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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에서 사람을 본다(우받세/지평)

오토산 2014. 2. 1. 10:33

 

 

옛 그림에서 사람을 본다   

사람이 나오는 우리 그림을 골라서 책으로 낸다.

일하는 사람과 노는 사람,

꽃을 보는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

숲을 걷는 사람과 물에 가는 사람 들이 그림 속에 등장한다.

생애 한 순간의 틀거지가

화가의 붓에 붙들린 초상 속의 인물도 여럿 나온다.

사람 그림들을 죽 펼쳐놓고 보면서 새삼스레 깨단한다.

그림 밖의 사람은 그런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고,

그림 속의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이 많다.

이럴진대 사람 그림을,

그려진 사람으로만 여기겠는가.

보고 또 볼 일이다.

- '앞서는 글' 중에서

 

 

미술담당 기자 출신인 저자 손철주

우리의 옛 그림을 보는 눈이 탁월하다.

그림 속의 사람을 읽어내는 능력도 능력이려니와

그의 글솜씨 또한 일품이다.

'손철주의 그림 자랑'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는

모두 85편의 옛 그림이 등장한다.

저자의 그림 해설은 우리의 안목을 높여주기에 충분하다.

 

질문 : "그림에 좋고 나쁜 것이 있습니까?"

저자의 답 : "좋고 나쁜 것이 있다기보다 더

                나은 것이 있겠지요" 

 

이 책은 미술평론가이기도 한 저자가 

사람을 그린 옛 그림을 통해

그 인물의 풍상과 그 속내까지를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미술도서이다.

 

그는 해박한 식견을 바탕으로

옛 사람들의 생김새와 매무새,

차림새와 모양새에서

그 품새와 본새를 읽어냄으로써

독자들을 그 시절로 데리고 간다.

 

맨 먼저 18세기의 단원 김홍도 작품

<세마도洗馬圖>를 멋지게 해설한다.

버들가지에 물오른 봄날에

주인장이 못에 들어가 말을 씻는다.

아랫것들 시켜도 될 일을 굳이 자청한 데는

그만큼 날이 따뜻하다는 게다.

 팔 걷어붙이고 다리통까지 드러냈지만

양반임을 드러내려고 탕건을 썼다.

말의 표정을 살피더니 입도 안벌리고 웃는 모양새라며

말이 매우 기분이 좋은 모양이라고 덧붙인다.

단원의 글씨와 낙관도 보인다.

 

문외녹담춘세마(門外綠潭春洗馬)

누전홍촉야영인(樓前紅燭夜迎人)

 

 

 

 

 

책 속에 실린 그림 85편의 대부분은 사람이 등장하는 인물화다.

그런데,

인물화는 인물과 더불어 어떤 소재를 다루느냐에 따라

그 종류가 달라진다고 한다.

산수山水 인물화,

고사故事 인물화,

풍속風俗 인물화,

도석道釋(신선이나 초월의 세계) 인물화 등으로 분류된다.

 

윤덕희, '책 읽는 여인' - 18세기, 비단에 담채, 20×14.3㎝, 서울대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여인에게 붓과 벼루는 멀었다.

부덕(婦德)은 오직 바느질하고 누에치고 길쌈하는 일이었을 뿐,

독서와 학문은 여자의 몫이 아니었다.

하지만 배우려는 열정은 같다.

책 읽는 부인의 모습은 사대부 출신임을 보여준다.

올림머리 야단스럽지 않고,

저고리 길이는 맞춤한데,

여자 저고리의 깃이 단정하다.

개다리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책을 펴들었다.

 

이 작품은 문인화가 윤덕희가 그린 것이다.

아버지는 윤두서, 아들은 윤용, 삼대가 내리 화업畵業을

이은 명문이다.

행간을 놓칠세라 검지로 또박또박 짚는 여인의 모습에서

정독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여인의 신분으로 책 읽고 글을 쓰기가 고달픈 시절이 있었다.

금禁한다고 금禁해지겠는가.

 

조선의 초상화는 '전신傳神기법'을 큰 자랑으로 삼는다.

'정신을 전달한다'는 얘기다.

