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금강산의 경치를 버리면

오토산 2022. 1. 18. 05:19

김삿갓 11 -
[금강산의 경치를 버리면]

"참 좋습니다."

 

선비들은 무릎을 쳤다.

김삿갓은 얻어 먹을 것을 먹었으니 이제 볼일은 다 끝났다 생각되어

부시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벌써 가시렵니까?"
선비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바람처럼 왔으니 바람처럼 가야지요.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납시다."

 

김삿갓은 이 말을 남기고 다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고개를 몇개 넘으니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가가 보이지 않아 계속 걸었다.

가는 길이 숲속 길이라 해는 아직 넘어가지 않았으나 앞은 어둑어둑 하였다.

 

이때 삼거리 길에서 중을 만났다.

그는 무료하던 차에 잘 되었다 생각하고 슬쩍 문자를 써서 말을 걸었다.

"문여소승하처래?" (门余小僧何处来?)
<여보시오 젊은 스님, 어디서 오십니까?>
그러자 젊은 중도 냉큼 문자로 대답을 하여왔다.

"소승금강래"(小僧金刚来)
<소승은 금강산에서 옵니다.>
이렇게 일단 인사겸 대화가 오가자 두 사람은 자연히 길동무가 되었다.

"날이 어둡기 시작했는데

시주께서는 어디까지 가십니까?"

 

젊은 스님의 말은 매우 정중했다.

글을 할줄 아는 과객임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정처없이 나선 길손입니다.

갈곳이 따로 있겠습니까?"

"이 근방은 사나운 짐승들이 많이 출몰하는 곳입니다.

바쁜 길이라도 어두운 때는 삼가셔야 합니다.

다행히 소승의 암자가 멀지 않으니 유하고 가십시오."

김삿갓으로선 듣던중 반가운 소리로 귀가 번쩍 트였다.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스님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룻밤 묵을 곳을 염려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젊은 중을 따라가는 김삿갓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금강산에서 오신다고 하셨지요?"

"예 유점사에 갔다오는 길 입니다."

"유점사라면

금강산 제일의 명찰로 들었는데 예서 몇리나 되는지요?"

"한 삼십리쯤 될겝니다.

그나 저나 시주께서는 금강산 길이 초행이신가요?"

"예 처음이지요.

가도가도 팔십리 길이라고 하는군요."
김삿갓이 길에서 들은대로 말을 건넸다.

"산길은 원래 정확한 거리를 헤아리기 어렵지요."

"그런가 봅니다."

두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눈앞에 조그만 암자가 나타났다.
숲속에 자리잡고 있어 얼핏 보기에는 멋들어진 누각처럼 보였다.

"변변치 않으나 드십시다."

김삿갓은 젊은 중의 안내를 받아 객방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사미승이 저녁상을 가져왔다.

쌀과 조가 반반씩 섞인 밥이었다. 찬은 모두 산나물이었다.

"소찬입니다만 시장하실 터이니 어서 드십시오."

"고맙습니다."

 

김삿갓은 정갈한 산나물 찬이 구미에 당겼다.

밥상을 물리자 젊은 중은 김삿갓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말문을 열었다.

"시주께서는 아까 소승에게 글월로 물으셨는데,

 시나 한수 들려 주시겠습니까?"

어찌 고양이가 생선을 싫다 하겠는가.

김삿갓은 사양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글제는 무엇으로 하면 좋겠습니까?"

"여기는 산속이니 산 풍경을 읊어 주십시오."

"산 풍경이라..."

 

김삿갓은 이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즉시 누에가 실을 뽑듯 술술 싯귀를 읊기 시작했다.

약사금강경/청산개골여(若捨金刚景/靑山皆骨余)
기후기려객/무흥단주저 (其后骥骊客/无兴但躇躇)

<만일 금강산 경치를 버린다면 청산은 모두 뼈만 남으리>
<다음에 나귀를 타고 온 길손은 흥이 없다 다만 주저하겠지.>

"천하의 명시 올씨다.

소승도 풍월을 좋아합니다만

시주께서 읊으신 시를 지으려면

아마 한나절은 고생을 해야 얻을 것 같습니다."

젊은 중이 이같이 격찬하자

김삿갓은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원 칭찬이 과하십니다.

다만 남의 것을 모방하였을 뿐입니다."

"겸손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젊은 중은 이렇게 말하고

김삿갓의 귀가 번쩍 트일 말을 해주었다.

"지금 금강산에는 명물이 하나있읍지요."

"금강산은 천하의 명산이니 명물이 어디 하나 뿐이겠습니까?"

"그런뜻이 아니라 시 잘하는 스님이 계시다는 말입니다.

많은 시인이 그분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재주를 겨루었습니다만

아직도 그분의 글을 꺾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요?"

 

김삿갓은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햇다.

호기심과 경쟁심이 동시에 일었던 것이다.

"불초 워낙 과문한 탓으로 그토록 고명하신 스님이 계신줄 여지껏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스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여기서 약 삼십리쯤 올라가면 입석봉이라는 큰 봉우리가 나옵니다.

금강산 제일이라는 만물상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그 아래 입석암이라는 정갈한 암자가 있는데 詩僧은 바로 그곳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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