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50 -
[고향에서]
이튼날 이른 아침 삿갓,
아니..병연은 아우 병호의 안내로 뒷산에 올라
형의 무덤에 성묘를 하고 모처럼 고향의 마을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병호야,
네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
형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니?"
아우 병호도 장가를 가고 분가를 한 뒤지만 집에 와 들으니
농삿일은 그 아우가 모두 보살펴 주었다는 것이다.
"제 생각으로는 형님이 집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형님은 형님대로 생각이 있으시니 제가 어찌 형님 뜻을 좌우하겠습니까?"
"글쎄 말이다.
뜻이라는 것이 별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방랑 생활을 하니까 세상의 번뇌는 잊을 수 있더구나."
"형님,
그래도 아주머니나 어머니가 불쌍해 지니 집에 계셔야죠."
"허긴..
그래서 우선 온 것 아니냐?"
형제는 산을 내려오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을 먹고난 병연은 우선 글방에 들려 자기를 가르쳐 준 스승을 찾았다.
백발이 눈에 띄게 더 성성해진 스승은 크게 반가워했다.
"아니
이게 병연이 아닌가...?"
"네...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허 ..
언제 돌아왔나?"
"어제밤에 돌아왔습니다."
"그래 돌아다니며
마음 좀 추스렸는가?"
"이곳 저곳을
정처 없이 다니며 세상 구경을 했습니다."
"어디를 돌아 보았나?"
"네,
금강산으로 해서 함경도 길주 명천까지 다녀왔습니다."
"암..
사람은 그렇게 객지 바람을 쐬야 듣고 배우는 것도 많으니 !.."
"뭐 ..
별로 배운거야 있겠습니까?"
"그동안 자네 집도
형이 타계하고 변화가 많았었지?"
"네,
오늘아침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그만하고 내 글방에 와서 아이들이나 가르치게.
난 도무지 나이가 들어서 이것도 이젠 못하겠네..."
"원..
선생님두 이제 환갑이 조금 지나셨는데..."
"아니야
자네같은 제자가 좀 해주었으면 해..."
"같이 수학하던 동학들 소식은 있습니까?"
"이제는
모두 농사나 지으며 잘들 살고 있지."
"제법 어른티가 나겠군요."
"암,
모두 가장들 아닌가?"
병연은 옛 스승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 찾아 뵙겠다는 인사를 한뒤 마을로 들어가서 옛 글방 친구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각별하게 지낸 친구와 모처럼의 회포를 나누면서,
그 친구의 주선으로 그의 집 사랑에 옛날 글방 동학들이 모여 술 한상이 벌어졌다.
"허,
병연이 죽은 줄 알았다."
"그놈의 백일장이 생사람 잡았지."
"그래 금강산 절경이 그렇게나 기막히다며?"
친구들은 반가워 하면서 묻는 말도 많았다
이렇게 마을에 동학들은 함께 술에 취하고 흥에 겨웠다.
병연이 여기저기 다니며 걸식하던 얘기,
서당 훈장하고 싸운 이야기등 구경하며 다닌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 놓자 그 중 한 친구가
"그 훈장 혼내준 글
하나 소개해 보아라" 하며 조른다.
병연은 몇번 사양을 하다가
함경도 어느 서당에서 훈장을 혼내 준
다음과 같은 글을 소개하여 좌중을 웃겼다.
"두메구석에 완고한 백성이
고약한 버릇이 남아서..!"
"文章大家를 함부로 욕하며
허풍만 떠벌리는구나..!"
"조그만 조개비 잔으로
바닷물을 어찌 측량할 수가 있으며"
"쇠 귀에 경을 읽는 격이니
어찌 글의 뜻을 알겠냐...?"
"서속이나 훔쳐먹는 산골에
간악한 쥐같은 네놈이요..!"
"구름을 타고 넘는 붓끝에
龍을 날리는 내로다...!"
"마땅히 볼기를 쳐서 죽일 罪이로되
잠시 용서 하노니..!"
"다시는 어른 앞에서
버릇없는 行動을 하지 말지어다..!"
좌중은 모두 허리를 잡고 웃으며
다시 한번 병연의 재주를 아깝게 생각했다.
이렇게 고향에 온 병연은 삼년 동안이나
자기가 배운 서당에서 훈장 노릇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고향에서의 안일한 생활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
병연은 다시, 방랑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의 생리며 숙명인지 모른다.
방랑할 때 쓰던 삿갓과 죽장을 볼 때 마다 바람과 구름과 유유한 산수가 그리워졌다.
(이번에는 한양이나 가볼까?
아니면 경상도나 전라도를 가볼까?)
김병연, 김삿갓 !
그는, 오늘도 ...!
강원도 영월땅에서 全國 八道 모두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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