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반란의 결과는

오토산 2022. 5. 9. 10:11

삼국지(三國志) .. (406)
반란의 결과는

관구검(毌丘儉)과 문흠(文欽)의 반란 소식에

사마사는 먼저 진동장군 제갈탄(鎭東將軍 諸葛誕)에게

예주(豫州)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여 안풍진(安豊津)으로부터

수춘(壽春)을 공격하게 했다.

 

이어서 정동장군 호준(征東將軍 胡遵)으로 하여금 청주(靑州) 일대의 군사를 이끌고

초(譙)와 송(宋) 지역으로 나가 관구검 군의 퇴로를 끊게 하는 한편,
간군 왕기(監軍 王基)에게는 전군(前軍)을 이끌고 진남(鎭南)을 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사마사 자신은 주력군을 양양(襄陽)에 주둔시키고

문무관원들을 장막으로 불러모아 대책을 상의했다.
광록훈 정포(光祿勳 鄭褒)가 말한다.

 

"관구검은 꾀는 많지만 결단력이 부족하고,

문흠은 용맹하지만 지혜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가 생각지 못한 곳으로 대군을 일으켜 나오면

가볍게 대응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회남과 강남의 군사들은 용감하고 예기가 날카로워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는 참호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서 지구전에 돌입하여

저들의 예기부터 꺾어 놓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것은 한나라 때 명장 주아부(周亞夫)가 즐겨 쓰던 전법입니다."
정포의 의견을 듣고 감군 왕기가 말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반란은 군사와 백성들이 스스로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관구검 세력의 협박에 못이겨 마지못해 한 일이니,

토벌군이 신속히 공격하면 금세 무너질 것입니다."

 

모두의 말을 듣고 사마사는 왕기의 말에 동의했다.
곧 주력군을 이끌고 은수(㶏水)로 나아가 은교(㶏橋)에 본영을 세웠다. 
왕기가 사마사에게 아뢴다.

 

"남돈(南頓) 땅이 대군이 주둔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입니다.
당장 오늘밤에라도 군사를 움직여서 그곳을 점령하십시오.
관구검도 틀림없이 그 땅을 노리고 있을 것입니다."

 

"좋소.
그대가 남돈으로 가서 진을 치시오."

 

왕기는 사마사의 명에 따라 재빠르게 출동하여 남돈에 영채를 세웠다.
항성(項城)에 있던 관구검은 사마사가 직접 출동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책을 상의하기 위해 제장들을 소집했다.
선봉장 갈옹(葛雍)이 말한다.

 

"남돈 지역이 산을 의지하고 강을 끼고 있어서

여러모로 군사가 주둔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토벌군이 먼저 점령하면 우리가 그들을 몰아내고

차지하기에 어려운 곳이니 가장 먼저 그곳을 취해야 합니다."

 

"그렇겠군.
남돈으로 진격하자!"

 

관구검이 군사들을 이끌고 즉시 남돈 방향으로 길을 재촉하는데,
정탐꾼이 달려와서 보고한다.

 

"남돈에 이미 많은 군마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무어라?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관구검은 적이 그렇게 빠르게 대응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군사들을 거느리고 남돈 초입까지 말을 달려 가보았다.

과연 남돈에는 적의 깃발이 휘날리고 영채가 반듯하게 세워져 있다.

 

관구검은 할 수 없이 군사들을 되돌려 본영으로 돌아왔다.
적에게 요충지를 선점당하고 그것에 대응할 계책을 고심하고 있는데,

정탐꾼으로 하여금 급보가 도착했다.

 

"동오(東吳) 손준(孫峻)이 강을 건너

수춘성에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관구검은 크게 놀라서 소리친다.

 

"수춘성을 잃으면 우리가 돌아갈 곳이 없어진다!
안 되겠다. 항성으로 간다!"

