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거걍대학에서 예천 도정서원을 찾아서

오토산 2017. 9. 24.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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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uh512/10806

 

 

 

거경대학에서 예천 도정서원을 찾아서

 

 

 

2017.9.17. 도산서원 선비수련원 거경대학에서 24회차로 예천지역을 답사하면서

각 문중의 존승사상을 배우고 敬을 통한 마음공부를 하기로 하고

처음으로 호명면황지리 내성천변에 위치한 도정서원을 찾았다.

 

道正書院은 1640년(안조18) 사당을지어 조선중기 문인 약포 정탁선생을 제향하고

1697년(숙종23) 강당체를 건립하여 도정서원으로 승격하였고

1786년(정조10) 정탁선생의 세째아들 정윤목을 추향하고

1866년(고종3) 훼철되었다가 1997년 복원, 사당(尙賢祠),강당,동재(自省齋),

서재(持敬堂),누각(入德樓),관리사, 전사청이 있으며

1601년(선조34) 약포선생 76세때 가파른 경사면을 깍아 내성천을 보며

누각식으로 지여 '강호를 품는다'는 뜻으로 지어진 읍호정(揖湖亭)이 있으며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건너편의 한맥골프장의 전원풍경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藥圃 鄭琢(1526~1605)선생은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이충, 퇴계문인으로

1558년(명종13)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 사헌부지평, 동부승지, 도승지,

예조참의, 강원도관찰사, 이조참판, 한성부판윤, 예조.병조.형조판서등을 역임하고

1595년 우의정이 되어 황정욱을 구하려다 탄핵되어 면직되었고

1600년 좌의정으로 등용되어 판중추부사,영중추부사를 거쳐 호종공신 2등으로

서원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임진왜란시 죽음을 무릎쓴 상소 伸救箚(신구차)로

 옥중의 이순신을 전란에 출전시켜 공을 세우게 한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淸風子 鄭允穆(1571~1629)선생은 서원부원군의 아들로 한강. 서애의 문인으로

시문이 뛰어나고 필법이 신묘하여 이국창의 담벽에 시 두구절을 초서로

 써 붙였는데 임진왜란때 왜적이 그곳에 진을 치다가 글씨를 보고 경탄하여

뜰에 내려가 절하고 떠났다하며

1616년(광해군 8) 소촌도찰방에 취임, 1618년 통훈대부에 加資되었으나

광해군의 실정에 불만을 품고 사직하고 산수를 벗삼아 詩와 書로 보냈다고 하며

만년에는 용궁의 장려평에 초려를 짓고 마을의 자제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상현사 참배와 도정서원 입덕루에서 경전독송을 한후 서원과 읍호정을 돌아보고

예천청소년수련관에서 정희융 문화원장님으로부터 예천소개와 도청의 입지,

도청청사에 표현된 경북의 정체성에 대한 특강을 듣고

문화원장님과 도정서원의 해설사와 안내하신 문중어른께 감사드리고

용궁순대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예천권씨 초간종택을 답사하였다.

 

세상사 한마디

약포선생이 벼슬을 끝내고 돌아와 읍호정에서 쓴

 우회 寓懷(회포를 부치다)

讀書常擬濟時艱  책을 읽음에 늘 세상을 구제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奔走紅鹿幾署寒             풍진 속에서 돌아다니던 세월 몇해이던가

冠亂七年無一策         7년의 왜란속에 하나의 계책도 내지 못 하고

還慚白髮始歸山     백발에 비로소 고향 돌아옴에 도리어 부끄럽네