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거경대학에서 논산 명재고택을 다녀와서

오토산 2023. 11. 18. 07:43

거경대학에서 논산 명재고택을 다녀와서

 

 

'산아래' 식당에서 시래기정식으로

시래기밥에 뽁은무우채와 간장을 넣어 비벼서 먹었더니

밥도 맛 있고 가지탕수육과 호박떡, 잡채와 물김치 등

반찬도 맛있게 먹었다.

 

13:00 비가 내리는 관촉사주차장에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관촉사 은진미륵불을 뒤로하고

우리는 노성면에 있는 명제고택을 찾았다.

 

 명재고택(明齋故宅)은 

86년의 삶 동안 단 한번도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지만

소론의 영수로 추앙받은 백의정승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선생이 

1709년 지으신 고택으로 이산을 배산(背山)으로 서쪽에 노성향교,

동쪽에 궐리사와 나란히 하여 남향을 하고 서 있었다.

 

사랑채에는

떠날때와 묻힐때를 아는 사람의 집이란 이은시사(離隱時舍)와

도원인가(桃源人家), 허한고와(虛閑高臥) 등 현판을 볼 수 있었고 

마루앞에는 해시계를 두었던 일영표준(日影表準)이란 표지석도 있었다.

 

높은 기단위에 자리한 사랑채가 있고 뒷편에 안채와 사당이 있었으며

멀경자(冂)형으로 넓은 정원에는 연못이 만들어져 있었고

느티나무가 있는 언덕 아래에는 장독대가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었다.

 

파평윤씨의 논산(노성)입향은 

1538년 윤탁의 손자 윤돈(尹暾 1519~1577)이 파주에서 처가인 여기로,

아들 윤창세가 유봉(酉峯)으로 정착하면서 문과급제 46명을 배출하였고

손자는 윤황(尹煌 1571~1639)은 인조반정 뒤 이조참의, 전주부윤울 지냈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때 사간으로 척화를 주장하였으며

환도 후 부제학 전식(全湜)의 탄핵으로 영동군에 유배되었다.

 

명재( 明齋) 윤증(尹拯 1629~1714)선생은 

윤황의 손자이자 윤선거(尹宣擧 1610~1669)의 아들로 

할아버지가 귀양에서 돌아와 자손들에게 '환로(宦路0에 나가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학문에만 열중하였고 호조참의, 대사헌, 우참찬, 좌찬성,

우의정 벼슬이 내려져도 나가지 않으며

 노론을 일방적인 정국을 견제하여 백의정승이라 불렀다.

 

또 퇴계선생이 예로부터 내려오던 성현의 명(銘)과 잠(箴) 가운데

수신과 학문증진에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손수 쓰신후 이름을 붙인

제고경중마방(題古鏡重摩方) 시(詩)를 차운하여

삼가 퇴도선생의 고경시에 차운하다(敬次退陶先生古鏡韻) 시를 짓고

'늙거나 젊음, 힘이 약하고 강함을 따지지 않고 노력을 다 하는 자세'의

중요함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명재고택에서 이한방 교수의 설명과

권오추 강사의 현판해석을 들으며 고택을 돌아보고

지난 10월 27일 윤대통령 안동방문시

병산서원 만대루에서 있었던 안동유림과의 간담회에서

퇴계선생과 윤증선생의 관계를 설명하시던 대화를 생각하며

200m옆에 있는 노성 궐리사를 찾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