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고향에서

오토산 2022. 1. 26. 05:41

김삿갓 50 -
[고향에서]

이튼날 이른 아침 삿갓,

아니..병연은 아우 병호의 안내로 뒷산에 올라

형의 무덤에 성묘를 하고 모처럼 고향의 마을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병호야,

네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
형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니?"

​아우 병호도 장가를 가고 분가를 한 뒤지만 집에 와 들으니

농삿일은 그 아우가 모두 보살펴 주었다는 것이다.

​"제 생각으로는 형님이 집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형님은 형님대로 생각이 있으시니 제가 어찌 형님 뜻을 좌우하겠습니까?"

​"글쎄 말이다.

뜻이라는 것이 별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방랑 생활을 하니까 세상의 번뇌는 잊을 수 있더구나."

​"형님,

그래도 아주머니나 어머니가 불쌍해 지니 집에 계셔야죠."

​"허긴..

그래서 우선 온 것 아니냐?"

형제는 산을 내려오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을 먹고난 병연은 우선 글방에 들려 자기를 가르쳐 준 스승을 찾았다.
백발이 눈에 띄게 더 성성해진 스승은 크게 반가워했다.

​"아니

이게 병연이 아닌가...?"

​"네...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허 ..

언제 돌아왔나?"

​"어제밤에 돌아왔습니다."

​"그래 돌아다니며

마음 좀 추스렸는가?"

​"이곳 저곳을

정처 없이 다니며 세상 구경을 했습니다."

​"어디를 돌아 보았나?"

​"네,

금강산으로 해서 함경도 길주 명천까지 다녀왔습니다."

​"암..

사람은 그렇게 객지 바람을 쐬야 듣고 배우는 것도 많으니 !.."

​"뭐 ..

별로 배운거야 있겠습니까?"

​"그동안 자네 집도

형이 타계하고 변화가 많았었지?"

​"네,

오늘아침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그만하고 내 글방에 와서 아이들이나 가르치게.

난 도무지 나이가 들어서 이것도 이젠 못하겠네..."

​"원..

선생님두 이제 환갑이 조금 지나셨는데..."

​"아니야

자네같은 제자가 좀 해주었으면 해..."

​"같이 수학하던 동학들 소식은 있습니까?"

​"이제는

모두 농사나 지으며 잘들 살고 있지."

​"제법 어른티가 나겠군요."

​"암,

모두 가장들 아닌가?"

​병연은 옛 스승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 찾아 뵙겠다는 인사를 한뒤 마을로 들어가서 옛 글방 친구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각별하게 지낸 친구와 모처럼의 회포를 나누면서,

그 친구의 주선으로 그의 집 사랑에 옛날 글방 동학들이 모여 술 한상이 벌어졌다.

​"허,

병연이 죽은 줄 알았다."

​"그놈의 백일장이 생사람 잡았지."

"그래 금강산 절경이 그렇게나 기막히다며?"

​친구들은 반가워 하면서 묻는 말도 많았다

이렇게 마을에 동학들은 함께 술에 취하고 흥에 겨웠다.

병연이 여기저기 다니며 걸식하던 얘기,

서당 훈장하고 싸운 이야기등 구경하며 다닌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 놓자 그 중 한 친구가 

 

"그 훈장 혼내준 글

하나 소개해 보아라" 하며 조른다.

​병연은 몇번 사양을 하다가

함경도 어느 서당에서 훈장을 혼내 준

다음과 같은 글을 소개하여 좌중을 웃겼다.

​"두메구석에 완고한 백성이

고약한 버릇이 남아서..!"

 

​"文章大家를 함부로 욕하며

허풍만 떠벌리는구나..!"

​"조그만 조개비 잔으로

바닷물을 어찌 측량할 수가 있으며"

​"쇠 귀에 경을 읽는 격이니

어찌 글의 뜻을 알겠냐...?"

​"서속이나 훔쳐먹는 산골에

간악한 쥐같은 네놈이요..!"

​"구름을 타고 넘는 붓끝에

龍을 날리는 내로다...!"

​"마땅히 볼기를 쳐서 죽일 罪이로되

잠시 용서 하노니..!"

​"다시는 어른 앞에서

버릇없는 行動을 하지 말지어다..!"

​좌중은 모두 허리를 잡고 웃으며

다시 한번 병연의 재주를 아깝게 생각했다.
​이렇게 고향에 온 병연은 삼년 동안이나

자기가 배운 서당에서 훈장 노릇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고향에서의 안일한 생활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
병연은 다시, 방랑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의 생리며 숙명인지 모른다.
​방랑할 때 쓰던 삿갓과 죽장을 볼 때 마다 바람과 구름과 유유한 산수가 그리워졌다.

 

(이번에는 한양이나 가볼까?

아니면 경상도나 전라도를 가볼까?)

​김병연, 김삿갓 !

그는, 오늘도 ...!

강원도 영월땅에서 全國 八道 모두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