 

관구검은 그날 중으로 영채를 모두 정리하여 급히 항성으로 퇴각했다. 
관구검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사마사는

갑작스럽게 퇴각하는 관구검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대책을 정하려고 문무관원을 소집했다.
상서 부하(尙書 傅嘏)가 말한다.

 

"관구검이 싸움없이 후퇴한 것은

오나라 군이 수춘성을 습격할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항성으로 돌아가서 어떻게든 군사들을 나누어 막을 생각이겠지요.

 

그러니 장군께서는 군사들을 나누어

한무리의 군사들은 낙가성(樂嘉城)을 공격하게 하고,

한무리의 군사는 항성을 공격하게 하고,
또 한무리의 군사는 수춘성을 공격하게 하면

회남의 반란군은 반드시 물러갈 것입니다.

 

연주 자사 등애(兗州 刺史 鄧艾)가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니

등애로 하여금 낙가성을 공격하게 하고,

뒤이어 군사들을 더 보내 등애군의 뒤를 받쳐주면

적을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마사는 곧장 등애에게 사자를 보내서 낙가성을 공격하도록 명하고,
자신도 등애군을 돕기 위해 정예군을 거느리고 출발했다.

항성으로 간 관구검은 아무래도 낙가성이 계속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정탐꾼을 계속 보내어 소식을 전하도록 했다.
그리고 적군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할 계책을 상의하기 위해

문흠을 영채로 불러들였다.

 

"낙가성이 걱정이오.
어떻게 하면 좋겠소?"
문흠이 대답한다.

 

"도독, 염려 마십시오.
내 아들 문앙에게 군사를 오천만 주시면

낙가성을 보전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있는 문흠의 대답에 관구검은 흡족했다.

즉시 문흠과 문앙에게 군사를 주어 낙가성을 향해 출발하도록 했다.
문흠 부자가 낙가성에 거의 다가갔을 때,

앞서가던 부대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낙가성 서쪽에 위군이 가득 포진하고 있습니다.
대략 일만 명쯤 되어 보입니다.
군사들 틈에 수(帥)자가 적힌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보면

사마사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온 듯 합니다.
지금 영채를 세우고 있는 중이라

방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보고를 듣고 문앙이 아버지에게 말한다.

 

"사마사군이 영채를 완전히 갖추기 전에 기습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직 준비가 덜 된 저들을 좌우에서 들이치면 이길 것이 틀림없습니다."

 

"음... 그렇겠군.
언제 공격하는 게 좋겠느냐?"

 

"해가 떨어지면 아버님께서 군사 이천오백을 이끌고 남쪽을 치십시오.

저는 나머지 군사들로 북쪽을 치겠습니다.
삼경에 위군 영채에서 만나서 협공하면 좋겠습니다."

 

문흠은 아들의 계책에 따라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군사를 둘로 나누어 길을 나섰다.
문앙은 나이가 십팔 세, 키는 팔척이고, 체격이 우람하고 다부졌다.
전신 갑옷 차림에 허리에는 쇠채찍을 매달고 손에는 장창을 쥐고

말에 오른 문앙은 위군 영채를 바라보며 이천오백의 군사들 휘몰아 나갔다.

사마사군은 낙가성에 도착하여

영채를 구축하느라 하루를 다 쓰고 밤에 이르러서까지 일을 마치지 못했다.
사마사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등애군을 기다리며 장막에 누워있었다.
눈의 혹을 째고 치료한 곳이 곪아 통증에 고생하고 있는 것이었다.

 

삼경 무렵,

갑자기 영채 안에서 큰 함성이 일더니

인마가 이리저리 날뛰는 소리가 사마사의 장막 안까지 들린다.
사마사가 급히 시종에게 묻는다.

 

"무슨 일로 밖이 소란스러운 것이냐?"
밖을 살핀 시종이 황급히 달려와서 고한다.

 

"큰일입니다!

웬 군사들이 영채 북쪽에 쳐들어왔습니다!
앞장 선 장수의 기세가 사나워 당해낼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뭐라고?"

