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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경대학에서 퇴계선생묘소 참배
이육사문학관에서 고개를 넘어서니 하계마을입구에 독립운동기적비가 서 있고
기적비 건너편 계곡에는 퇴계선생 묘소가 있고 묘소가는 입구에 바위(東巖)가 있고
바위 옆에는 퇴계선생이 초년에 잠시 기거 하시던 養眞庵古止 표석이 있으며
우측계곡에는 퇴계 가학을 전승한 손자 李詠道도의 東巖宗宅과
증손 李岐의 守拙堂이 위치하고 있다.
下溪마을은 퇴계선생의 동암 이영도(1559~1637)가 터를 열어 살게되면서
400여년 문인,학자가 배출되어 영남의 유림문화를 주도하여 왔으며
조선시대 문과출신자가 15명,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25명이 한마을에서 배출되었고
경술국치 자정순국, 3.1만세운동, 파리장서사건, 예안만세운동, 만주독립운동 지원,
유림단군자금사건, 신간회 운동등 광복운동과 6.25전쟁과 근대 산업화 과정등
나라가 어려울때 마다 앞장서 왔으나 안동댐 건설로 대부분이 수몰이 되고
독립운동 기적비만 마을을 지키고 있다.
퇴계묘소는 겨레의 스승 退溪 李滉(1501~1570)선생의 천년유택으로
遺命에 따라 관직을 쓰지 않고 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 간결하게 쓴 묘비가 있고
묘소 아래는 '시아버님 생존시에 내가 시아버님을 모시는데 여러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사후에라도 다시 아버님을 정성껏 모시고 싶으니 내가 죽거든 반드시
아버님 묘소 가까운 곳에 묻어 주도록 하여라'고 유언을 남긴 며느리 봉화금씨의
묘소가 있었다.
묘소 참배를 한후 군자의 참된 삶을 마무리하신 考終記, 고봉 기대승의 墓碑文과
죽기 전 본인의 일생을 겸허하게 회고하여 자신이 직접 쓴 自銘에 대하여
설명을 듣으며 선생의 일생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묘소참배를 마치고 온혜마을을 찾아서 노송정종택과 온계종택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행복을 찾기 위해 소매를 걷지 말고 마음속 허영을 버리면
그 만큼 행복을 담는 그릇이 커지게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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