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과응보(因果應報)

오토산 2022. 5. 7. 12:31

삼국지(三國志) .. (405)
인과응보(因果應報)

사마소는 강병들의 노고를 치하하여

제 나라로 돌려보내고 낙양(洛陽)으로 개선하였다.
오와 촉을 물리친 사마 형제의 위세는 누구도 따를 자가 없어

조정의 대권은 사마 형제의 손 안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감히 사마 형제의 말에 토를 달 수 없었으며,

심지어 위주 조방(曹芳)조차 사마사를 두려워하였다.
사마사가 조회(朝會)에 입조할 때마다 조방은 두려움에

절로 몸서리가 쳐지고 등에는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어느 날에는 조회 시간에 사마사가 허리에 칼을 차고 어전에 올랐다.

 

신하가 황제를 알현하는데 허락없이 몸에 무기를 지니는 것은

불손(不遜)이라는 단어로도 설명되지 않는 심각한 일이었다.

그런데 조방은 사마사를 꾸짖기는 커녕 용상(龍牀)에서 몸소 내려와 사마사를 맞이하였다.
사마사는 호탕한 웃음을 웃고는 조방에게 말한다.

 

"천자께서 어찌 신하를 이렇게 맞이하십니까?

군신(君臣) 간에 이런 예는 없사옵니다.

폐하께서는 마음 편안히 지내시고 어서 용상에 오르시지요."

 

조회가 시작되고 신하들이 여러 정사들을 아뢰는데,

사마사는 모든 일들을 황제에게 여쭙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결정했다.
조회가 끝나자 사마사는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오만한 태도로

조정을 나섰다. 사마사가 수레에 몸을 싣고 궁궐 밖으로 나서는데,

수천의 호위병들이 중무장을 하고 앞뒤로 따라 붙었다. ​

반면,

조방이 후전(後殿)으로 물러가는데 그를 따르는 사람은 셋 뿐이었다.
조방의 곁을 지키는 자는 태상 하후현(太常 夏侯玄),
중서령 이풍(中書令 李豊), 광록대부 장집(光祿大夫 張緝)이었다.
그 중 장집은 장황후(張皇后)의 아버지로, 황제의 장인되는 사람이었다.
조방은 시종들을 물러가게 하고 세 사람을 밀실로 불러들였다.
조방이 장인 장집의 손을 덥썩 잡더니,

 

"사마사가 짐을 마치 어린애 보듯 하고,

문무백관을 지푸라기 마냥 하찮게 여기니 머지않아

사직(社稷)이 그 자에게 넘어가지 않을까 싶소."하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곁에서 듣고 있던 이풍이 말한다.

 

"폐하,

근심하지 마시옵소서.
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폐하의 뜻을 받들어

천하의 영걸들을 불러모아서 간적 사마 형제들을 소탕하겠습니다."
이번에는 하후현이 입을 뗀다.

 

"신의 숙부되는 하후패(夏侯覇)가 촉에 투항한 것도

사마 형제에게 모살을 당할까 두려워한 까닭입니다.
간적을 없애면 숙부께서도 반드시 돌아오실 것입니다.

 

신은 황실의 오랜 친척으로서 가만히 앉아서

역적들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사옵니다.
폐하께서 조칙을 내려주시면 삼가 받들어 간적을 토멸하겠사옵니다."

 

두 신하가 의지를 다지며 황제에게 고하는데,

정작 황제는 어깨가 축 쳐져서는 힘없이 대답한다.

 

"글쎄......
공연히 일을 크게 벌였다가 잘못될까 걱정스럽기만 하오."
기운이 하나도 없는 황제의 말에 세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입을 모아 아뢴다.

 

"신들이 목숨을 걸고 한마음으로 간적을 토벌하여

폐하의 크신 은덕에 보답할 것을 하늘에 두고 맹세하옵니다."

 

세 사람의 결연한 의지에 조방은 입고 있던 용봉한삼(龍鳳汗衫)을 벗더니,

손가락을 깨물어 흐르는 피로 조서를 쓴다.
그리고 그 밀조(密詔)를 장집에게 건네며 간절히 당부의 말을 한다.

 

"짐의 할아버지 무황제(武皇帝, 조조)께서 동승(董承)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일을 은밀하게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오.

경들은 부디 각별히 주의하여 이 일이 밖으로 누설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이풍이 말한다.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상서롭지 못한 말씀을 하십니까?
신들은 동승의 무리와는 다르옵니다. 사마사를 감히 무황제에게 비할 수 없사오니,

폐하께서는 조금도 걱정하실 것이 없사옵니다."