 

기습에 놀란 사마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놀라서 조급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 뜨며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치료한 눈의 상처가 터지면서 눈알이 빠져나오고 말았다.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러 순식간에 주변이 피로 흥건해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마사는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염려되어 아픔을 꾹 참았다.

어찌나 이를 꽉 물고 참았는지 이가 으스러질 정도였다.

사마사와 그의 군대를 혼비백산하게 만든 것은 문앙이었다.
문앙이 이천오백의 군사들을 이끌고 기습적으로 적진에 뛰어들자

위병은 그 기세에 눌려 그대로 나자빠지는 자가 태반이었다.

 

창을 들고 맞서보려던 용감한 위군 병사도

문앙이 쇠채찍을 한 번 휘두루면 감히 다시 앞에 나설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정신없이 싸우면서 문앙은 아버지의 군사가 언제 도착하는지 목을 빼고 기다렸다.
여러 차례 중군으로 뛰어 들어 싸우는 동안에도 문흠의 군사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는데도

여전히 문흠의 군사들은 도착하지 않았다.
문앙이 전투에 매진하고 있는데,
문득 북쪽에서 뿔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문앙은 싸우다 말고 북쪽을 내다보며 시종에게 말한다.

 

"아버님은 남쪽에서 호응하기로 하셨는데

북쪽에서 소리가 나니 어찌된 일인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봐야겠다!"

 

문앙은 북쪽으로 말을 달려나갔다.
거센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쳐들어오고 있는 것은

문앙이 기다렸던 사람이 아니었다.

 

선두에서 큰 칼을 치켜 들고 말을 휘몰아 오는 것은 장수 등애였다.
등애가 문앙을 보더니 크게 외친다.

 

"역적은 거기 꼼짝 말고 있어라!"

 

"누가 누구더러 역적이라 하느냐!"

 

문앙은 창을 비켜잡고 달려나간다.
두 장수의 기세가 워낙 대단하여 오십여 합을 싸우도록 승부가 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위군의 본대가 일제히 쏟아져 나와서

문앙의 군사들을 앞뒤로 에워싸고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결국 문앙의 군사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문앙 혼자 위군들 틈에 남았다. 

 

혼자서 사력을 다해 싸우던 문앙은

달려드는 위군 사이를 겨우 뚫고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위의 장수 수백 명이 문앙의 뒤를 바짝 추격했다.
문앙과 그 뒤를 추격하는 세력들이 낙가교 근처에 이르렀다.

문득 문앙이 말머리를 휙 돌리더니 추격해온 위군 장수들에게 돌진한다.

 

위군 장수들은 갑자기 멈춰서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문앙 때문에 크게 당황했다.
문앙의 쇠채찍이 살벌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위군을 휩쓴다.

 

쇠채찍에 맞거나 쇠채찍의 위협에 놀라
말 아래로 떨어진 위군들은 아군의 말발굽에 치여 죽는 자도 있었다.
문앙을 쫓던 군사들은 문앙의 서슬에 놀라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위군이 돌아가는 것을 본 문앙은 쇠채찍을 거두어

다시 허리에 차고 그 자리를 떠났다.

문앙에게 호되게 당한 위의 장수들이

다시 모여 앞다투어 말한다.

 

"우리가 당황하여 제대로 힘을 못 썼다.
이런 꼴을 당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다시 저 놈을 뒤쫓자!"

 

이리하여 위군 장수 백여 명이 다시 문앙을 추격했다.
뒤에서 시끌벅적한 말발굽 소리가 몰려오자 문앙은 뒤돌아보고,

 

"들끓는 쥐새끼들 같구나!
얼마나 어리석으면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나를 쫓아오는 것이냐!"하고,

외치며 쇠채찍을 휘두르며 위군들에게 달려들었다.

 

문앙의 쇠채찍이 추격해온 위군을 묵직하게 치고 지나가자

단숨에 몇 명의 목숨이 달아났다.

