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404)
강유의 두 번째 북벌
강유(姜維)는 성도(成都)에서
동오(東吳)의 제갈각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고 고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 입궁하여 후주에게 아뢰었다.
"폐하,
동오 태부 제갈각이 위(魏)를 치려고 군사를 일으켰사온데
우리 촉에게 협공을 하자는 제의를 해왔습니다.
기회가 다시 온 것 같습니다.
부디 대군을 일으켜 역적들을 토벌하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후주 유선은
실패로 돌아갔던 강유의 첫 번째 북벌 출정을 생각하면 다소 염려가 되었지만
다부진 강유의 눈빛을 보며 조심스럽게 강유의 청을 윤허하였다.
"출정을 허락하니,
이번에는 성공을 거두길 바라오."
"황공하옵니다.
기필코 이번만큼은 중원을 회복하여 돌아오겠습니다!"
강유가 이십만 대군을 일으켜 두 번째로 위나라 정벌에 나선 때가
촉한(蜀漢) 연희(延熙) 16년(253) 가을이었다.
강유는 요화(廖化)를 좌선봉장으로,
장익(張翼)을 우선봉장으로,
하후패(夏侯覇)를 참모로,
장의(張嶷)를 운량사(運糧使, 군량 보급 책임자)로 삼았다.
강유는 하후패와 작전을 상의했다.
"지난번 옹주(雍州)를 취하고자 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소.
분명 위나라가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을테니
다시 옹주로 가는 것은 안 될 것이오.
공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강유의 물음에 하후패가 대답한다.
"농상(隴上)의 여러 군(郡) 중에
남안(南安)에 곡식과 재물이 가장 풍부합니다.
그곳을 얻으면 중원 진출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실패했던 가장 큰 요인은
강병(姜兵)이 오지 않았기 때문인데,
강족에게 사절을 보내
농우(隴右)에서 병력을 합치자고 약속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농우에서 합친 병력으로 석영(石營)으로 나아가
동정(董亭)을 거치면 곧바로 남안을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의견이오."
강유는 기뻐하며 하후패의 의견에 따라 작전에 착수했다.
즉시 극정(郤正)을 사신으로 삼아
강족 땅에 금은보화와 촉의 특산물 비단을 들려 보냈다.
강왕 미당(迷當)은 강유가 보낸 후한 예물에 화답하여 바로 오만의 군사를 일으켰다.
맹장 아하소과(阿何燒戈)를 대선봉으로 임명하여 남안을 향해 출동하게 하였다.
위의 좌장군 곽회(左將軍 郭淮)는
촉의 침공 소식을 듣자마자 이를 급히 낙양에 알렸다.
곽회의 급보를 받은 사마사가 제장들을 불러 모았다.
"촉이 남안으로 향하고 있다.
누가 나가서 싸우겠는가?"
사마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보국장군 서질(輔國將軍 徐質)이 나서서 말한다.
"제가 가겠습니다!"
사마사는 서질의 용맹이 남다르다는 것을
평소부터 알고 있던터라 크게 기뻤다.
"좋다!
보국장군 서질을 대선봉으로 삼겠다.
사마소를 대도독으로 임명하니 농서 지역으로 진군하라!"
사마사의 명에 따라 사마소의 군은 농서로 향했다.
위군이 동정 땅에 이르렀을 때, 뜻밖에도 강유의 군대와 마주쳤다.
양쪽의 군사는 곧바로 진을 갖추고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위의 선봉장 서질이
먼저 개산대부(開山大斧, 큰 도끼)를 휘두르며 말을 휘몰아 나왔다.
촉군에서는 요화가 기세 좋게 달려 나와 서질에게 맞섰다.
하지만 요화는 불과 서너합만에 서질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패하여 물러났다.
요화에 이어 장익이 창을 휘두르며 뛰쳐나왔으나
장익 또한 서질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요화와 장익을 물리친 서질은
그대로 전군을 휘몰아 촉군에게 들이닥쳤다.
