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상주 도남서원을 찾아서

오토산 2017. 6. 19. 10:46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577

 

상주 도남서원을 찾아서

 

 

충의사 탐방을 마치고 낙동강 상주보 인근에 있는 도남서원을 찾았다.

 

道南書院은 북송 장자가 제자 양시를 고향으로 보낼때 '우리 도가 장차 남방에서

 행해지리라'한 것과 조선유학 전통은 영남에 있다는 자부심에서 도남이라 하였으며

1806년(선조39) 지방유림 공의로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고 1616년(광해군8) 노수신, 류성룡 추배

1635년(인조13) 정경세를 추배하고 1677년(숙종3) 道南으로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서원철폐령때 훼철되고 강당만 남아있다가 1992~2002년 복원되었다.

 

入德門을 지나니 욕심을 비우고 고요하고 공평함을 뜻하는 누각 靜虛軒이 있고

강당인 一貫堂에 敬齋,義齋 협실이 있고 그앞에 동재 遜學齋, 서재 敏求齋가 있으며

  道正祠 정면에는 포은,한훤당,일두,회재,퇴계 순으로 以西爲上으로 列享되어 있고

좌우에는 소재, 서애, 우복, 창석 네명의 위패가 昭穆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蘇齋 盧守愼(1511~1590)선생은 본관 광주, 호는 소재. 이재. 암실. 여봉노인이며

시호는 문의, 문간으로 1531년(중종26) 성리학자 이연경 딸과 결혼, 문인이 되었고

1543년 식년문과 장원급제 전작,수찬을 거쳐 1544년서강원서사를 지냈으며

인종 즉위초 정언으로 대윤편에서 이기를 탄핵, 1545년 을사사화로 이조좌랑 파직

1547년(명종2) 순천으로 유배, 양제역벽서사건 연루로 진도이배로 19년 귀양살이

1565년 괴산 이배, 1567년 선조즉위로 풀려나 교리 기용, 1585년 영의정 등극

1588년 영의정 사임 영중추부사, 1589년 기축옥사시 탄핵받아 파직되었다

시.문.서예에 능했으나 양명학을 깊이 연구하여 주자학자들에 공격받기도 하였다.

 

蒼石 李俊(1560~1635)선생은 본관은 흥양, 호는 창석으로 형 이전과 함께

 서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591년(선조24) 문과급제 교서관 정자가 되었고

단양군수.수찬.첨지중추부사를 거쳐 부제학에 올랐으며 우복과 더불어 류성룡의

학통을 이어받아 학계에서 중요 위치를 차지하였고 남인세력을 결집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억할을 하였고 1617년(광해군9) 상주읍지인 商山誌의 편찬을 주도하였고

시호는 문간이며 도남서원과 옥성서원 풍기 우곡서원에 배향되었다.

 

우리는 정허헌에 올라서 상주보를 바라보며손재현 도남서원 전사무국장 으로부터

 도남서원의 유래를 설명듣고 주변을 돌아보며 2005년  창석 이준선생을 추가배향,

계단 일부에는 사찰의 탑돌이 사용된것, 누각에는 단청, 강당이 네칸건물로 되어

있는것 등을 볼수 있었다.

 

상주에서는 2005년 창석 이준선생을 도남서원에 추가배향하고

 2007년 조정선생의 추원당을 長川書院으로 변경하는등 근래에 유학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상주박물관을 찾아 갔다.

 

세상사 한마디

육산은 은퇴가 있어도 감정과 사랑은 은퇴가 없고

감정과 사랑은 죽는날까지 현역으로 살아간다.

오늘도 사랑이 넘치는 하루가 되시길~~~

 

 

 

 

 

 

 

 

정허헌에서 바라본 상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