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403)
사마의와 손권이 떠나고 그 후( -1)
사마의는 세상을 떠나고
사마의의 두 아들이 위의 조정에서 권력을 확장하고 있는 사이,
오나라에서는 오주(吳主) 손권의 병세가 심상치 않았다.
손권에게는 원래 태자 손등(孫登)이 있었으나
태자 등이 일찍이 죽어 둘째 아들 손화(孫和)를 태자로 삼았다.
그러나 태자 화는 전공주(全公主)와 사이가 나빴고,
그녀의 참소로 폐위를 당했다.
그리고 그 한(恨)이 병이 되어 급기야는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지금은 셋째 아들 손량(孫亮)이 태자로 책봉되어 있었다.
육손(陸遜)이나 제갈근(諸葛瑾) 같은 조정의 대신들도 이미 세상을 뜬지라,
국정 전반은 제갈근의 맏아들 제갈각(諸葛恪)이 도맡고 있었다.
오의 태원(太元) 원년(251) 8월 초하루,
갑자기 장강(長江)에 큰 바람이 일더니
강물과 바닷물을 육지로 밀어냈다.
평지에도 물이 여덟 자가 넘게 고였고,
손권이 평생을 심고 가꾸어 온 선릉(先陵)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모두
뿌리까지 뽑힌 채 바람에 날려 건업성(建業城) 남문 밖 길거리에 거꾸로 쳐박혔다.
이러한 변괴에 놀란 손권은 그만 병을 얻고 말았다.
날이 갈 수록 손권이 병세는 악화되어 갔다.
간신히 그 해를 넘기고 이듬해 4월
마침내 마지막이 왔음을 느낀 손권은
태부 제갈각과 대사마 여대(呂垈)를 불러
오나라의 앞날을 부탁하고 눈을 감았다.
이때가 촉한 연희(延熙) 15년(252),
손권의 나이는 71세, 재위에 오른지 24년 되던 해였다.
이로써 삼국을 일으킨 첫 세대가 모두 사라지고,
시대는 다음 세대들에게 맡겨졌다.
손권이 세상을 뜨고,
태부 제갈각은 손량을 세워 제위를 잇게 하고,
대사령(大赦令)을 내려 죄를 지은 자들을 사(赦)해주었다.
그리고 손권의 시호를 대황제(大皇帝)로 추존하여
장릉(蔣陵)에 장사를 지내고,
연호를 건흥(建興)으로 고쳐 원년(252)으로 삼았다.
오나라 손권의 죽음과 새로운 황제의 옹립 소식은 바로 낙양에 알려졌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사마사는 즉시 오나라 정벌을 궁리했다.
군신들을 불러 모아 오나라 정벌 계획을 논의하는데,
상서 부하(尙書 傅嘏)가 말한다.
"동오의 장강은 험준하여 선제께서도 누차 정벌을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그러하오니 각처의 국경을 단단히 지키기나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부하의 말을 듣고 사마사는 단호하게 말한다.
"천하의 운세는 삼십 년을 주기로 변하기 마련이오.
그런데 언제까지고 세 황제가 정립(鼎立)하여 지낼 수 있겠소?
나는 반드시 오나라를 정벌해야겠소."
형 사마사의 말에 아우 사마소도 거든다.
"손권이 죽었소.
그 뒤를 이은 손량은 아직 나이가 어리고 심성이 나약하오.
지금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가 기회란 말이오?"
큰 권력을 지니고 있는 두 형제가
이렇게 동오 정벌을 주장하고 나서니,
대세는 동오를 치자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마침내 사마사는 군사를 일으켰다.
정남대장군 왕창(征南大將軍 王昶)에게
십만 군사를 주어 남군(南郡)을 치게 하였고,
정동장군 호준(征東將軍 胡遵)에게
십만 군사를 주어 동흥(東興)을 공격하게 하였으며,
진남도독 관구검(鎭南都督 毌丘儉)에게도 십만 군사를 주어
무창(武昌)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리고 사마소를 대도독(大都督)으로 삼아
세 갈래의 군사를 총지휘하도록 하였다.
그해 12월,
사마소의 군사는 동오와의 국경에까지 이르렀다.
사마소는 왕창, 호준, 관구검을 군막으로 불러 작전을 의논했다.
"오나라에서 요충지는 동흥이오.
그래서 오나라는 그곳에 거대한 제방을 쌓고 또 좌우에 성을 쌓았소.
그들이 소호(巢湖) 배후로부터 있을 공격에 대비하고 있으니
제장들은 조심하시오."
그리고 왕창과 관구검에게 명령을 내린다.
