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영흥에서 억새를 가져다 조성한 건원릉

오토산 2021. 12. 3. 21:16

영흥에서 억새를 가져다 조성한 건원릉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건원릉(健元陵)이 있다.
건원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이성계의 무덤이며,

9개의 왕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사적 제193호) 안에 있다.

건원릉은 동구릉에 있는 다른 능과는 차이점이 있다.

바로봉분을 조성한 후 잔디를 심지않고 억새를 심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전해지는 설화가 있다.
 
고향을 그리워한 이성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고향은 함경남도 영흥이다.

태조는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기고,

한양에서 생활하면서도 태어나서 자란 함경남도 영흥을 항상그리워했다.

또한 자신이 죽어서는

“영흥에 묻히고 싶다.”라는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하였다고 한다.

태조가 승하한 뒤에 함경남도 영흥에다 왕릉을 쓸 수 없기에

봉분을 덮을 잔디(억새) 만이라도 영흥 것을 가져다가 입히기로 하였다.

그리고 잔디 대신에 억새를 봉분에 입힌 것은 태조의 유언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함경남도 영흥은 서울에서 천리가 넘는 먼 곳이기에

억새를 죽이지 않고 가져 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심 끝에 한 신하가 묘안을 생각해 냈다.

그 방법은 영흥에서 서울까지 사람들이 쭉 늘어서서

억새 떼를 하나하나 받아넘기게 해서 운반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와 같은 방법을 시용해서

함경남도 영흥에서 구리시에 소재한 건원릉까지 무사히 가져왔다고 한다. 
 
건원릉 억새들이 쫓은 왜적
함경남도 영흥에서 억새를 가지고 와 건원릉 봉분을 조성을 하였지만,

건원릉을 관리하면서 억새가 군데군데 말라 죽기도 하였다.

 

한양억새를 대신 심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억새가 자라지 않고 계속해서 말라죽었다고 한다.

한편,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왜적들이 건원릉에 불을 질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건원릉에 붙은 불을 꺼버렸다.

왜적들은 불이 꺼지자 계속해서 불을 놓았지만, 그럴 때마다 불이 꺼졌다.

이에 겁이 난 왜적들이 불을 지르다가 도망가 버리고,

그 이후에는 건원릉에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건원릉 앞에 서 있는 비석들이 밤에는 장군으로 변해 왜적을 물리치기도 했는데,

그 때 건원릉의 억새들이 군사들로 변해서 왜적을 물리치는데 함께 참여했다고 한다.
 
억새로 봉분을 한 건원릉의 신이함
건원릉의 봉분이 다른 왕릉과 다르게 억새로 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억새로 봉분을 한 건원릉이 지니는 신이함도 담겨 있는 설화다.

건원릉의 억새는 예전부터 한식날 단 한 차례 예초(刈草, 풀베기)를 하였다고 한다.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010년부터 매년 절향(節享, 계절에 따른 제사)인 봄 제사로

‘청완(靑薍, 억새) 예초의(刈草儀)’를 거행하고 있다

 

<sns에서>

'시링빙야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늑대의어리석은 삶  (0) 2021.12.04
山을 오르는 方法  (0) 2021.12.04
고로쇠와 은어  (0) 2021.12.03
「생거진천 사거용인: 生居鎭川 死居龍仁」  (0) 2021.10.28
장성기생 노화 (蘆花)  (0) 2021.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