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실

생명의 열두달(우받세/한빛)

오토산 2014. 12. 16. 03:55

 

 

 


 



    『생명의 열두달』

    이어령의「생명이 자본이다」에서...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
    생명에서 출발하지 않은 것들이 있는가?
    이제껏 사람들이 살아온 것도 보이지 않는 생명의 힘이며 사랑이었다.
    소중히 지켜온 생명이 이제는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창조적 자본이 될 것이다. 여기에 생명의 소중함과 가치를 새긴 메시지를 담았다.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1월

    일생은 한 방울의 눈물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두 손을 꼭 움켜쥐고 태어난다.
    자기를 키운 엄마의 아기집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폐가 열리는 첫 호흡이 힘찬 울음소리가 되고
    맨 처음 본 눈부신 빛이 눈물 한 방울이 된다.
    어떤 과학의 힘으로 이 한 방울의 눈물 속에 담긴
    생명의 의미를 분석할 수 있겠는가.
    빗방울 하나가 바다가 되듯이 태어날 때 흘린 눈물 한 방울이
    인생을 담는 호수를 만든다.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 2월

    언 산속에서 찾지 못한 매화 어느새 내 집 마당에 피어 있었네
    탐매(探梅). 옛날 선비들은 세한에 피는 매화를 찾기 위해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누구도 얼음 골짜기 눈 덮인 산봉우리에서 매화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햇다.
    그런데 보라. 지친 걸음으로 돌아와 보니 어느새 자기 집 뜰에 매화가 피어
    그윽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는 이야기.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는 탐매정신,
    그것이 바로 내 마당에 매화꽃을 피운 생명자본주의 정신이다.


    연못에 물이 고이는 달, 3월

    자연을 지배하려던 인간 이제는 자연에서 배우려는 인간
    인간은 벌에서 꿀을 따왔다.
    그런데 이제는 벌에게서 집을 짓는 슬기를 배워온다.
    육각형으로 이어지는 벌집 구조. 엔지니어들은 이 가볍고 튼튼한 벌집을
    모방하여 최첨단 항공기 자료를 만들어 낸다.
    축구 골네트도 사각형에서 육각형으로 변해가고 있다.
    21세기 사람들은 자연에서 배우고 그 슬기로 창조한다.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 4월

    바퀴벌레는 배설물을 남기지 않는다.
    3억 년을 이 지구에서 살아온 바퀴벌레. 그래서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더러운 수채에서 나왔는데도
    잘 닦은 구두처럼 까맣게 반짝이고 먹을것, 마실것이 없어도
    작은 틈새에서 겨울을 나는 신기한 벌레, 사람은 바퀴벌레를
    싫어하지만 사실은 오줌을 누지 않고 몸안의 세균을 이용해
    아미노산을 만들어 재 활용하는 슬기로운 생물이다.
    바퀴벌레를 죽이기 전에 인간들만이 쓰레기로 이 지구를
    덮어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라.


    구멍에다 씨앗 심는 달, 5월

    집은 창조의 근원이다.
    집은 '짓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집의 옛말은 '짓'이었다.
    지아비, 지어미라고 할 때 붙어다니는 '지'란 말 역시 '짓'에서 나온 말이다.
    농사를 짓고, 밥을 짓고, 옷을 짓고, 글을 짓고...
    모든 것을 짓는 창조의 근원이 집인 것이다.
    짓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요, 산다는 것은 곧 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들이 모여 가장 큰 집으로 커진 것이 바로 국가 (國家)다.