"각각 일만 군사를 좌우로 나누어서 포진하되,
그 자리에서 동흥군이 함락되기를 기다렸다가 일제히 진군하라."
"알겠습니다.
대도독!"
왕창과 관구검이 떠나고
사마소는 호준을 선봉장으로 지목한다.
"그대는 세 갈래의 군사를 모두 이끌고 앞서 가게.
먼저 부교(浮橋)를 세워놓고 동흥의 제방을 점령한 후,
좌우의 두 성을 빼앗으면 그보다 큰 공로는 없을 것이네."
호준은 사마소의 명령을 받고 출동하여 부교를 설치하게 위해 떠났다.
그때 오의 태부 제갈각은 위군이 세 갈래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군신을 불러모아 방어책을 논의했다.
평북장군 정봉(平北將軍 丁奉)이 말한다.
"동흥은 우리의 요충지입니다.
동흥을 잃으면 남군과 무창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봉의 말에 자리에 모인 군신들이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제갈각이 말한다.
"내 생각도 그렇소.
정 공은 수군(水軍) 삼천을 거느리고 강을 따라 나가시오.
내가 여거(呂據), 당자(唐咨), 유찬(劉贊)으로 하여금
각각 보기병(步騎兵) 일만씩을 거느리고 세 길로 뒤따르게 하겠소,
제장들은 연주포(連珠砲)가 터지는 소리가 나면 일제히 진격하시오.
나도 곧 대군을 이끌고 뒤따르리다."
노장 정봉은 삼천 수군을 삼십 척의 배에 나누어 태우고
동흥군을 향해 돛을 올렸다.
이때 위군의 선봉장 호준은 부교를 건너 제방에 주둔한 다음,
비장 환가(裨將 桓嘉)와 한종(韓綜)을 출동시켜 좌우에 있는 성을 공격하게 했다.
당시 왼쪽 성은 오의 장수 전단(全端)이 지키고 있었고,
오른쪽 성은 유략(留略)이 지키고 있었다.
이 두 성은 워낙 가파르게 높은 언덕에 자리한데다가
성벽이 견고하여 위군이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위군의 엄청난 공세에 전단과 유략은 감히 나가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성벽이 잘 버텨주기만을 바라며 방어만 할 뿐이었다.
호준은 서당(徐塘)에 본영을 설치했다.
그때 계절이 엄동설한인지라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호준은 전투에 힘쓰고 있는 장수들을 격려하고자
그들을 불러 모아 술잔치를 베풀었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급보가 하나 도착했다.
"장강에 전함 삼십 척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호준은 바로 밖으로 나가서 장강변을 내다 보았다.
오군의 전선이 이제 막 연안에 닿아 상륙준비가 한창이었다.
호준이 보기에 전선 한 척에 군사는 백 명 남짓인 것 같았다.
호준은 다시 술자리로 돌아와서 장수들에게 말했다.
"별 것 아니오.
배 한 척에 백 명이면 기껏해야 삼천 정도나 되려나?
걱정할 것 없소."
그리고 부장을 시켜 적의 동태만 살피라고 이르고
술잔치를 이어갔다.
한편
오의 장수 정봉은 전함을 일렬로 늘어 세워놓고
위병들의 구경거리가 된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부하 장병들에게 소리쳤다.
"대장부로서 공명(功名)을 세우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모두 갑옷과 투구를 벗어라!"
정봉은 전투를 앞두고 모든 군졸들에게
갑옷과 투구, 장창(長槍), 대극(大戟)을 모두 벗어두라고 지시했다.
그 대신 단검 한 자루씩만을 몸에 지니도록 했다.
좋은 무기와 방어구를 버리고
맨몸으로 초라한 무기를 챙기는 오군의 모습을 보며
위군들은 저희들끼리 쑥덕거리며 비웃었다.
비웃고 있느라 당연히 적의 공격에 대한 대비는 할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갑자기 연주포가 터지는 소리가 세 차례 들리더니
정봉이 단검을 뽑아들고 뭍으로 힘차게 뛰어내린다.
뒤따라 전선에서 삼천 군사가 손에 단검을 쥐고 강기슭으로 뛰쳐나온다.
그리고 그대로 위군 영채로 돌진한다.
구경만 하고 있던 위군들은
오군의 습격에 손 쓸 틈 없이 당한다.
한종이 급하게 대극을 찾아 들고 정봉을 찌르려하였으나
정봉은 날쌔게 몸을 피하면서 단검으로 한종을 찌른다.
한종은 그대로 고꾸라진다.
