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행궁을 다녀와서
13:30 순대곱창볶음으로 점심을 먹고 주차장으로 가는 도중
뻥튀기아지매가 뻥튀기를 한개씩 선물로 주었는데
초등입학 95일인 꼬마가 '나는 뻥튀기를 사 달라고 생떼부리라고 주는데
삼촌은 생떼을 부리지도 못하는데 왜 주는지 모르겠다'고 하여
모두가 한바탕 웃고 팔달문을 지나 화성행궁에 도착하니
주차장에는 행사준비로 주차를 하지 못 하였다.
인근 박물관에 주차를 하고 오는 동안
어린이 세 명은 자전거를 빌려 화성행궁앞 광장을 누비며 시간을 보냈다.
화성행궁(華城行宮)은
정조대왕(1776~1800)이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원침(園寢)을
참배하기 위해 묵었던 궁으로 조선행궁 중 최대 규모였으나
일제강점기에 병원, 군청, 경찰서 등이 들어서면서
낙남헌만 남고 모두 파괴되었고
1980년대 수원의료원 증축계획으로 행궁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시민들이 복원운동을 전개하여 1996~2002년 복원, 2003년 개관하였다.
입구에는 달빛화담,야간개장에 대한 안내가 많이 보였고
진남루(鎭南樓)에서 1795년 신풍문(新豊門)로 변경한 입구를 지나니
봉수당앞에는 중앙 어도(御道)와 우측 문관, 좌측 무관의 길이 있었다.
봉수당(奉壽堂)은
1789년(정조 13) 고을의 동헌으로 지어져 장남헌(壯南軒) 이었으나
1795년 윤 2월 13일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계기로
장수를 기원하며 봉수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유여택에서 신하들을 접견하던 정조의 집무실과 처소와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進饌宴)에 차려진 12가지 小別味와 70가지 음식,
42가지 상화(床花)를 연출하여 전시되어 있는 모습도 보았으며
봉수당옆에서 초등입학 95일 꼬마가 스탬프를 찍는 외국인을 도와주었더니
OK와 Thank you를 연발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락당으로 갔다.
장락당(長樂堂)은
1795년(정조 19) 회갑연때 혜경궁 홍씨가 머물던 처소로 사용하던 곳으로
정조는 한나라 고조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장락궁을 본받아 지었다고 하고
장락당과 복내당 사이 담장에 다복문(多福門), 장복(長福門)을 두어
어머니의 복(福)을 기원하였다고 전하며
장락당에 전시된 잔치상에서 봉황으로 새겨진 문어포를 구경하며
어린시절 마을에서 잔치가 있으면 문어조각을 잘 하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아름답게 만들어진 문어포를 잔치상에 올리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미로한정으로 갔다.
미로한정(未老閒亭)은
화성행궁 후원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소박한 정자로
처음에는 육면정(六綿亭)이었으나 1795년 '늙기전에 한가로움을 얻어야
진정한 한가로움이다(未老閑是閑)'라는 시구를 인용해 미로한정으로 바꿨고
아들(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에 내려와
한가하게 노년을 즐기고자 하였던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미로한정 아래 내포사(內鋪舍)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행궁에 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하던 군사시설로
사방을 관찰하기 적절한 장소에 위치하고
전면에 개방된 초소와 뒷면에 근무자들 방으로 된 건물이었으며
다시 낙남헌으로 내려오니 빨간 앵두가 탐스럽게 익어 있었고
행궁 좌우에는 추가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15:40 우리는 화성행궁을 나와서
16:00 선경도서관앞에 위치하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왔던
'우영우 김밥'집(원래 카구르마 일식집)을 찾았더니
'개인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쉬어 갑니다. 죄송합니다'란 안내문만 있고
문이 닫혀 있었으며 사진만 촬영하고 숙소로 출발하여
17:40 용인한화리조트에 도착하여 용인에서 마지막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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