세 사람이 하직인사를 하고

밀실에서 물러나와 동화문(東華門)에 이르렀는데,

때마침 들어오던 사마사와 마주쳤다.

사마사는 칼을 차고 있었고,

그 뒤를 따르는 자들 이삼백 명도 모두 무장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사마사의 무리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한 쪽으로 길을 비켜 서는데 사마사가 다가와서 묻는다.

 

"세 분은 퇴조(退朝)가 왜 이리 늦으셨소?"
이풍이 나서서 대답한다.

 

"성상(聖上)께서 책을 읽으신다기에
저희 셋이 시독(侍讀, 임금이나 동궁에게 경서를 강의하는 것)을 하느라 늦었습니다."

 

"어떤 책을 읽으셨소?"
사마사의 물음에 이풍이 또 대답을 한다.

 

"하서(夏書), 상서(商書), 주서(周書)

삼대(三代)의 책이었습니다."

 

"황제께서 그 책을 읽고 무슨 이야기를 물으셨소?"

 

"이윤(伊尹, 상나라의 명재상)이 상나라를 어떻게 받들었는지,
주공(周公, 주나라의 명재상)이 어떻게 섭정(攝政)을 하였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오늘로 치자면 모두 사마대장군(司馬大將軍)이 이윤이며,

주공과 같다고 말씀을 올렸습니다."
이풍의 둘러대는 말을 듣자마자 사마사는 차갑게 코웃음을 친다.

 

"나를 이윤과 주공에 비견했다?
내가 그대들의 마음을 모를 줄 아는 것인가?

속으로는 나를 왕망(王莽)이나 동탁(董卓)에게 견주고 있었겠지."

 

"저희 셋은 모두 장군 문하의 사람이온데
어찌 감히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지만

사마사는 버럭 화를 낸다.

 

"그대들은 입에 발린 소리나 하는 소인배들이다.
조금 전까지 밀실에서 천자와 함께 통곡을 한 것은 무슨 까닭이냐?"

 

"울다니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당황한 셋은 눈이 커지며 이번에도 사마사의 말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마사는 호통을 치며 말을 한다.

 

"너희 세 사람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있고

아직도 눈이 충혈되어 새빨간데 잡아 떼는 것이냐?"

 

캐묻는 사마사의 태도를 보아하니

이미 세 사람과 황제가 밀실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밖으로 새 나간 것 같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후현이 목청을 돋우어 사마사를 꾸짖는다.

 

"그래!

우리가 목놓아 운 것은 신하의 신분으로 군주를 찍어 누르는 놈,

황제를 핍박하여 제위를 찬탈하려는 꿍꿍이가 있는 놈,

역적질을 꾸미고 있는 네 놈 때문에 분해서였다!"

 

"당장 저놈들을 잡아라!"

 

사마사는 진노하여 하후현, 이풍, 장집을 잡으라 호통을 친다.
하후현은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저항하려 하였으나

무장한 무사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세 사람이 사마사 앞에 무릎이 꿇린 채로

앉아 있는데 사마사의 명이 떨어진다.

 

"이 세 놈들의 몸을 샅샅이 뒤져라!"

 

얼마 지나지 않아 장집의 품 안에서 용봉한삼이 나온다.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혈서였다.
사마사가 펼쳐 보니 틀림없이 천자의 필체로 적힌 밀조였다.

사마 형제가 대권을 쥐고 찬역(簒逆)을 도모하려하니,

지금까지 내린 조칙(詔勅)과 앞으로 내릴 조칙은 모두 짐의 뜻이 아니다.

모든 신하와 장졸들은 충의를 다하여
역신(逆臣)을 토멸하고 사직(社稷)을 바로 세우라.
공을 이루는 날에는 큰 벼슬과 무거운 상을 내리겠노라.
 
밀조를 모두 읽은 사마사는 얼굴이 시뻘게지고

눈이 희번덕해지더니 세 사람을 노려보며 말한다.

 

"우리 형제를 모함하는 너희들을 도저히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
당장에 이 놈들을 저잣거리로 끌어내어 허리를 베어버려라!
또 이 놈들의 삼족을 멸하라!"

 

세 사람은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사마사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무사들은 그런 그들을 무참히 두드려 패서 형장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는 셋의 이는 거의 남아나질 않았다.
드문드문 있는 이 사이로 바람이 새서 그들이 외치는 소리는

좀처럼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그들의 기세나 눈빛은 역적의 무리들을 잡아 먹을 기세였다.
하지만 끝내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후궁에서는 위주 조방이

황후 장씨와 밀조를 내린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장황후가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궁 안에 눈과 귀가 많습니다.
자칫하면 일이 누설되기 십상인데,

그럴 때면 신첩(臣妾)에게도 화가 미칠 것입니다."

