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365)
공명의 공성지계
공명은 성루에서 내려와,
군사들에게 명을 내린다.
"모든 군사들은 들으라.
지금부터 성에 꽂혀 있는 모든 깃발을 내려라.
그리고 모든 군사는 소리없이 숨어 있으라.
만일 명을 거역하고 함부로 나다니는 자가 있게 되면 참형으로 다스리겠다."
"........"
"그리고 성문을 활짝 열어 놓고
먼지가 일지 않도록 물을 뿌리고 깨끗이 쓸어 놓도록 하여라!"
명령지하에 서성의 모든 깃발이 거두어지고,
촉의 군사는 자취도 없이 숨어버렸다.
이번에는 장수들을 불러 이렇게 명한다.
"사문(四門)을 활짝 열어 놓고 깨끗이 쓴 뒤에 물을 뿌리고
똑똑한 군사 열 명을 골라 뽑아 민간인으로 옷을 갈아 입혀 성문 앞을 지키게 하라.
만약 위병이 눈앞에까지 다가오더라도 놀라거나 겁내지 말고 태연히 서 있게 하라."
모든 군사들이 공명의 분부대로 거행하자,
공명 자신은 학창의를 입은 채로 머리에는 윤건을 쓰고
성루에 올라가며 거문고를 가져오라 명하였다.
잠시 후,
서성의 성문 앞에는 벌판을 가득 메운 십오만 위군이 나타났다.
위군이 서성에 이르러 동향을 살펴 보니,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앞에서는 양민이 빗자루로 성문 앞을 쓸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찾던 공명은
성루에 높이 올라 앉아 홀로 거문고를 뜯고 있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예사스러운 일이 아닌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서성을 바라보고 짓쳐 들어오던 위군들은
유유자적한 공명의 거문고 소리에 놀라 행군을 멈추었다.
"앗!
제갈공명이 성루에 홀로 앉아 거문고를 타고 있다니...!"
위군들은 너무도 의외의 사실에 놀라,
곧 사마의에게 알렸다.
"뭐?
제갈양이 성루에서 홀로 거문고를 타고 있더라고?"
사마의는 너무도 의외의 말에 자기 귀를 의심하며
곧 앞으로 나와 자기 눈으로 확인하였다.
사마의가 서성 성루를 바라보니,
과연 공명은 다락 위에 높이 앉아 태연하게 거문고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십오만 적군이 눈앞에 닥쳐와 있음을 공명이 모를 리 없건만
그는 무아의 경지에서 거문고의 줄만 튕기고 있는 것이었다.
(아! 제갈양이 무슨 계교가 있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앞에서 저렇듯 태연자약할 수가 있을까?)
사마의는 홀연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쳐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명이 뜯는
청아한 거문고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음...!
저 곡은 청산유수가 아닌가...?)
사마의는 자신도 즐겨 타는 곡을 공명이 타고 있기에
편안한 얼굴로 거문고 소리를 마냥 듣고 있었다.
아들 사마소가 정신없이 거문고 소리에 심취한 아버지에게 말한다.
"빈 성처럼 보입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거문고 소리에 눈을 감고 있던
사마의가 비로서 입을 열어 말한다.
"명이다.
군사를 뒤로 돌려 철수하라."
"네?
군량이 저기 있는데 어찌 철수하라 하십니까?"
사마소가 불평을 말한다.
그러자 마상의 사마의가 성루의 공명을 향하여 불현듯 소리친다.
"제갈양 !
매복을 해 놓은 것이냐, 응?"
그러나 공명은 대답도 하지 아니하고
거문고만 계속해 타고 있었다.
"이런 성이면 매복을 해놔도 얼마 안 됩니다.
명해 주십시오.
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마소가 자원하며 아버지를 졸랐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성 안에는 얼마 없겠지.
허나, 성 밖의 양쪽 산을 보아라.
제갈양은 신중한 자라 모험은 안 한다.
그런 자가 저리 성문을 열어놓고 거문고나 타고 있겠느냐.
철수해 !
지체하면 산중 복병들이 나타날 것이야.
철수! 어서!"
사마의는 불현듯 공포가 엄습하여 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심상치 않은 아버지의 행동거지를 보고
사마소가 뒤로 돌아서서 병사들에게 명한다.
"철수하라! 철수!"
명이 떨어지자 서성 성문 앞까지 몰려 들었던 위군은
습격에 경계하면서 서서히 철수를 하기 시작하였다.
공명은 다락에서 거문고를 계속해 뜯으면서
철수하는 위군을 고요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위군이 물러가 보이지 않기 시작하자
휘하 장수가 성루로 올라와,
"승상!
사마의가 십오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가
승상께서 거문고 뜯는 모습을 보고 황망히 쫒겨가 버렸으니,
이게 웬일이옵니까?"하고,
말하니 공명이 그제서야 거문고 연주를 멈추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입을 열었다.