한종이 당하는 것을 본 한가가
정봉을 공격하려고 창을 내질렀으나
정봉은 몸을 날래게 움직여 한가의 창대를
자신의 옆구리에 끼워서 단단히 잡고 놓지를 않는다.
한가는 창을 빼내보려고 애썼으나
오히려 자신이 정봉에게 당할 것 같자 창을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한다.
정봉은 달아나는 한가의 등 뒤에 단검을 냅다 날려서
한가의 왼쪽 팔을 명중시킨다.
칼을 맞고 나뒹구는 한가에게로 얼른 달려간 정봉은
들고 있던 한가의 창으로 지체없이 한가의 가슴팍을 찌른다.
오나라 삼천 군사들은 위군 영채에 뛰어들어
성난 표범처럼 날뛰며 닥치는 대로 쳐부숴댄다.
술잔치에 여념 없던 호준이 다급하게 말을 잡아 타고 도망친다.
그 뒤를 따라 위군 장병들도 우르르 부교로 뛰어올라 도망친다.
그런데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부교에 오른 탓에
가설(假設)했던 부교가 끊어지고 말았다
그 탓에 속도를 내어 도망치던 위병들의 태반이 물에 빠져 죽었다.
도망에서 뒤쳐졌던 위병들은 오나라의 단검에 꼼짝없이 당했다.
땅을 온통 덮고 있던 흰 눈이 위군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이 날 오군이 위군에게서얻은 전리품(戰利品)은
그 수효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사마소와 왕창, 관구검은 동흥군의 참패 소식을 듣고
자신들도 군사를 거두어 퇴군하고 말았다.
제갈각은 대군을 이끌고 동흥에 이르렀다.
군사들을 수습하고 큰 상을 내려 군사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장수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사마소의 군대가 패전하고 돌아갔으니,
지금이 중원을 취할 좋은 기회다!"
그리고 당장 촉의 강유에게 함께 북쪽을 공격하여 성공하면
공평하게 천하를 반으로 나누자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제갈각이 이십만 대군을 일으켜 중원 정벌의 대장정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땅 속에서 한 줄기 흰 기운이 솟아나더니
군사의 앞길을 가로 막는다.
순식간에 바로 앞과 옆 사람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뿌연 것이 시야를 가렸다.
장연(蔣延)이 제갈각에게 아뢴다.
"이 기운은 백홍(白虹)입니다.
이런 흰 무지개가 피어오르면 전쟁에서 패할 조짐입니다.
태부께서는 위나라 정벌을 단념하시고 군사들을 즉시 돌리셔야 합니다."
장연의 말을 들은 제각각은 불같이 화를 낸다.
"대업을 이루기 위해 출정하는데
네가 감히 불길한 소리를 하는 것이냐?
군심(軍心)을 흐리는 소리나 하는 네 놈은 필요 없다!
당장에 이놈을 끌어다 목을 베어라!"
제갈각의 명령으로 장연을 끌어다 목을 베려는데,
제장들이 모두 나서서 제갈각을 만류한다.
"태부,
장연의 죄가 크지만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제장들의 간청에 제갈각은 노여움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장완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그의 관직을 삭탈하고 멀리 내쫓았다.
제갈각이 군사들을 재촉하여 다시 원정길에 올라
얼마쯤 갔을 때, 정봉이 제갈각에게 말한다.
"위는 신성(新城)을 중요한 방어 거점으로 여기고 있으니
그곳부터 점령하면 사마사의 간담이 서늘해질 것입니다."
제갈각은 정봉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여겨
곧장 군사들을 이끌고 신성으로 진격하였다.
이때 신성을 지키고 있던 위의 장수 아문장군 장특(牙門將軍 張特)은
오군들이 몰려오자 성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수비에 주력했다.
제갈각은 군사들로 하여금
신성을 에워싸게 하고 공격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신성에서 위군과 오군이 대치하고 있다는 소식은
정탐꾼에 의해 금세 낙양으로 전해졌다.
사마사는 제장들을 불러서 대책을 의논한다.
주부 우송(主簿 虞松)이 사마사에게 말한다.
"제갈각의 군대가 신성을 포위하고 있다고 해서
지금 나가 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군은 병력은 많아도 원정길에
군량을 넉넉히 가지고 오지 못하여 여러모로 지쳐 있을 겁니다.
며칠 후면 군량이 바닥나서 제 풀에 꺾일 것이니
그 때를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대승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촉군이 그 사이에 국경을 침범할 수도 있으니
그 또한 대비하셔야 합니다."
"타당한 말이오.
사마소!
옹주로 나아가 곽회 장군을 도와 촉군의 침입에 대비하라.
관구검, 호준!
오군을 틀어 막으시오!"
