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장난

오토산 2022. 2. 2. 07:26

김삿갓 82 -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장난]

"삿갓 어른! 죄송해요.
제가 왜 재혼을 할 수 없는 팔자인지,

솔직하게 말씀드릴께요."

그리고 수안댁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술주정을 하듯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공개 하였다.
수안댁은 결혼한 지 5년 만에 남편이 죽자,

삼년상을 깨끗이 치른 뒤에,
재혼을 하려고 망부(亡夫)의 혼백을 달래는 굿을 성대하게 해주었다.

그때,

그 굿을 주관한 무당은 70대의 할머니 무당이었는데,

죽은 남편의 혼백을 불러 놓고 한바탕 칼춤을 추어가며

넋두리를 한참 늘어 놓은 후,
문득 수안댁에게 다음과 같은 몸서리 치는 선언을 하는 것이었다.

"네 남편은 독주를 마시고 죽은 게 아니라,

바로 네가 청상살을 타고났기 때문에 죽은 것이로다.

그러므로 너는 재혼을 하더라도,

네가 타고난 청상살 때문에 서방을 또 잡아 먹게 되리라.
만약 서방이 죽지 않으면, 서방대신 네가 죽게 될 것이니,

너는 그리 알고 행여 재혼은 하지 말거라 ! "

 

실로 소름이 끼치도록 무시무시한 무당의 넋두리였다.
수안댁은 그 말을 듣고난 이후 재혼은 깨끗이 단념하고,

숫제 술장사로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계집이에요,

그러니 내가 아무리 삿갓 어른을 좋아하기로,

이런 팔자를 타고난 년이 어떻게 삿갓 어른과 결혼을 할 수 있겠어요."

수안댁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 같은 신세 타령을 늘어놓고 한숨을 쉬면서 술을마신다.
좌중은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수안댁의 말을 듣고나서는

어느 누구도 수안댁에게 김삿갓과의 재혼을 권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삿갓은 수안댁의 신세가 무척이나 측은하게 여겨졌다.

본인의 신세도 신세지만 그런 신세를 위로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격려와

위로의 말을 하기는 커녕 이러저러하면 서방이나
네가 죽게될 것이라는 악담에 얽힌 말을 쏟아낸 무당이 몹시 괘씸하게 여겨졌다.

(점이나 굿 같은 것은 혹세무민을 일 삼는 자들의 헛소리가 아니던가 ?

그런 자들이 무엇을 안다고 허튼 수작으로 남의 일생을 좌지우지 한단 말인가 ! )
김삿갓은 그런 생각이 들어,

 

"여보게 수안댁!

자네는 사람이 왜 이렇게 어리석은가? " 하고

수안댁을 정면으로 나무라 주었다

좌중은 물론,

수안댁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김삿갓은 다시 입을 열며 말을한다.

"무당의 넋두리라는 것은 순전히 허툰수작에 불과한 것이네.

그런 것을 철썩같이 믿고 재혼을 안 한다니 그런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는가."
그러자 수안댁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재혼을 했다가 남편이 또 죽으면 어떡해요.

팔자 도망은 누구도 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쓸데없는 소리!

팔자라는 것은 자기가 만들어 내는 것이지.

누가 갖다 주는 것은 아니야. 그러니까 굳센 신념을 가지고,

사람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라구."
김삿갓이 이같이 말을 마치자 친구들도 덩달아 박수를 치면서

"허긴 그래!

귀신이라는 것은 위해 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삿갓처럼 애초부터 무시해버리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야.
그러니까 결혼 문제는 본인들 끼리 잘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고,

이제부터 우리들은 술이나 먹자구! "

이리하여 모두들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술은 밤이 깊도록 계속되었다.
말끔한 결론이 나지 않은 김삿갓과 수안댁의 결혼문제가 마음에 걸렸던지

친구들의 빈 술잔은 김삿갓과 수안댁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히 술을 하는 김삿갓도,

수안댁도 그자리에서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김삿갓은 목이 말라 눈을 떠보니,
친구들은 어디로 갔는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머리맡에는 자리끼가 있어,

한 대접을 몽땅 마셔 버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자기 자신은 이불 속에서 자고 있었는데,

수안댁은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옆에서 허리를 꼬부리고

새우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보게!

친구들은 모두들 어딜 가고 우리 두 사람만 남아 있지? "

김삿갓은 수안댁의 어깨를 흔들어 깨워 보았다.