 

조방이 황후의 걱정을 달래려는데 저잣거리에서

하후현, 이풍, 장집을 죽이고 돌아온 사마사가 불쑥 들이닥친다.
장황후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사마사를 쳐다본다.
사마사는 장황후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허리에

길게 차고 있는 칼을 움켜잡으며 조방에게 윽박지르듯 말한다.

 

"신의 부친은 폐하를 군주로 세우는데 공덕이 옛날의 주공에 못지 않았고,

신 또한 폐하를 섬기기를 옛날의 이윤과 다르지 않았는데 폐하께서는

그 은혜를 원수로 갚으시고, 공덕을 허물로 여겨 몇몇 소인배 신하들과 더불어

우리 형제를 모해하려 하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조방은 차마 사마사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짐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소."

 

"하!

그렇습니까?
그럼 이것은 무어란 말입니까?"

 

사마사는 짧게 탄식을 내뱉더니 소매 속에서

용봉한삼을 꺼내어 바닥에 세차게 내동댕이치며 묻는다.
조방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넋이 나간 듯 시선이 허공 이곳저곳을 오갔다. 

 

"그...그것은......
그들이 짐을 협박하기에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쓴 것이오!
짐이 대장군 형제를 모해할 마음을 품었을 리가 있겠소?"

 

"그렇다면 대신을 모함하여

역적으로 몰았던 자들에게는 무슨 죄를 물어야겠습니까?"
사마사의 고성(高聲)에 조방은 와들와들 떨며 무릎을 꿇고 애원한다.

 

"모든 것은 짐의 죄요.
대장군은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오."

 

"폐하께서는 일어나십시오.
폐하께서 아무리 그러셔도 국법은 국법입니다."
사마사는 시선을 장황후에게 돌리더니 손가락으로 장황후를 가리킨다.

 

"저 여자는 장집의 딸입니다.
이번 일을 주동한 인물의 딸이니 죽여 없애야 합니다."

 

"아니 되오!

황후는......!
대장군!

제발 용서하시오!"

 

조방이 울며 사마의에게 매달렸으나

사마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장황후를 끌어내어

동화문 안에서 흰 비단폭에 목을 졸라 죽여 버렸다.
장화후의 죽음은 그 옛날 복황후(伏皇后)의 죽음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복황후는 조조(曹操)의 말 한마디에 맨발로 쫓겨나 죽음을 당했는데,

이제 그 자손이 사마씨의 손에 같은 꼴을 당하게 된 것이다.  

다음날,

사마사는 조정에 모든 문무백관을 소집해놓고 말한다.

 

"주상(主上)이 황음무도(荒淫無道)하여 창기우희(娼妓優姬)들을 가까이 하고,
간악한 소인배들의 거짓된 말을 믿고 어진 신하들의 길을 막으니

그 죄는 한(漢)나라

창읍왕(昌邑王, 음란하고 부덕하여 즉위한지 27일만에 폐위된 한나라의 왕)에 못지 않소.

이런 주상에게 천하를 맡길 수는 없소.
내가 이윤, 곽광(霍光, 창읍왕을 폐하고

새 황제를 세운 한나라의 신하)을 본받아
새 군주를 세워 사직을 보전하고 천하를 안정시키고자 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하후현, 이풍, 장집, 장황후의 죽음을 지켜본 신하들은

그 누구도 사마사의 말에 반기를 들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일제히 입을 모아,

 

"대장군께서 이윤과 곽광을 본받으시고자 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답하고,

사람의 순리를 따르는 것[應天順人]이온데, 누가 감히 반대를 하겠습니까?"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마사는 애써 흐뭇한 웃음을 숨기고 고개를 끄덕인 후,

수많은 중신들을 거느리고 영녕궁(永寧宮)에 들어 태후(太后)에게 결정된 바를 고했다.
사마사의 말을 들은 태후는 사마사에게 묻는다.

 

"대장군은 누구를 임금으로 세우고자 하시오?"

 

"신이 보건대 팽성왕 조거(彭城王 曹據)가 총명하고 인자하며

효심 또한 있으니 천하의 주인이 될 만합니다."

 

"음......

팽성왕은 나에게는 시숙뻘이오.

그분이 군주가 되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오.
고귀향공 조모(高貴鄕公 曹髦)는 문황제(文皇帝, 조비)의 손자로,
성품이 온화하고 공손하며 겸양하는 덕이 있어서 제위에 오를 만하오.
경이 대신들과 의논하여 결정해보시오."
태후의 말이 끝나자 중신 가운데 한 사람이 나서서 말한다.

