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오랑캐에게 겁탈당한 여인네의 반응도 가지각색

오토산 2021. 6. 28. 16:26

금옥몽(속 금병매) <161>

향락과 음욕이 난무하던 양주라

오랑캐에게 겁탈당한 여인네의 반응도 가지각색이었다.

이팔청춘 곱게 자란 화초 같은 규방 처녀,
집안 일을 배우면서 시집갈 날 준비하네.
엄마 몰래 거울보며 입술연지 눈썹 그림,
아침마다 단장하며 나의 님을 기다리네.

날벼락이 떨어져서 어랑캐에 끌려가니,
하늘하늘 여린 몸매 추위를 못 이기네 ,
밤이 되면 노리개라 오랑캐가 낄낄 웃고,
낮이 되면 눈물 한숨 박명한 미인일세!

양주땅에 들어닥친 금나라 오랑캐들은 온갖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다.
그 와중에 양주의 모든 여인들은 신분의 귀천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겁탈을 당했는데,

워낙 향락과 음욕이 난무하던 양주땅인지라 겁탈당한 여인들의 반응도 가지각색 있었다.

제아무리 경국지색의 비빈(妃嬪)이라 할 지라도 화국부인(华国夫人) 이씨(李氏) 처럼

역적 장방창(张邦昌)의 품에안겨 정조를 헌신짝처럼 내던진 여인들은 두고두고 역사속에서

손가락질을 받지만, 천하디 천한 기생 출신이라도 나라와 낭군을 위해 절개를 지키고

몸을 바친 여인들은 길이 역사속에서 칭송을 받게 되어있다.

양주땅에 대조적인 두 기생의 삶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어디 한번 그녀들의 행동거지가 어떻게 판이한지 비교해 보자.
양주 땅의 왕수재(王秀才)라는 사람에게는 기가 막히게 어여쁜 애첩이 있었다.

애첩은 용모뿐만 아니라 시문(诗文)과 서화 그리고 온갖 기예에 능통한 그녀를

마치 손바닥에 올려놓은 옥구슬 같이 애지중지하였다.

그녀는 애교가 만점이었을 뿐더러 방사에도 능수능란하였던지라

왕수재는 밤낮으로 그녀와 침상에서 떨어질줄 모르고 방사를 즐겼다.
그런 생활을 일년여간 지나고 나자 왕수재는 애첩의 욕망을 감당하지 못하고

몸의 원기를 크게 상하여 자주 피를 토하게 되었다.

놀란 왕수재는 그 후로 가능한 방사를 자제하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그 무렵 애첩이 수태를 하는 바람에 잠자리의 고민에서 벗어나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나 열달 후 아들을 얻은 왕수재는 전보다 더욱 애첩을 아껴주고 사랑하게 되었다.
단지 전처럼 자주 방사를 치루어 주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쉽기만 하였다.

바로 그 무렵, 금나라 오랑캐군이 양주성을 함락하고는 집집마다 뒤지면서

재물을 강탈하고 여자를 징발해 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반항하는 집의 남정네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살해하기도 했다.

왕수재는 우선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몰래 옆집 창고의 천정위에 숨어

지내며 오랑캐가 물러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미친 개 쏘다니듯 집집마다 뒤지면서 재물을 약탈하던 오랑캐 십여명이

여자들을 끌고 왕수재가 숨어있는 창고로 몰려와 술을 마시며 여자들에게 노래도 부르게 하고

춤도 추게하면서 옆에서 술 시중을 들게 하였다.

여자들은 그들이 시키는 것을 거부하다가는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아는지라 아무도 반항하지 않았다.

"야!
이제 술은 마실만큼 마셨으니 너희들을 딴 데로 가보라고!
난 여기서 이 년이랑 재미 좀 봐야 되겠어.
히히,

요렇게 예쁜 계집을 한번도 못 품어봤는데 오늘 밤은 수확이 꽤 괜찮은걸."

"예, 저희들은 그만 옆방으로 피해 드립죠.
재미 많이 보십시요."

저희들 끼리 수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랑캐들이 한 놈만 남고 나머지는 옆방으로 가는 소리가 들렸다.

"자, 이리 가까이 오라고.
이제 우리 일을 시작해야지 어서와서 내 성이난 물건을 보라구 불을 끄게."

"호호호, 

불을 끄다니요.
아니 그렇게 자신이 없는 쑥맥이신가요?
오히려 등불을 가까이 가져와요.
환하게 밝은 데서 서로 알몸을 보고 일을 하는게 얼마나 더 짜릿하고 황홀한지 알아요?"

