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곡 의 전설
글이 좀 길기는 하지만 글의 내용도 좋고 참기름으로 요리한듯한 글입니다. 이는 이율곡의 아버지 이원수를 두고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계절이기도 하지만 밤꽃의 계절입니다. 옛날에는 남자들의 정액 냄새와 비슷한 이 냄새를 '양향(陽香)'이라 하여 서양에서도 밤꽃 향기는 남자의 향기에 비유되었습니다. 옛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과 함께 들어가 봅시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지금으로부터 380년 전. '혼인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큰 인물이 될 때까지 부부관계를 잠시 접고 나는 친정에 가서 그림 공부나 하며 서방님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기다릴 테니 서방님은 한양에 올라가서 공부나 하시도록 하세요'라는아내의 청을 받아들여 한양으로 공부하러간 이공(李公)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아내와 떨어져 공부에 전념하던 선비는 강원도 대화(평창)의 한 주막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뻥뻥 뚫려 있어 서울에서 한나절도 못되는 두어 시간 거리이지만 그때 그 시절 강릉을 오가는 선비들은 대화나 진부에서하룻밤을 묵고 아흔 아홉 구비 대관령을 괴나리봇짐에 짚신을 매달고 몇날 며칠을 걸어 양주땅 두물머리, 양평, 횡성을 거쳐 대화까지 왔으니 노독이 쌓여 곤한 잠에 떨어진 밤. 울어 에는 밤. 교교한 달빛이 스며드는 야심한 밤에 주안상을 받쳐들고댓돌위에 신발 벗는 소리와 함께 장지문을 여는 여인이 있었다.
"주막집 아낙이옵니다." 달빛에 비치는 여인을 바라보니 틀림없는 주막집 여인이었다.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 무렵 주막을 찾아들었을 때 수려한 인물에 여염집 여인 같은 단아한 자태가 이런 시골구석 주막에 있기는아까운 인물이구나 하고 눈여겨봤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아무래도 여인의 자태에서 양반집 규수의 흔적이 묻어나고 있었지만 들이쉰 숨을 아래로 내려 음기(陰氣)를 아래로 모은 뒤 깊이 빨아들이는 마음으로 더 깊은 아래로 흘려 내리는 훈련을 한 걸음걸이로 보아 여염집 아낙은 아닌 듯싶기도 하다.
그러하다면 술을 따르거라." 거문고를 안아 가져온다. 그 옆에 걸려 있던 선비의 의관(衣冠)이 백색 도포에 남색 띠인 것으로 보아
섬섬옥수(纖纖玉手) 여인의 오른손이 술대를 쥐고 허공을 가르더니만 거문고가 팅~ 통~ 탱~ 울어댄다. 밤나무로 뒷 받침대를 하고 오동나무로 울림통을 한 거문고는 음양(陰陽)이 교합할 때 들려오는 교성(嬌聲)처럼 잦아들다 솟구쳐 오르고 솟구치다 잦아드는 음색(音色)이 황홀하고 열락(悅樂)적이다. 받으시오/이 술 한 잔 받으시오/ /잡으시오/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오." 윤기 흐르는 귀밑머리에 복숭아 빛 얼굴. 이러한 여인을 단순호치(丹脣皓齒)와 녹빈홍안(綠?紅顔)의 미인이라 했던가. 이러한 미인이 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권주가와 함께 잔을 채운다. 부드러운 여인의 손에 들려 있던 호리병에서 흘러나온 송화주가선비의 입을 통하여 몸 속에 흐르자 짜르르~ 술기운이 전해져 ? 쨈?.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아닌 '??두깨'라고 이게 무슨 횡잰가? 야심한 밤에 술과 여자라. 회가 동하지만 신분이 뚜렷하지 않은 여인은
그것도 야심한 밤에 남정네의 방에 들어와 그러한 말을 하니 듣는 사람, 선비가 놀라 자빠질 일이었으나 촉촉이 젖은 그 여인의 검은 눈망울은 그 무엇을 간절히 갈구하고 있었다.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빛이 쏟아져 내리고 달빛은 교교한 이 야심한 밤에 여인이 스스로 찾아들어와 겨드랑이가 깊이 파인도련의 연분홍 항라 저고리를 벗으며 모란 무늬가 은은한 갑사 치마끈을 풀며 품속으로 파고들어오니 아무리 선비의 체통이 군자의 뜻을 좇는다 해도 갈등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귀밑머리에서 흘러내린 어깨선이 상아를 깎아 내린 듯 유난히 아름답다. 아직은 다 벗어 내리지 않았지만 치마속 말기 속에 반쯤 드러난 젖 무덤이 터질 듯이 솟아 있다. 바람이 분다. 흔들리는 불빛에 드러난 여인의 얼굴은 불그스레 물들어 있고숨소리는 거칠어진다. 거친 숨소리가 점점 더 가빠온다. 촉촉이 젖어 있는 여인의 두 눈이 스르르 감기더니만 별빛처럼 반짝거린다. 분꽃씨 같은 여인의 검은 눈동자가 눈물에 떠있는 한 조각 편주(片舟)처럼 흰자위에 두둥실 떠 있다.
