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의 적용 (1)
풍수이론을 적용하는 데에는 몇 가지의 구별이 있습니다. 이것은 적용하는 대상에 따라 구분하는 것으로 크게는 산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양택풍수와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음택풍수로 나누어지는데 여기에 나라의 도읍이나 마을의 터를 잡는 양기풍수를 더하여 모두 3가지로 구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이 세 가지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양기풍수(陽基風水)와 양택풍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양기풍수란 나라의 도읍이나 마을의 입지(立地)를 선택할 때 일컫는 풍수용어인데 양택풍수(陽宅風水)가 한 가구의 주택에 해당하는 좁은 의미라면 양기풍수(陽基風水)는 여러 가구의 공동 주거지를 정하는 넓은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아파트는 공동의 주거지이므로 양기풍수에 해당하고 조선시대의 경복궁이나 대학교는 아무리 넓어도 단일한 주체가 거주하므로 양택풍수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영남의 사대길지 중에서 으뜸으로 알려진 경주 양동마을. 회재 이언적 선생이 태어난 야자형(也字形) 명당으로 양기풍수의 진수를 보여준다.
양기풍수와 양택풍수가 구별되는 또 하나의 논거는 배산(背山)의 명칭이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즉 개인이 거주하는 집 한 채나 또는 무덤 한기에 지기(地氣)를 넣어주는 뒤쪽의 배산(背山)은 주산(主山)이라 하고, 마을이나 도읍지의 배산은 진산(鎭山)이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같은 산이라도 대상에 따라 명칭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가령 금정산 아래에 한 개인이 사는 집을 기준으로 본다면 금정산 고당봉은 그 집의 주산이 됩니다. 그러나 부산시를 기준으로 본다면 금정산 고당봉은 부산의 진산이라 부릅니다.
금정산 고당봉은 부산의 진산인 동시에 범어사의 주산이기도 하다.
또 경복궁은 아무리 건물이 많아도 임금님 한 사람이 주인이므로 북악산은 경복궁의 주산이 되는 것이고 양기풍수에 해당하는 서울지역을 기준으로 본다면 북한산은 진산이라 불러야 맞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산과 진산의 구별은 같은 산이라 할지라도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는데 불과한 것입니다.
청와대는 아무리 규모가 커도 대통령 한 사람이 거주하므로 북악산은 주산이 된다.
또한 양기풍수와 양택풍수의 차이는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도읍이나 마을은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아야 되므로 국세가 넓어야 하는 반면에 개인이 사는 집은 규모가 작다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몇 가지의 차이가 있으나 터를 잡는 원리는 모두 같으므로 용어의 차이만 구별할 수 있으면 되겠습니다. 양택풍수(陽宅風水)는 다시 집터를 잡는 입지선정 행위인 터잡이와 건물자체의 구조와 배치를 정하는 간잡이로 나누어집니다. 간잡이 이론은 대문과 안방, 그리고 부엌을 3요소(要素)로 하는 양택 3요결(陽宅三要訣)과 집과 집터의 형상을 논하는 가상학(家相學)이 있습니다. 이것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근차근 공부해 나갈 것이니 지금은 너무 궁금해 않으셔도 좋습니다.
경복궁의 근정문. 양택풍수의 진수는 궁궐풍수에 있다. 궁궐의 풍수적 배치원리를 본 따서 사대부 집안의 주택이 조성되고 이어서 평민들은 사대부의 주택풍수를 모방하여 집을 짓게 된다. 조선 초기에 축조된 경복궁은 조선 팔도 모든 양택풍수의 모범답안이 되는 것이다. 다음은 죽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음택풍수가 있습니다. 이것도 또한 양택풍수나 터잡이 원리는 같습니다. 다만 차이는 산사람은 움직이므로 비교적 터가 넓어야 하지만 죽은 사람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터가 좁아도 상관없다는 차이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풍수하면 음택풍수를 먼저 떠올리고 죽은 사람의 묘터가 산사람의 길흉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구릉에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 무덤풍수의 진수는 왕릉에 있고 이 왕릉을 본 따서 사대부들의 무덤양식이 만들어지고 평민들 또한 사대부 선산을 모방하여 무덤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묘를 조성하는 법도는 왕릉이 모범답안이다. 바로 이런 사상 때문에 풍수가 학문이 아닌 미신으로 치부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 앞으로 하나씩 무덤풍수의 폐해에 대해서 비판을 해 보겠습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무덤풍수는 아예, 전혀, 믿지 말라고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을 지금 밝히려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야 되므로 차츰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풍수를 공부하는 학인으로서의 자세에 대해 한 말씀만 드리고 오늘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옛날에는 풍수공부를 아무나 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 이유는 풍수를 공부하려면 우선 글을 알아야 하는데 평민들은 글을 배울 수 없었으므로 풍수공부를 하려해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는 풍수를 배우려면 전국의 명산대천을 두루 답습을 해야 하는데 두 발로 걸어 다니던 옛날에는 산을 보러 길을 떠나면 몇 달 또는 몇 년을 집에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집을 비우려면 집안에는 식구들이 일용할 양식이 넉넉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결국 풍수를 공부하는 주된 사람들은 양반가의 부잣집이 아니면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부류가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절에 있는 스님들이었지요. 글자를 알고 십년 이십년을 공부에만 전념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되고 게다가 가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부가 있어야 되었으니 이 조건을 모두 가진 사람은 부자인 양반계층과 절간의 스님 말고는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해서 풍수는 특별히 신성한 학문으로 치부되었고 따라서 풍수사에게 요구하는 특별한 조건들이 따라붙게 되었답니다. 설심부(雪心賦)라는 풍수책에 풍수사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적혀있는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명사전수(名師傳受): 명사를 만나 전수 받아야 한다. ②심령지교(心靈智巧): 마음이 지혜롭고 정교하여야 한다. ③다간산적(多看山跡): 선인들이 점혈한 자취를 많이 보아야 한다. ④독서명리(讀書明理): 좋은 서적을 많이 읽어 이치에 밝아야 한다. ⑤전심치지(專心致志): 전적으로 뜻을 모아 풍수공부에 정진해야 한다. ⑥심술단정(心術端正): 마음이 깨끗하고 단정해야 한다.
여기서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저의 입장에서는 ①번 항목이 쪼매 마음에 걸립니다요. 그러나 여러분들은 과히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비록 명사는 아니지만 저는 대한민국에서 내노라하는 스승님을 두 분이나 모시고 풍수공부를 하였습니다.
그 분들은 건설교통부 행정수도 건립위원회 풍수자문위원으로 계시며 풍수지리학으로 박사학위까지 있고 현재 대학과 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분들이고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시는 명사 중의 명사이십니다. 따라서 제가 그 분들에게 사사받은 내용으로 강의하기에 여러분들은 명사에게 전수 받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쫌 농이 지나쳤나요. 그렇다면 이해하시고 암튼 전수 받은 대로 열심히 함 해 보겠습니다. 풍수공부를 잘 하려면 바로 이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말 정도로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너무 길면 읽으시는데 지루하실까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출처 :신비한 약초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 한이정(韓 頤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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