촉군은 혼비백산하며 삼십여 리나 쫓겨갔다.
사마소는 더이상 추격하지 않고 군사를 거두어
본진으로 돌아가 영채를 세웠다.
변변히 힘도 써보지 못하고 패배한 강유는
다시 하후패와 작전을 상의했다.
"서질이란 놈의 기세가 사나워
서질이 있으면 일이 잘 풀리지 않겠는데 어쩌면 좋겠소?"
하후패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강유의 말에 답한다.
"우리가 싸움을 걸어서 거짓으로 패한 척하고
서질을 우리가 매복한 곳까지 끌어들이면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강유는 곧바로 하후패가 내놓은 의견에 답한다.
"그건 안 될 것이오.
사마소가 누구요?
중달(仲達, 사마의의 자)의 아들이오.
병법을 모를 리가 없소.
지세를 살펴서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절대로 우리 매복지에 발을 들이지 않을 거요."
"달리 좋은 계책이 있으십니까?"
매복계를 쓰자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강유에게
하후패가 좋은 생각이 있는지 묻는다.
"가만 보자......
그동안 위군은 여러 차례 우리의 군량 보급을 끊어서 재미를 보았소.
이걸 역이용하면 어떨까 싶소.
유인계(誘引計)를 씁시다.
이것이라면 서질을 죽일 수 있을 것이오."
강유는 요화와 장익을 각각 불러서 은밀하게 지령을 내렸다.
명을 받은 두 사람이 물러가고,
강유는 군사들을 시켜 길에 철질려(鐵蒺藜, 땅에 꽂아서 적의 침입을 막는 쇠꼬챙이)를 깔고,
영채 밖에는 녹각(鹿角)을 설치하여 마치 지구전(持久戰)에 대비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서질이 매일 촉군의 영채 앞으로 와서 싸움을 걸었지만 촉군은 일절 반응을 하지 않았다.
서질이 며칠 동안 헛물을 켜는 동안 위의 정탐꾼이 촉군의 소식을 실어 왔다.
정탐꾼이 사마소에게 고한다.
"촉군이 철롱산(鐵籠山) 뒤쪽 기슭에서
목우(木牛)와 유마(流馬)로 군량과 마초를 옮기고 있습니다.
그 규모를 보아하니 장기전에 대비하면서
강병의 지원이 있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정탐꾼의 말에 사마소는 바로 서질을 불러들여 말한다.
"우리가 지난날에 촉군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군량 수송로를 끊었던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지금 촉군이 철롱산 뒤에서 군량을 나르고 있는 모양이니
그대가 군사 오천을 데리고 나가 저들의 보급로를 끊도록 하라.
그리하면 촉군은 알아서 물러날 것이다."
서질은 사마소의 명령을 받잡아
그날밤 초경(初更)에 군사를 이끌고 철롱산으로 나갔다.
과연 그곳에서는 군사 이백여 명이 백여 마리 목우와
유마에 군량과 마초를 그득 싣고 운반하고 있었다.
위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촉군의 수송병에게 들이닥쳤다.
선두에 서질이 우뚝 서자 촉군은 군량을 모조리 버리고 달아나버렸다.
서질은 병력을 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군량을 본채로 실어가게 하고,
절반은 달아나는 촉군의 뒤를 쫓게 했다.
자신도 촉군의 뒤를 따라 말을 내달렸다.
촉군의 뒤를 십여 리 남짓 쫓았을 때,
촉군이 버리고 간 듯한 수레와 장애물들이 서질의 앞을 가로 막았다.
서질은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가 나서 저것들을 모조리 치워라!"
군사들이 말에서 내려서 장애물들을 치우고 있는데
갑자기 길 양 편 숲 속에서 불길이 거칠게 일기 시작했다.
"복병이다!
돌아가라!"
