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안 현하리 두릉구택을 다녀와서

2002년 양양국제공항이 개항되었다는 4월 2일 의성 사곡면으로 가서
오동에 있는 동강서당과 죽포 이필곤의병대장 순국기념비를 돌아보고
우리는 오상리에서 신감리, 소감리를 거쳐 옥산면으로 고개를 넘어서니
<여기는 다슬기와 반딧불이 사는 청정 옥산면입니다>라는 안내판이
눈에 띄었고 지난해 산불이 거쳐간 흔적들을 곳곳에서 볼 수가 있었으며
건너편 황학산에는 풍력발전기가 유유히 돌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옥산지역을 지나는 도로 양측으로는 대부분이 사과 과수원이었는데
고목사과나무는 가끔보이고 주로 철파이프와 함께 자라는 신품종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옥산을 지나 신기마을을 거쳐 길안면 현하리로 넘어서니
현하리의 끝자락에 의성과 경계라서 뒤티, 후현으로 불리는 마을이 있었고
상주~영덕 고속도로가 지나는 곳은 옛날에 대장간이 있었다고 쇠점마을,
마을입구에 팽나무 고목이 있었다고 팽목이라 불리는 팽목마을을 지나니
옛날 길주현(現 길안)의 관아가 있었던 곳이라는 현골(縣谷)마을이 있었고
270년된 회화고목이 대문처럼 지키는 곳에 두릉구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릉구택(杜陵舊宅)은
동래정씨 석문공(鄭榮邦)의 지손인 두릉공(杜陵公 鄭源達)이
1890년 지은 집으로 1948년 안동에서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시고
관선 경상북도지사와 충청북도지사를 지내셨던
정현모(鄭顯?模 1893~1965)지사님이 태어나신 곳으로
매봉산 줄기의 기슭에 남동향으로 자리잡았고 옛 관아터로 전해지며
집뒤에는 아무리 가믈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었다고 전하며
<縣谷 鄭富者>로 알려진 두릉공은 원래 송천 솔뫼골에 살다가
의흥(義興)으로 이사하여 살면서 재산을 불린 뒤에
이 곳에 집을 지었다고 전한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에 위치한 두릉구택은
'ㅁ'자형 안채와 사랑채가 안마당 중심으로 자리하고 앞면이
양쪽으로 1칸씩 돌출된 형상으로 전체는 전통적인 형식을 따르고있으나
평면구성이나 문틀구성 등은 1800년대 말기의 특성을 고루 갖추었으며
3칸의 아랫채가 있었으나 20년전 철거되었다고 전한다.
건물의 전면기둥에는 주련이 걸려져 있었고
안채로 들어가는 문주에는 <명품고택>, <두릉구택>안내판이 있었고
안채 기둥에는 <전통. 향토음식전문가수료업소> 안내판이 보였으며
대청에는 <고택안내문>이 걸려 있고 괴목탁자도 보였으며
마루끝에 하얀고무신을 씻아서 말리는 모습이
고택의 분위기을 한층 더해주고 있었다.
고택을 돌아보고 나와서 버스승강장 뒷편을 보니
현하천 건너에 대나무 숲속에 養?山亭이란 정자가 있었으나
일부 허물어지고 있어 보수가 필요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현골을 출발하여
천석부자가 살았다고 하여 잉골이라 불리고
누구나 여기서 살면 부유하여 진다고 하여 의흥이라고도 불렸다는
잉골입구를 지나 마을앞 하천에 모래가 많아서 사곡, 삽실로 불렸다는
삽실을 지나서 홍은사입구 <카페밀동>에서 차를 한잔하려 하였으나
문이 닫혀서 시내로 돌아와서 강변도로에 만발한 벚꽃을 구경하면서
오전에 출발하였던 <피렌체>로 가서 차를 한잔씩 마시며
오늘의 여행담을 나누다가 각자 헤어졌다.
피렌처에서 차를 사신 면장님과 별유사님께 감사드리고
장거리를 운전하시며 고생을 하신 사무국장님께도 감사를 드리며
특히 여행을 함께하여 주신 종회관회장님께 감사를드립니다.
4월에는 더 건강하시고 더 줄거운 나날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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