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행사

퇴계인문아카데미 개강식을 다녀와서

오토산 2026. 3. 20. 06:35

퇴계인문아카데미 개강식을 다녀와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춘분(春分)을 하루 앞 둔 3월 19일 08:00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2026년 퇴계인문아카데미 개강식이 있어

집을 출발하여 시내버스를 타고 신시장에 내려 안동예술의 전당으로 가서

회원님들과 함께 웅부관광버스로 수련원제2원사(明德齋)에 도착을 하였다.

 

이원봉 강사는 오늘 개강식에는 예년보다 많은 73명이 참석하였고

신규로 참석하시는 회원님들이 15명이나 되어서 더 반갑다고 인사를 하였다.

 

10시부터 이원봉 강사의 사회로 열린 개강식은 

강사님들과 읍례와 회원들간 상읍례에 이어 국민의례와 도산십이곡 제창,

지도강사 소개와 김병일 이사장님의 인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사장님은 주자의 스승이신 정자가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많은 공부를 하여

더 건강하신 모습으로 귀환하신(不學이면 便老而衰矣니라) 고사를 인용하시며

퇴계인문아카데미도 2수, 3수...연수를 거듭할수록 자신이 더 건강하시게 되고

공부한 것을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실천하면 모든사람들이 좋아하게 되며

나도 좋고 남도 좋아진다면서 <공부해서 남주자>라고 하셨고

 

이동신 강사님은 26년에는 영천, 여주, 경산, 충주, 상주, 제천, 부여를 찾아

퇴계선생의 발자취를 답사할 계획이라는 년간운영계획을 설명하시며

개강식을 마쳤다.

 

잠시 휴식후 김병일 이사징님은

뜻이 길을 열다(조선최고의 어른 퇴계를 배운다)란 주제의 특강에서

퇴계선생은 늘 착한사람이 많은(所願善人多) 도덕사회를 추구하셨고

민심교화와 선비정신 확립을 위해 전국에 서원건립운동을 전개하여

많은 인재를 양성하셨으며

한문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도산십이곡을 직접 작사하셨고

도산십이곡은 작곡을 하여서 현재 도산서원 모든행사에서 불려지고 있고

 

1571년 퇴계선생이 돌아 가시자

1573년 선조임금은 퇴계의 글을 모두 인쇄하여 후세에 전하라(李滉著書

片言隻字 皆可傳後 脫或散失泯減 必有後傳 令校書館印出)는 명을 내리셨고

도산서원은 유일하게 1575년 낙성과 동시에 사액(書院成 賜額 陶山書院)됐으며

행장(行狀)을 쓰려는 사람이 없어 1576년 행장없이 시호(文純公)가 내려졌고

정조는 1792년 도산별시를 실시하였고

1796년 선생의 9대 종손(志淳)이 평안도 영유현령으로 발령되고 얼마 후

퇴계선생의 신주를 한양을 거쳐 영유관아로 모실때 반촌(성균관 인근)에서

문무백관 950명이 치제를 드렸고 임금도 창덕궁 원근문에 행차하셨다고 한다.

 

 성호 이익(1681~1763)선생은 30세에 도산서원을 방문하여

알 도산서원기(謁 陶山書院記)에서 퇴계선생에게 감동받은 기록을 남기셨고

71세때 병석에서 제자 표암 강세황(1713~1791)에게 특별히 당부하여 

도산서원도(陶山書院圖 1571)를 그려오게 하여 곁에 두었다고 전하며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퇴계집을 읽고 도산사숙록을 저술하시기도 하였고

 

일본(아베 요시오)과 중국(梁啓超)의 학자들도 퇴계선생의 학문을 극찬하고

1980년 공자77대종손(孔德成)은 도산서원을 방문하여 공자와 맹자의 고향과

같다고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칭하였으며 2017년 손자(공수장)도 방문하셨고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는 현재 220,974명(2002~25년)이 수련을 하였다며

특강을 마쳤다.

 

우리는 수련원제1원사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퇴계종택과 이육사문학관, 도산서원을 방문하는 일정이 계속되었다.

지도를 하여주신 지도교수님들과 함께하신 회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배려와 존중으로 도덕사회 구현에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