순간 왕수재는 온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
그런 말을 하는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재발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라면서

천장위에서 서까래 사이의 자그마한 틈을 더 크게 뚫고는 아래  창고를 살펴 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귀는 틀림이 없었다.
창고 낡은 침상에 걸터앉아 옷을 홀랑 벗어버린채 온갖 얄궂은 자세를 취하며

오랑캐 놈을 유혹하고 있는 여인은 분명히 죽어도 같이 죽겠다고

꼴백번이나 넘게 맹서했던 자신의 애첩이 분명했다.

오랑캐 녀석은 불을 끄지 말라는 말에 흥분이 된듯 얼굴에 음흉하고

야릇한 미소를 띠면서 등불을 침상 가까이 갖다 놓았다.
그리고는 여인의 알몸을 샅샅이 흝어보면서 어떤 곳은 손가락으로 쿡 찌르기도 했다.

"나으리!
우린 틀림없이 전생부터 인연이 있었을거예요."

왕수재의 애첩이 온갖 애교와 아양을 떨며 오랑캐의 옷을 하나씩 벗기고는

팔을 목에 걸고 품에 안겨 콧소리를 내었다.
오랑캐는 흥분을 못 참겠는지 전희도 없이 바로 애첩의 옥문을 공격했다.

"나으리,

아 너무 좋아!
나으릴 못 만났다면 너무 억울했을 것 같애!"

애첩은 코맹맹이 소리로 계속 교성을 질러대었다.
그러나 온 몸을 녹여내는 듯한 여자의 기교에 오랑캐는 구름위를 나는 듯 황홀경에 빠져서

미쳐 대답은 하지도 못하고 방아질만 열심히 할뿐 말할 여유조차 없는 듯 하였다.
그러나 애첩은 오랑캐의 방아질에 요분질을 해가면서 여전히 입울 다물지 못했다.

"나으리 듣고 있나요?
너무좋아요 더 쌔게 해줘요.
이젠 날 맘대로 해도 좋으니 날 버리지만 말아줘요, 네?"
그제서야 오랑캐는 구름속에서 벗어났는지 엉덩이를 풀석거리면서 말했다.

"헛, 참 네 년두 깨나 밝히는 구나.
데체 네 서방놈은 뭐하는 작자냐?"

"흥, 그 쪼다 멍청이?
얼굴이야 허여멀건 선비지만 얼굴이 밥먹여 주나요?
물건이라는 것이 비리비리한 것이 꼭 서리맞은 가지 같으니

여자 하나 만족도 못 시켜주는게 무슨 남자라구.

난 오늘에야 사는 재미가 무언지 알았다우.
나으리가 그 작자를 죽여버리고 날 데리고 가줘요, 네?"

창고 천정위에서 서까래 틈 사이로 자기 애첩이 갖가지 기교를 다써가며

요분질로 오랑캐 놈을 녹여주는 광경을 목격하고,

오랑캐 놈에게 하는 말을 들은 왕수재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날이 밝자 오랑캐 놈들이 귀대를 알리는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애첩을 꼭 껴안고 자고 있던 오랑캐 놈은 반사적으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하였다.

그러자 애첩이 악착같이 붙잡고 늘어졌다.
놈은 다시한번 사력을 다하여 육방아를 찧어주고서야 애첩의 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으리, 오늘 밤도 꼭 와야 해요.
가다리고 있을테니까, 응?"

"걱정말아.
내 틀림없이 올거야, 이렇게 예쁜이를 두고 어떻게 안올 수 있겠어?"

그러나 그날 밤 놈은 다시 오지 못했다.
오랑캐놈들이 양주에서 퇴각을 해 버린 것이다.
올술 왕자의 명에 의하여 썰물 빠져나가듯이 양주성에서 철수를 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왕수재는 집으로 돌아가 애첩을 추궁했으나

첩은 펄펄 뛰며 극구 부인 했다.

내 눈으로 천정에서 다 보았다고 했지만 아마 자기를 너무 보고싶어

다른 여인을 자신으로 착각한 것이거나, 꿈을 꾸었을 것이라고 오히려 덮어 씌워 버렸다.
단칼에 죽아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여인이 낳은 자식 생각에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왕수재는 그제서야 베갯머리에서 나눈 사랑도 한갓 바람앞의 이슬이고,

깨가 쏟아지며 잉꼬같은 사랑도 헤어지고 나면

부평초 같은 순간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애첩을 버리고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