 

"태후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 말씀대로 하십시다."

 

여러 사람들이 말한 사람을 돌아보니,

사마사의 종숙(宗叔) 사마부(司馬孚)였다. 
사마사는 원성(元城)으로 사자를 보내 고귀향공 조모를 불러오게 하고,
태후로 하여금 조방의 폐위 절차를 진행하도록 했다.
태후는 태극전(太極殿)에 올라 조방을 꿇어 앉혀 놓고 꾸짖는다.

 

"그대가 황음무도하여 천하를 다스릴 자격이 없으니

당장 옥새(玉璽)를 바치고 궁을 떠나라.
제왕의 직위는 줄 터이니 다시 부르기 전까지는

입조(入朝)하는 일이 없게 하라."

 

조방은 주체할 수 없도록 흘러내리는 눈물에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떨리는 두 손으로 옥새를 들어 태후에게 바치고

궁 밖으로 나가는 수레에 몸을 실었다.

폐위되어 떠나는 황제를 전송하는 사람이라고는

충성심을 지닌 신하 몇 명 뿐이었다.

 

사십여 년 전,

조조가 한나라의 승상이었을 때 저질렀던 일을

그 후손이 사마씨에 의해 그대로 되돌려 받고 있는 셈이었다.

고귀향공 조모의 자는 언사(彦士)로,

문황제의 손자이자 동해 정왕 조림(東海 定王 曹霖)의 아들이다.

 

조모가 낙양으로 오는 날,
사마사는 태후의 영을 받들어 문무백관에게 남액문(南掖門) 밖에

난가(鸞駕, 임금이 거동할 때 타는 가마)를 마련해놓고,
조모를 맞이하도록 하였다.

 

문무백관이 일제히 조모를 향해

절을 올리자 조모는 당황하여 맞절을 했다.
그 모습을 본 태위 왕숙(太尉 王肅)이 조모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주상께서는 답례를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조모는 긴장으로 인하여 잔뜩 굳은 얼굴로 대답한다.

 

"나 또한 신하의 몸에 지나지 않으니 답례를 해야 하지 않겠소?"
신하들이 조모를 수레에 모시려하자 조모가 사양하며,

 

"무슨 일로 태후께서 나를 부르시는지 아직 모르는데

감히 내가 어찌 난가에 오를 수 있겠소. 걸어서 가겠소,"하고,

말하고는 걸어서 태극전 동당(東堂)으로 향한다.

 

사마사가 맞이하러 나오자 조모가 먼저 엎드려 절을 한다.
사마사는 얼른 달려나가 조모를 일으켜 세우고 태후에게 안내하였다.
태후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네가 어릴 적에 보고 제왕의 상이라 여겼는데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공손하고 겸손한 태도로 널리 인덕(仁德)을 베풀어서 선제를 욕되게 하지 말라."

 

조모는 황제의 자리를 거듭하여 사양하였으나

사마사는 문무백관으로 하여금 조모를 태극전으로 모시게 하여

즉위식을 올리도록 하였다.

 

새 황제가 즉위하자 연호를 가평(嘉平) 6년(254)에서 정원(正元) 원년으로 고치고,

대사령(大赦令)을 내렸다.
대장군 사마사에게는

황월(黃鉞, 천자가 정벌할 때 쓰는 금 장식 도끼)을 휴대하는 영예를 주고,

칼을 차고 어전에 오를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이 또한 사십여 년 전에 승상 조조가 한나라의 천자를 협박해서 받아낸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듬해 정원 2년 정월,

중원 남부에 잠입했던 정탐꾼이 소식을 전해왔다.

사마씨에게 천자를 폐한 죄를 묻는다는 명분으로

진동장군 관구검(鎭東將軍 毌丘儉)과 양주 자사 문흠(揚州刺史 文欽)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식이었다.

 

동오와의 접경지대를 방어하는 장수들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식은 천하를 주무르고 있던 사마사도 긴장하게 하였다. 

관구검은 자가 중공(仲恭)으로,
양주 도독 진동장군(揚州 都督)의 직함을 가지고

회남(淮南) 지역의 군마를 통솔하고 있었다.

 

사마사가 제 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급기야 황제를 폐위하고

새 군주를 세웠다는 소식을 멀리에서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분개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관구검의 맏이 관구전(毌丘甸)이 제 아비에게 말한다.

