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이육사아카데미에서 밀양 아랑각을 다녀와서

오토산 2023. 11. 12. 19:12

이육사아카데미에서 밀양 아랑각을 다녀와서

 

 

영남루와 천진궁을 답사한 우리는

영남루아래 숲속에 있는 아랑각을 찾았다.

아랑각으로 가는 길에는 대나무숲이 무성하였고

아랑각에서 내려보는 밀양강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아랑각(阿娘閣)은 

조선 명종때 밀양부사의 외동딸 윤동옥이 유모의 꾐에 빠져

영남루로 달구경갔다가 관청잔심부름꾼이 겁탈하려고 하자

죽음으로 순결을 지켰고 이후 부임하는 부사마다 첫날밤에 죽는 일이 생겨

담력이 센 이상사(李上舍)가 신임부사로 부임해서 아랑의 원혼에게서

억울한 사연을 듣고 유모와 잔심부름꾼을 처벌하자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고

밀양사람들은 시신이 발견된 영남루아래 대밭에 烈女祠를 짓고 제사하였으며

1930년 영남루를 고쳐 지으면서 貞純阿娘之碑를 세우고 아랑각이라 칭하였고

1965년 아랑각을 다시 지으며 阿娘祠 편액을 달고

밀양시에서는 매년 아랑제에서 아랑규수를 뽑아 제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아랑각을 답사하고 되돌아와서 무봉사로 갔는데

무봉사 입구에는 밀양라리랑 노래비가 있었고 밀양아리랑이 흘러 나왔다.

 

무봉사(舞鳳寺)는

773년(신라 혜공왕 9) 법조스님이 영남사에 딸린 암자로 지어진 절로서

대웅전의 석조여래좌상은 영남사터에 남아 있던 몸체와

근처에서 출토된 광배와 대좌를 거두어 모신것이라 전하며

대웅전옆에는 약사여래불도 모셔져 있었다.

 

무봉사를 내려오니 유정사명대사 동상이 서 있었다.

사명대사(四溟大師) 유정(惟政 1544~1610)스님은

1544년 10월 17일 밀양군 무안면 고라리에서 태어났고 속명은 응규,

호는 사명당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인 서산대사로 부터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구하라'는 격문을 받고 금강산 건봉사에서

의승병을 일으켜 1593년 1월 8일 평양성을 탈환하였고

남으로 내려오며 도원수 권율과 합류하여 많은 전승을 거두었고 

1604년 조선예조유서(朝鮮禮曹諭書)를 휴대하고 일본으로 가서  국교를 회복,

전란에 잡혀간 조선인 피로인 3,000여명 인솔하여 귀국하였고

1610년 8월 26일 해인사 홍제암에서 입적하였으며 

밀양시민들의 성금으로 1971년 4월 25일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사명대사 동상을 돌아보고 내려와 박기춘선생의 생가를 찾았더니

애수의 소야곡이 흐르는 노래비옆에 선생의 동상이 서 있었다. 

 

 박시춘(朴是春 1913.10.28~1996.6.30 본명 朴順東 )선생은

 밀양에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유랑극단을 따라 다니며 여러악기를

연주하다가 '몬테카롤로의 갓난이'로 데뷰하여 희망의 노래, 항구의 선술집,

물방아 사랑, 신라의 달밤, 애수의 소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럭키서울 등

3,000여곡을 작곡하며 암울했던 일제강점기부터 해방후까지 서민의 애환을

달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전하며 그의 생가가 영남루옆에 지어져 있었다.

 

우리는 아랑각과 무봉사, 사명대사동상, 박시춘선생 생가 등을 돌아보며

영남루 주변을 구경하였고 다음에는 밀양성도 구경하자며 버스로 돌아왔다.

 

15:00 밀양지역답사를 마치고 안동으로 출발하였다.

밀양지역으로 답사를 떠나 육사선생과 함께 중외일보에 근무하다가

함께 조선혁명군사정치학교 1기생으로 졸업한후 독립운동을 하였던

윤세규선생의 유적지와 밀양지역의 독립운동에 대하여 알아 보고

영남루의 절경과 그 주변을 답사하는 시간을 가지며 오늘을 보냈다.

 

오늘 답사를 계획하시고 안내하신 김균탁실장님께 감사드리고

오늘 하루를 함께하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리며

특히 이옥비여사님이 함께하여 주시어 더 감사하였습니다.

추운날씨에 건강하신 나날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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