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고로쇠와 은어

오토산 2021. 12. 3. 02:54

#조주청의사랑방야화
(156) 고로쇠와 은어


어느 날 아침,

전주 부자 김진사가 행랑아범을 불렀다.

 

“정월대보름 지난 지도 열흘이 넘었으니 자네 고향 구례엔

요즘 한창 고로쇠약수가 날 철이지, 아마.”

 

행랑아범이 크게 한숨을 쉬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럴 겁니다요”
대답했다.

 

“겨울 내내 소화도 안되고 속이 더부룩해서

고로쇠약수 나올 날만 학수고대하고 있었네.

자네가 내 위장병을 좀 고쳐 줘야 쓰겄네.”
행랑아범은 또 한번 한숨을 쉬고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에…”하는데,

김진사가 못마땅한 얼굴로

 

“자네가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네.”

 

“아, 아닙니다.

오늘 당장 떠나겠습니다.”

 

행랑아범은 고개를 숙이고 뒷

걸음질로 물러나 자기 방으로 갔다.

 

“여보 마누라,

고로쇠물 가지러 고향 다녀와야겠네.”

 

마누라도 깊은 한숨을 쉬고는 얼굴을 무릎에 묻었다.

행랑아범이 문을 걸어 잠그고 마누라의 허리를 당겼다.

치마를 벗기고 고쟁이를 내렸다.
행랑아범이 속으로

 

‘이놈의 구멍이 화근이야’

 

이를 갈며 절굿공이 같은 양물로 막창이라도 낼 듯이 콱콱 찧었다.

마누라는 터지는 고함을 막느라 이불자락을 덮어썼다.
육중한 행랑아범이 마지막 용틀임을 하고

고목이 쓰러지듯 방바닥에 떨어져 여덟팔자로 누워 거친 숨을 가다듬자

마누라가 팔베개를 하고 누워

 

“여보,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해?

이 집을 나갑시다.”

 

행랑아범은 말 없이 일어나 담배 한대를 피우더니 단봇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행랑아범 마누라는 구겨졌던 얼굴을 펴고 살포시 미소를 머금고

좁은 부엌에 들어가 물을 데워 온몸을 씻고 방에 들어가 얼굴에 분을 발랐다.

 

그날 밤,

행랑아범은 구례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 주막에 단봇짐을 풀고

지금쯤 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기도 싫어

벌컥벌컥 술을 퍼마셨다.

 

그 시간,

사랑방에서 글을 읽던 김진사는 살며시 나가 행랑채 방문을 열었다.

행랑아범 마누라가 호롱불을 껐다.
김진사와 행랑아범 마누라는 뜨거운 숨을 내뿜으며

허겁지겁 옷을 벗고 두 몸뚱이가 으스러져라

마주 껴안고는 나뒹굴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끓는 것은 멀리 주막집에서 탁배기를 마시는 행랑아범뿐만이 아니다.

김진사의 부인인 안방마님도 고양이 걸음으로 마당을 가로질러

행랑채 기둥 뒤에 숨어 연놈들 광란의 숨소리를 들으며 박박 이를 갈았다.

 

양반집 가문에 시집온 정숙한 부인이라

투기는 못하고 가슴속만 숯이 되는 것이다.

 

행랑아범이란 원래 대문 옆에 딸린 행랑채에 살면서

잔심부름이나 하고 방세나 면제 받는 법인데,

김진사네 행랑아범은 뼈가 부서져라 일하는 머슴보다 더 많은 새경을 받았고,

행랑아범 마누라는 따로 김진사로부터 엽전 주머니까지 받는다.

 

여색에 골병이 들었는지

김진사가 드러누워 명의란 명의를 다 불러도 백약이 무효,

봄 내내 요를 흠뻑 적시더니 황천길로 가 버렸다.

 

1년 만에 탈상을 하고 나자

과부가 된 안방마님이 행랑아범 마누라를 불렀다.

 

“너희 친정아버지가

섬진강에서 은어를 잡는 어부라 했지?”

 

“네. 그러하옵니다.”

 

“오랜만에 친정에 가서

은어 좀 사 오너라.”

 

마누라가 떠난 다음날

행랑아범은 코피가 터졌다.
출처 : https://m.nongmin.com/nature/NAT/ETC/25515/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