모델의 정신까지 화면에 살려내는 이 기법은

눈동자 묘사에 성패가 달려 있다. '

눈은 정신을 빛내고 입은 감정을 말한다'고 했다.

 

작자 미상인 <송인명 초상>의 백미는 입이다.

검붉은 입술 사이로 툭 튀어나온 앞니 두 개는 새하얗다.

송인명(宋寅明)은 영조 때 좌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뻐드렁니가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만들었다.

이런 인상은 저항하기 힘든 포용력으로 비친다.

이처럼 우리 초상화는

'얼굴을 통해 정신을 그리는' 방식이다.

겉을 구미느라 속을 놓치는 초상화는 허깨비 인물상에 머문다.

 

 

'이하응 초상' - 이한철·유숙 그림, 비단에 채색, 133.7×67.7㎝, 1869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초상화를 그릴 때마다 그는 옷을 갈아입었다.

눈부신 예복과 당당한 관복,

그리고 깔끔한 평상복 두어 벌.

 매무새는 지금까지 남은 그림들에 고스란하다.

 몸에 딱 맞는 의관衣冠이 하나같이 귀티난다.

'구한말의 패셔니스타'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그는

바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다.

 

       모자도 이채롭다.

와룡선생 제갈량이 즐겨 써서 그 이름이 '와룡관'이다.

와룡관 속에 탕건,

탕건 속에 망건,

망건 위에 상투가 죄다 비친다.

디테일에 집착하는 옛 화가의 고집은

초상화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눈이 자주 희번덕거렸다는 대원군의 서슬은

칼로써 묘사했다.

탁자에 세워둔 칼은 칼집에서 빠져나와 있다.

 

 

 

       단원의 풍속화는 정겹고 따스운데 비해,

혜원의 그림들은 야릇하고 뜨겁다.

단원의 <낮잠>은 볕 가리개 둘러친 노인이 책 꾸러미에

팔베개한 채 평상에 누워 잠을 즐긴다.

<벼 타작>은 소박하고 활기찬 농촌의 일상을 그렸다.

<부부 행상>에는

남부여대(男負女戴)의 지친 삶이 묻어난다. 

혜원 신윤복은 <꽃을 꺾다>에서 대감집 뒤뜰의 몹쓸 짓을 그렸다.

젊은 양반의 계집질을 그저 꽃 하나 꺾는 놀이에 견준 셈이다.

 

       혜원의 난봉기질이 드러나 보인다.

부잣집 조경용으로 인기 있던 태호석(太湖石)의 불끈 솟은

형상은 사내의 음심과 닮았다.

마당에 보이는 나무는 목백일홍, 즉 배롱나무다.

이 나무는 백일 동안 붉다.

오랫동안 놀아보잔 표현이다.

 배롱나무의 속명이 간지럼나무다.

겉이 옷을 벗은 맨살처럼 반질반질한데,

줄기를 살살 간질이면

가지가 바르르 떤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상상에 맡긴다.

 

 

       깎은 절벽 가운데로 나무 한 그루가 튀어나왔다.

옆으로 자란 소나무다. 

과연 소나무가 이 그림의 주연일까?

이는 화가 강세황의 19세기 그림 <산수>다.

그림의 구도를 보면 단박에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 쓸쓸한 산수화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비어 있는 집이다.

풀로 엮은 지붕과 기둥 네 개로 버티고 있는 정자다.

산 아래 강물이 흐르는데,

정자 안에 사람이 없다.

비록 인기척은 없지만 화가의 마음은 텅 빈 정자에 이미 가 있다.

 

       18세기 초 선비화가인 윤두서<채소와 과일>

마치 수채화로 그린 서양 정물화 같다.

윤두서는 관념보다 사물의 실질을 아꼈다.

널찍한 쟁반에 통 큰 수박,

싱싱한 가지 두 개,

참외,

그리고 감(아니면 토마토) 세 개가 보인다.

과일이나 채소를 등장시킨 속담이 떠오른다. '

수박 겉핥기는 섣부르다',

'수박은 속을 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

'가지 따먹고 외수外數한다',

'참외 버리고 호박 먹는다' 등등,

이처럼 보는 이는 그림 대하는 맛이 제각각이다.

 

출처:cho sun 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