    잎사귀가 다 자란 달, 6월

    기린과 찌르레기의 아름다운 상생
    기린은 목이 길어 몸에 붙은 기생충을 잡을 수 없다.
    그것을 알고 찌르레기들은 기린의 친구가 되어 벌레들을 잡아준다.
    기린에게는 고마운 청소부, 찌르레기에게는 풍요한 목장이 생긴 것이다.
    이왕이면 약육강식하는 밀림만 보지말고 기린과 찌르레기가 어울려 사는
    아름다운 초원의 풍경으로 눈을 돌려보라.
    살생의 받침 하나를 바꾸면 상생이 된다는 것을 알게된다.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 7월

    넓고 깊은 바다가 진주알을 키운다.
    생명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그 안에 무한히 넓고 깊은 바다가 있다.
    생명이 바다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진화론자들만의 생각이 아닌 것이다.
    진주알을 보면 안다. 그 작은 것이 빛을 얻어 영롱하게 빛날 때 까지
    바다는 자신의 내부에서 그것을 키웠던 것이다.
    바다가 없었다면 어떻게 진주 목걸이가 저 여인의 가슴 위에서 빛날 수 있었을까. 생명의 바다가 작은 진주알 속에 있다.


    기러기가 깃털을 가는 달, 8월

    코끼리가 아니다. 미래를 알려면 작은 모기를 보라.
    소처럼 덩치가 큰 짐승을 잡아먹고 사는 것이 인간이지만
    바로 그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것은 작은 모기다.
    모기는 그 가는 뒷다리에 잇는 초음파 센서로 인간 피부 용적의 1, 2 % 밖에 되지않는 말초 혈관을 정확히 찾아내 그 침을 통해 피를 빨아들인다고 한다.
    작기 때문에 큰 것을 이기는 바이오, 나노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을 모기소리에서 듣는다.


    어린 밤 따는 달, 9월

    농업은 하늘 땅 사람이 하나가 되는 생명철학.
    평생 방안에서 글만 읽던 선비들도 농사짓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을 붓으로 밭을 가는 것이라고 하여 필경 (筆耕)이라고 했다. 철을 따라 씨를 뿌리는 마음은 하늘의 힘을 알기 때문이고 돌 땅에
    곡식을 심지않는 것은 땅의 힘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아무리 도와도 풀 뽑고 흙 돋우는 일을 하지 않고서는
    한 톨의 곡식도 거두지 못한다. 하늘을 알고, 땅을 알고, 사람을 아는,
    세가지 힘. 그것을 아는 것이 농사짓는 마음이며 슬기다.
    농부는 시인이요 철인이다.


    새들이 남쪽으로 날아가는 달, 10월

    뉴턴의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라 높은 가지에 열리는 생명을 보라.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뉴턴은 왜 사과가 높은 나뭇가지 위에 매달려 있었는가 하는 것은 생각지 않았다. 떨어지는 것은 물리법칙이지만 지구의 인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식물에겐 생명의 법칙이 있다.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의 힘도 중력법칙을 생명법칙으로 바꿔 놓았다. 못에서 승천하는 용도 생명법칙의 상징이다.


    모두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

    강을 건넜으면 타고 온 뗏목은 놓고 가야지.
    뗏목은 강을 건너는 수단이다. 강을 건너면 정한 목표를 향해 가야한다.
    그런데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넌 사람이 그것을 버리지 않고
    등에 메고 간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
    뗏목은 강을 건널 때만 필요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강을 건너는 이유는 목표를 향해 가기 위해서다.
    마찬 가지로 과거의 문명은 생명을 살아가는 수단에 불과할 수 있다.
    그 기술, 그 문명에서 벗어나지 않고서 새로운 길을 갈 수 없다.
    뗏목은 버리고 가라.


    첫 눈발이 땅에 닿는 달, 12월

    정보의 홍수에 띄울 노아의 방주를 만들라.
    지금은 빛의 속도로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세상이다.
    하지만 한 지붕 밑에 살면서도 가족끼리 말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통신위성이 지구 구석구석을 이어 주는데 바로 옆 독거노인의 죽음은
    우편물이 문 앞에 쌓여야만 비로소 아는 세상이다.
    정보통신을 한문자로 써보면 영어에는 없는 정(情) 과 믿음(信)이라는 두 글자가 나타날 거다.
    이 두 글자만 있으면 정보홍수 시대에 노아의 방주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생명의 씨앗을 함께 담아라.
    진정한 내 이웃들과 올리브 잎을 물고오는 비둘기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이어령 저서「생명이 자본이다」(2014. 2, 마로니에북스)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