멍! 멍! 멍! 밤하늘에 흐르는 달그림자를 보고 놀랐는가? 컹컹대는가? 이때 아랫마을 개 짖는 소리가 적막을 깨고 들려온다. 아궁이에 군불 지피다 남은 솔가지가 타닥거린다. 밤하늘엔 별이 쏟아지고 또 다시 적막이 흐른다. 7년 전 한양으로 공부하러 떠나올 때 어른들과 아랫것들 시선 때문에 문 밖까지 배웅도 못하고 사랑채 문간을 부여잡고 흐르는 눈물을 옷고름으로 닦던 아내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지게문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달빛이 여인의 어깨 위에 푸르게 부서지며 흘러내린다. 어깨 위에 일렁이던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여인은 화선지를 가져오지 않았다. 처연하기까지 했다. 【거울에 비친 꽃이요 수면위에 떠있는 달이로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내려간 휘호를 치마에 남겨두고 동창이 밝을 무렵 주막집을 나선 선비는 장평, 진부를 지나 아흔 아홉 구비 대관령을 넘어 해질 무렵에 처갓집에 도착하였다. 몰라보게 자랐지만 아내의 모습은 새색시 그대로 고운 모습이었다. 아내와의 운우(雲雨)의 정을 푼 선비는 과거시험 때문에 다시 처갓집을 떠나 한양 길을 나섰다. 대관령 굽이굽이 휘돌아 고갯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면서 주막집 그 여인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었다. 이 길을 통해서 신사임당도 영마루를 넘었으며 율곡 이이(李珥)도 대관령을 넘었을 것이고 강릉에서 태어나 열네 살 고운 나이에 경기도 광주로 시집간 허난설헌도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며.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황진이도 인생의 허무를 느껴 관서팔경과 지달산(금강산)을 유람하고 관동팔경을 섭렵한 다음에 단양팔경을 구경하기 위하여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다. 이런 고얀 일이 있는고. "지금은 아니돼옵니다. 그때는 선비님의 안색에 그러한 서기가 넘쳐났으나
"그 아이는 사내아이로서 인시(寅時)에 태어날 것이며 일곱 살 되던 해에 호환(虎患)이 두렵사옵니다." 하늘의 뜻을 전하는 천기누설(天氣漏泄)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밤나무는 죽어서 신주(神主)가 되어 가문의 영광을 이끌어주며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신성(神聖)한 나무이기에 밤나무를 심는 것은 덕(德)을 쌓는 것이다. 시댁에 와 있던 아내에게 전후 사정을 말하고 고향집에 천 그루의 밤나무를 정성들여 심었다.
열반산(금강산) 유점사에서 왔다는 노(老)스님이 갈포 장삼에 굴갓을 쓰고 찾아와 ' 이 고을에 나라의 재목이 될 아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노라'며 아이를 보자 하기에 '내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며 호통치고 밤나무를 가리키니 밤나무 숫자를 세고 있지 않은가.
하나, 둘, 셋. 이렇게 세어가던 밤나무 숫자가 999에서 멈췄다. 선비는 율곡의 아버지 감찰공 이원수(李元秀)이고 임신한 여인은 우리의 영원한 현모양처의 표상 신사임당(申師任堂)이시다. 활인수(活人樹)라 하고 .그 나무가 있던 고개를 율목치(栗木峙) 또는 밤나무 재라 부르며 조심스럽게 추측하였다..
|
'인문교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비의 리더쉽 (0) | 2015.01.01 |
---|---|
사자소학학습 (0) | 2014.12.28 |
중국의 4대미녀와 3대악녀(우받세/원호) (0) | 2014.12.17 |
생명의 열두달(우받세/한빛) (0) | 2014.12.16 |
한국속담사전(안평) (0) | 2014.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