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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임란북천전적지를 찾아서
양진당을 나선 우리는 만산동에 있는 임란북천전적지를 찾았다.
壬亂北川戰跡地는 1592년(선조25) 임진왜란때 조선관군과 의병들이 왜군에
대항하여 격전을 벌였던 전적지로 순변사 이일이 인솔한 관군과 상주지방에서
창의한 의병들이 북상하는 왜군의 기습을 받아 이일과 종사관 윤섬, 이경류, 빅호,
상주판관 권길, 사근도찰방 김종무, 의병장 김준신, 김일 상주목 호장 박걸등과
많은 군사들이 순절하고 패전하였으나 임란사상 중앙관군과 의병들이 뜻을 모아
왜군에게 대항하여 최초로 접전을 벌인 전투라는데 의미가 있어 국가의 褒忠,
彰絶사업 추진으로 순절한 관료, 의병장, 군민등에 대한 사우건립, 단설치, 관직의
추증사업을 추진하여 1990년부터 사당, 전시관, 사적비등을 연차적으로 추진하여
사적지를 조성하고 이곳에 객사(상산관), 침천정, 태펑루가 함께 이전되어 있었다.
商山館은 상주관아 수령이 매월 초하루.보름에 궁궐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望闕禮를 행하였고 중앙관서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렀던 건물로 1328년(고려
충숙왕15) 목사 김영후가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있었던것으로 추정,
1526년(중종21)과 1592년(선조 25) 소실되어 재건하고 1666년(현종7) 중건하여
현 상주경찰서 자리에 있었으나 1940년 상주여중에 옮겨 교실로 사용하다가
1991년 현위치로 이건하였으며 망궐례 모습은 북향이었으나 관광객들이
볼수 있게 서향으로 설치하였다고 한다.
枕泉亭은 1577년(선조10) 상주목사 정공수가 읍성남문밖에 건립하여 蓮塘이라
이름지어 선비들의 휴식처나 글짓는 장소로 사용하던 관청으로 임진왜란때 소실,
1612년(광해군4) 상주목사 한술이 중건하고 1614년(광해군6) 상주목사 강복성이
天香亭으로 불렀으나 1914년 도시정비계획에 다라 상주읍성이 헐릴때 지방의
뜻있는 유지 여러명이 사서 현위치로 옮기고 군수 심환진이 침천정이라 하였고
정자의 천정에는 청룡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침천정옆 언덕에는 전적기념비가 있었고 충렬사 입구에 3충신(윤성,이경류,박호)
의병장 김준신, 김일의 순국비가 있었고 충의문안 비각에는 충신의사단비가 있다.
충열사에는 7분의 위패와 순절무명열사 위패가 있었고 충렬사 양편에는 무명용사
무덤이 있으며 잔디광장에는 초헌관,아헌관,종헌관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고
임란기념관에는 기념관 유래와 참여인물상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충렬사에서 임란 당시의 도포차림에 집필묵을 갖춘 중앙군의 모습과 4월전투에서
패배한후 11월에 전란수습을 한 이야기등 상세한 설명을 듣고 충렬사를 나오니
상주관아의 동헌문루로 사용하다가 남산중교 교사로 사용하다 이건한 太平樓를
멀리서 구경하고 점심을 먹은후 정기룡장군의 충의사를 찾아갈 계획이다.
세상사 한마디
엄마 뱃속에서 살아온 280일 태생
태어나 80~100년을 살아가는 일생
죽은 후에 영원히 살아간다는 영생
인생의 삼생중 특히 오늘을 잘 살아야~~~
임란북천전적비
7인 충신.의사와 무명의사 위패
무면용사 분묭ㅘ 헌관 위치 표지
임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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