 

문앙은 다시 말머리를 돌려 가던 길을 가려는데

포기를 모르는 위군 몇이 또 문앙의 뒤를 쫓았다.
그럴 때마다 문앙의 쇠채찍은 추격해오는 위군을 용서하지 않았다.
문앙의 용맹은 마치 왕년의 조자룡(趙子龍)을 보는 듯 했다.

 

당양 장판파(當陽 長坂坡)에서

조조의 백만대군을 혼자 감당했던 조자룡의 모습이

오늘 낙가성에서 문앙에 의해 재현되고 있었다.
너덧 차례 위군의 추격에도 문앙은 끄떡없었고 위군의 수만 점점 줄어들어갔다.

마침내 위군은 추격을 포기하고 영채로 돌아갔다.

문흠이 낙가성 남쪽으로 진격하기로 했던 계획이 틀어진 것은

어이가 없게도 문흠과 그의 군사들이 길눈이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산 속에서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반 나절을 허비했다.
겨우 길을 찾아 나왔을 때는 이미 날이 훤해진 후였다.
뒤늦게 낙가성 방향으로 향했지만 아들과 군사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승리에 들뜬 위군의 환호소리만 들려왔다.

 

문흠이 낙가성을 치려는 마음을 단념하고 뒤돌아 가려는데

문흠을 발견한 위군이 문흠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문흠이 가진 이천오백의 군사로는 위군의 규모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었다.
결국 문흠은 군사들을 이끌고 수춘성을 향해 달아났다.

위의 전중교위 윤대목(殿中校尉 尹大目)은 문흠과 평소 교분이 두터웠다.
그래서 사마사에게 문흠에 대해 말해보기로 했다.

 

"문흠은 반역할 사람이 아닙니다.
관구검의 협박에 못 이겨 이렇게 된 것이니,

제가 가서 설득하면 반드시 투항해올 것입니다."

 

통증 때문에 여러 가지 일에 신경 쓰기 어려웠던 사마사는

바로 윤대목의 청을 수락했다.

 

윤대목은 갑옷과 투구를 갖춰 입고

얼른 말에 올라 문흠의 뒤를 쫓아갔다.
문흠의 뒷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윤대목은 크게 외쳤다.

 

"문자사!

윤대목이오!
멈춰 보시오!"

 

문흠이 뒤를 쓱 돌아보자 윤대목은 투구를 벗어 보이며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며 말했다. 

 

"문자사,

며칠만 참으시오!
며칠만!"

 

윤대목은 원래 조상(曹爽)을 따르던 자였다.

지금은 사마사를 섬기면서도 사마사의 아버지인 사마의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은 조상의 원수를 갚으려고 계속 틈을 노리고 있었다.

마침 사마사의 목숨 또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될 터였다.

 

사마사가 곧 죽으면

문흠 부자가 그 군대를 점령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리 없는 문흠은

윤대목이 딴 뜻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윤대목을 향해 활을 날리려고 하였다.
윤대목은 문흠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문흠이 가던 길을 재촉하여 군사들을 이끌고 수춘성에 이르렀다.
하지만 수춘성은 이미 제갈탄의 수중에 들어가 잇었다.
다시 항성으로 향했지만 이번에는 호준, 왕기, 등애 군이

세 방면에서 포위하며 문흠을 압박해왔다.

 

오갈 곳이 없어진 문흠은

급하게 도망쳐 나와 동오 손준에게 투항하고 말았다.

한편

항성에 있던 관구검은 수춘성이 위군에게 넘어가고

문흠마저 패하여 동오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낙심해 있었다.
게다가 호준, 왕기, 등애의 군대가 세 갈래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관구검은 최후의 일전을 결심했다.

 

성 안의 모든 군사들을 모조리 모아 성 밖으로 출격했다. 
성 밖에서는 등애가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관구검은 등애와 대적할 상대로 갈옹을 출전시켰다.
하지만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등애의 칼에 갈옹의 머리가 달아났다.

