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를 찾아서

이인화 의병장의 생가 온계종택 탐방

오토산 2017. 4. 18. 23:29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434

 

이인화 의병장의 생가 온계종택 탐방

 

 

 

 

퇴계묘소 참배를 마친후 온혜초등학교 입구에서 내려 온계종택을 찾았다.

온계종택을 가는 입구에는 노송정 이계양선생의 아들이고 퇴계선생 숙부로서

중종때 문장에 현달하신 송재공  이우선생의 신도비가 위치하고 있었다.

 

溫惠마을은 온계였는데 溫泉이 있어 여러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게 되었다는

뜻으로 온혜라 하였고 노송정 이계양(1424~1488)은 부라촌에 살며 봉화 훈도를 할때

 온계를 자나다 스님을 만나 '이곳에 살면 반드시 귀한 자손을 얻을것이다'라고 하여

여기에 집을 짓고 살며 세상에 나아감에 힘스지 않고 자제들의 교육에 임을 써서

후일 동방의 주자로 추앙받는 퇴계선새이 태어난 海東闕里, 山南考亭으로 불린다.

 

溫溪宗宅은 온계 이해(1496~1550)선생의 종택으로 원래 노송정종택옆에 있었으나

의병전쟁당시 온계종손의 동생 이인화(1859~1929)가 의병장으로 활약한데 앙심을

품은 일본군의 방화로 소실되고 일제의 탄압을 피해 청송,예천,문경 등지로 진전하다

해방후 고향으로 돌아와 도산 온천 뒷편에 翠微軒(취미헌현판은 대원군의 글씨)이란

 정자를 짓고 종택으로 사용하다가  2010년 국가보훈처의 지원과 후손의 정성으로

복원하였고 온계종택은 온계의 손자 이유도의 당호에 따라 '삼백당'이라고도부르며

온계선생과 정부인 연안김씨를 불천위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溫溪 李瀣선생 진사 이식의 넷째아들로 퇴계의 중형으로 조선중기 문신으로

송재 숙부로부터 글을 배워 30세에 진사, 33세에 식년문과를 급제하고

직제학, 경상도 진휼어사, 동부승지, 도승지, 대사간, 대사헌등를 역임하였으나

명종이 즉위하며 을사사화로 화를 당하고 강원.황해.충청관찰사를 거쳐 한성부윤시

무고사건에 연류되어 갑산 귀양길에 숨을 거두었고 훗날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우리가 종가를 찾으니  직장생활을 하시다가 종가를 복원하여 마을에 사시면서

5개면의 통합학교인 기숙형 도산중학교를 유치하시는등 마을사업을 위하여

노력하고 계시는 이목 종손에게 집안의 유래와 종택의 복원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고 종택앞에 500여년의  밤나무는 온계선생이 심은나무로

밤톨이 한알인것이 특이하고 정기가 서린나무이니 밤나무 정기를 받아가시라는

인사와 함께 이목 종손과 헤어져 우리는 노송정종택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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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한마디

행복은 누리고 불행은 버리는 것,  소망은 쫒고 원망은 잊는 것

사랑은 끓이고 미움은 삭이는 것, 기쁨은 찾고 슬픔은 견디는 것, 

건강은 지키고 병마는벗하는 것, 가족은 살피고 이웃은 어울리는 것,

기쁨은 마음속의 행복한 스위치 오늘도 웃음으로 하루를~~~

 

 

 

 

 

 

 

 

 

 

 

 

 

 

 

 

 

 

 

 

 

 

 

 

온혜에 지어진 기숙형 중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