그러나 수안댁은 인사불성으로 잠만 자고 있었다.

 

(으흠 ...

친구들이 계획적으로 우리 두 사람만 남겨 두고 도망을 가버렸구나 ! )

그런 사실을 깨닫고 나자 별안간 야릇한 흥분이 느껴져왔다.

그러면서 옆에서 자고 있는 수안댁의 풍만한 육체를 아래 위로 훝어 보았다.

 

(이야 ! ......)

멀리서만 건너다 보던 여인을 눈 앞에 가까이 두고 보니 황홀할 지경이었다.

"여보게! 자는가 ? "

김삿갓은 이번에는 수안댁의 젖가슴에 손을 대고 흔들어 깨웠다.

그러나 수안댁은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던지, 완전히 인사불성이었다.

"여보게 !

추운 모양이니, 이불 속에 들어와 자라구."

김삿갓은 그렇게 말하며 여인의 풍만한 몸을 이불 속으로 끌어 들였다.
수안댁이 이불 속으로 들어오자

여인의 향기로운 냄새가 물씬 코를 찔러 못 견딜 지경이었다.

김삿갓은 수안댁을 가슴에 품어 안은 채 잠을 다시 청해 보았다.
그러나 너무도 오랫동안 금욕을 한 탓인지,

불길처럼 솟구쳐 오르는 욕정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안된다.

나는 누구하고도 결혼 할 처지는 아니지 않은가! )

책임을 질 수도 없으면서

남의 애틋한 정조를 유린 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눈알이 뒤집히도록 맹렬히 타오르는 욕정은

김삿갓의 절제력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바로 옆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는 여인의 숨결이

끊임없이 얼굴에 불어와 애써 누르고 있는 욕정을 자꾸만 북돋아 주었다.

 

(이 여인과 관계하는 남자는

모두가 죽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젯밤 수안댁이 취중에 들려 주었던 말이 번개같이

머릿속에 떠올라 등골이 오싹해 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지옥에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지금 이 순간에 와서는 그런 것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

김삿갓은 마침내 자신도 모르게 여인의 저고리를 벗기고 치마도 벗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인의 풍만한 유방을 사정없이 주물러대었다. 여인은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지

"어마 !

누구에요 ? "
호들갑스럽게 놀라면서 용수철 퉁기 듯 벌떡 일어나 앉는다.

"나야, 나!

놀라지 말고 이리와 누워요! "

김삿갓도 일어나 앉으며 달래듯 속삭이며 여인을 품속으로 끌어들였다.
수안댁은 상대방이 김삿갓임을 알자 마음이 놓이는지

"친구분들은 모두 어디 갔어요? " 하고

묻는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

모두들 도망을 가버린 모양이야.

그런 줄 알고 함께 누웁시다."

이렇게 말하면서 허리를 힘차게 끌어당기니

ㅇ여인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슬며시 품에 와 안긴다.
그리하여 사지백태를 녹여 버릴 듯한 뜨거운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여인의 입술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장장 15년 동안이나 독수공방을 해오다가 처음 만나는 남자이다 보니,
전신이 불덩이 처럼 타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바탕 뜨거운 포옹과 애무가 계속되다가

이윽고 사나이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여인의 몸을 덮어 누르려고 하였다.
그러자 지금까지 순순히 애무를 받아 들이던 여인이

별안간 사나이의 몸을 떠밀며 말한다.

"이것만은 안되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안되요! "하며

부르짖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제 와서,

여자편에서 거부한다고 곱게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 "

김삿갓은 체면 불고하고 우격다짐으로 여인의 다리틈을 파고 들었다.
그러나 사내가 모질게 덤벼들수록, 여인은 끈덕지게 거부하며 부르짖는다.

"삿갓 어른을 위해 이것 만은 안되요.
나는 청상살을 타고난 여자라서 나를 가까이 하셨다가는 큰일나세요."

무당의 예언대로 여인은 자신과 가까이 하는 김삿갓이

죽게 될 까 보아 몸을 허락하지 못하겠다는 소리다.

"무당의 넋두리는 미신에 불과한 것이래두

그러니 조금도 겁낼 것 없으니 내 말 들어요."

여인은 온갖 힘을 다하여 저항해 보았지만

힘 센 사나이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미 그 사내는 욕정이 화신이 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던가.

힘에 부친 여인은 어쩔 수 없었던지

온 몸에 힘이 풀리며 몸을 허락하면서 탄식하듯 뇌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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