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9 -
[오애내자 청산지 도수래]
金刚山은 독특한 풍경을 자랑하는 산이다.
봄은 마치 앙증맞은 일,이십대 아가씨 처럼
수줍은 아름다움으로 치장하여, 금강산(金刚山)으로 불리고,
여름은 한여름 억세게 자라나는 명아주처럼 생활력이 왕성한
삼,사십대 여성으로 보아, 봉래산(逢萊山)이라 부른다.
그런가 하면 가을에 불리는 이름은 풍악산(枫岳山)이라 하는데
이것은 인생의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오,육십대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인생의 행로를 비유한 것이리라.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 이라 하는데
이것은 산의 모습도 늙은 노파의 처지처럼 그좋던 풍경이 어느덧 사라지고
산골짜기 봉우리마다 바위만 앙상하게 보여서 붙인 이름이다.
발길을 더해 갈수록 금강산의 수려한 본색이 드러났다.
김삿갓은 완전히 주의의 경치에 취해 있었다.
자연히 우암 선생의 시가 저절로 읊어졌다.
산여운구백, 운산불능변
(山与云俱白, 云山不能辨)
운귀산독립, 일만이천봉
(云归山独立, 一万二千峯)
<산도 희고 구름도 희니 산과 구름을 구별할 수 없도다>
<구름은 흘러가고 산만 홀로 남아 우뚝솟은 봉우리가 일만 이천이로다>
김삿갓은 술에 취한 듯 곤드레 발길로 산길을 올라갔다.
고개를 넘으니 이름 모를 수려한 봉우리 하나가 앞을 가로막는데
정면으로 절 지붕이 보이고 그 밑으로 시냇 물이 흐르고 있었다.
시원하게 들려오는 시냇물 소리도 좋거니와 녹음이 우거진 시냇가에는
뜻밖에도 오륙인으로 보이는 선비들이 모여앉아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순간 김삿갓은 두 눈을 반짝이며 그쪽을 주시 했다.
"올커니, 천렵을 하는가 보구나. 좋지,
시내에서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하려나?...
게다가 맑은 소주를 곁들이면 더욱 좋을 터,
이야말로 무릉도원에서 신선놀음 아니냐, 어디 한번 가보자."
무슨 볼일 이라도 있는 듯 쏜살같은 걸음으로 김삿갓은 그쪽으로 달려갔다.
과연 김삿갓의 추측대로 선비들이 천렵놀이를 하고 있었다.
냇가에는 솥이 하나 걸려 있는데 닭을 삶는 구수한 냄새가 혀를 동하게 한다.
김삿갓은 잘 하면 닭국에 술잔이라도 얻어 먹을수 있겠다 싶어 신명이 저절로 났다.
선비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김삿갓은
빨리 걷던 걸음을 점잔을 빼는 양반네 걸음으로 바꿨다.
선비들은 모두 여섯 사람이었는데 모두 나이가 이십을 갓 넘어 보였고
옷 차림과 생긴 모습에서는 귀티가 감돌고 있었다.
"허, 한양 양반네 자제들이
금강산 구경을 와서 천렵을 하는 모양이군..."
김삿갓이 속으로 이같이 새우며 다가갔지만 그들은
저마다 주위 경계에 도취한 듯 아무도, 김삿갓의 접근을 모르고 있었다.
"허험! "
김삿갓은 우선 헛기침으로 자신의 존재를 그들에게 알렸다.
돌연한 불청객의 침입을 그들은 비로서 알아차리고
일제히 김삿갓 쪽으로 눈총을 쏟았다.
"참 운치가 있습니다.
어디 명장의 그림이 따로 있습니까,
이곳이야 말로 그림속의 풍경입니다 그려.."
김삿갓은 우선 넉살부터 늘어 놓았다.
젊은 선비들은 불쑥 나타난 이 불청객이 마땅치 않은 모양이었다.
한 사나이가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어디를 가는 길이오?"
길을 잘못 든 것 아니냐는 물음이었고,
차린 행색으로 보아서 당신이 참례할 곳이 아니다는 말이기도 하였다.
어찌 김삿갓이 이 말뜻을 모르랴.
"발길 닿는대로 가는 나그네가 별달리 갈 곳이 있겠습니까?
젊은 선비들이 이렇듯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시회(诗会)라도 하시는 것 같아
어깨너머로 배울 바라도 있을까 하여 왔소이다."
"뭐 시회라고?"
선비들은 자기들끼리 얼굴을 쳐다 보았다.
주제꼴을 볼량이면 영락없는 걸인인데 시회를 운운하다니...
별꼴을 다 본다는 표정이었다.
이번에는 눈꼬리가 위로 치켜진 것으로 보아
성깔깨나 있을성 싶은 사나이가 말참견을 하였다.
"당신이 시회를 다 알고 있는 것을 보니 글을 좀 읽은 모양이구료.
어디한번 읊어보겠소?"
"예,
운자를 주시면 미약하지만 생각해 보지요."
김삿갓은 커다란 돌멩이를 자리삼아 깔고 앉으며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선비들은 다시 저희들끼리 얼굴을 마주보며 눈을 찔끔거렸다.
이것 봐라 하는듯이.
"좋소, 그럼 내 운을 떼겠소.
봄 춘(春) 자 ! "
"예, 고맙습니다.
지필 좀 빌려주셨으면 합니다만..."
"예 있소 ! "
선비 하나가 내미는 종이와 붓을 받아들고
김삿갓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달필로 내리 휘갈긴다.
강호낭인 우봉춘, 약반시붕 회사루
(江浩浪人又逢春, 約伴诗朋会寺楼)
소동인래 류수암, 고감승거 백운부
(小同人来流水暗, 古龛僧去白云浮)
박유소답 삼생원, 호음능소 만종수
(薄遊少答三牲愿, 豪饮能消万种愁)
의파청회 청시엽, 와청서원 우성유
(拟订把淸怀靑柿, 臥听西园雨声幽)
<강호낭인이 다시 돌아 온 봄날을 만나,
시쓰며 절에서 시회를 같이한다>
<골짜기에 한 사람만 나타나도 물가에는 그림자 어리고,
절 찾아가는 스님 머리에는 흰구름이 떠있구나>
<어쩌다 금강산에 오니 삼생원이 풀린 듯 하고,
마음껏 술을 마신다면 온갖 수심도 사라지리라>
<내 이 간절한 회포를 감나무 잎에 적어놓고 한가로이 누워 있으니,
서원의 빗소리가 그윽하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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