 

"아버님,

지금 낙양에서는 사마사가 신하된 주제를 모르고

권세를 함부로 놀려 나라가

누란지위(累卵之危, 새알을 층층이 쌓아놓은 듯 위태로운 형세)에

놓여 있는데 아버님께서는 국록을 먹으며 한 지역의 군정(軍政)을 맡아 보시면서

어찌 편안히 앉아만 계신 것입니까?"
관구검은 아들의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앉아서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행동에 나서야겠다!'

 

"아들아,

네 말이 옳다."

 

그 길로 관구검은 자사 문흠을 청하여 의논을 해보기로 하였다.
문흠은 본래 조상(曹爽) 문하의 사람으로, 조상의 병권을 빼앗고

조상 일족을 죽인 사마의 가문의 사람들에게 원한이 깊었다.
관구검은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해놓고 문흠을 맞이했다.

 

둘이 술 잔을 몇 차례 기울이며 대화를 하는데,

갑작스럽게 관구검이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문흠은 의아해하며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관구검은 슬며시 운을 뗀다.

 

"사마사에 관한 일 때문에 이 나라가 걱정돼서 그렇소.
감히 마음대로 임금을 폐위시키고 새 임금을 세우다니......
이는 천지가 뒤집힌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오?

이것이 가슴이 아프고 걱정스러워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는구려."
관구검의 말을 진지하게 듣던 문흠이 선뜻 말한다.

 

"저 또한 요즘 근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도독께서 대의명분을 세워 역적 토벌에 나서시면

이 몸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도독을 돕겠습니다.
제 둘째아들 숙(淑)은 어릴 적 이름은 앙(鴦)인데

혼자서 일만 명도 너끈히 대적할만큼 용맹이 남다릅니다.

 

게다가 늘 사마 형제를 죽여서 복수를 하고자 벼르고 있으니,

그 아이를 선봉으로 세우면 쓸만할 것입니다."
관구검은 문흠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문흠과 술잔을 마저 나누었다.

 

다음날,

관구검과 문흠은 태후로부터 밀조를 받았다고 사칭하며

양주 회남의 대소 관원과 주둔 장병을 모두 수춘성(壽春城)으로 집결시켰다.
그런 다음 성 서쪽에 제단을 쌓고 백마를 잡아 그 피를 나누어 마시며 맹세하고 선언했다.

 

"태후의 밀조를 받들어

대역무도한 역적 사마사를 대의명분에 따라 토벌할 것이다!"

 

장병들은 환호성을 울리면서 기꺼이 그 뜻에 동참할 것을 맹세했다.
이리하여 관구검은 육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항성(項城)에 주둔하고,
문흠은 유격병(遊擊兵) 이만 명을 이끌고 안팎을 오가며 호응할 태세를 갖추었다.

 

또한 관구검은 여러 군(郡)에 격문을 돌려서

각기 군사를 일으켜 협조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 무렵,
대장군 사마사는 왼쪽 눈에 큰 혹이 생겨서

아픔과 가려움을 견디다 못해 의원을 청해다

혹을 째고 약을 붙인 채로 요양을 하고 있었다.

이런 판국에 회남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급보를 받자,

태위 왕숙을 불러다가 대책을 상의했다.
왕숙이 사마사에게 말한다.

 

"옛 시절에 관운장(關雲長)이 위엄을 천하에 떨치고 있었으나,

동오의 손권이 여몽(呂蒙)을 시켜 형주(荊州)를 기습적으로 취하고,
형주군 장병들의 가족을 후하게 대우하니 관운장의 군세는 맥없이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회남군 장병들이 모두 중원(中原)에 있으니 대장군께서는

어서 그들을 후하게 대접하여 무마하시고,

토벌군을 출동시켜 반란군의 퇴로를 끊으십시오.

 

그러면 저들의 세력은 반드시 흙더미가 무너지듯 스스로 붕괴될 것입니다."
사마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공의 말이 지당하오.
다만 내가 하필 이런 때에 와병 중이니......

그렇다고 남을 보내자니 마음이 영 놓이질 않는구려."

 

사마사의 말을 듣고 곁에 있던

중서시랑 종회(中書侍郞 鍾會)가 말한다.

 

"회남 지방의 군사들은 매우 강한지라,

그 예기(銳氣)를 아무나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장수를 보내 물리치려고 하면 여러모로 불리한 점이 많습니다.
자칫 작은 실수로 대사를 그르칠 수 있으니 신중하게 판단하셔야 합니다."
갈등하던 사마사가 종회의 말을 듣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내가 가지 않고서는 놈들을 격파할 수 없겠다! 내가 가겠다!"

 

사마사는 아우 사마소에게 낙양을 지키며 조정의 일을 보게하고,

자신은 아픈 몸을 이끌고 회남 지역으로 출병했다.

406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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