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10 -
[일년 춘색( 一年春色)]
김삿갓의 诗를 본 선비들의 얼굴은 일순간 크게 달라졌다.
애초 김삿갓이 예측한 대로 이들은 한양의 권문세도가의 아들들이었다.
추위가 가신 늦은 봄에 돈냥이나 가지고 금강산 유람을 떠나왔는데
아직도 비로봉 근처에는 가보지를 못하고
건너편 절에 숙소를 정해 놓고 날마다 천렵으로 소일하고 있었다.
부모 덕택으로
학식깨나 있다는 선비를 불러 독서당을 차려놓고 글 공부를 하는 터인지라,
이들은 자신들이 글 실력이 남다름이 있다고 뽐내던 처지였고
천만 뜻 밖에도 김삿갓의 글이 진솔하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허허,
노형 이제보니 보통 솜씨가 아니시구료."
당신이라고 부르던 호칭이 어느새 노형으로 고쳐져 나왔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들은 풍월이지요."
김삿갓은 빙그레 웃으며 겸손을 보였다.
"자, 이리 앉으시오.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한번 어울려 봅시다."
김삿갓은 사양하지 않고
그들이 깔고 앉아 있는 화문석 돗자리로 냉큼 자리를 옮겼다.
"그래 선비들께서는 어디서 유람을 오셨습니까?
불초가 생각하기로는 멀리 한양에서 오신 듯 한데..."
"아니,
우리가 한양에서 온 줄 어찌 알고 계셨소?"
선비들은 다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사람이 가진 것은 없어도 두 눈 만은 밝습니다.
멀리서 보자하니 육조 대관들이 노니시는 듯하여 내려왔지요."
이왕 내친 김이라 에라 모르겠다 하며
김삿갓은 그들이 좋아 할 말을 던졌다.
"육조 대관들 이라고요?"
그들은 깜짝 놀란 얼굴을 하면서 김삿갓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렇습니다.
불초가 보기로는 장차 육조에서 노니실 분들이었습니다.
이미 엄친들께서 탄탄한 길을 닦아 놓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니....."
그들은 입이 딱 벌어졌다.
이 허술한 나그네 불청객이 고명한 도인이나 기인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자기들의 처지를 쪽집게로 뽑아내듯 쏙쏙 뽑아내니 말이다.
사실 이들의 부친들은 조정에서 정삼품 이상의 벼슬자리에 있었다.
때문에 집안의 배경만으로도 벼슬 한자리는 얻어 할 수 있는 처지였다.
"허허,
불초가 괜한 말을 했나 봅니다.
너그러이 들어 주십시오."
그들의 심중을 뒤흔들어 놓은 김삿갓은 마무리 격으로 슬쩍 눙쳐버렸다.
"귀인께서는 대체 뉘십니까?"
마침내 그들의 말씨는 최상급으로 비약되었다.
"보시다시피 이렇게 삿갓으로 하늘을 가린채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사람 입니다.
강호 유랑인이 무슨 근본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김삿갓의 말은 그들에게는 신비스럽게만 들렸다.
마침내 푸짐한 술상이 벌어졌다.
닭국에 건포와 육포등 귀한 안주가 나왔고 술은 매실주였다.
"이제 시 한수만 더 들려 주시면
큰 공부가 되겠습니다."
선비들은 술이 몇순배 돌아가자 김삿갓에게 시 한수를 청했다.
"좋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수 지어 보겠습니다."
김삿갓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모처럼 좋은 안주에 향기로운 술까지 마시게 되었는데다 취향이 도도했다.
그는 몇번 눈을 깜빡이다 술술 시를 적어 내려갔다.
정관장석에 소계변하고
백분청유에 도두견이라
(鼎冠獐石 小溪边 白纷靑油 도杜鵑)
쌍저협래하니 향만구하고
일년춘색이 복중전일세.
(双箸狭来 香滿口
一年春色 腹中傳)
<시냇가 돌사이에 솥을 걸어놓고,
백분과 청유로 두견화 적을 빚네>
<저를 들어 두어번 입에 넣으니 그윽한 향기가 입안가득 퍼지고,
춘색은 일년내내 깊이 전해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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