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자식을 위하여 재물을 멀리하다(한 소광)

오토산 2012. 3. 27. 03:55

 

 

 자식을 위해 재물을 멀리 하다- 漢 소광(廣)

 

               소광(疏廣)은 漢나라 사람으로 『春秋』에 대한 연구가 매우 깊어 일찍이

                조정에 박사로 초빙되었다. 한선무(漢宣武) 유순(劉詢)이 재위할 때 소광은

                태자 유석(劉奭)을 가르치고 보좌하는 스승을 맡았다. 소광의 조카 소수(疏

                受)도 동시에 태자의 소부(少傅)를 맡아 태부를 도와 태자를 지도하고 보좌

                했다. 

                  태부와 소부의 직책은 주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태자가 성인이 되도록 교

                육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태자의 지위를 지키는 것이다.

                  태부와 소부의 세심한 지도 아래 황태자 유석은 매우 빠른 진보를 보여 한

                선무는 태자의 진보를 보고 매우 기뻐하여 소광과 소수, 이 둘의 뛰어난 재

                능을 더욱 높이 평가했다.

                  바로 이때 소광은 결단을 내려 용퇴하려고 했다. 그는 조카 소수에게 말했

                다.

                  "나는 만족할 줄 알면 곤욕을 당하지 않고, 제때에 그만둘 줄 알면 위험을

                당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지금 우리는 이미 녹봉이 이천 석인 지위에 있으며

                관직도 할 만큼 하였고 명성도 얻었으니 여기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아마도

                후회하게 될 것 같구나."

                  소광의 뜻을 조카는 잘 알아들었다.

                  그날, 이 두 사람은 한선무에게 나이가 들고 쇠약해져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

                 을 청하는 상서를 올렸다. 한선무는 그들의 요청을 허락했다. 소광은 태자를

                 5년 동안 성실하게 맡은 바를 성실하게 하여 성과가 탁월했다. 이를 표창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선무는 그에게 20근의 황금을 하사했고, 황태자 또

                 한 황금 50근을 선사했다.

                  소광은 덕망이 높은 사람이고 소수는 현명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

                 하여 명망이 매우 높았다. 그들이 경성(京城)을 떠날 때, 고위 관리와 오랜 친구

                 들이 성문 밖에서 이별을 아쉬워하며 그들을 위해 주연을 베풀어 전별했다.

                  그날 전송 나온 사람만 해도 몇백 수레에 달하고 거리 양쪽으로 수 많은 사람들

                 이 나와 배웅하며 모두들 "참된 두 분의 현인(賢人)이시다!"라고 칭찬했다. 배웅

                 나온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너무 아쉬워하며 눈물을 떨구었는데 그 정경은 참

                 으로 감동적이었다.

                   황금 70근은 실로 대단히 많은 양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생각했다.

                   '소광이 저렇게 많은 하사품을 받았으니 자손들은 정말 덕을 보겠구나, 저것으

                 로 정말 많은 집과 토지를 살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이 많은 하사품에 대해 소광은 따로 계획한 바가 있었다. 그는 전부 집에

                 가져간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황금을 옛친구와 아랫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집으로 가져간 일부도 자손들에게 물려 줄 생각은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멀고 가까운 고향 친구들을 초대하여 매일 잔치를 열고 예

                 전에 알던 친구들을 새로이 사귀어 함께 우정을 나누며 세상 이야기로 담소를 즐

                 겼다. 이런 생활을 일 년 내내 거의 하루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가 받은 상금은 마

                 치 물처럼 쓰여 없어졌다. 자손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리고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아니! 우리에게는 뭘 남겨주실려고 저러시는 것일까? 온종일 사람들을 초대하

                 여 잔치만 베푸시고 어째서 우리들은 돌보시지 않는 것인가?'

                    하지만 자손들은 감히 소광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본가의 연장자 한 분께

                 소광에게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침내 집안의 연장자가 소광에게 자손들의 염

                 려를 전했다.

                    "제가 비록 늙었으나 자손 후대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리 소씨 집안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집이나 토지만으로도 이미 충분합니다. 자손

                 들이 부지런히 일하기만 한다면 먹고 입는 데에는 풍족하여 중류 이상의 생활 수준

                 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이 상금으로 그들에게 더 많은 재산을 마련해 준다면 겉으로 보면 그들

                 을 배려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들을 앉아서 놀고 먹는 안일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

                  입니다. 사치스럽고 부유한 생활을 누리면 그들은 게으르고 나태해질 것입니다.

                    또 옛 속담에 '현명하고 재산이 많으면 재산이 그 뜻을 헤치고, 어리석고 재산이 많

                  으면 그 허물을 더하게 된다(賢而多財 財損其志 愚而多財 則益其過)' 고 하였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이 만약 재산이 너무 많으면 그의 뜻을 펼치는 데 해가 되고, 우둔하고

                  미련한 사람이 만약 재산이 너무 많으면 그 허물을 더욱 조장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외지에 있었기 때문에 자손들을 잘 교육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이 재물로 자식들의 허물을 조장하여 원망을 사고 싶지 않습니다.

                    이 재물은 황실에서 저에게 쓰라고 하사한 것이니, 저는 기꺼이 고향 사람 그리고

                  옛친구들과 함께 이러한 은사를 누리며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이 또한 정말 좋지

                  않습니까?"

 

                    고향 사람들과 옛친구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은 소광의 진정한 속마음을 듣고 모두

                   기뻐하며 탄복하였다. 송나라의 정치가이자 사학가인 사마광은 이러한 소광을 높이

                   칭찬하며 말했다. "참으로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