사마사는 우송의 말을 옳게 여겨 오군 뿐만 아니라
촉군의 침략을 대비한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신성을 둘러싸고 공격을 개시했던 제갈각은
몇 달이 지나도록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장특이 워낙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갈각은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장수들에게,
"온 힘을 다해 공격하라!
공격을 게을리하는 자는 가차없이 목을 베겠다!"하고,
강력하게 주문한다.
제갈각의 명령에 모든 장수들이 온 힘을 써서 공격을 하니,
성의 동북쪽 귀퉁이가 슬슬 무너질 조짐이 보인다.
성벽이 부서지는 것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장특은 좋은 계책이 떠올랐다.
말솜씨가 좋은 사람을 하나 뽑아 그의 손에
신성의 호구 장부(戶口 帳簿)를 쥐어 주고는 오군의 영채로 보냈다.
장특의 명을 받은 사자(使者)가 호구 장부를 제갈각 앞에 내밀며 말한다.
"우리 위나라에서는 성이 적에게 포위 당했을 때,
성을 지키는 장수가 백 일을 넘게 굳게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병이 오지 않아서 항복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가족들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는 국법이 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장군께서 우리 성을 포위하신지 백 일이 되옵니다.
장군께서 호의를 베푸셔서 며칠만 더 참아주시면
우리 장군께서 모든 군민을 이끌고 나와 투항하겠다고 하십니다.
맹세의 의미로 신성의 호구 장부를 바치겠습니다."
제갈각은 호구 장부를 받아 들고 잠시 생각한다.
'절대 함락될 것 같지 않았던 성벽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니
며칠 말미를 주어도 무리는 없겠지.
더구나 호구 장부까지 가지고 온 것을 보면 약속을 깨지는 않을 것이다.'
제갈각은 사자의 말을 믿고 공격을 멈추고 군사들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것은 장특의 완병지계(緩兵之計, 적의 공격을 늦춰서
아군이 시간을 얻으려는 계책)였다.
제갈각으로부터 얻어낸 며칠의 기간 동안 장특은
성 안의 민가(民家)를 뜯어다가 무서진 성곽을 말끔히 수리하고,
군사들을 재정비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장특은
성루에 올라 오군을 내려다보며 오군을 비웃었다.
"우리 성 안에는 아직도 반년치 양식이 넉넉히 쌓여 있다.
내가 뭐하러 너희 오나라한테 굴복하겠느냐?
싸우려거든 어디 한 번 계속 애써 봐라! 하하하하!"
제갈각은 그제야 속은 것을 알고 격노한다.
"야비하고 간사한 놈 같으니! 맹공격 하라!"
제갈각이 군사들에게 총 공격을 명했으나
대비가 단단히 되어 있는 위군의 앞에서는 부질없는 것이었다.
성 위에서는 화살비가 쏟아진다.
당황한 오군이 우왕좌왕하며 싸우는 사이
마상(馬上)에서 명령을 내리던 제갈각은 피할 겨를도 없이
이마에 화살이 꽂히고 만다.
주변의 장수들이 얼른 달려들어 화살을 맞아
말에서 떨어진 제갈각을 부축하여 영채 안으로 옮겼다.
상처는 꽤나 깊었다.
게다가 날씨가 푹푹 찌고 무더워서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았다.
날씨 탓에 군사들도 병든 자들이 속출했다.
건강에 문제가 없는 군사들마저 아픈 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기가 급격히 떨어졌다.
하지만 제갈각은 속은 것이 못내 분하여
좀체 아물지 않는 상처나 군사들의 떨어진 사기를 신경쓸 틈이 없었다.
오로지 군사들을 다그쳐 성을 다시 공격하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조급해하는 제갈각에게 한 영리(營吏)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많은 병졸들이 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상태라면 제대로 싸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 제갈각은 버럭 호통을 친다.
"입 닥쳐라!
앞으로 내 앞에서 병을 핑계대는 자가 있으면 당장에 목을 칠 것이다!"
제갈각이 한 말은 군사들 사이에서 삽시간에 소문이 났다.
가혹한 처사에 탈영병이 속출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독 채림(都督 蔡林)이
군사들을 이끌고 위나라에 투항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제갈각은 그제야 군심이
얼마나 심각하게 피폐해졌는지 상황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몸소 말을 타고 각 영채를 돌아보니
군사들의 안색이 모두 누렇게 뜨고 파리하여 산 송장 같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지못해 퇴군령을 내렸다.
제갈각 군의 퇴군 소식은 정탐꾼에 의해 위의 관구검에게 전해졌다.
