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비장의 술 秋露白

오토산 2022. 2. 1. 16:17

김삿갓 80 -
[비장의 술 秋露白]

​우리 집에 남 모르게 비장해 놓은 秋露白 이란 술을

그 김삿갓이란 사람에게 한번 맛 보여주면 얼마나 놀랄까?

추로백이라는 술은 수안댁이 몇 해 전에

어떤 고승으로부터 담그는 비법을 배워서 한 항아리 담가 놓은 것이었다.
양조법을 배우다가 시험삼아 한번 담가 본 것으로

돈을 받고 팔기 위해 담가놓은 술은 아니었다.

그러나 삿갓이라는 사람이 술맛을 그렇게나 잘 알고 있기에,

그 사람에게는 추로백의 맛을 꼭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수안댁은 며칠을 두고 망설이다가,

어느 날 마침내 용기를 내어 술 한병을 들고 조조를 일부러 찾아왔다.

​"며칠 전에 우리 집에 들렀던 삿갓이라는 분에게 이 술맛을 보여 주세요.

이 술은 "추로백" 이라고 하는데 술의 진정한 맛을 아는 그 양반에게

이 술맛을 한번 자랑하고 싶어서 그래요."

​그래서 조조는 문제의 술병을 들고 지금 김삿갓을 찾아 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조조는,

 

"수안댁이 이렇게 좋은 술을 보낸 것을 보니

모르기는 해도 자네를 마음에 두고 있는 모양인데

이번 기회에 수안댁과 잘 사귀어서 두 사람이 함께 지내면 어떻겠나?"하고

말했다.

​"예끼 이 사람아! 

내가 결혼을 못해 환장한 사람인줄 아는가?"

사실 김삿갓은 처자식이 엄연히 있는 몸이어서

새장가를 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알 턱 없는 조조는 두사람을 어떡하든지 결합시켜 주고 싶어했다.

​"자네가 돈이 없어

결혼을 겁내는 모양이나 그건 조금도 걱정말게.

수안댁이 돈은 먹고 지낼만큼 벌어 놓았으니

자네가 한 푼도 벌지 않아도 될 것이야."

​"자네가 무슨 소리를 하던간에

나는 결혼 할 형편이 안되니 그 문제는 이제 그만하게!"

​"자네도 우리들 처럼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야 우리 마을에서 함께 살게 될 것 아닌가?

수안댁은 그만하면 인물 좋은데 마음씨도 곱겠다,

살림살이 걱정도 없으니 술장수라고 덮어놓고 싫어할 것은 없지 않은가?"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수안댁이 술장사를 하기 때문에 결혼을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야.

그 점만은 오해하지 말아 주게."

​"그러면 자네는

언제까지나 홀아비로 늙어 죽을 생각이란 말인가?"

"나는 자네들에게 말을 안 했다 뿐이지 홀아비는 아닐세.

영월에는 처자식이 버젓하게 있는 걸..."

김삿갓은 마침내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고백해 버렸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다음날 조조는 친구들과 그 문제로 상의했는데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 친구는 오랫동안 독신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장가를 가려고 하지 않을걸세.

그러니 장가를 보내려면 우리들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것 같네."

​"삿갓도 삿갓이지만,

수안댁의 말도 들어 봐야 할 게 아닌가?"

​"그건 그래!

모르는 과부라면 한밤중에 보쌈을 해 올 수도 있지만,

수안댁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우선 수안댁의 마음을 넌즈시 떠보기로 하세."

 

​친구들은 암암리에 그 문제를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친구들은 술을 마시자고 하면서 김삿갓을 취향정으로 끌고 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 사람을 결합시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조는 취향정 문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게 수안댁, 어디 갔는가?

이 친구가 자네 집 술맛이 하도 좋다고 하기에

오늘은 일부러 이 친구를 모시고 왔네."

​수안댁은 무심코 나오다가 김삿갓이 함께 있음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놀란다.

"어머!

삿갓 어른도 오셨네요."
​김삿갓은 스스럼없이 마루로 오르며,

"일전에는 술에 취해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해 미안하게 됐네.

