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돌다리도 두둘겨 보고 건너자는 완벽하게 끝내버리고 축배를 들자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오랑캐 올술은 이미 사지(死地)에 들어가 있어 다시는 살 길이 없소.
황천탕은 막다른 골목 아니오?
열흘도 못가 놈들의 식량이 바닥날테니
그때가서 사로잡아 불모로 잡혀가신 두 임금의 원수를 갚겠소."
한세충은 말을 마치고는 연거프 술잔을 비우더니
달을 향해 호기롭게 칼을 뽑아 들더니 빙글빙글 돌면서 현란한 검무를 추기시작 했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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