서질은 계책에 빠진 것을 알고 군사들에게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자신도 말머리를 돌려서 오던 길로 도망치는데 뒤쪽의 비좁은 길에도
어느새 장애물이 어지러히 놓여 있어 앞길을 막았다.
그리고 곧 그곳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서질은 군사들을 이끌고 매캐한 연기 속으로 뛰어들어
간신히 불길 바깥으로 탈출했다.
화염에서 벗어나서 한숨 돌리려는데
이번에는 포향이 울리더니 좌우에서 촉의 복병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왼쪽에서는 요화가, 오른쪽에서는 장익이 군사들을 몰고 나와
위군에게 무차별 공격을 퍼부으니 위군은 참패를 당했다.
서질은 죽을 힘을 다해 적을 헤치고 도망쳐 나왔으나,
사람도, 말도 모두 지쳐서 겨우 도망칠 힘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앞에서 다시 한 무리의 군사가 달려 나오더니
서질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은 강유가 거느리는 군사였다.
강유가 창을 들어 서질을 향해 내리 꽂았다.
강유의 창은 서질의 말에 꽂혔다.
말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자
말 위에 있던 서질도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서질이 바닥을 구르자 촉군들은 일제히 창과 칼을 들고
서질에게 달려들어 서질을 죽여버렸다.
서질이 절반으로 나누어 노획물을 옮기게 하였던 군사들은
운반 도중에 하후패의 군사를 만나 모두 사로잡혀 촉에 투항했다.
하후패는 위군의 옷과 갑옷을 벗겨 자신의 군사들에게 입혔다.
그리고 위군의 말을 타게하고 위군의 깃발을 휘날리며
위군의 영채로 향하도록 했다.
영채의 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아군이 돌아온 줄 알고
문을 활짝 열어 위군으로 위장한 촉군을 영채 안으로 들여보냈다.
위의 영채 안으로 들어온 하후패의 군사들은 이리저리 날뛰며
영채 안팎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습격에 놀란 사마소는 황급히 말에 올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쪽에서 요화가 군사를 거느리고 사마소를 막아섰다.
사마소가 뒤를 돌아 다시 도망치려는데
이번에는 강유가 군사들을 몰고 지름길에서 뛰쳐 나온다.
사방을 둘러봐도 탈출할 길이 없었다.
그나마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철롱산 꼭대기였다.
사마소가 군사들을 이끌고 철롱산에 올라 그곳을 점거했다.
철롱산은 원래 길이 외길이고,
사방이 모두 깎아지르는 험준한 절벽이라
도망칠 장소로는 적당하지 않았다.
게다가 산꼭대기에 있는 유일한 샘물은
수량이 백명 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육천 명에 이르는 사마소의 군대가 마시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사람과 말이 꼼짝없이 갈증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마소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아......!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하고,
탄식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
주부 왕도(主簿 王韜)가 사마소에게 말한다.
"옛날에 한나라 경공(耿恭)이
흉노족(匈奴族)에게 포위되는 곤경에 처했을 때,
우물에 축원을 올려 물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군께서도 그 방법을 따라 샘물에 빌어보심이 어떨른지요?"
사마소는 혹시나 하는 기대로 왕도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먼저 샘물에 두 번 절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기 시작한다.
"하늘이시어!
이몸이 칙명을 받들어 촉군을 물리치러 왔습니다.
사마소가 죽는 것이 마땅하다면 샘물이 마르게 하시고,
저의 수명이 다하지 않은 것이라면
감천(甘泉)을 내리시어 생명을 살려주시옵소서.
간절히 비옵니다!"
사마소가 축원을 마치기가 무섭게 샘물이 솟구쳐 나온다.
덕분에 육천의 군사와 군마들이 모두 넉넉히 목을 축이고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강유는 사마소가
도망친 철롱산을 에워싸고 제장들에게 장담한다.
