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승수단단 한마량

오토산 2022. 1. 17. 07:09

김삿갓 7 -
승수단단 한마량[僧首 团团 汗马阆]

"그깟 언문 풍월이야 어디 풍월 축에나 들수 있겠소?

이번에는 진짜 풍월을 해봅시다.

당신이 냉큼 지어내지 못하면 썩 여길 물러나시오."
중의 이같은 말을 들은 김삿갓은 신명이 났다.

"허..

그럼 지금까지는 가짜 풍월 이었구려.

좋소이다. 진짜 풍월이 어떤것 인지 맛좀 보여주시오.

내 맛보고 떫으면 이자리에서 썩 나가리다."

"허,

이 사람 말도 많구먼."

 

중이 심히 못마땅 한듯 입맛을 쩍쩍 다셨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건방진 녀석의 코를 낙짝하게 해줄까 궁리를 하다가

스스로 묘한 계책을 생각하였노라 내심 감탄을 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당신이 한문과 언문을 공부했다 하니

내 운을 부르겠소."
김삿갓은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역시 대사다운 말씀 이십니다.

대사는 항시 공평해야 중생을 제도할 수 있쟎습니까 ?"

"허허,

당신은 말방아가 너무 심하오."

 

선비가 한 마디 내쏘았다.

중이 입을 열어 운을 불렀다.

"운은

언문의 "기억"자 "니은"자이고

글제는 산수(山水)로 하시오."

"듣고보니 공평지기는 하나 꽤 까다롭습니다.

하여튼 기왕에 떨어진 운이니 불러 볼 수 밖에 더 있겠소이까?"

 

김삿갓은 끝까지 중의 말을 물어 뜯으며

지체없이 붓을 들어 종이에 일필휘지(一笔挥之)로 글을 지어 놓았다.

"수작은 저춘절벽(水作银 杵春绝壁)  이오 ,  
운위옥척 도청산(云为玉尺 度靑山) " 이라 ..

<폭포수는 은절구공이가 되어 절벽을 찧고,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가 되어 청산을 가늠토다.>

"자 어떻소까?

시제(诗题)의 기억과 니은은 각각 끝자에 붙였소이다."

"......."

중과 선비는 내심 깜짝 놀라 김삿갓을 바라보며 마른 침만 삼켰다.
아무리 헐뜯을래야 흠을 잡을 수 없는 명구였다.

김삿갓이 차림새와 딴판인 것을 알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들은 김삿갓을 예로써 정중히 맞을 수도 없고 내칠 수도 없어 쩔쩔메게 되었다.

김삿갓은 그들의 심보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설사 이들이 더불어 풍월을 더하자고 수작을 걸어 오더라도 상대하고 싶지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침이라도 퇘퇘 뱉어주고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이라서 글로라도 그들을 희롱하고 싶었다.

"묵묵 부답인 것을 보니

불초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가 보구려.

내 한수 더 읊어 드리리다."
김삿갓은 이어 글귀를 한자 더 써서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승수단단 한마랑(僧首 团团 汗马阆)이요, 
유두첨첨 좌구신(儒头 尖尖 坐狗腎)" 이라 ..

"성령 동령 동정(声令 铜铃 铜鼎)하고,  
목약 흑초 락백죽(目若 黑椒 落白粥)" 이로다.

<둥글둥굴 중대가리는 땀찬 말부랄이요.

뾰족뾰족한 선비의 머리통 상투는 앉은 개 좃이로다>

<목소리는 구리방울을 구리솥에 굴리는듯 요란스럽고

눈깔은 검은 후추알이 흰죽에 떨어진듯 하도다>

정말 지독한 욕설이었다.

처음에는 무슨뜻이지 잘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던 중과 선비는

뒤늦게 자기들을 욕하는 글임을 알아차렸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

이런 죽일놈을 보았나!"

 

선비가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김삿갓은 벌써 섬돌아래 서 있었다.

"여보, 선비님 눈을 부릅뜨니

정말 흰죽에 후추알 떨어진 것 같소이다.

허허허허..."

 

김삿갓은 너털 웃음을 날리며 그 절을 나와 버렸다.
다시 산길을 걷는 그의 가슴은 냉수를 마신것 같이 시원하였다.
중과 선비가 화가 치밀어  펄펄 뛰는 양이 눈에 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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