참, 자네가 보내 준 술은 조조와 함께 잘 마셨네.
어쩌면 술맛이 그렇게도 좋게 빚었는가? 고맙네.."
​그러자 수안댁이 크게 기뻐하며,

"제가 술장사 20년에

술맛 좋다는 칭찬을 들어 보기가 처음이어서,

무척 기쁘옵니다."
​그러자 조조가 너스레를 치고 나오는데,

"이 사람아!

수안댁이 우리한테는 나쁜 술만 먹이고,

자네한테만 좋은 술을 먹이니까 술맛이 좋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자 수안댁이

 

"마을 양반들은 아무리 좋은 술을 대접해도 칭찬해 줄 줄을 모르니까,
화가 동해 그랬지 뭐예요."

​"옳아!

이제야 자네 마음을 알겠네.

좋은 술은 아껴 두었다가

사랑하는 낭군님에게만 대접하고 싶어 그랬단 말이지?"

​그 바람에 좌중에는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

김삿갓도 덩달아 웃으며,

"아닌게 아니라,

일전에 자네가 보내 준 술맛은 정말로 좋았네.

그런데 술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그 술은 추로백이라는 술이었습니다."

"추로백...?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걸! 
그 술은 마셔보니 혀를 콕 쏘는 맛이 있는 데다

향기가 그윽한 점이 더욱 좋던데 그 술은 어떻게 빚은 술인가?"
​그러자 옆에 있는 다른 친구가 한 마디 한다,

"이 사람아!

우리는 술을 마시러 왔지 술 빚는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은 아닐쎄.
그런 애기라면 이따가 단둘이 이불 속에서 하시고,

우선 술이나 빨리 가져오게!"

​"어마!

아무리 농담이라도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이 사람아!

우리들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을 하고 있는거야.

이 사람이 자네하고 하룻밤 같이 지내고 싶다고 하기에,

우리들이 이 사람을 일부러 데리고 온 것이니

그리 알고 어서 들레술이나 가져오시게!"

​수안댁은 대답을 못 하고 얼굴을 붉히며

부랴부랴 술상을 차리러 달려나간다.
​수안댁이 부엌으로 나가 버리자 친구들이 김삿갓에게 중구난방으로 한마디씩 한다.

​"여보게 삿갓!

수안댁이 자네가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네.

지금까지는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길길이 뛰던 수안댁이
오늘, 자네 앞에서는 새색시처럼 얌전해졌구먼..."

​"오랫동안 혼자 살아오다가 맘에 드는 짝을 만났으니 그렇겠지,

그나저나 수안댁이 자네가 얼마나 좋았으면 추로백이라는 술까지 보내줬단 말인가?"

​"수안댁의 심정을 알고도 남음이 있지.

젊은 나이에 20년이 되도록 독수공방 으로 살아오다

이제야 마음에 드는 사내를 만난 셈이거든...!"
친구들이 한마디씩 씨부려대는 바람에 김삿갓은 어이가 없었다.

"허허허.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이 친구들은 앞서 김칫국 부터 마시고 있구먼 ..."
​그러자 조조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김삿갓을 나무라면서

"자네가 수안댁의 마음을 믿지 못하겠다면,

우리가 자네 앞에서 수안댁의 내심을 직접 물어 봐 주면 될 게 아닌가?"
​그때 수안댁이 술상을 들고 들어와 술을 손수 한 잔씩 따라 준다.

 

"안주가 벤벤치 못해 죄송해요.

어서 한 잔씩 드세요."
​그러자 조조가 술잔을 들어 올리며 수안댁에게 따지듯이 묻는다.

"이 술을 들기 전에,

수안댁에게 한 가지 꼭 물어 볼 말이 있네."

​"제게 무슨 말씀을 물어 보시겠다는 거예요?"

​"우리가 무슨 말을 묻든 간에 자네는 솔직하게 대답해 주어야 하네.

그런 약속이 있기 전엔 물어 보지도 않을테야."

​"무슨 얘기인지 모르지만

그리 대단스럽게 나오시니까 겁이 나네요."
수안댁은 곤혹스러운 얼굴을 하면서 김삿갓을 건너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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