관구검은 당장에 군사들을 모두 이끌고 퇴각하는 오군의 뒤를 쳤다.
싸울 힘이 없는 오군은 대패하고 말았다.
제갈각은 적에게 속아 넘어간 자신이 남부끄러운 나머지
칭병(稱病)하여 조정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오주 손량이 친히 제갈각의 집을 찾아 문병을 했고,
조정의 문무관료들이 모두 찾아가 문안 인사를 했다.
모두의 관심이 쏠리자 제갈각은
패전의 책임에 관한 문제가 공론화 되면
자신의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 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려고
오히려 본인이 먼저 나서 장병들의 과실을 따지기 시작했다.
죄가 가벼운 자는 귀양을 보내고,
죄가 무거운 자는 참형에 처하여 그들의 머리를 저잣거리에 내걸었다.
제갈각의 행태에 관료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떨었다.
또, 제갈각은 자신의 심복 장수 장약(張約)과 주은(朱恩)에게
어림군을 거느릴 수 있는 권한을 주어 자신을 비호하게 했다.
장약과 주은이 맡게 된 어림군은
당초에는 손견(孫堅)의 아우 손정(孫靜)의 증손자이자
손공(孫恭)의 아들인 손준(孫峻)이 통솔하고 있었다.
손준은 황제 손권이 살아 있을 때 손
권으로부터 총애를 받아 일찍이 어림군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느닷없이 지휘권을 빼앗기자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마음 속으로는 큰 화를 품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태상경 등윤(太常卿 騰胤)이 손준을 찾아와서 말한다.
"제갈각의 횡포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소.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공경대부(公卿大夫)를 학살하고 있으니
그가 다른 뜻을 품고 있는 것이 틀림없소.
공은 종실의 한 사람인데 왜 가만히 두고 보고 있소?
일찍이 제거해야 뒷날에 화가 없지 않겠소?"
등윤은 평소 제갈각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본인이 혼자 제갈각과 대적하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리하여 제갈각에게 원한을 품었을 법한 손준을 찾아와서
슬며시 부추기는 말을 꺼낸 것이다. 손권은 등윤이 던진 말에 냉큼 대답을 한다.
"나 또한 그리 생각하오.
당장 황제께 주청을 올려 제갈각을
주멸(誅滅)할 것이오."
손준과 등윤은 의기투합해서
함께 입궐하여 황제 손량에게 은밀하게 아뢴다.
"제갈각은 군신(君臣)의 의리를 잃은지 오래입니다.
제 뜻과 맞지 않으면 학살을 일삼고,
위나라와의 전쟁에서도 대패했으니
마땅히 그를 없애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옵니다."
제갈각의 세력이 확장되고 있는 것을 걱정하고 있던 손량은
손준과 등윤의 말에 흔쾌히 대답한다.
"짐의 생각 또한 그렇소.
그동안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는데,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잠자코 있던 것이었소.
경들의 마음을 알았으니 충심으로 일을 도모해보시오."
등윤은 제갈각을 제거하기 위해 미리 생각해 둔 방책을 말한다.
"폐하께서 잔치를 마련하시어 제갈각을 부르십시오.
신들이 휘장 뒤에 무사들을 매복 시켜놓겠습니다.
술잔을 던지면 그것을 신호로 삼아
놈을 죽여 후환이 없도록 하겠사옵니다."
"알겠소.
그리 하리다."
손량은 등윤이 제안한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기로 한다.
제갈각은
집에만 있는데도 마음이 항상 불안하고 그로 인해 정신도 맑지 못했다.
어느날은 제갈각이 중당(中堂)으로 나갔는데
갑자기 상복(喪服)을 입은 낯선 자가 불쑥 집안으로 들어왔다.
제갈각은 깜짝 놀라 소리친다.
"웬 놈이냐!"
낯선 남자 또한 놀라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서있다.
제갈각은 호위하는 군사들에게 그 자를 잡아두고 심문하게 하였다.
남자가 제갈각에게 고한다.
"소인은 엊그제 부친상을 당하였습니다.
스님 한 분을 청해 부친의 명복을 빌고자
성내에 있는 절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명 소인은 절간의 문턱을 넘어섰는데,
어찌하여 지금 태부의 부중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사옵니다."
문으로 들어왔다는 남자의 말에
제갈각은 곧바로 문지기들을 불러와 꾸중하며 문초했다.
문지기들이 제갈각에게 아뢴다.
"저희들 수십 명이
무기를 들고 잠시도 문 앞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지금껏 한 사람도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제갈각은 문지기들이 책임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더욱 화가 났다.
그래서 상복 입은 자와 문지기들을 모두 목을 베어 죽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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