"지난날 제갈 승상께서 상방곡(上方谷)에서 사마의를 다 잡아놓고도
끝내는 잡지 못하여 내 가슴 속에 한으로 남아 있었소.
오늘 그 아들 사마소를 내 손으로 잡게 되어
기쁨을 이로 말로 다 할 수가 없소!"
옹주 자사 곽회는
사마소가 철롱산에서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구원병을 일으켜 철롱산으로 떠나려고 하였다.
하지만 떠나려는 곽회를 진태가 만류한다.
"강유는 강병과 합류하여
먼저 남안군을 가져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 강병도 도착을 했는데 만약 장군께서 군사를 이끌고 떠나시어
이곳이 비면 강병은 틀림없이 우리 뒤를 치려 할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우선 강병에게
우리가 거짓 항복을 한 다음에 강병을 물러가게 하고
, 강병이 완전히 철수하면 철롱산의 위기를 해결하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군.
그렇다면 내가 군사 오천을 줄테니
그대가 강병의 영채로 가서 투항한 척하라."
곽회는 진태의 계책을 따르기로 한다.
진태는 강병의 영채에 찾아 갔다.
갑옷과 투구를 벗어던지고 무기도 멀찍이 내려 놓고는
강왕 미당의 장막에 들어가 엎드려 울며 고한다.
"곽회가 늘 잘난 체를 하며
저를 모함하고 죽이려고 하기에 강왕께 투항하고자 찾아왔습니다."
강왕 미당은 진태의 말을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진태에게 묻는다.
"우리는 촉군과 협공하여 위군을 치려고 하는데
좋은 계책이 있는가?"
진태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남안을 얻으시려면 우선 옹주 자사 곽회를 물리치셔야 합니다.
곽회의 군대에 대한 정보라면 소장이 모두 알고 있으니 마음 놓으십시오.
오늘밤에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곽회의 영채를 덮치시면 반드시 성공하실 것입니다.
우리 군사가 도착했을 때, 안에서 접응할 세력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미당은 큰 전과를 올릴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아하소과를 불러다 진태와 함께 위군 영채를 야습하도록 명을 내렸다.
아하소과는 진태가 이끌고 온 군사들을 뒤에 세우고
진태와 함께 앞장서서 곽회의 영채로 나아갔다.
이경(二更) 무렵에 야습군이 곽회의 영채에 도착하니,
영채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진태가 먼저 말을 몰아 영채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하소과도 창을 비껴들고 진태의 뒤를 이어
말을 달려 영채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앗!"
아하소과는 비명을 내지르며
말과 함께 깊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대장이 사라진 강병들이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거짓 투항한 진태의 군대와 곽회의 군대가 합심하여 강병을 무찔렀다.
살아남은 병사들 몇은 위나라에 투항하고,
함정에 빠진 아하소과는 굴욕감에 못 이겨 자결하고 말았다.
곽회와 진태는 군사들을 이끌고 곧바로 강왕의 영채를 기습했다.
강왕 미당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얼른 말을 타고 달아나려 했으나,
금세 위군의 병사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위병들은 미당을 결박지어 곽회 앞에 세웠다.
곽회는 얼른 말에서 뛰어 내려 손수 결박을 풀어주고
좋은 말로 미당을 위로한다.
"우리 조정에서는
지금까지 그대가 의리가 있고 충성심이 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찌하여 촉나라를 도우려 하시오?"
미당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한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시옵소서."
곽회는 미당을 일으켜 세우고 말한다.
"공이 우리 군의 선봉이 되어
철롱산의 포위를 풀고 촉군을 물리치면 죄는 사라질 것이오.
일이 성공하기만 하면 내가 직접 천자께 아뢰어 후한 상을 내리시도록 하겠소."
"장군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미당은 곽회의 명에 따라 위군의 선봉장이 되었다.
미당의 뒤로 강병과 위군의 본대가 행렬을 이루어 철롱산으로 향했다.