"하늘이 도왔구나.
사마의는 신중한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내가 거문고를 태연하게 타고 있는 것을 보고
필시 복병이 있을 것으로 알고 물러간 것이다.
내 워낙 위험한 짓은 극력 삼가는 편이나,
이번만은 만부득이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공명이 성루에서 내려오니 촉병들은 저마다 탄복을 마지 않았다.
공명은 다시 이렇게 명하였다.
"다시 남은 군량과 무기를 챙겨서 속히 여길 떠나자.
그리고 사마의의 군사는 이제부터 북산(北山)으로 진군하리니,
그곳에는 관흥과 장포가 매복해 있어서 위군은 적지않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며
철수하는 우리의 뒤를 쫒지는 못할 것이다."
과연 공명의 예상대로 사마의는 북산으로 방향을 바꾸어 철수하였다.
그러다가 관흥, 장포의 기습을 받아 크게 패하며 후퇴하였다.
관흥과 장포는 장령을 굳게 지켜, 패퇴하는 적을 쫒지는 아니하고
노획한 무기와 식량을 한중으로 후송하였다.
한편,
조진은 공명이 사마의의 대군을 물리치고
한중 방면으로 철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몰고 뒤를 쫒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도중에서 마대와 강유의 복병에게
기습을 받아 크게 패하고 후퇴하였다.
공명은 한중으로 무사히 회군하자 장수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위연은 거문고로 십오만 적군을 물리치고 돌아온
공명의 지략에 감탄하며 말한다.
"승상의 귀신같은 계략에 감탄을 금치 못 하옵니다.
또 소장도 승상의 말씀대로 양평관에서 화살로 적군을 맞아
수천의 적을 사살했습니다.
듣기론 조위(曺魏)의 삼대를 섬겨온 상장군 서황도 맞았다 하니,
죽었을 겁니다. 하하하하!"
위연은 역시 무장답게 호탕하였다.
그리고 무조건 빨리 달아버리고 급격히 식어버리는 전형적인 무장이자 호탕한 장군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세심하여 실수를 하지 아니하고 매사에 사려깊은 생각을 하여
조심스럽게 행동으로 옮기는 성격이 아니던가?
그러하기에 평소 같았으면 위연의 호탕한 웃음 소리에도
공명이 위연을 추켜세울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가 사태이니 만큼 이번에는 위연을 크게 칭찬해 주었다.
"고생이 많았네.
자네가 양평관을 사수해준 덕분에 아군이 무사히 촉중에 돌아올 수 있었네.
매우 수고가 많았네.
헌데 자룡이 어찌 됐나 모르겠군..."
공명은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은
조운(趙雲 : 字, 자룡)이 걱정되어 말하였다.
그때였다.
밖에서 경계병이 큰소리로 외친다.
"조 장군이 오셨습니다!"
"응?"
공명이 그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룡,
괜찮은 것인가?"
공명은 조운의 행색을 보고 걱정하며 물었다.
그러자 자룡은,
"아, 몸에 묻은 피는
다 위군의 피입니다."하고,
자신의 몸에 뭍은 피를 보고 걱정하는 공명을 안심시켰다.
그러자 공명과 함께 돌아온 고상이,
"상황이 이랬습니다.
조 장군은 소장에게 철수를 명해 놓고,
홀로 후방에서 위군 장수 세명을 차례로 물리치자
추격병들이 접근을 못했습니다.
승상!
조 장군 휘하의 병사들은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무기조차 잃지 않고 귀환했습니다."하고,
보고한다.
"아, 아주 잘하셨소."
공명이 감사를 담아 조운에게 반절을, 조운도 이에 맞절을 해보인다.
그만큼 공명의 조운에 대한 믿음은 지극했던 것이다.
공명이 이어서 ,
"공로가 큰 조자룡 장군에게
황금 오백 근과 비단 일만 필을 상으로 하사하니 장군은 받으시오."하고,
크게 칭찬을 하였다.
그러나 조운은 끝끝내 사양하고 받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장이 이렇다할 공적도 없이 무슨 상을 받는단 말입니까.
승상께서 굳이 내리시려면 상품을 창고에 고이 간직해 두셨다가
날씨가 추워지거든 모든 군사들의 방한비(防寒費)로 써주시면 고맙겠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공명은 크게 감탄하였다.
"생전에 선제(先帝: 유비)께서 자룡의 충성을 칭찬하셨는데,
오늘보니 자룡은 충성 뿐만 아니라 의기 또한 두터운 사람이오.
과연 자룡은 만인의 사표(師表)이시오."
"......"
자룡이 공명의 칭찬에 대한 대답을 못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깬 것은
군막 밖의 외침 때문이었다.
"마속과 왕평이 귀환했습니다!"
366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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