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죽리 말무덤(言塚)을 다녀와서
신풍미술관을 나와서 안동으로 향하던 우리는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156-1에 있는 말무덤(言塚)을 찾아갔다.
말무덤(言塚)은
옛날부터 각성바지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로
사소한 맣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문중간 싸움이 그칠날이 없자
마을 어른들이 원인과 처방을 찾던중 지나가던 과객이
예방책을 알려주는데로 400~500여년전 말무덤을 만든후
마을이 평온해져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예천군청 문화관광사이트에서 인용>하면
'지보면 대죽리에는 말무덤이라는 곳이 있다.
옛부터 이 마을에는 각성바지들이 살고 있었으나
문중간(門中間)의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큰 싸움으로 번지는 등 말썽이 잦자
마을 어른들은 그 원인(原因)과 처방(處方)을 찾기에 골몰했다.
한편 이 마을을 둘러 싸고 있는 야산(野山)이 있는데,
그 형세가 마치 개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개 주둥이 형상이어서
“주둥개산”이라 불렀다.
어느 날 한 과객(過客)이 이 마을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를 보고
“좌청룡(左靑龍)은 곧게 뻗어 개의 아래턱 모습이고,
우백호(右白虎)는 구부러져 길게 뻗어 위턱의 형세(形勢)이어서
개가 짖어대는 형상을 하고있어 마을이 시끄럽다”고 하면서
예방책(豫防策)을 일러주고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이 과객의 말에 따라 개 주둥이의
송곳니 위치쯤 되는 동구(洞口) 밖 논 한가운데에
날카로운 바위 세 개를 세우고,
개의 앞니 위치쯤 되는 마을길 입구에는
바위 두 개로 개가 짖지 못하도록 소위 재갈바위를 세웠으며,
마을 사람들은 항상 싸움의 발단이 되어온
마을의 말썽 많은 말(言)들을 사발에 담아
주둥개산에 묻어 말무덤(言塚)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처방이 있은 이후부터는
이 마을에는 싸움이 없어지고 평온해져
지금까지 이웃간의 두터운 정이 계속되고 있다.
말싸움이 없어진 이후 주둥개산에 「말무덤」이라고
새겨진 비(碑)를 세웠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말(馬)무덤이 아닌 말(言)무덤으로 설치된 무덤은
여름철 무성하게 자랐던 잡초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주변에는 말에 대한 속담들이 새겨진 자연석이 많이 있었다.
우리는 말무덤으로 마을의 시비가 없어지고
평온을 찾았다는 전설의 현장을 돌아보고
온갖 헛소문과 시비로 나라가 시끄러운 국회의사당 인근에
이런 처방을 하였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풍산의 '안동한지'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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