강병과 위군이 철롱산에 도착한 것은 삼경(三更) 무렵이었다.
미당은 우선 강유에게 전령을 보내어 강병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강유는 반가워하며 미당을 맞이하였다.
미당이 데리고 온 군사들 대부분은 영채 밖에 머물렀고
백여 명의 군사들만 미당과 함께 중군 장막 앞에 섰다.
미당과 함께 영채 안으로 들어간 군사들 중에는 위군도 여럿 섞여 있었다.
강유가 하후패와 함께 직접 미당을 맞이하기 위해 나왔다.
"대왕께서 몸소 왕림하시다니 어쩐 일이시오?
남안 공격은 어떻게 되고?"
미당이 강유의 말에 대답도 하기 전에
갑자기 뒤에 있던 장수가 군사들을 몰아서 달려 나온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놀란 강유가 얼른 말을 집어타고 달아난다.
강병과 합세한 위군이 영채 안을 누비며 공격을 가하자 촉
군 진영은 혼란에 빠져 변변한 공격을 하지 못한다.
병사들은 그저 각자 제 살길을 찾아 도망치기에 바쁘다.
강유는 급히 말에 올라 대혼란 속에서 빠져나오기는 하였으나
너무 급하게 도망치다보니 수중에 칼 한 자루가 없었다.
오직 허리에 차고 있던 활과 화살통이 전부였는데,
화살은 도망 중에 모두 떨어트렸는지 화살통이 텅 비어 있다.
활이 있어도 화살이 없으니 무기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딜 도망치느냐!
강유! 거기 서라!"
곽회가 강유의 등 뒤를 바짝 쫓아 온다.
곽회는 강유에게 무기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강유에게 창을 겨누며 무서운 기세로 따라 붙는다.
강유는 어쩔 수 없이 빈 활을 들어 십여 차례 활시위를 당긴다.
곽회는 시윗소리가 나서 이리저리 몸을 피했는데,
가만 보니 시윗소리만 날 뿐 화살은 보이지 않자
강유에게 화살이 없음을 알아차린다.
곽회는 들고 있던 창을 말 안장에 걸고
강유를 향해 화살을 힘차게 날린다.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에 강유는 몸을 피하면서
손을 내밀어 화살 하나를 낚아챈다.
그리고 곽회가 더 거리를 좁혀 오도록 말이 달리는 속도를 늦춘다.
곽회가 비로소 사정권 안에 들어왔을 때,
강유는 낚아챘던 화살을 활에 걸어 곽회의 머리를 겨냥하고 시위를 당긴다.
활이 짧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곽회를 향해 날아간다.
화살은 곽회의 머리에 박힌다.
곽회는 그대로 말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강유는 곽회를 죽이려고 곽회에게 달려갔으나
위의 추격병이 몰려오는 바람에 곽회의 창만 빼앗아서 다시 달아났다.
위군은 더이상 강유를 추격하지 않고 곽회를 구하여 영채로 돌아갔다.
영채로 돌아가서 곽회의 머리에서 화살촉을 뽑았으나 출혈이 멎지 않았다.
결국 곽회는 강유의 화살 한 방으로 죽고 말았다.
철롱산에 갖혀 있던 사마소는
군사들을 이끌고 강유를 추격하다가 강유를 잡을 가망이 보이지 않자
추격을 그만 두고 돌아갔다.
강유와 마찬가지로 급하게 도망쳤던 하후패도
목숨을 부지하여 마침내 강유와 만났다.
강유는 많은 인마(人馬)를 잃고 얼마 안 남은 패잔병을 수습하여
한중(漢中)으로 쓸쓸히 퇴각했다.
강유의 두 번째 북벌 시도도 실패로 끝난 것이다.
하지만 위의 맹장 곽회와 서질을 해치워 위나라의 기세를 꺾고
촉나라의 위엄을 떨쳤기에 강유에게 죄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405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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