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81 -
[취향정 수안댁의 폭탄선언]
곤혹스럽기는 김삿갓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분위기를 눙치기 위해 너털웃음을 웃어 보였다.
"아 사람들아!
술은 안 마시고 무슨 장난이 이렇게도 심하단 말인가?"
그러자 조조가 다시 손을 내저으며,
"자네는 끼어들 계제가 아니니까, 잠자코 듣기만 하게!
자, 수안댁은 우리들의 질문에 거짓 없이 대답을 하겠노라고
약속해 줄 수 있겠지?"
수안댁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좋아요.
약속할께요."
"그럼 됐네!
내가 이제부터 중대한 일을 물어 볼 테니,
자네는 똑똑히 들었다가 분명히 대답해주게!"
"자네는 우리들의 죽마고우인 김삿갓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사실이겠지?"
조조가 너무도 진지하게 물어보는 바람에,
방안에는 일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뜻밖의 질문을 받은 수안댁은 얼굴이 금새 붉어졌다.
"어마!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물어보시면 어떡해요?"
그러자 자리에 함께한 김삿갓의 친구들이 일제히 공박을 퍼붓는다.
"이 사람아!
약속을 해놓고 그게 무슨 소리인가?
여러 말 말고, 어서 대답이나 똑똑히 하게!"
수안댁은 한동안 몹시 난처한 기색을 보이더니,
문득 김삿갓에게 이렇게 묻는다.
"삿갓어른!
제가 솔직히 대답해도 괜찮을까요?"
그 바람에 좌중은
"와아!"하고 환호성을 올리며 제각기 한마디씩 놀린다.
"으와! 여필종부라고 하더니,
벌써부터 서방님 허락이 있어야만 대답하겠다는 말인가?"
"서방님 비위를 거슬렸다가는 시집을 못 갈 판이니,
그럴수 밖에 없지 않겠나?
여보게 삿갓!
어서 솔직히 대답하라고 허락을 하게!"
그러자 김삿갓이 좌중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어색한 어조로 말을 하는데,
"그거야 수안댁이 마음대로 대답할 일이지,
구태여 나까지 걸고 넘어갈 건 없지 않은가!"
좌중은 또다시 환성을 올린다.
"낭군님 허락이 내렸으니,
수안댁은 어서 솔직히 말해 보라구!"
수안댁은 대답이 난처한지 한동안 고개를 수그리고 침묵에 잠겼다가,
어떤 결심이 섯는지 고개를 힘있게 들며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저는 술장사 15년 동안,
우리 집 술맛이 좋다는 칭찬을 들어 본 일이 한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 집 술맛을 제대로 알아 주는 진짜 술꾼이
한 분도 없는것이 얼마나 섭섭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지난번에 삿갓 어른은 우리 집에 처음으로 오셔서
술맛이 좋다고 대번에 칭찬을 해 주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제야 진짜 술꾼을 만나 뵙게 되었구나 하고,
여간 기쁘지 않았어요."
그 대답을 듣고, 좌중에는 또다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만했으면 더 물어 볼 것도 없네.
두 사람 결혼은 이미 결정된 사실과 다름 없으니까 이제는 축배를 들기로 하세!"
일동은 제각기 술잔을 높이 들며,
"자!
우리들의 죽마고우인 김삿갓과 취향정 수안댁과의
백년가약을 위해 다같이 축배를 올리세!"
이리하여
두 사람의 결혼이 진짜로 성립되기나 한 것처럼 축배가 빈번히 오가는데,
수안댁은 술을 몇 잔 받아 마시고 나더니 문득 다음과 같은 폭탄 선언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제가 삿갓 어른을 좋아하는 것만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저는 누구하고도 결혼만은 할 수 없는 몸이에요."
수안댁의 폭탄 선언에 좌중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놀라 묻는다.
"이 사람아 !
다 지어 놓은 밥에 재를 뿌려도 분수가 있지,
이제와서 결혼을 못 한다는 것은 무슨소린가?"
그러자 수안댁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저같이 못난 여자를 위해 이처럼 애써 주시는 여러분의 성의는 여간 고맙지만요,
또 저도 삿갓 어른이 첫눈에 좋아진 것도 사실이구요.
그러나 저는 누구하고도 결혼할 수 없는 팔자를 타고났어요."
"결혼을 할 수 없는 팔자를 타고났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안 할 말로, 수안댁은 결혼도 했었지 않은가?"
수안댁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그건 다 옛날 얘기죠.
지금은 안돼요."
"그렇다면 혹시,
달리 둔 애인이라도 있는것 아닌가?"
"애인은 무슨 애인이에요."
"애인도 없으면서 결혼도 못하겠다면,
아닌 말로 수안댁 보물단지가 병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누군가 해괴한 말을 물어 보는 바람에, 좌중은 일순간 포복절도를 하였다.
그러나 수안댁은 웃기는 커녕,
땅이 꺼질 듯한 한숨조차 쉬면서 넋이 나간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나, 술 한 잔 주세요.
술이나 한 잔 마시고 나서 말씀 드릴께요."
그리고 술 한 잔을 단숨에 주욱 들이킨 수안댁은 탄식하듯이 이렇게 말을한다.
"내가 병신은 왜 병신이겠어요,
병신이라면 5년 동안이나 결혼 생활을 어떻게 계속해 왔겠어요?"
"병신도 아니라면서
어째서 결혼을 못 하겠다는거지?"
"내 팔자가 결혼을 못 하도록 되어 있는 걸 어떡해요.
무슨 년이 그런 팔자를 타고났는지, 생각하면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렇게 탄식하는 수안댁의 음성은 떨리기까지 하였다.
김삿갓은 애당초 누구하고든 결혼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러나 수안댁이 무엇 때문에 결혼을 못하겠다는 것인지,
그 점 만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그리하여 수안댁에게 술을 권하며, 이렇게 물어 보았다.
"여보게 수안댁!
내가 물어 보기엔 참 쑥스럽네만,
자네는 무엇 때문에 결혼을 마다하는가?
죽은 남편을 위해 수절을 하겠다는 말인가?"
"수절이오?
나같이 천한 년이 남편 죽은 뒤에 3년 동안이나 상을 입어 주었으면 됐지.
그 이상 무슨 수절이 필요하겠어요."
"그렇다면
어째서 재혼을 못 할 팔자라는 말인가?"
여자들은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는 수줍움을 타는지,
김삿갓이 정색을 하고 물어보자, 얼굴만 붉힐 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좌중은 그 광경을 보자, 중구난방으로 수안댁을 놀려대기 시작하였다.
"자네가 무슨 숫처녀라고
부끄러움을 타는가?"
"모르는 소리!
여자는 아무리 늙어도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는 부끄럼을 타는 법이라네!"
"수줍어 하는 것은 자유지만,
삿갓에게 만은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지 않으면 삿갓이 섭섭하게 여길 게 아닌가?"
수안댁은 그런 놀림에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김삿갓의 얼굴을 그윽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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