 

적장을 단칼에 베어 버린 등애와 그의 군대는 힘이 넘쳤다.
한꺼번에 관구검 군을 향해 쇄도했다.

관구검은 죽을 힘을 다해 싸웠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강회(江淮)의 군사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호준과 왕기의 군사들은

더 강하게 관구검의 군사들을 몰아쳤다.
관구검의 군사들은 거의 모두가 궤멸하다시피 하였다. 

 

관구검이 겨우 기병 십여 명만을 거느리고

간신히 포위망을 빠져나와 신현성(愼縣城)으로 도망쳤다.
현령 송백(縣令 宋白)은 성문을 활짝 열어서

관구검의 군을 기꺼이 맞이하였다.

 

잔치도 마련하여 관구검을 극진히 대접해주었다.
싸움에 몸과 정신이 지친 관구검은

송백이 권하는 술을 모두 받아 마셨다.
관구검이 만취하여 몸을 제대로 못 가누게 되자

송백은 부하들을 시켜 관구검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관구검의 머리를 위군에게 바쳤다.

이로써 회남의 반란은 끝나고 말았다.

병상에 누워있는 사마사는 통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사마사는 어느날 제갈탄을 불러들여 인수를 내어주고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으로 삼아 반란의 근거지였던

양주(揚州) 일대의 군마를 총지휘하도록 하고

, 자신은 허창(許昌)으로 돌아갔다.

 

사마사는 비록 개선하였으나

병은 날이 갈 수록 악화되어 갔다.
낮에는 눈의 통증이 극심하여 앓고 지냈고,

밤에는 지난날 자신의 손에 죽은 이풍, 장집, 하후현의 귀신이 나타나

사마사의 정신을 휘저어 놓았다.

 

마침내 사마사는 자신이 살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낙양으로 사람을 보내서 아우 사마소를 불러들였다.
급보를 받고 달려온 사마소는

병마에 지쳐 있는 형의 모습을 보고 통곡했다.
사마사는 동생을 힘없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지고 있는 권세가

이제는 내게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것을 벗어버릴 수도 없으니

오늘 이후로 네가 이것을 이어 받거라.

 

절대로 남에게 일을 맡기지 말아라.
섣불리 대권을 남에게 넘겨

멸족의 화를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말을 마친 사마사는 인수를 사마소에게 건넸다.
그리고 고통을 참지 못하여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는데

남은 눈 하나마저도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때는 정원(正元) 2년(255) 2월이었다.

위주 조모는 사마사의 소식을 듣고

사마소로 하여금 그대로 허창에 머물면서

동오의 침략에 대비하도록 명했다.

 

사마소를 허창에 머무르게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적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사마소를 조정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조모의 명을 받은 사마소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자,

종회(鍾會)가 사마소에게 간했다.

 

"대장군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안정되지 않았는데

장군께서 허창에 머물러 계시다가

조정에 무슨 변고라도 생기면 어쩌시려고 하십니까?
그때는 후회해보았자 소용없을 것입니다."

 

종회의 말에 사마소는 고개를 끄덕었다.

그리하여 사마소는 황제의 명에도 불구하고

군사들을 이끌고 낙수(洛水) 남쪽으로 자리를 옮겨 주둔했다. 
사마소의 소식을 들은 조모는 크게 당황했다.

이를 지켜보던 태위 왕숙이 조모에게 아뢰었다.

 

"사마소가 사마사의 권력을 이어 받았습니다.

폐하께서 사마소에게 벼슬을 내리시어

그를 다독이시는 편이 좋을 것이옵니다."

 

"그것이 좋겠소.
사마소를 대장군 녹상서사(大將軍 錄尙書事)에 봉할 것이니

조서를 작성하여 보내주시오."

 

이리하여 위나라의 대권은 계속하여
사마 가문의 수중에 들어가 있게 되었다.

407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